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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학기행,
경주, 한국 문학의 중심지
월성중학교 2학년 6반 김민욱
원래 오늘은 저번 주 못 갔던 국립경주박물관을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신보영 선생님께서 한번 가보라 하셔서 나중에라도 갈 수 있는 박물관보다는 여기를 가기로 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가야겠다. 날씨는 약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축축한 날씨다. 약속장소인 실내체육관 앞에 가니 여러 중학교에서 온 애들이 버스에 타 있었다. 같이 가기로 한 형민이도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인솔교사로 오신 교감 선생님께서도 같이 오셨다. 그렇게 약 40명 정도 되는 경주 일대 중학생들은 문학 기행을 떠났다.
(실내체육관 일대. 날씨가 많이 흐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금장대! 처음에는 포장길이어서 편했지만 가면 갈수록 질퍽해지는 길이 영 걷기가 불편했다. 짧아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날뻔 했다. 우여곡절 끝이 도착한 금장대는 웅장한 자태를 뽐냈다. 금장대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시와 풍류를 읊던 정자다. 옛 선비들의 문학은 바로 이런 전망 좋은 곳에서 읊조리던 시 구절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금장대도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북천과 서천이 만나는 곳으로 신라시대부터 귀족들이 자주 찾아왔던 곳이라 한다. 또한 '금장낙안'이라 하여 경주 삼기팔괴 중 하나로 기러기들도 가다가 여기 경치에 반하여 반드시 쉬어간다고 한다.
(금장대 가는 길. 사실 첫판만 포장돼 있고 나머지는 흙길이다.)
(금장대. 웅장한 규모가 우리를 압도한다. 정자치고는 과하게 큰 것 같다.)
조선시대 이후 금장대는 언제부터인가 없어졌고 터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 금장대 건립사업이 추진되었고, 그렇게 여러 해에 걸쳐 마침내 금장대를 완성했다. 하지만 으레 우리나라 복원사업이 그렇듯 금장대 건립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로는 건축양식이 신라시대 양식이란 것이다. 물론 신라시대에도 많이 찾았다고 하나 정자가 완성된 건 조선시대로 보고 있다. 그런데 신라시대 양식으로 건립한 것이다. 경주가 신라 천년고도라 해서 너무 신라적 이미지만 강조한 듯하다. 더 이상한 건 신라시대 양식에 단청색은 조선시대 것인 녹색단청이란 것이다. 두 번째는 크기가 너무 큰 것인데, 멀리서 보면 주변 경치보다 너무 과하게 규모가 크다. 물론 건립당시 미리 사전조사를 했겠지만 조금 경관과는 많이 어울리지는 않는다. 몇 년 정도 지나면 아마도 어 점에 대해서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듯하다.
(금장대 내부. 녹색단청이 마음에 들긴 하지만 신라양식에 조선단청이란 게 조금 걸린다.)
(금장대에 모인 우리들. 선생님께서 설명을 하고 계신다.)
(금장대 주변 파노라마. 북천과 서천이 만나는 지점으로 경주 시내 일대가 전부 보인다.)
금장대에서는 일종의 명상수업을 했다. 바른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것이다. 시각은 바로 앞에 보이는 것 때문에 자잘하게 들리는 소리에 방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눈을 감는 것이다.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에 기울이면 평소에 들리지 않았던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린다. 빗물이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 바람에 가지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강물 소리, 저 멀리 도로에서 차들이 달리는 소리, 간간이 비를 잊고 우는 새소리 등등.... 평소에 큰소리에만 집중하고 자극적이고 빠른 음악에 심취해 오히려 이런 물소리, 바람 소리는 귓바퀴가 잘 듣지를 못했던 걸까? 눈을 감으니 비로소 들려온다. 그렇게 한 10여 분 정도 명상을 하다가 이번엔 편하게 누워 보라고 하신다. 계속 앉아 있다고 누우니 편하다. 초록빛 단청이 내 눈에 들어온다. 가끔 문화재를 볼 때 난 천장을 본다. 천장의 문양과 색에 따라 그 건물의 성격을 알 수 있다. 한국 건축의 미는 천장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금장대 천장 단청. 여러 가지 색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금장대에서 내려와 잠시 난 옆길로 가본다. 거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석장동 암각화가 있다. 경주는 대부분이 신라시대 유적들이지만 간간이 선사시대 유적들도 보인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이 석장동 암각화다. 윤곽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무슨 문양들이 새겨진 건 확실히 보인다. 암각화를 보다가 일행과 좀 떨어졌다. 바삐 걸어가던 중 동국대학병원 방향으로 다리가 하나 보인다. 아마도 여기로 가는 다른 길인 듯하다.
(석장동 암각화. 무슨 모양인지는 모르겠지만 희미하게 어떤 문양이 새겨져 있다.)
(금장대 내려가는 길. 옛날에는 완전 밀림길이였는데 최근에 정비해놓아서 좋다.)
(금장대로 가는 다른 길. 주차장과 다리가 보인다. 밑에는 도라지꽃이 피어있다.)
금장대를 벗어나 이번에는 동부동 쪽으로 간다. 작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번에 가는 목적지는 바로 김동리 생가. 작년 2011 동계 국토순례처럼 이번 생가도 조금 시내 쪽에 위치, 아니 완전 시내 안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며 우리는 우산을 쓰고 그곳에서 김동리 선생님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김동리 생가 가는 길. 하늘을 가르는 전깃줄들이 흐린 날씨를 더 흐리게 만드는 것 같다.)
(김동리 생가. 지금은 생가는 없어지고 터에는 호박, 파 등 누군가의 채소들이 자라나고 있다.)
(회양목 사이로 자라난 호박줄기.)
김동리 선생님의 본명은 김시종. 한국 문학계의 거장이자 박목월 선생님과 더불어 경주를 대표하는 근현대 문학인이다. 특히 그분의 작품인 '무녀도'는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 중 하나이다. 그리고 바로 그 무녀도의 배경이 된 곳이 경주 금장대이다. 또한, 무녀도를 개작한 '을화'는 노벨문학상 본선까지 진출하여 거의 3위권까지 갔다고 한다. 그리고 을화는 현재 10개국어로 번역되어 김동리 선생님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임을 알렸다. 김동리 선생님은 박목월 선생님과 선후배 사이였다. 그러나 김동리 선생님보다 나이가 어렸던 박목월 선생님께서 김동리 선생님보다 더 일찍 돌아가셨다. 박목월 선생님 역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송아지', '산새알 물새알' 등이 있다. 이처럼 경주가 문학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문학가를 배출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간단한 설명이 끝나고 다음 목적지인 보문 허브랜드로 향했다. 그런데 버스는 자꾸 장항리 쪽으로 갔고 결국 장항리 허브랜드에 갔다가 다시 차를 돌려 보문 허브랜드로 갔다. 선생님께서는 잠시 드라이브 한 거라고 하시지만 아마도 두 허브랜드를 헷갈리신 것 같다. 아무튼, 도착하니 꼭 널찍한 정원을 닮은 듯한 허브랜드가 펼쳐졌다. 공룡랜드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 그렇게 많은 공룡이 있는 편은 아니다.
(보문 허브랜드. 겉 외양은 멋지지만 비싼 입장료와 음식들은 좀 조정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가 설명을 듣고 공부하는 것이라면 이번에는 쉬는 시간. 비가 오는 게 조금 그랬지만 각종 향긋한 허브들이 코를 자극했다. 점심은 간단하게 때웠다. 그리고 파충류 박물관에 들어가 각종 뱀과 개구리들을 보았다. 솔직히 개구리, 뱀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새들과 허브가 더 관심 있었다.
(로즈메리(미질향). 생명력 강하고 향이 좋아 가장 널리 알려진 허브다.)
(애플민트. 사과향이 나는 신비로운 허브. 차 안 방향제로 쓰면 향기가 끝내준다.)
(박하. 우리가 흔히 먹는 박하사탕의 원료이다.)
(알비노 뱀. 형민이와 내가 오자 카메라를 의식하는지 기교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름 모를 새. 흰 눈밭에 꼭 검은 콩알이 박혀있는 듯하다.)
허브랜드는 허브 이외에도 악기박물관도 하고 있다. 종류는 조금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상당히 다양한 전 세계의 악기들을 모아놓았다. 그 중 직접 연주할 수 있는 것들도 있는데,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레인스틱'. 말 그대로 해석하면 비막대기란 말인데, 나무통을 위아래로 움직이면 마치 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 이 레인스틱은 칠레, 페루 등지에서 비가 내리길 염원하며 연주했다고 한다.
악기박물관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마술쇼를 하기에 가보았다. 굉장히 수준 높은 마술은 아니었지만 되게 재미있게 봤다.
(레인스틱. 칠레, 페루 등지에서 비를 염원하며 연주, 즉 우리나라로 치면 기우제 같은 거다.)
(마술쇼. 마술보다는 오히려 개그가 더 먹히던 마술사. 그래도 재밌었다.)
우리가 받은 점심비는 9000원. 점심 굶고 그 돈 아끼려 했으나, 영수증에 적힌 대로 돈이 나온다 하여 결국 최대한 다 썼다. 허브랜드 내 식당은 기본이 12,000원이니 포기하고 빵하고 컵라면을 먹었다. 그 돈은 그로부터 몇주 후, 교통비 1,800원과 함께 통장으로 들어왔다(그냥 주시지 않고 왜?). 어찌 됐건 즐거운 관람을 마치고 마지막 목적지인 동리목월문학관으로 갔다. 불국사 바로 옆에 있지만 불국사의 인기에 묻혀 비교적 사람들이 덜 찾는 곳이다. 그래도 볼거리 많은 멋진 곳이다.
(동리목월문학관. 규모가 상당히 크다. 양 건물은 각각 동리 선생님과 목월 선생님의 기념관이다.)
(아사달의 혼 탑. 예전 동리목월백일장 때 저기서 시를 썼던 기억이 난다.)
(신라를빛낸인물관. 안에는 여러 신라의 인물들이 있다.)
우리는 동리목월문학관 지하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었다. 강의 선생님으로 초빙되신 분은 여러 대학의 총장을 지니신 꽤 권위 있으신 분이셨다. 강의 내용은 경주가 문학의 중심지이냐에 관한 게 주를 이루었다. 경주는 7~9세기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의 종착점이다. 많은 나라의 상인들이 경주를 거쳤으며 인구 80만에 육박하는 당시 세계 4대 도시(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바그다드, 장안(서안), 금성(경주)) 중 하나였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문화도시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는 유리왕의 '황조가'이다. 그러나 이후 우리나라 문학은 신라 '향가'가 주도했다. 향가는 화랑이나 사랑을 주 주제로 삼았으며 우리식 한자 표기인 향찰로 지어졌다는데서 엄연한 우리 고유의 문화임을 알 수 있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의 형식을 갖춘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저술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종교 동학이 창시된 곳 역시 경주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보아 진정한 한민족 문학의 중심은 바로 경주란 것이다.
(강의실 내부. 아직 선생님은 오시지 않은 상황이다.)
강연이 끝나고 문학기행 답게 오늘 여행의 소감문을 적었다. 의외로 본 건 많은데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지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잘 적은 사람은 잡지에 실는다는데 결과는 잘 모르겠다
강연 후, 다시 황성공원으로 돌아와 해산했다. 되게 의미가 깊은 기행이었다. 무엇보다 아마 강의실에서 이렇게 강연을 들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문학기행을 통해 좀 더 '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알게 된 것 같다. 아마 기행문 쓰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번에 경주에서는 또 국제 PEN 대회가 열린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3분도 경주를 방문한다. 아마 이번 기회에 경주가 또 한 번 국제도시로써 위상을 갖추는데 한몫을 할 것 같다. 21세기, 경주는 그 옛날 찬란했던 천 년의 경주가 다시 부활하는 한국의 문학 중심지에서 세계의 문학 중심지가 되었으면 좋겠다(이런 문학기행을 보내주신 교감 선생님, 신보영 선생님 감사합니다!).
-여정- (2012. 9. 15. 土)
황성공원 실내체육관→ 금장대→ 김동리 생가→ 보문 허브랜드→ 동리목월문학관→ 황성공원 허브랜드
새롭게 펼쳐라!
羅新
첫댓글 민욱이의 실력이 일취월장 한 것 같아.
항상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구나.
그리고 좋은 구경과 멋진 문학기행을 하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