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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유옹주·황인점 묘/귀인 조씨 묘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 화유옹주·황인점 묘역(좌)과 귀인 조씨 묘역(우)은 곡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위치하고 있습니다. |
황인점(黃仁點, ?~1802)은 조선의 문신으로 참판(參判) 황자(黃梓)의 아들로, 1751년(영조27) 영조의 딸 화유옹주(和柔翁主)와 결혼, 창성위(昌城尉)가 되었다. |
▲ 전주이씨 효령대군 현손 사직공 종중 입구 모습 |
▲ 묘역 입구에 위치한 종중 표석과 주변 묘역 전경 |
1776년(정조 즉위)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 1781년 동지 겸 사은사(冬至兼謝恩使), 1781년 동지사, 1785년 사은겸 동지사, 1790년 성절진하사은사(聖節進賀謝恩使), 1793년 동지 겸 사은사로 각각 청나라에 다녀왔다. |
▲ 종중 묘역 안쪽 우측으로 오르면 화유옹주 부부 묘역와 화유옹주의 생모인 귀인 조씨 묘역이 바로 보입니다. |
1801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앞서 1783년의 사행(使行) 당시의 서장관(書狀官) 이동욱(李東郁)의 아들 승훈(承薰)이 북경(北京)에 따라가 「천주실의(天主實義)」 등 천주교(天主敎) 서적을 구입해 왔던 사실이 탄로되어 한때 삭직(削職)당했다. |
▲ 화유옹주·황인점선생 묘역 전경 |
화유옹주(和柔翁主, 1741~1771)는 조선 21대 왕 영조의 열째 딸로 어머니는 귀인 조씨이다. 아들 기옥(基玉)은 의성현령(義城縣令)을 지내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되었으며, 딸은 김제만(金濟萬)과 혼인하였다. 1777년(정조 1) 사망하여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에 안장되었으며, 1802년 황인점이 사망한 뒤 합장되었다. |
▲ 귀인 조씨 묘역 전경 |
《영세보장(永世寶藏)》에 수록된 묘표(墓表)에 따르면, 귀인 조씨(貴人 趙氏, 1707~1778)는 본관이 풍양(豊壤)이다. 1716년(숙종 42) 10세 때 입궁하여 29세에 숙원(淑媛)이 된 뒤 1741년(영조 17) 화유옹주를 낳았고, 1778년(정조 2) 종1품인 귀인(貴人)이 되었으며, 1780년(정조 4) 사망하여 부평 작동의 북서쪽 들판(지금의 작동 산112-19)에 매장되었다. |
▲ 화유옹주 묘역 후측면에서 바라 본 모습 |
▲ 귀인 조씨 묘역 측면에서 바라 본 모습 |
묘역은 정면에서 바라볼 때 좌우로 약 10m에 이른다. 봉분은 2단 석축 위에 놓여 있는데, 상단의 석축은 장방형의 화강암 판석으로 축조하였다. 묘 앞에는 묘비와 혼유석·향로석 각각 1기와 망주석 2기 등의 석물이 세워져 있다. 묘비는 옥개형으로 새로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높이는 149㎝이다. 상석은 가로 131㎝, 세로 88㎝, 두께 42㎝이다. 망주석도 새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
▲ 귀인 조씨 묘역(사진 좌)과 화유옹주·황인점 묘역(사진 우) 후경 |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화유옹주 유물 |
▲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화유옹주 유물(2010년 3월 찰영) ▼ |
<화유옹주 유물전> 2월 민속박물관서조선후기 궁중 및 班家생활양식 드러내 |
제21대 영조대왕(英祖大王) [1694 ~ 1776] 가계도
정비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 [1692 ~ 1757] 소생 없음
제1계비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 金氏) [1745 ~ 1805] 소생 없음
서1남 왕세자(王世子) [1719 ~ 1728] (연우궁 이씨) 서1녀 옹주(翁主) [생몰년 미상] (연우궁 이씨) |
화유옹주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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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 위의 곡장이 있는 묘역이 화유옹주 묘(좌), 귀인조씨 묘(우)입니다. 소재지 : 경기 부천시 오정구 여월동 산32 |
지도 중앙의 화살표 위치에 화유옹주 묘역이 있습니다. 춘의사거리역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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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못가본곳 올 가을엔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