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신라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황금보검’(열림원)을 출간한 김정현(57) 작가가 3개월 만에 또 다른 역사 소설을 펴냈다.
이번에는 ‘안중근, 아베를 쏘다’(열림원)라는 소설을 통해 악화일로에 있는 한일(韓日) 관계의 근원을 겨냥했다. 소설은 1909년 중국 합이빈(哈爾濱)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가 일본의 현 총리인 아베신조(安倍晋三)를 저격한다는 내용으로, 실제 역사와 판타지를 배합한 형식을 취했다.
김 작가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일본군 성(性)노예 문제의 책임을 회피하는 아베 총리에게 역사를 성찰하고, 반성할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 소설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망언이 들려올 때마다 안중근을 떠올렸습니다. 특히 2012년 12월 제2차 아베신조 내각이 출범한 뒤로는 망언이 도를 넘어 동아시아 불안의 핵이 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먼저 가해국인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김 작가는 “하지만 일본은 망언을 넘어 과거의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며 “아베와 일본 극우 세력의 역사 인식에 경고를 보내기 위해 안중근을 다시 불러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정현 작가의 신간 '안중근 아베를 쏘다'
김 작가는 소설에서 안중근 의사의 입을 통해 현재 동북아(東北亞)의 문제를 다루고 동양평화론을 부각했다고 말했다.
“안중근이 이토를 쏘면서 서양의 식민세력에 맞서기 위한 동양평화론을 주장했습니다. 안중근이 동양평화를 위해 이토를 제거한 것이기 때문에 법정 다툼에서도 그의 동양평화론이 핵심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에서 안중근 자신이 정작 법정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부분, 즉 동양평화론에 대해서 많이 할해했습니다. 만약 오늘날 안중근이 아베를 쏜다면, 현대의 상황을 기준으로 한 동양평화론을 주창(主唱)하시겠죠. 그 점도 소설을 통에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10년 간 中國을 공부하다
김 작가는 현재 5000년 중국 역사를 다룬 30권짜리 대작 ‘중국인 이야기’ 집필에도 몰두하고 있다. 수년 전 ‘중국인 이야기’ 1권을 출간했지만, 인류의 탄생부터 시작하는 내용이 다소 어렵다는 독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1권부터 전부 손을 새로 보았으며, 현재 춘추(春秋)시대까지 집필이 끝난 상태라고 한다.
김 작가는 ‘중국인 이야기’를 쓰기 위해 중국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무려 10년 동안 중국 전역을 여행했다. 최근에야 근거지를 한국으로 옮겼지만, 여전히 필요에 따라 중국을 수시로 드나들며 자료수집을 하며 취재하러 다닌다. 1990년대 중반 소설 ‘아버지’로 ‘아버지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가 최근 역사소설가로 변모한 사실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중국’이라는 한가지 주제에 천착(穿鑿)해 대륙을 10년이나 헤집고 다닌 그의 고집과 집념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제가 원래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이 분야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북한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책으로만 북한을 공부하다 보니까 한계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1990년대 들어 중국에 나와있는 탈북자들을 직접 취재하기 위해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중국이라는 나라를 새롭게 보게 된 것입니다.”
김 작가는 “한마디로 중국의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했다”며 “땅덩어리와 인구, 사고방식 등 모든 면에서 스케일 자체가 우리와 너무나 다른 것이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5000년 동안 이 거대한 땅과 수많은 민족을 아우르면서 역사를 이어 올 수 있었을까’, ‘중국이라는 나라는 도대체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생기더군요. 국내에서 중국을 3년 정도 연구하다가 2001년부터는 아예 중국에 눌러앉아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현장을 직접 다녀보니 책에서 공부한 것과 현장에서 본 것이 다를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런 것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끼고자 열심히 돌아다닌 것이죠.”
중국 고대 구리광산 유적지인 호북성(湖北省) 대치(大冶)시의 동록산(銅綠山) 유적지에서.
김 작가가 중국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중국 청해성(靑海省)의 황하(黃河) 발원지였다.
“중국 문명의 기원을 보기 위해 황하 발원지부터 갔습니다. 황하는 티베트 고원 북동부 해발 5000m 고지대에서 발원한 하천의 지류가 성숙해(星宿海)와 이릉호와 찰릉호로 흘러들면서 시작됩니다. 현장을 가보니 정말 책으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장엄함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한 달에 두 번 이상 여행을 시작해 10년 동안 중국의 거의 모든 지방과 유적지를 답사했습니다. 밭을 가는 농부에서 중국 최고의 부자, 예술가,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현재 쓰고 있는 ‘중국인 이야기’의 바탕입니다.”
중국의 맨얼굴
그는 “처음에는 중국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에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명감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중국을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가 중국을 아는 것은 정말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중국 사람들 자신들도 중국을 잘 모르는데 우리가 얼마나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중국 학자들도 중국을 연구할 때 대체로 중국에서 발행한 책이나 번역서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중국 사람이 보여주는 자료로 후학(後學)을 가르치다 보니 독자적인 중국 연구가 상당히 부족한 편입니다. 저는 이왕 중국에 대해 공부를 시작한 이상, 한국 사람 눈으로 중국을 철저하게 분석한 후 후학들에게 중국 연구를 위한 주춧돌을 하나 놓아보자는 목표의식을 가졌습니다.”
지난 10년은 김 작가에게 중국인들의 속살, 맨얼굴을 보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약 4만장의 사진을 직접 찍었고, 유적지, 유물, 풍속과 함께 현지에서 만난 노인과 어린이들의 얼굴도 같이 카메라에 담았다고 한다.
“폐허만 남아 있는 성(城)터에서 낙조(落照)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정이 밀려옵니다. 한마디로 역사와 대화를 하는 느낌이 들죠. 또한 역사 현장을 보고 촌로(村老)들과 이야기하면 그곳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느낄 수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지방 촌로들이나 향토사학자들이 전해주는 그들의 시각을 반영한 역사는 중국 정부의 통제하에 쓰인 관변 역사책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감정이 아니라 실력으로 중국과 상대해야”
-우리나라는 유사(有史) 이래 중국과는 이와 입술 같은 사이로 지내왔습니다. 중국을 대할 때 민족사관이나 자학(自虐) 사관이 상충하는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조공(朝貢)이라는 독특한 역사관계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에 대해 막연하나마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런 감정이 근거 없는 우월의식으로 발전하거나, 중국의 이웃나라는 이유로 마치 중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다듬어지지 않은 일방적인 감정으로는 중국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저는 10년 동안 수많은 중국의 지식인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이 중국에 한 번도 완전하게 예속되지 않고,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해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감정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실력으로 중국인들과 대화를 하면 그들도 충분히 납득합니다.”
-일부 중국인 중에는 한국이 자기들의 역사와 전통을 빼앗아 간다며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발생한 한ㆍ중간의 부정적인 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 중에 공자(孔子)를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또한 우리가 언제 단오절을 빼앗았습니까. 단오절은 크리스마스처럼 어느 나라가 빼앗아가서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단오절에 강릉 지방에서 내려오는 단오제를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등록한 것에 불과합니다. 유교(儒敎)가 중국에서 유래했지만, 그들이 잃어버린 유교의 유산을 우리가 지켜온 것을 중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 오해가 많습니다.”
김 작가는 “한국에서 푸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일부 중국 동포들이 한국과 중국 네티즌 사이의 갈등을 재생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중간에서 가교역할을 잘 해주었으면 한다”며 “우리 정부가 한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오해와 궁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역사소설인 '황금보검' 출간 후 기자 간담회를 연 김정현 작가.
소설 '아버지'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이유
-‘아버지’라는 가족소설을 쓴 작가가 최근 역사작가로 방향을 전환한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가족소설이 아닙니다. 일종에 잘못되어 가는 사회현실에 대한 자성(自省)의 의도를 가지고 쓴 사회소설입니다. 당시에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명목으로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가 온몸으로 일궈온 역사를 마구잡이로 난도질하는 것을 보고 저는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산업화와 경제발전 과정에서 벌어진 일부 바람직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모든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저는 외롭고 소외당하는 아버지 세대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던 겁니다. 소설이 나오자 거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반향이 어느 정도였습니까.
“IMF 외환위기에 맞물려 소설이 히트했다고 하는데 실제 소설은 1997년 12월 IMF 외환위기 전인 1996년 8월에 출판되었습니다. 그해 이미 100만부 판매를 돌파한 상태였습니다. 하루에 10만권이 넘게 팔린 적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버지 신드롬’을 불러온 것이죠. 당시 독자편지를 많이 받았는데, 저의 소설을 읽고 평생 미워했던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김 작가는 “아버지라는 존재와 본질은 시대가 변한다고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집안의 가장이자 울타리인 아버지가 힘을 잃으면 결국 가족 모두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책이 나온 것을 기점으로 ‘아버지 기 살리기’ 등 아버지 세대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를 가져온 점이 작가로서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얼마전 출간한 ‘황금보검’이라는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신라의 기본 정신이 개방과 관용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위해 3년 정도 자료수집을 했는데, 세상의 동쪽 끝에 있는 작은 나라 신라에 전 세계에서 수많은 무역상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는 신라에 관용하고 포용하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또한 신라의 화랑도의 살생유택 정신은 현대적인 말로 결국은 인간존중과 인권을 중요시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힘이 바로 개방과 관용, 살생유택의 정신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진정한 문화적 제국이 되는 것을 꿈꾼다면 신라처럼 개방과 관용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루빨리 '부정의 교육'에서 벗어나야
-현재 우리는 남북통일이란 과제를 앞두고 있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요.
“사실 티베트가 없었으면 신라가 세계 최강국 당나라와 결전을 결심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런 부분을 소설로 좀 과장을 한다면 신라가 외교력을 발휘해서 티베트와 협력을 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겁니다. 어느 경우든 신라가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읽지 못했으면 당나라와 감히 ‘맞짱’을 뜰 생각을 못했겠죠. 신라는 개방정신으로 축적된 힘을 통해 정확하게 국제 정세를 읽고 외교를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가 남북통일을 이루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신라의 화랑정신으로 정신무장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정현 작가는 “우리나라 교육이 전교조나 좌파 교육감에 의한 ‘부정의 교육’에 바탕을 두고 있다”며 우려했다.
“우리 교육은 한마디로 우리 근현대사에서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식으로 가르칩니다. 아이들을 부정의 교육으로 세뇌해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부모세대를 부정하게 하는 것이죠. 자기 부모를 싫어하도록 교육받는데 어떻게 선생님을 존경하고, 친구와는 제대로 된 우정을 나눌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일방적인 평등을 강조하다 보니 남이 잘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시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세월호 사고에서 보여준 선생님들의 희생정신이 전 우리 교육의 ‘희망의 씨앗’이라고 생각한다”며 “부정의 교육을 없애고 이 희망의 씨앗을 잘 계승할 때 세상이 바로잡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중국인 이야기’가 끝나는 대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부정의 교육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한국 근ㆍ현대사에 집필에 들어갈 생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