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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
□ 매창 : 1573(선조 6) ~ 1610(광해군 2) 조선 중기의 기생. 여류 시인. 본명 향금(香今). 자는 천향(天香). 호는 매창(梅窓). 부안 출생. 계유년에 태어났다 하여 계생(癸生)이라 불렸다 하며, 계랑(桂娘)이라고도 하였다.부안에서 아전을 지낸 이탕종(李湯從)의 서녀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당재 최고의 시인이었던 유희경과 사랑을 나누었고, 그 당시 최고의 문호라 할 수 있었던 허균과의 교분도 깊었다. 38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버린 매창은 1573년에 부안의 아전이었던 이탕종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글을 배웠고, 아버지가 돌아간 후에는 기생 신분이 되었다. 어린 나이로 현감에게 수청을 들었으나 버림을 받은 후 홀로 지내다가 유희경(劉希慶)을 만나고 나서야 진정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어쩔 수 없이 유희경과 이별한 후 소식이 없자 임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정서를 '이화우(梨花雨) 흩날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으로 노래한다. 전쟁으로 인해 유희경과 이별해 있는 동안 당대의 대문호인 허균을 만나게 되었고, 그 역시 매창을 사랑하여 10년 넘게 사귀었던 것으로 보인다. 허균이 매창에게 참선을 권하는 내용의 글을 자신이 쓴 기록에서 밝히고 있는 점으로 보아 두 사람은 정신적인 사랑을 주고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도 매창은 그토록 사랑했던 유희경을 만나보지 못하고 홀로 병마에 시달리다가 1610년 세강을 떠나게 되고 공동묘지에 안장된다. 그로부터 13년 뒤에 부안의 아전들이 중심이 되어 그녀가 남긴 시 중에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58편의 작품을 모아 개암사에서 매창집을 펴네게 된다. 그녀가 죽은 후 수십년 뒤에는 부안 사람들이 매창을 기리는 묘비를 세웠으며, 그 묘소를 초동들이 해마다 벌초를 했다고 한다. 지금도 '매창이뜸'으로 불리는 부안의 공동묘역은 수천 평에 이르는 매창문화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홀로 세월을 보내면서 그녀가 즐겨 찾았던 상소산(上蘇山)의서림( 西林)에 있는 금대(琴臺)의 혜천(惠泉)이란 샘물 옆에는 1974년 세운 매창 시비가 있다. 「추사(秋思)」 「춘원(春怨)」 「유회(遺懷)」 「증취객(贈醉客)」 「부안회고(扶安懷古)」 「자한(自恨)」 등이 유명한 작품으로 꼽힌다.
□ 수수(隨手) : 손을 따라. 당기는 손에 의해
□ 은정(恩情) :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