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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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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의 장 스크랩 가피력이여 불가사의한 관세음보살님의 가피
보리수생각 추천 0 조회 1,269 06.02.10 18:31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불가사의한 관세음보살님의 가피

 

 

저는 지금도 마산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한 믿음을 갖고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중생입니다. 월간 「불광」을 1999년 5월 20 처음 접하게 되어 여러 훌륭한 법어들과 재미있는 일화들을 감동 깊게 읽어본 후 저도 모르게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도 남과 다른 특이한 경험을 한 것이 있어 저 혼자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여러 불자님들에게 소개해 보고픈 욕심으로 이렇게 나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칭 산골 중학교를 나와 광주상고를 졸업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곧바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자 해병대 하사관에 지원 입대하여 4 6개월 동안 복무하였습니다.
해병대를 제대한 후 다시 사회로 돌아와 이것 저것 안해본 것 없이 해오다 결혼을 하여 단란한 가정을 이루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 곱게 키우며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0여 년이 흐른 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저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죄악이라고 하는 살인을 저지르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 생각해봐도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그리하여 뜻하지 않게 저는 교도소에 수감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죄를 짓기 전에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기도하는 자세한 법은 몰랐어도 가끔씩 관세음보살님을 어느 누구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외곤 하였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제겐 어떠한 어려움이 없는지라 간절한 바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인하여, 1심 재판을 시작하려는 그 시기부터 저는 가슴 밑에서 솟구쳐 나오는 눈물을 한없이 쏟아가며, ‘관세음보살님을 부르기, 아니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원칙을 지켜가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짚어 108번을 정확히 세어가며 관세음보살님에게 기도를 하고 나서 그 뒤에는 제 소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눈물로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며 도와달라고 울부짖었음에도 불구하고 맨처음 1심 심리구형에서 무기징역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기징역이라는 검사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습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재판 받은 후 대기하는 대기실 의자에 앉혀져 있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또다시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채 교도소를 향하여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너무 절망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어버릴까하는 잔인한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저도 모르게 정신이 맑아지며 부처님의 자비로운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뜻에서 용기를 내어 관세음보살님께 진심어린 구원의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른 재소자들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서 108번 관세음보살님을 부른 후 제발 5년형만 받게 해주십시오.” 라며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도 마찬가지로 반복해서 속깊이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재판 전까지 열심히 관세음보살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1심 선거공판에서 저는 징역 10년 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저의 애절한 기도 소리를 듣고 저를 이렇게 도와주셨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저도 모르게 감사의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습니다.
재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2심 재판인 항소심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관세음보살님을 믿고 용기 백배하여 항소를 하였습니다. 며칠 후 항소심을 받기 위하여 인천교도소에서 안양교도소로 이감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관세음보살님께 열심히 기도한 덕분인지 인정미가 넘쳐 흐르는 좋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거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안양교도소에 이감간 후 저는 매일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드린 후 재판장님께 탄원서와 반성문을 적고 또 적었습니다. 거의 하루에 한 부씩 탄원서나 반성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는 더도 덜도 말고 징역 5년만 받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로 세월을 보내던 중 드디어 결심 재판날이 다가왔습니다. 재판 전날 꿈에서 관세음보살님을 만나 앞으로 다시는 하찮은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 애원하던 차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날 아침밥도 목이 메어 다 먹지 못한 채 또 수갑을 차고 법원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법정에 도착할 때까지 저도 모르게 입 속에서 중얼중얼 관세음보살님만 계속하여 찾게 되었습니다. 의지할 곳은 기도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웬일입니까?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의 담당 판사님께서 저에게 저지른 죄는 밉고 또 밉지만 수없이 많은 반성문과 탄원서를 보낸 점을 참작하여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형에 처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가는 느낌이었고 법정에서 나가시오라는 말도 듣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제자리에 서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하고 있을 때 교도관이 제 손을 잡고 교도소를 향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재판은 끝이 났습니다.
다시 안양교도소로 돌아오자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이 관세음보살님께 매일 기도하고 수많은 반성문을 제출한 덕분에 일어난 기적이라면서 저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날도 관세음보살님께 뜨거운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았습니다.
2
개월 후 씩씩한 마음으로 의정부교도소로 남은 징역을 살기 위해 이감을 떠나는 날에도 저는 저도 모르게 관세음보살님을 108번 부르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여유를 부리며 짚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저를 틀림없이 좋은 방으로 보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의정부 교도소에서 제가 생활해야 할 방에 고향 동생이 저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게 작은 것 같지만 엄청난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동생은 그 방에서 위치가 높은 자리에 있었으므로 여러모로 저를 배려해 주게 되니 저는 정말 마음 편하게 그곳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기도드린 관세음보살님의 보살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저는 밖에 있을 때 해보지도 않은 핸드백 만드는 공장으로 출력을 해 1년 정도 수감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루도 빠짐없이 관세음보살님께 이제 제 소망은 그리운 가족들이 있는 집에 한번 다녀오고 싶다고 기도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 속에서 제가 피해를 입혔던 그분이 나타나 너의 잘못을 이제 모두 용서해 줄테니 앞으로 다시는 이와 같은 살인을 범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고 말하고 어디론지 떠나버리며 제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순간적으로 너무 놀랐고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몸을 꼼짝도 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아침 기상시간에도 저는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 교도관들과 동료 재소자의 등에 업혀 급히 의무실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너무 많이 아팠기 때문에 교도소의 의무실에서는 치료를 할 수 없어 사회의 병원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곁에서 지켜본 모든 분들은 제가 죽을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저는 몸은 움직일 수가 없었어도 어느 정도 의식은 남아있어서 마음 속으로는 관세음보살님께 간절히 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같이 할 일이 많이 남은 사람을 보내려 합니까? 살려주십시요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홀어머님과 제 자식들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병신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몇 시간이 흘러 집에서 돈을 가지고 오자 응급처치를 하고 MRI촬영을 하게 되었으며, 아픈 몸으로라도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몸은 아프지만 계속 관세음보살님을 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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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지난 후 아내가 평상시에 집에서 입는 옷을 가지고 와서 거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제게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아내의 말인즉 검찰에서 검사님이 오셔서 저를 형집행 정지시켜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아내는 방긋 웃으며 당분간 집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통원치료를 계속 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때야 비로소 관세음보살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셨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집에 한번 갔다오게 해달라는 기도를 말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기쁜 마음으로 약 7개월 동안 치료를 해서 아픈 몸이 완쾌할 수 있었으며, 다른 정상인과 똑같은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다 해놓고 다시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감이 된 후에도 모든 욕심을 버리고 남에게 항상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끝까지 관세음보살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하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 계속 생기고 있지만 모두 생략하고 한 가지만 더 털어놓겠습니다.
마산교도소에서 몇 개월 생활하고 있던 어느 날 느닷없이 기쁜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저의 수인 번호를 관구실에서 부르길래 무슨 일이 잘못되었나, 집에서 면회 올 일도 없는데 하며 관구실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감형 8개월이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꿈인가 하여 머리도 쥐었다 놨다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었습니다. 감형장을 가지고 제가 있는 공장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주위에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혼자서 다 관세음보살님 덕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감형을 받게되어 올 9 30일이면 관세음보살님 덕으로 가족의 품으로 안기게 되어 면회 안 오던 여든이 다된 홀어머님과 아들, 딸도 만나게 되었다고 여러 불자님께 전하고 싶습니다. 저의 이 신기하고도 감사한 이적을 가슴에만 묻어 두기에는 저의 기쁨이 너무나 커서 마침 월간 「불광」에서 신행 수기를 모집하고 있어 이렇게 글로 한 번 적어 보았습니다. 제가 위의 글에서 밝힌 일은 한 점도 거짓이 없음을 관세음보살님께 아뢰며 이 글을 마감합니다.
간절한 기도는 언젠가는 꼭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 불자님들이 꼭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김광현(월간불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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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2.11 04:01

    첫댓글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06.02.11 17:56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 06.02.11 18:23

    나무아미타불~~~()()()

  • 06.02.12 20:50

    정말 기도는 해야합니다 저는 90년도에 신장을 떼내는 수술을 하기위해 마취까지했는데 모든 의료장비가 고장난 바람에 그날 수술을 못했지요 말을 옮기자면 많은데 (생략) 수술 직전에 3곳 사찰에가서 형제들이 기도했는데 ....... 기도영험이 꼭 있담니다

  • 06.02.13 19:07

    부처님의 가피는 무궁무진 하지요..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06.02.14 09:40

    오직 일념으로이룬 기도의 득이지요 그렇습니다 님의 기도에 감사 드림니다 행복한 삶을 누리시길 기도 드리겟습니다. 나무아미타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06.02.17 18:53

    관세음보살 ()()()

  • 06.02.17 19:36

    아...훌륭하십니다.짧은인생에서 잘못된인과로 큰개달음을 얻었군요.향시 잘못된분을위해 참회하시고 수행하는마음으로 삶을 사시길 축원드립니다.그리하여 부처님일을 많이하시길 부탁드립니다.....

  • 06.02.18 05:29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 06.02.23 16:00

    관세음보살 정말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입니다,,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06.02.26 21:03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 11.06.26 10:57

    우리기도 일념으로 하면 소원이 이뤄져있습니다,,나무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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