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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땐 꽤나 큰 마루 마당 토방도 엄청 높았다.
마당엔 63 빌딩의 볕단이 쌓이고 보리단도 마찬가지여서 우린 술래잡기에 그만큼 좋은 곳은 찾질 못했다.
타작 마당으로도 사용 되었지만 한쪽엔 강아지 한쪽에는 병아리 뒷마당 변두리엔 돼아지 집 그 옆에는 우리집의 동산인 황소.
초등때 집안 실태 조사때는 부 동산과 동산을 기록할때는 황소는 동산에 속했다.
그것 뿐이랴 텃 밭 울타리를 타고 호박 다 익으면 쩍 벌어져서 빨간 속살을 드러내는 여자라는 과일인지 채소인지 구분이 안되는
보암직한 식물 보라색 가지를 툭 부러뜨러 나누어 먹고 자랐다.
집 빙 둘러 나의 세도를 부리던 감나무... 아무튼 복잡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때 우리 집이 얼마나 작고 마당은 작은 코 딱지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큰 코딱지 작은 코 딱지면 어쩌랴.
날마다 약속은 안해도 대 여섯 명은 우리 코딱지 마당을 찾았으니까.
계절별로 놀이도 다양했으니 오자미놀이 돌을 툭툭 차는 팔방 놀이 북한군 훈장마냥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삔 마루 밑 바구니에
가득한 딱지, 줄넘기 자치기.....
놀이 가지수가 셀수없었다.
그중에 코 땆지 마당 땅 따먹기는 잊을 수 없고 정구공같은 말랑거리는 공을 하나 사면 땅에 톡쳐서 멀리 날려 보내던 "찐뽕"놀이를
잊을수 없다.
그 귀한 공을 힘이센 친구가 돼아지 집으로 날려 보낸통에 빵! 하고 돼아지가 물어뜯어서 마당에서 놀던 찐뽕 놀이 팀 들은 고무신을 땅에 두들기며 울었었다.
부모님이 들에서 돌아 오실 무렵엔 싸리 대문 앞 까지 물을 쌀쌀 뿌려서 말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누가 시키질 않아도 어리지만 기본 양심들이 있었다.
중간에 간식이 없어도 공부 해라고 닥달을 안 받았어도 이리도 건강하게 자란것은 이마에 웰빙 육수가 흐르고
친구들을 좋아했던 마음들이라.
날이 무지 덥지만 밖엔 아이들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마 최 신식 놀이에 열중인가 보다.
나도 최 신식 놀이를 잘 배워둬야 손주들하고 대화가 통할텐데
옛날이 그리워짐은 어인 조화일꼬.
토요일 부모님 기일이 돌아 오니 그러나 보네?
자식들이 모여서 떠들썩 잡초 제거와 청소를 하겠지만
없어진게 너무나 많겠다.
그중에 "찐뽕" 놀이 팀들은 어디서 뭘 하시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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