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패왕별희'인가.
<패왕별희>는 1924년 군벌 시대부터 마오쩌둥이 죽은 이듬해인 1977년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 영 화는 이중의 이야기 구조를 지닌 극중극 형식이다. 영화는 1977년 다시 무대에 선 데이와 샬루를 보여주고 곧바로 회상으로 들어 가 1924년 군벌 시대의 베이징으로 장면을 전환한다. 그리고 1937년 일본군의 베이징 점령, 1945년 국민당 정권의 성립, 1949년 중국 공산당 해방, 1966년 문화대혁명을 거친 후 다시 1977년의 무대로 돌아온다. 처음과 끝의 공간이 무대 위라는 사실은 이 영 화가 단순한 플래시백 구조가 아니라 영화 전체가 경극의 무대가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감독이 하고많은 경극 작품 중에서 굳이 '패왕별희'를 선택한 까닭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주 지하다시피 '패왕별희'는 초패왕 항우가 한고조 유방과의 싸움에서 궁지에 몰려 그의 애인인 우희와 비극적 이별을 맞이하는 장 면을 극화한 것이다. 우리는 '역발산기개세'의 호걸인 항우가 하급관리에 불과했던 인물인 유방에게 패하는 역사적 사실에서 역 사의 무상함, 권력의 유동성, 영웅의 비참한 종말 등 주로 역사의 역동적인 변모 과정에 대한 다양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여기 에 더하여 패왕과 우희 사이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냉엄한 역사적 현실 속에 온기를 불어넣는 이야기로서 인간적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결국 '패왕별희'는 중국의 복잡한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에 대한 메타포로서 의도적으로 선택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데이와 샬루, 그리고 쥬산의 삶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과 동시에 경극이라는 예술의 구조와도 연관지어져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적 현실 속에서의 예술의 위상 변화
영화 속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이루어 내는 지형 속에서 경극으로 대변되는 예술의 위상은 끊임없이 변모한다. 우선 군벌 시대 당시에 있어서의 경극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다. 비록 연희자들 자신이 "천하기는 우리나 창녀나 마찬가지"라며 스 스로를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성공한 배우는 오늘날의 스타들을 무색케 하는 절대적인 인기를 누린다. 시대를 건너뛰어 1937년 중일 전쟁 무렵에도 경극은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지만, 동시에 "나라가 망해 가는데 너희는 무엇 하는 거야"라는 식의 비판적 시각과도 마주치게 된다. 1945년 장개석 정부가 다시 베이징에 입성했을 때, 군인들은 더 이상 경극에 대해 존중하 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짙은 화장을 하고 이상한 목소리와 경직된 몸놀림으로 일관하는 경극에 대해 야유를 보내는 것 이다. 그러다가 문화대혁명에 이르러서 경극은 타도되어야만 할 구식 예술로 간주되어 공개적인 처형을 당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패왕별희>가 다루고 있는 역사적 국면에서 예술은 점점 입지를 잃어버리면서 급기야는 이념에 압도되어 버린다 . 歷史別藝라고나 할까.
인물들의 삶과 예술
주요 인물인 데이, 샬루, 쥬산의 삶도 역사와 예술이라는 두 축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데이는 자신의 남성성을 부정하고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면서부터 예술 속으로 몰입한다. 어떤 등장 인물의 말처럼 '극과 현 실을 구별하지 못한 채 자신이 여자라는 착각 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역사의식이라든지 현실 감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결여되어 있다. 세도가가 장내시이건, 원대인이건, 지배 세력이 일본군이건, 국민군이건, 공산당이건 개의치 않는 다. 단지 그가 우희로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 누구 앞에서도 그는 노래한다. 비록 그러한 행동이 화를 자초하더라도 말이다. 그가 이처럼 '탈역사적'인 인물인 반면, 그의 예술관만은 굳건하다. 데이가 재판을 받는 장면을 보자. 약속된 바대로 거짓말을 하면 그대로 석방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술 의식은 자신의 자발적 행동의 순수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 요컨대 우리는 데이에게 '예술'이라는 코드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샬루는 어떠한가. 그는 예술에 대한 일정 수준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극과 현실을 구별하는 감각을 지니고 있다. 즉, 그에게는 역사의식이나 현실 감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데이에게 "극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 것임"을 주지시키려고 애쓰는 한편, 일본군 앞에서 노래를 한 데이의 얼굴에 침을 뱉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샬루에게는 '예술과 현 실'이라는 중립적인 코드가 부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립과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쥬산에게는 '현실'이라는 코드가 어울린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녀는 영화의 거의 대 부분을 통하여 이를 충족시키고 있다. 홍등가에서 잡초처럼 살아온 그녀였기에 억세고 당찬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실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능수능란함도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후반에 가서 우리는 그녀를 단순히 이렇게만 규정하는 데 대해 혼란을 느 끼게 된다. 스러져가는 전통의 은유인 보검을 혁명의 불길로부터 구해내는 과감성과 아울러 전통적인 복장을 하고 자살을 하는 모습은 그녀를 전통 예술에 대한 수호자로도 볼 수 있게 한다.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던 것일까? 아니면 예술과는 무관하게 혁 명에 대한 반감으로 인한 반동적 성향이 그녀의 이러한 모순적 행동을 야기한 것일까......?
예술의 올바른 자리매김
지나치게 단순화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주요한 세 인물에 위와 같이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다면 감독이 궁극적으로 말 하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감독은 역사 속에서 몰락해 가는 예술의 위상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가.
여기에서 잠깐 첸 카이거 감독의 이력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6살 때 문화대혁명을 겪은 그는 스스로 홍위병에 가입하여 문화대혁명의 선봉에 서기도 하였으나,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국민당원이었던 아버지가 체포당하는 사건을 목도한다. 한편 당시 "지식 청년은 농촌에 가서 생활하고 배우라"는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른 하방운동의 확산 속에서 그 자신도 중국 남서부 지방인 운남성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는 매일 되풀이되는 생활과 단조로운 삶 속에서 육체적·정신적인 괴로움 을 겪으면서 문화혁명에 대한 이상과 꿈의 비참한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감독의 사상적 지형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이념이 모든 것, 심지어는 예술까지도 지배하는 것을 그가 달가워했을 것 같지는 않다. 혹자는 데이의 죽음을 예술의 종말과 연결시키려고 할지도 모르나, 그것은 오히려 예술의 승화를 상징한다고 하겠 다. 결말 부분에서 자신이 남자임을 인식하면서 예술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온 데이는 샬루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죽음으로써 극과 현실 모두를 보존하면서 결과적으로 극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감독은 역사 속에서 굴절되어 버린 예술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독특 한 역사관을 화면에 담아 내고 있다. 즉,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샬루와 데이가 '문화계의 요괴'로 몰려 공개 재판을 받을 때, 두 사람의 모습을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통해 바라봄으로써 '혁명'의 불길에 의해 왜곡된 예술인의 모습을 영상에 옮긴 것이다. 그 리고 그 자리에서 난무하는 배신과 증오, 비굴함 등은 혁명에 대한 환멸감과 더불어 전통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예술의 고유한 가치와 순수성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음을 알게 해 주는 것이다.
패왕별희의 구조
패왕별희는 회상의 구조를 지닌다. 1977년 어느 체육관에서 데이와 샬로가 22년만에 함께 경극을 시작함과 동시에 영화가 시작되고 데이의 인생이 청말에서 군벌시대, 일본치하, 국민당 정부,공산 화, 문화혁명을 통해 그려지며 다시 1977년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구조는 영화의 내용인 역사와 사실을 경극과 동일시 하려는 감 독의 의도를 보여준다. 감독은 중국의 근대사와 중국인민의 관계를 유방과 항우의 관계로 바꾸어 보려고 한다. 즉 감독은 중국 근대사를 겪으며 굴절할 수밖에 없었던 중국인민을 그려내려 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 전반에 걸쳐 사용된 과다노출(over exposur e)을 통해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영화를 보면 화면에서 빛이 넘친다. 촛불은 눈에 부시게 타올라 주변을 밝히며, 눈은 희다 못해 푸르며,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은 근처를 부옇게 만들며, 모든 색이 뚜렷하게 살아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현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화려한 의상의 경극에나 어울리는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뚜렷한 색의 대비가 있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푸른색과 붉은 색은 각각의 의미를 지닌다. 우선 푸른색은 밤, 새벽 또는 어두운 장면의 촬영에서 나타나는 만큼 그 의미도 그리 밝지 못하다. 즉 데이가 인생에서 만나는 불행과푸른색은 결부된다. 예를 들면 데이가 장내시의 변태적 행위의 희생물이 되었을 때, 후에 자신 을 배신하게 될 서를 길거리에서 거둘 때, 후에 체포의 이유가 된 일본군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 원대인의 남첩이 될 때 등의 장 면에서 푸른색이 나타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경극의 무대가 나오는 장면은 붉은색이 우세한데 딱 한장면 푸른색이 우세한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장개석 군대가 경극장에서 소란을 피우고 샬로가 싸움을 하고, 쥬산이 유산을 하며, 데이가 간첩죄로 체 포되는 장면이다. 이처럼 감독은 푸른색에 시종일관 어두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에 비해 붉은색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이는 공산군의 북경입성을 경계로 한다. 전반부에서 붉은색은 행복과 결부된다. 즉 붉은색은 경극에서 지배적인 색으로 데이는 경극을 통해 유명인사가 되며 경극을 통해 샬로와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또 한 샬로가 쥬산을 만화루에서 구해주는 장면, 결혼식 장면등에서는 붉은색이 우세하며 이 붉은색 아래에서 인물들은 모두 행복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상군의 북경입성후부터 붉은색은 주인공의 파멸의 색이 되어간다. 데이가 주어다 키운 서가 데이에게 반 항하는 장면에서 배경에 깔리는 색은 공산당의 붉은 깃발이며, 데이와 샬로가 서로를 배신하게 되는 것도 문화혁명의 붉은 깃발 아래서 이다. 그리고 데이의 폭로, 샬로의 배신으로 자살을 선택한 쥬산이 입고 있는 옷, 신발도 붉은 색인 것이다.
패왕별희의 인물분석
1. 데이(도즈,程蝶衣)
- 어머니(여성)에 대한 증오와 그리움의 이중적 심리
데이가 처음 등장할 때 언뜻 봐서는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구별할 수 없다. 홍등가에서는 남자를 키울 수 없기 때문에 아 마도 어머니가 데이를 최대한 여자처럼 보이게 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즉 데이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여성이 되기를 강요받았을 것이다. 그때 데이가 어머니의 명령에 순순히 잘 따랐는지 아니면 거부를 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아마 데이가 거의 여자 와 흡사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어머니의 요구를 많이 받아 들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데이가 점점 자라 감에 따라 그의 어머니는 그를 더 이상 홍등가에 키울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그를 경극 배우는 곳 에 버리고 갔다. 데이의 한 쪽 손의 손가락은 여섯 개였는데 손가락이 여섯 개인 사람은 경극을 할 수 없어서 그의 어머니는 그 를 버리고 갈 때 작두로 손가락 하나를 자르고 갔다. 결국 데이는 그의 손가락을 자르고 난 뒤 그를 버리고 간 어머니에 대해서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고, 더 발전해서는 여자이지 못해서 그렇게 버림을 당했다는 사실에서 여성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데이의 심리는 여러 가지 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머니가 주고 간 옷을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태워 버리는 것과 그렇게 많이 맞으면서 까지도 경극에서 여성의 역할을 하기를 거부한 점 등이다. 나중에 쥬산을 미워하게 되는 일에서도 샬로를 뺏어 간 쥬산에 대한 질투심이 주요한 원인이었지만, 그 이전에 데이의 심리의 바닥에 깔려 있었던 이러한 여성에 대한 증오심이 그녀 에 대한 미움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 갈 점은 데이가 어머니에 대해서 증오로 일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다 태워 버리기는 했지 만 그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여러 번 썼다. 그리고 아편을 먹고 거의 몽롱한 상태에서 쥬산의 품에 안겨서 어머니를 간절히 부르 며 그리워하고 있다. 이때 쥬산은 창녀이고 데이의 미움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어머니와 너무도 흡사하다.
결국 그는 그를 배신한 어머니를 증오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워하기도 하는 이중적 심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 경극에 대한 몰입
데이가 처음부터 경극에 몰입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 그는 경극 도장에서 도망을 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밖에서 경극 스타의 연기를 보고 그만 감동해서 세 줄기의 물을 줄줄 흘리고 만다. 그래서 그는 다시 경극 도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데 이가 경극에 완전히 몰입했다고는 할 수 없다. 비록 데이가 도장으로 다시 돌아와서 경극 연습을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여성의 역할을 하기는 끝까지 거부했다. 그러다가 자꾸만 사부의 명령을 거역하고 남자이기를 고집 하는 데이의 입에 샬로가 피가 날 정 도로 담뱃대를 쑤셔 넣으면서 그 역할을 하라고 한다. 그 순간 이후로 데이는 경극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즉 그는 경극을 보 고 감동을 하고 게다가 데이에 대한 샬로의 극진한 우정으로 경극의 세계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경극과 어머니의 유사성에서 다음과 같은 측면의 분석도 가능하다. 데이는 어머니와 경극 모두로부터 그가 여자이기를 강 요받았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로부터는 버림을 받았다. 그래서 또다시 그에게 여자이기를 강요하는 경극으로부터도 이전에 어머 니에서와 마찬가지로 버림을 받을지 모른다는 본능적인 불안감 때문에 그렇게 여성의 역할을 하기를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 다가 결국 경극을 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어머니와 유사한 경극에 데이가 몰입하게 된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현실과 극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경극에 빠지게 된다. 성적 정체성을 상실한 채 자신을 우희라 생각하고 패왕 인 샬로를 사랑한다. 샬로를 극진히 보살피고 그와 영원히 함께 하기를 바란다. 현실 세계에서 그로부터 샬로를 뺏아간 쥬산을 증오하며 질투심에 원대인과 동성연애를 하기도 한다.
마지막에 가서 그는 경극의 완성을 위해 자살을 한다. 극은 극일 뿐 현실 세계에서는 패왕과 우희의 사랑도 이루어 질 수 없고 우희도 정말로 자살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데이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극의 완성을 위해 자살을 한다. 경극을 위해서라면 성적 정체성도, 역사도 심지어는 목숨마저도 내버린 것이다.
- 쥬산에 대한 질투심과 공감
쥬산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샬로는 온전히 데이의 것이었고 샬로에게도 데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인물이었다. 하지 만 샬로가 쥬산을 사랑하면서부터 현실에서는 데이와 점점 멀어져 가게 된다. 게다가 쥬산은 샬로를 자꾸만 경극을 하지 말라고 부추겨서 극에서마저도 데이와 떼어놓으려 한다. 이러한 쥬산에 대하여 샬로를 사랑하는 데이는 강한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게 다가 쥬산이 창녀라는 점에서 어머니와 비슷하였기 때문에 더욱 미워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쥬산을 샬로에게서 갈라놓으려 하고 자신을 동정하는 쥬산의 호의마저도 거절한다.
하지만 쥬산은 자신이 그리워하는 어머니와 너무도 비슷하였고 자신의 처지를 자주 동정해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샬로 를 사랑하였고 마지막에 가서는 두 사람 모두 샬로에게서 버림을 받게 되어 둘 사이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쥬산이 자살을 하 고 그것을 본 데이는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날뛰었다는 점에서 데이가 쥬산을 미워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쥬산에 대한 데이의 생각은 다음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쥬산은 그가 그리워하기도 하고 미워하기 도 하는 어머니였고, 그와 경쟁 관계에 있는 현실 세계의 또 하나의 우희였던 것이다.
2. 쥬산(菊仙)
쥬산은 원래 창녀였다. 그래서 그녀 주위에는 항상 남자가 있지만 모두 그녀를 창녀로 생각할 뿐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사 람은 없다. 그런 일에 종사하는 모든 여자들의 바램이듯이 그녀도 진정한 사랑을 한번 해 보는 것이 평생의 꿈인지도 모른다. 그 런 그녀에게 샬로가 나타난 것이다. 처음엔 쥬산과 샬로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그저 창녀와 손님의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샬로가 위기에 처한 쥬산을 구해 주고 난 다음에 쥬산은 샬로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문화 혁명 시기에 그녀 가 말했던 것처럼 '아무 생각할 필요도 없고 편안히 지내면서 세월 흐르는 것도 몰랐던 만화루'를 박차고 샬로에게로 왔다. 샬로 또한 이런 쥬산을 받아 주었다.
쥬산이 어떻게 해서 만화루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 역시 그런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 가닥 깊 은 사연을 안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매우 현실적이고 냉정한 사고를 하며 매우 강인한 생명력 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쥬산은 샬로에게서 경극을 떼어놓으려 하기도 하고 다시 경극을 하도록 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일관성이 없는 행동이 기도 하지만 그 밑을 꿰뚫고 있는 하나의 흐름은 샬로에 대한 깊은 사랑이다. 샬로를 완전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이 위해, 역사 의 격동으로부터 샬로를 보호하기 위해 샬로를 경극에서 떼어놓으려 하기도 했지만, 평생 경극만을 했던 샬로의 삶에서는 경극을 빼면 아무것도 없고 빈 껍질만 남는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샬로와 경극을 이어주려고 한다. 쥬산은 샬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현실 세계에서의 우희인 것이다. 그녀의 샬로에 대한 진정한 사랑에서 우리는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인간적인 매력은 데이에 대한 동정이다. 비록 데이와는 샬로를 사이에 둔 戀敵 관계이지만 , 데이의 처지를 동정하기도 하고 자신을 자꾸만 거부하는 그에게 도움을 베풀려 하기도 한다.
3. 샬로(시토,段小樓)
샬로는 의협심이 강하다. 데이를 도와 경극으로 이끌기도 하고 위기에 빠진 쥬산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두 사람 모 두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그에게 있어서 데이는 극 속의 우희였고 쥬산은 현실의 우희였다. 그 둘 즉 데이와 쥬산, 경극과 현실 사이에서 그는 왔다갔다하며 고민한다. 그러다 문화 혁명기에 데이도 쥬산도 모두 배신을 하고 만다. 어쩌면 평생 경극만을 한 그의 현실적인 감각이 모자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항상 의협심에 들떠서 그것에만 따라 행동을 하다가 현실의 위기가 닥치면 쥬산이 도와주어서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그러다가 문화 혁명이라는 절대 절명의 현실의 위기가 닥치자 그는 어찌할 줄을 모르 고 결국은 모든 것을 배신한다. 그가 의도적으로 배신하였다기보다는 현실에 대한 적응력이 모자라서 자신의 모든 것인 경극과 사랑을 박탈당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4. 그 외의 인물
사부는 한마디로 경극인이라 할 수 있다. 평생을 경극만 하며 살다가 경극 도장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도중에 쓰러져 죽는다. 경극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굽신 거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는 데이가 주워 온 아이다. 그 역시 경극을 사랑한다. 하지만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들면서부터 자신의 사부인 데이와 갈 등을 겪는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사부를 미워하게 된다. 그래서 문화혁명 시기에 모두를 파멸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도 어떤 철저한 이념적 바탕에서 문화혁명의 선봉에 섰던 것이 아니라 단지 사부에 대한 원망에서 그러한 일을 하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무너지는 데이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지으며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된다.
원대인은 당대의 세력가로서 역시 경극을 좋아한다. 그리고 경극 속의 데이의 모습을 보고 반한다. 데이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그를 구해 주려 한다. 하지만 데이로부터 사랑은 얻지 못한다. 결국 그는 공산당 정부가 섰을 때 처형되고 만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화면구성으로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첫째 데이가 아편에 탐닉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극장주가 데이를 대신하여 어머니에게 쓰는 편지와 그의 장난을 볼 때 데이가 과거 샬로와 함께하던 기억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 고 이 장면에서 화면구성은 이러한 사실에 충실하다. 즉 데이는 금붕어가 수놓아진 휘장을 통해 보여지며, 이는 아편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부합된다. 또한 휘장에 수놓아진 금붕어와 어항속의 금붕어가 동일시 되고 화면 내에서의 소리를 울리게 함으로써 데 이가 금붕어처럼 어딘가에 갖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암시를 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문화혁명의 장면이다. 샬로와 데이를 비롯한 경극 단원과 서, 쥬산은 모두 불길을 통해서 촬영된다. 이러한 촬영은 문화혁명이 인물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는 데이를 배신했고, 예전의 동료였던 경극배우들은 데이와 샬 로를 배신하고, 샬로는 데이를 배신하고, 데이는 샬로를 배신하며, 샬로는 쥬산마저도 배신한다. 즉 인물들의 신의, 사랑과 우정 이 모두 사라지고 서로 배신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추악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감독은 이러한 추악함을 불길을 통해 촬영하 여 인물의 모습을 이지러뜨림으로써 담아낸다. 즉 불길이 상을 이지러뜨리듯이 문화혁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제모습을 잃고 이지 러진 추악한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잦은 스테디캠(steady camera)의 사용이다. 데이가 서에게 우희의 역을 빼앗기는 장면, 문화혁명의 장면 등에서 스테디캠은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희생당하는 개인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Chen Kaige 감독
'93년 깐느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패왕별희'라는 작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을 만든 감독에 대하여 잘 알 아야 할 것이다. 한 영화에는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사상과 신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패왕별희'를 만든 첸 카이게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중국의 제 5세대를 대표하는 그는 비교적 적은 작품 수에 비해 누구도 흉내내 수 없는 자신만의 철 학과 중국본토에 뿌리를 내린 새로운 영상 스타일을 구축하여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의 대열에 서 있다. 이러한 그를 잘 알기 위해서 중국의 제 5세대 감독군의 형성 배경과 첸 카이게의 각 작품들의 세계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중국의 영화역사는 중국의 근대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내용과 형식을 키워왔는데 일반적으로 5개 세대로 나뉜다. 제 1세대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기 이전까지를 말하며 시민생활을 소재로 한 것으로 예술적으로는 아직 미 약한 수준이나 초창기 중국영화산업의 기초를 쌓았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대표적 인물로는 장시츄안, 혼시엔, 챠이츄숀, 세엔시 링, 유안무 등이 있다. 제 2세대는 1949년부터 59년까지로 사회주의 당노선에 따른 국가차원의 지원으로 이념과 영화가 일치되었 던 시절이다. 탄시아오탄, 시엔후, 시호이 등이 이 때 활동하였다. 제 3세대는 57년부터 문화혁명기가 끝나는 75년까지 해당되는 데 이 시기는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아래 중국 각 분야에 심한 숙청이 가해진 암흑기였다. 이 때는 유물주의적 심미관의 확립시기 로 '전형화'를 통해 실생활 속에서 전형적인 것을 추출.융축시키고, 예술적이고 생생한 인간상을 만들어 냄으로 역사성과 실생활 의 본질과 패턴을 반영하고 그것을 강조하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대표적 영화로 세진 감독의 '부용진'같은 작품이 있다. 76년부 터 83년까지를 제 4세대라고 하며 문화혁명이 끝나고 문화예술이 해금을 맞이한 세대이다. 비록 해금된 상태에서 비교적 심각하 게 사회를 영화에 반영하였지만 사회주의 이념의 엄격한 원칙을 과감히 넘진 못했다. 이 시기 감독들은 전문적인 영화교육을 받 고, 다양한 영화사조의 영향을 받아 제 5세대 등장에 있어 창조적 동기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 '노정'의 우지아밍, '사구'의 창누안신, 청동티엔 등이 대표적 감독들이다. 제 5세대는 1984년부터 최근 10여년간 등장한 새로운 감독들을 지칭하며 이들 5세 대 감독들은 10대를 열렬한 모택동주의자로 맞이하여 문화대혁명을 거쳤으며 그 과정에서 하방되어 노역을 당했고 문화혁명 이후 북경아카데미에서 공부를 마친 세대로서, 이전 세대들이 이데올로기적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실적이고 구상적인 스토리 에 연연했던 것과는 달리 인본주의에 입각한 민중의 삶에 시각을 접근시켜 통일성과 완벽성을 추구했다. 특히 광활한 중국의 자 연과 전통은 이들 작품의 주를 이루었고 전통과 현대의 갈등, 그 속에 이념과 한 인간의 고뇌를 독특한 색채와 전통적인 정감을 사용해 표현하고 있다. 대표적인 감독으로는 장이모우, 첸카이거, 장군자오, 티엔장장, 오자우 등이 있다.
첸카이거 감독은 바로 제 5세대를 대표하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창건한 3년후인 1952년 영화 제작자인 아버지 첸화이거와 시나리오 작가인 어머니의 아들로 북경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의 예술 취향으로 길들여진 순진한 학생이었으나,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문화대혁명이 그의 나이 16세때 일어났다. 전 중국을 흔드는 혼란의 도 가니 속에서 국민당원이었던 아버지는 체포된 반면, 태어날때부터 공산당 교육을 받아온 첸카이게 자신은 홍위병에 가담하여 문 화대혁명의 선봉에 서기도 하였다. 문화대혁명동안 각급 학교들은 문을 닫게 되었고, 당시 모택동의 지시인 "지식 청년은 농촌에 가서 생활하고 배우라!" 라는 말에 따른 하방운동의 확산 속에서 첸카이게 자신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는 1969년 중국 남서부 지방인 운남성으로 보내지게 되고, 그 곳에서 벌목과 고무나무경작을 하며 농민들과 함께 생활한 그는 매일 같이 되풀이되는 똑같은 생활과 단조로운 삶속에서 육체적, 정신적인 괴로움으로 인해 당시에 가졌던 문화혁명에 대한 이상과 꿈의 비참한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문화혁명시기의 첸카이게 감독의 체험들은 그의 작품세계에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여 '황토지', '대열병', '아이들의 왕' 등의 제작 기반이 되고 있다. 그 후 1975년 북경에 돌아온 첸카이게 감독은 북경 영화연구소의 필름현상공으로 일하다가 1978년 다시 문을 연 북경 영화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다른 5세대의 주역들과 함께 본격적 인 영화수업을 받게 된다. 졸업 후 두세 편의 TV작품을 연출하였으나 보수적인 북경의 당시 상황으로 인해 동기생인 장예모와 함 께 변두리의 소규모 스튜디오인 광서 영화제작소로 옮겨간다. 변두리로서 정부의 통제도 그만큼 약한 탓에 새로운 영상과 정부의 정책에 우회적인 비판까지 담고 있는 '황토지'를 제작할 수 있었다. '황토지'는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에 의해 기소되어 상영금 지처분을 받기도 했으나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후 첸카이게는 '대열병', '아이들의 왕 ', '현위의 인생'을 제작하여 지금의 '패왕별희'에까지 이르게 된다.
첸카이게의 첫 작품인 '황토지'는 땅에 대한 영화이다. 그 스스로도 '황토지 자체가 역사와 닮은 의미를 가지는 시각적 방법 으로 촬영했다.'고 말하는데, 그는 땅의 중요성과 인간의 종속됨을 자연속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에 대한 애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지평선이 화면의 5분의 4를 차지하는 가운데 작게 걸어오는 병사를 잡은 파격적인 구도의 사용을 통해 대자 연 속의 무력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설정하기도 하고, 황토지에 굽이진 길, 언덕 위의 초가와 그 옆의 황하 등의 한 폭의 중국 화를 연상시키는 풍부한 여백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는 중국의 전통음악이나 풍속, 주변풍경들에서 나타나는 강렬한 색채 등을 통해서 중국의 전통적인 미학과 아름다움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 영화는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은표범상을 수상하고, 뉴욕대학 비평가상을 수상하면서 신중국영화의 등장을 확인시킨 선언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번째 작품인 '대열병'은 1984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35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을 위해 각 지방에서 모여든 병사들이 집단 훈련을 받으면서 교관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북경의 천안문 광장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한 가 운데 그들은 자신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무엇을 위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던진다. 모택동이 정권을 잡았지만 그들이 만드는 체제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비판의식이 담겨있는 이 작품은 행진 중의 발걸음 소리, 총을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붉은 깃발이 오버랩된 획일화된 대열병의 모습을 통해 한 인간과 군대라는 조직의 관계속에 드러나는 인간소외와 인간성의 말살이라는 주제의식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첸카이게는 위의 두 작품이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받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탄압을 받음에 따라 광시 스튜디오를 떠나 제 4세 대 감독인 우티안밍이 운영하는 시안영화제작소로 옮겨가서 '아이들의 왕(해자왕)'을 만든다. 이 영화는 문화혁명이 기승을 부릴 즈음 생산대에서 파견된 청년이 산골학교 교사로 발령받아 수업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학교에는 책조차 없고 학생들은 단지 칠판을 배껴적을 뿐이다. 수수방관하는 다른 교사들의 눈초리 속에서 청년 교사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쓰 며, 정직하게 쓰고 싶은대로 써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는 당국과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다시 생산대에 보내진다. 스스 로도 하방운동에 참가한 첸카이게 감독은 학교교육을 받지 않는 목동을 통해 제도화된 교육과 그것의 가치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 며 교육조차도 모순에 가득찬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슬그머니 드러낸다.
우리에게 소개되었던 바 있는 '현위의 인생'은 그의 네번째 작품이다. 늙은 사부에게서 눈먼 소년이 천번째의 현이 끊어지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비법을 전수받고 그후 60여년 동안 평생 악기를 연주하여 '성인'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자신 을 위해 현을 연주하는 순간 천번째 현이 끊어지지만 현속의 처방전은 백지일 뿐 성자는 비웃음만 사게 된다. 그 이전 세편의 영 화들과는 확실히 달라진 스타일과 사상의 깊이가 드러나는 이 작품에 대한 '처방전의 백지상태는 모택동의 헛된 공약을 의미하는 정치풍자가 아니냐?'는 시각에 첸카이게는 '이 영화가 신념에 관한 영화'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믿는 것 그 차체이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고 그는 말하고있다. 그는 대립과 싸움, 질투와 반목속에서 평화와 화합을 이루어 나가려는 삶의 의미를 이야기 하며, 이데올로기의 갈등속에서 뿔뿔이 갈라서게된, 그리고 문화혁명으로 그 존재기반마저 흔들려버린 중국인의 아이덴티티 회복 을 두 장님 음악가의 삶을 통해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현위의 인생'이 악사의 이상에 관한 영화인 반면, '패왕별희'는 경극 배우의 무대위의 삶(이상)과 무대 밖의 삶(현실)의 혼 돈이 묘사된 작품으로 역시 아이덴티티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54년간 중국의 격동기를 살아온 두 남자의 애증 관계를 통해 첸카이게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의해 무참히 파괴된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그는 청데이란 인물의 특별 한 인간상을 그리려 노력했으며 이 영화가 보려주려는 것은 경극이 아니라 예술가, 사랑, 정열에 대한 것이다. "뛰어난 예 술가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환경을 망각할 정도로 몰두하곤 한다. 나는 예술행위란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정도 이상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자신의 영화 제작에 대한 신념을 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첸카이게의 작품세계는 전통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인해 논리적이거나 이론적이기보다는 동양적인 감성과 직관이 많이 작용되어 있다. 또한, 그의 영화는 긴장의 고조와 갈등의 해소 등을 따르기보다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이 조용 히 진행되다가 소용돌이를 만난 듯 영화의 내용은 극으로 치솟는가 하면 호수에 다다르듯 평온해진다. 이러한 영화의 흐름과 발 맞추어 그의 작품에는 일정한 결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영화에서는 말해지지 않은 것이 말해진 것만큼 중요하다. 그 는 형식적으로도 과거의 틀을 넘는 파격적인 구도와 색채를 사용하였으며, 중국 전통 문화를 표현하려 하였다. '황토지', '대열 병', '아이들의 왕'이 자신의 실체험을 근거로한 지난 과거에 대한 반성을 뜻하는 작품이었다면, 4년여의 공백기간을 가진 이후 의 작품인 '현위의 인생'이나 '패왕별희'는 현재의 보편적 중국인에 대한 잊혀지고 지워져버린 아이덴티티 회복을 위한 작품이라 고 볼 수 있다. 이제 첸카이게 감독도 중국이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변화하듯이 한번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중국의 이야기 를 넘어서 세계의 모든 인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 본성을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