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는 직접 목재상에서 생나무를 사서 책꽃이를 만들었다.
그 작업은 3층의 옥상에서 진행되었으며, 톱질과 못질과 빼빠질을
거쳐 이제 니스칠만 하면 완성된 책꽂이가 탄생하는 것이다.
햇빛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4월달, 그리 두 남자가 현대자동차
앞 빌딩의 옥상에서 책꽂이를 만들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개인용 책꽂이라면 이리 수고스럽게 만들 필요가 없다.
그저 몇 만원 주고 작은거 하나 사면 될 일이지만, 당시, 한
대 여섯명의 사람들이 일일이 지인들을 찾아 다니며, 그 지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책들을 협박반 회유반 거의 뺏다시피하여
일톤 트럭으로 한 가득, 수천권의 책을 마련 하였던 것이다.
80년대 후반, 대학과, 공장은 민주화의 열기로 가득차 있었고
그와 나를 위시한 젊은 사람들은 혁명의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니 만큼 사회 변혁에 관한 많은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고
사구체 논쟁이라는 혁명적 방법론에 대한, 소위, 사상투쟁이라는
것도 뜨겁게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많은 학생 출신들이 "민중속으로"의 기치를 내걸고 공장으로
달려 갔으며 그와 나도 경기도 일대의 공장를 전전긍긍하다가,
조직사건으로 엮여 투옥과 출감의 과정을 거치며 결국 노동자의
도시 울산이라는 곳에 거처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 파악은 안되었지만, 우리가 내려오기 전에 울산은 이미
많은 학출들이 내려와 있었고, 일정 부분 조직화의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나름의 학습과 결의를 통해 이전을 결심하고는
있는 돈 없는 돈 다끌어 모았다.
그리고 그 모든 청춘을 불살라,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여기에
뼈를 묻자고 그리 생나무에 못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형~~ 우리 사건 말이여요. 그거 내용을 잘 모르시죠?"라고
지나간 이야기에 대한 운을 뗀다.
"그렇지요, 전 도망다니니라 바빠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 그 후에도 뿔뿔이 다 흩어져서 총평 한번 제대로
한적이 없으니, 전 얼핏 얼핏 떠도는 이야기를 몇마디
들은것 밖에..."
"근데 말이여요 조형~~ 조형은 어떻게 잡히지 않았죠?"라고
지나가는 투로 물어본다.
난, 그를 의아한 듯 쳐다 보았다. 그러자 그는
"아~~ 뭐 제가 이렇게 물어 보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우리 조직있잖아요. 그거 잡히지 않기 위해서 원칙도 정하고
규율도 엄하게 세웠었잖아요. 근데 그렇게 깨지고 나니까
조형이 좀 궁금해서요..."
"사실 다 잡혀가면서 조형~~쪽으로 많이들 민것 같더라고요"
사실 그랬다. 경기도 쪽에서 만들었던 조직이 깨질때 난 거기 가입한지
얼마되지 않는 신참 조직원이였다. 내가 거기 들어가고 일년도 채되지 않아
최상부 조직원부터 깨지기 시작하였고, 그것도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잡혀 가면서 와르르 깨진 것이다. 잡혀간 사람들은 안기부의 고문속에서
누구 이름하나 불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지경이 였던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노릇이였이다.
안 잡힌 사람중에 그나마 잡혀도 부담 없는 사람이 나빡에 없더
란다. 하여 몇사람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고, 안기부는 나를 잡기위해 공개수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반제 반파쑈 구 동맹" 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내 이름이 상층 한 가운데의 중요한 자리에 떡하니 올라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안잡혔던 것이다.
조직사건이란 것이 월래 대충 그림 그려 넣고 거기에 사람이름
끼워 맞추고 잡아 들여서 언론에 터트린다. 그러면 그 조직사건
터트린 공안부서는 실적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중간에 이름하나 빠진 조직도를 그려 놓고 보니 영
이빨빠진 것 처럼 이상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저 사실, 텔레비에 얼굴까지 나왔었어요"라고
그에게 말했다.
"정말요?' 그는 놀란듯 내 얼굴을 쳐다본다.
"아니 그럼 공개 수배까지 되었단 말이여요? 갸들
원만해선 그런 짓 안하는데..."
"그러게요, 지들이 보기에도 워낙 그림이 눈깔 빠진것 처럼
이상했나 보죠?"라고 내가 맞받아 쳤다.
"근데 어떻게..?"라며 그가 말꼬릴 흐린다.
"제 생각엔 한 두어달만 버티면 될것 같더라구요. 어차피 지들도
잡아 놓은 사람들이 있으니 언론에 터트려야 할것이고
그렇게 일단 터트리면, 사건 종결되는 거죠 뭐..."라고 내가 말했다.
"거야 그렇지만, 이 잡듯 샅샅히 뒤졌을텐데..."라며 말꼬릴
흐린다.
"제가 갈곳이 어디 있겠어요? 돈도 없고, 그냥 가라증하나 가지고
영세공장에 쳐박혀 있는거죠"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안 움직이면 못잡잖아요" 난 그냥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고, 담배연기는 구름이 뭉게 피어오르는
쪽으로 날렸다.
책꽃이는 총 11개 였다. 우리는 건물지하 100평 정도를
통째로 전세를 얻었다.
이미 책들은 서울 등지에서 모여져 그 지하로 옮겨져 와 있었다.
우리가 그 지하를 얻기 전 그곳은 창고 비슷하게 방치되던 곳이였다.
대로변이였지만 상가 형성이 안되어 있는 까닭에 아주 싸게
얻을 수 있었고, 얻자 마자 우리는 수도시설을 요구하여 물도 나오게
만들였다.
냉장고및 가구 몇개와 소파 의자등등을 또 거의 뺏다시피하여
마련해 두었고, 책꽃이 작업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오픈 날짜를 5월 1일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