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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특집 ─ 시의 공간 : 경기 수원
수원에서의 인연因緣, 평생의 시연詩緣
윤의섭
그때, 수원에는 비상을 도모하는 일군의 시인들이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수원을 떠나 다른 곳에서 나름대로의 길을 열어 갔지만, 그때, 수원의 시인들은 더 멀리 더 높이 날기 위한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인연을 맺었고, 지금 그들과 더불어 시를 쓰고 있다. 내게 가장 가깝게 다가온 시인들, 수원에는 살가운 시인들이 살고 있다.
내가 태어나 이십여 년을 살았던 고향은 지금 안산시 수암동이라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경기도 시흥군에 속해 있었다. 이제는 그 시흥군도 시흥시로 명칭을 바꾸었는데, 이렇듯 경기도 서남권은 1980년대 이후에 도시화의 물결과 자치 구역의 재편에 따라 심한 변혁을 겪어 왔다. 지금도 용인, 화성, 동탄, 오산, 평택 등지는 활발하게 개발 중이며, 푸르른 논밭이 어느 순간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이러한 도시들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수원은 비록 외곽으로는 개발이 한창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변함없이 경기도청 소재지로써의 위용을 간직한 채 예향으로써의 이미지를, 그 면모를 잃어버리지 않고 있다. 수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성, 화성의 행궁, 장안문, 팔달문, 방화수류정, 서장대 등, 조선시대의 향기가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이것만으로도 풍요로운데, 탄탄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교육과 문화에서도 모범적인 운영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그런 수원을 마치 고향인 듯 여기고 있는 것은 수원에 위치한 아주대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이며, 그 후로 이십여 년을 등하교 했기에 그렇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당시 아주대 국어국문학과에는 시인이신 조창환 은사께서 계셨다. 그리고 훗날 시인이 된 신현림 선배도 재학하고 있었다. 그러니 수원에 사는 시인들과의 인연은 대학입학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시인들과 만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이다. 이미 수원의 시인으로서 굳건한 지위를 갖고 계셨던 김윤배 선생님을 만난 것도 이 즈음이다. 이십대 문청의 눈에 선생님의 풍모는 시인 그 자체였고, 시에 대한 많은 말씀은 곧 내 시에 기름진 거름이 되었다. 벌써 아홉 권의 시집을 상재하신 선생님은 지금은 주로 안성 금광저수지 근처에 있는 미평문학관에 머무르며 집필과 강의 활동을 하고 계신다. 장석주 시인도 근처에 살고 있으며 조금 더 가서는 정진규 시인께서도 머무시는 곳이 안성이다. 그러나 미평문학관은 수원에 사는 많은 시인들과 문청이 그곳에 자주 방문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어느 곳이라기보다는 수원의 한 외곽으로 느껴질 정도다. 돌이켜 보면 시에 목마른 문청들에게 중저음의 목소리로 한 줄 한 줄 시를 지적해 주시던 모습이 선연하다. 그때 선생님 역시 우리들에게 따끈따끈한 시를 보여주곤 하셨다.
아우는 큰 몸뚱이를 수술대 위에 버리고
충혈된 눈을 부릅뜬 채 마취되어 있다
집도의가 가리키는 모니터에 아우의 내장이
속속들이 보인다 담낭이 제거된 자리가
검붉을 뿐 내장은 아름답다 연붉은 간덩이
사이로 흐르는 핏물은 불빛에 놀라 기포를 뱉으며 급히 몸을 숨긴다
집도의는 내시경을 움직여
내장 이곳저곳을 헤집는다
간 한 잎 뒤집으면 나타날 것 같던
만년 순경인 아우의 내심은 보이지 않는다
상사의 모멸과 질타의 말들도 피의자를 다루던
온갖 협박과 회유의 말들도 보이지 않고
서늘한 오기도 찾을 수 없다
내장은 아름다울 뿐 더러운 일상에
물들지 않았다 나는 내 가슴과 배를 쓰다듬는다
내장이 나의 손을 거부한다
담낭이 절개되고 돌들이 쏟아져나온다
강렬한 조명을 받아 돌들은 빛난다
그랬구나 내장 속에서 찾을 수 없었던
너의 내심 가슴에 맺혀
욕스러운 나날들 더욱 단단해지고
그렇게 견디어낸 아름다운 굴욕들
빛나는 돌이 되어 네 몸 속 환한
고통이었구나
──김윤배, 「굴욕은 아름답다」 전문
그런데 내 나이가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넘어가는 사이에 만난 수원의 시인들을 시기별로 펼쳐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얘기가 나올 것 같아 두서없이 일별할 수밖에.
수원에는 자유로운 영혼과 아름다운 내면으로 세상을 주유하며 시심을 펼치고 있는 김인자 시인이 산다. 항상 조근조근한 말투이며 냉철한 듯 이지적이지만, 따뜻한 심성이 깊이 고여있는 시인이다. 시집 외에도 『아프리카 트럭여행』 등의 여행 관련 책을 다수 내기도 했는데, 그만큼 세상을 품는 품이 넓은 것이다.
한편 정수자 시인은 대학원에서 같이 수학하며 자주 만나게 된 시조 시인이다. 시조 문단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 있으며, 수원의 화성과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영역에서 꼼꼼하고도 세련된 활약을 하고 있다. 항상 고풍스러운 품위를 갖추었는데 시조 역시 단아하고도 고아하다.
부답의 메일 끝에 시 한 편을 건져들고
이명과 대작하듯 제 메아리에 제가 취하는
밤이다
허공 우물에 목을 길게 드리우는
문병마냥 다녀오던 노모의 빈 방께로
어둠도 혼자 고이는 고아 같은 밤이다
마음이 풍덩풍덩 빠지는 폐가의 우물 같은
그리는 그만큼씩 더 빛나는 건 아니라도
밤이다
되삼키는 이름에 은하강도 붉게 젖는
──정수자, 「허공 우물」 전문
이쯤에서 김왕노 시인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고향은 포항이지만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수원에 진즉 정착하였다. 김왕노 시인이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 나 역시 그해에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었다. 당시 김왕노 시인이 주도하여 1992년 신춘문예 당선자끼리 모임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지속적이진 못했다.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김왕노 시인에게는 지금까지도 형이라고 부르며 지낸다. 김왕노 시인은 『현대시학』의 현대시학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시인들과의 결속력과 우의를 다지는 데에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현재는 축구를 좋아하는 시인들의 모임인 ‘글발’에서 거의 주말마다 축구 경기를 하고 배드민턴도 즐기는 등 시인들 사이에서도 건강한 체력가로 알려져 있다. 포항이 고향인 그의 구수한 사투리를 듣다 보면 가끔 통역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국어책을 어떻게 읽을지 상상이 잘 되질 않는다. 하지만 시는 입에 착 감기는 것이 오히려 낭송하기 가장 좋은 시를 쓰는 시인 중 한 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강이뼈로 만든 악기가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 정강이뼈로 만든 악기
그리워질 때면 그립다고 부는 궤나
그리움보다 더 깊고 길게 부는 궤나
들판의 노을을 붉게 흩어 놓는 궤나 소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짐승들을 울게 하는 소리
오늘은 이 거리를 가는데 종일 정강이뼈가 아파
전생에 두고 온 누가
전생에 두고 온 내 정강이뼈를 불고 있나 보다
그립다 그립다고 종일 불고 있나 보다
──김왕노, 「궤나」 전문
역시 품성 좋은 수원의 시인으로 우대식 시인을 들 수 있다. 우대식 시인의 고향은 원주이지만 오산으로 건너 왔다가 몇 년 전 수원에 새 둥지를 틀었다. 고등학교 교사로서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을 텐데도 중요한 자리나 행사에는 꼭 빠지지 않는다. 험한 말할 줄 모르고 본인과 차이가 나는 의견도 슬쩍 잘 받아 넘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신념은 강요하거나 표나지 않게 지켜나가는 면모를 보면 인덕이 깊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1990년대 말에 처음 만났는데, 외모나 성품이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 현재 현대시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각종 행사가 많지만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외유내강이라고 할 수 있을까마는 그의 시 역시 제목에서도 보이듯 강인한 인상을 주고 있다.
8월의 염천,
서울역 광장 바닥에 얼굴을 대고 잠자던 한 할머니가 문득 일어나 앉았다
담배를 길게 빨더니 여기서 가장 가까운 시장이 어디냐 묻는다
남대문 방향을 가리키며 남대문 시장이라 말했더니
가장 큰 시장은 어디냐 물었다
아침 햇살이 얼굴에 쏟아져 몹시 더웠다
남대문 시장이 가장 크다고 일러주었다
어디서 왔냐고 내가 물었다
수원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순간 수원시가 아니라 수원부와 같은 조선 후기 지명으로 받아들였다
무엇을 사려고 그러냐 물었더니 무엇을 팔려고 한다고 하였다
신문지에 둘둘 싸고 다시 보자기에 싼 뭉치가 하나 옆에 놓여 있었다
뭔데요
몰라도 된다고 대답할 때는 마치 함흥 사투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는 차라리 동대문 벼룩시장 같은 난전에 물건을 펼치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럴 물건이 아니라고 화를 냈다
뭐냐고 다시 물으니 할머니는 일어서며 말했다
칼이다 이눔아
서울역에서 지하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남대문을 향하고 있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잠자던 한 자루의 단검이 꼿꼿하게
한성역 광장을 건너고 가고 있는 중이었다
──우대식, 「단검」 전문
일상의 풍경 속에서 기이하고 낯선 이미지 한 자루를 뽑아내 보여줄 줄 아는 내공을 지닌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수원에도 시인끼리 부부인 경우가 몇 있다. 임동윤 시인과 박옥실 시인이 우선 떠오른다. 오랜 시절 수원에 살면서 각자의 영역을 서로 존중하며 자신만의 시적 색깔을 선보이고 있는 시인들이다.
김광기 시인과 박현솔 시인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부여가 고향인 김광기 시인과 제주가 고향인 박현솔 시인이 수원에서 시를 쓰며 산다. 중후한 목소리의 김광기 시인은 시인이자 강사로서의 활동 외에도 다방면에 활발한 관여를 하고 있으며, 언제나 조신한 성품을 지닌 박현솔 시인 역시 강단에 서고 있다. 두 시인의 시집 해설과 서평을 쓴 계기로 두 시인의 시를 꼼꼼히 들여다볼 기회를 가진 바 있다. 김광기 시인의 시는 향토적이면서도 도시적인 감수성이 스며있는 묘한 시적 매력을 선사한다. 박현솔 시인의 시는 제주 신화와 인간의 감성세계를 한 데 엮어나가는 가운데 애절함마저 느끼게 하는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자아와 세계와 인간애와 경륜이 녹아든 두 시인의 시편들은 사뭇 진중하고 감미로운데 아래의 시들 역시 애틋한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당신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비칩니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형체는 또렷해졌지만
팔과 다리, 어깨는 스멀스멀한 실루엣으로 있습니다.
후- 불기만 해도 스러질 것 같은 무게로
그렇게 무거운 삶을 지고 계셨습니다.
어깨에 멘 검푸른 가방에 그려진
흰색무늬의 새가 주단학朱丹鶴이라고 합니다.
하늘을 향하고 있는 부리, 가냘픈 다리를 가진 모습이
어머니를 닮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머니를 주단학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정열적인 붉은 학인 줄도 모르고
부끄럽기만 해서, 안타깝기만 해서 그렇게 일찍
어머니 곁을 떠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나 어머니는 제 가슴 속에 계셨습니다.
검은 유혹의 손길이 올 때나 길거리를 쏘다니면서
큰 어려움에 닥칠 때마다 수호신처럼 저를 지켜주고 계셨지요.
헌신적으로 집안을 살리며 자식들에게는 언제나
절대적인 믿음을 주셨던 어머니,
당신에게는 아직도 주단학의 실루엣이 비칩니다.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 빛이 도는데
실루엣처럼 어른거리는 모습,
형체조차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별빛이 쏟아지던 석우리,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슬프지도 힘들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세월이 지난 뒤에야 깨닫게 되는 길을
아직도 걷고 계신 고단하고 슬픈 실루엣 어머니,
오랜 세월동안 기도 속에 품고 계셨던 붉은 기운으로
드디어는 창공을 날아오르며
어머니가 사랑하셨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하는
꿈결 같은 비상飛翔을 이루실 것입니다.
──김광기, 「주단학」 부분
고운 무명천에 쓴 먹빛 사연, 편지를 든 두 손이 떨려온다. 그녀의 눈빛이 수려한 필체의 물살을 타고 흐르다가 어느 굽이에선가 멈춘다. 가서 안부만 전하고 오겠다던 님이 활짝 핀 꽃향기에 취해 오늘도 못 온다는 소식을 보냈는가. 이승과 저승의 인연을 이어준다는 궉새. 신화 속의 새를 간절하게 기다린다. 눈앞을 빗겨나는 새들이 궉새가 아닌지. 하늘의 언저리를, 나무의 흔들림을 유심히 바라본다. 두 눈의 눈물로 베틀을 짜고 몸에서 풀린 실로 비단 이불을 짜서 오지 않는 님을 애타게 기다린다. 비단 이불에 수놓은 이름을 보고 님이 오신다면, 짓무른 마음속에서 지웠던 실올들, 모두 다시 살아난다고 전해다오.
──박현솔, 「궉새를 부르다-자청비」 전문
이 밖에도 수원에는 스쳐가면서 알게 되었지만 거론하지 못한 시인들 말고도, 수원에 오래 살았는데 잘 모르는 시인들과 근래에 이사 온 시인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또 수원에 살다 이사 가서 얘기 못한 시인도 있으며, 수원에서 자주 만났지만 용인이나 화성에 살아서 굳이 거론하지 않은 시인도 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더 얘기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수원으로 마실 다니면서 나는 시를 썼다. 나보다 앞서 등단하신 시인들에게 나는 많은 배움을 얻었다. 나보다 늦게 등단한 시인들에게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수원의 시인들을 만나면 반갑고 기쁘다. 이제는 수원에 자주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수원이 아닌 곳에서라도 그들과의 즐거운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한 번 수원에 가 보시라. 시인과 시의 그윽한 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구든 수원의 시인은 그렇게 품이 그윽하다.
내게 소중한 시절에 이토록 많은 시인들을 만난 인연은 행운을 넘어 행복이다. 그들과 더불어 웃고 울면서 시인으로서의 길을 나섰으며, 수원의 시인들 역시 지금 문단의 중축이 되어 나래를 한껏 펼치고 있다. 우리는 한 공간에서의 기억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한평생의 시연詩緣을 맺은 것이다.
윤의섭 / 1968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으며 1994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했다. 시집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 『천국의 난민』,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 『마계』가 있고,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대전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