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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김옥자 국악인 탐방기
국악의 마력에 빠져 살아온 세월
누가 심장의 깊은 곳을 두드리고 있는가? 수원 행궁 ‘여민각’에서 10월 8일 저녁 달빛과 어우러진 식전공연을 하고 있는 김옥자 국악인을 보았다. 두드림, 울림, 감성 자극을 하는 국악이란 장르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가슴을 가장 많이 달래주고 안아주고 시름을 어루만져 준 삶의 가락이요 우리소리다. 세상만사 힘들고 지칠 때 노랫가락 한곡 덩실덩실 춤 속에 날려 보내고 푸른 청천에 내일을 다짐할 수 있었던 삶의 구비구비 숨 쉬어 맥을 함께 한 예술분야다.
전통 우리소리를 지켜가고 있는 수원국악협회 부회장 김옥자 국악인을 탐방한 날,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에 명분이 있으면 확실한 생각으로 밀고 나가는 성격을 갖고 계신 분이라는 느낌이 확 다가왔다. 경남 고성이 고향인 그는 외모에서 눈빛에서 삶에 대한 단호한 열기가 전해져 왔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김옥자 국악교실’을 들어서니 많은 제자들이 함께 경기민요를 연습하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그의 미소 속에는 하얀 구절초 꽃이 화병에 담겨져 있는 듯 밝았다.
온 몸으로 할 때 더 커지는 국악의 매력, 우리소리와 국악의 세계는 우리 삶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리민요는 소박한 정서와 생활상이 깃들여 있고 누구나 쉽게 즐겁게 부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민요, 장구, 노랫가락, 무용 등 온 몸으로 몇 시간 하고 나면 운동을 몇 시간 한 후의 기분만큼 땀 속에 시원함을 느끼는 매력이 있지요.” 인터뷰 때문에 잠시 연습을 마친 그가 처음에 국악에 심취하고 싶어 열정을 쏟았던 것만은 아니라면서 국악교실을 개설한 배경을 들려주었다. 하다 보니 절로 국악의 매력에 빠져 들었던 것 같다며 그간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냈다.
“세대별로 국악을 접하는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질문을 던지니 “소리는 밥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상도 사람이 경기 민요 하는 것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 둘 낳고 엄마 아내 역할 충실히 하다 30대 후반 우연히 접한 공부가 20년이 넘은 세월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물놀이부터 시작했지요. 마치 오랜 세월 어디선가 소리를 했던 사람처럼 민요가락 소리가 너무 좋았습니다. 소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밥을 먹듯이 늘 상 내 곁에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타고난 복이 민요 분야 음성은 아니었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노래 가락에 적응하면서 아쉬운 점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노력이 있기에 좋아졌고 삶은 노력한 만큼 얻기도 함을 깨달았다는 그다. 아직도 요즘 젊은이들은 국악은 지루하고 나이든 분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아쉬움을 털어낸다. “국악에 대한 인식 부족인 듯싶습니다. 국악을 좀 더 이해하고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전통은 잘 보존하되 젊은이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짜 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퓨전국악을 개발하고 국악기를 접하게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오늘의 제가 국악인으로 활동하기까지에는 경기국악당 민요악장인 최근순 명창과 서울시 중요무형문화제41호 유창선생님이 계셨습니다.” 1992년 우연한 기회에 사물놀이를 시작으로 지금껏 세월을 경기 민요와 함께 하기도 한 그는 서울시 무형문화제 제41호 이수자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 하면 계속 우리소리와 함께하고 싶다는 그는 국립국악원, 세종문화회관, 경기국악당, KBS국악한마당 등에서 공연한 바 있다. 이제는 평생을 살면서 저처럼 본인이 재능 있는 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한테 재능 계발도 해 주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의미와 희열도 일깨워 주고 싶은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다는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그만큼 국악은 삶에서 많은 행복지수를 높여 주었다는 것. 이 길에 뒤에서 가장 많이 도와 준 사람은 남편이었고, 세월이 흐를수록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든다고 가장의 도움을 잊지 않는 그다.
국악인의 길을 가게 된 동기가 있었나를 물었다. 처음에는 노인대학에서 봉사하게 된 것이 단초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재능기부를 하면서 양로원, 노인복지관을 다니다보면 그 보람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몸소 체험한 사람이 아니면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가 연세보다 건강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국악에 대해서 젊은이, 어른, 노인들이 접근하는데 어려 운 점이 있는데, 남녀노소 함께 할 수 있는 무대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소리, 우리가락도 흥겹고 삶의 애환이 담겨있구나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국악은 성큼 다가가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경기민요뿐만 아니라 소리극, 춤 등 다양한 각도로 시민들께 다가간다면 함께 즐기는 한마당이 될 수 있다. 꾸준히 다양한 소재를 연구하고 연습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생각한다는 그다. “앞으로도 후배양성을 위해 힘쓰며 잠재된 재능을 계발시키고 더욱 발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우리 소리를 더 많은 이들이 함께 나눌 수 있도록 국악을 전파하는데 한몫을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입고 있듯 국악이라는 장르가 김옥자 국악인과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인터뷰 내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개나리 진달래 만발해도/ 매난국죽만 못하리라/ 사군자 절개를 몰라주니/ 이보다 큰 설움 또 있으리/ 니나노 늴리리야 늴리리야” 올 겨울 어디에선가 나도 태평가 한 소절을 부를 수 있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가을 하늘이 유난히 푸르렀다.
인터뷰 유민지(수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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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 카페에 올려진 스크랩 글을 재 스크랩했어용 -
훌륭하신 김쌤 제자인게 자랑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