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립선암을 극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주영봉씨. 출판사 사장이었던 그는 IMF 때 위기에 빠진 회사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쉼 없이 일을 해야 했다. 그 결과 회사는 다시 정상 궤도에 올랐지만 기쁨도 잠시, 소변을 참기 힘들고 혈뇨까지 봐 병원을 찾아간 그는 전립선암 판정을 받았다. 늘 건강을 자부했던 그에게 찾아온 전립선암. 의사는 전립선을 전부 떼어 내야한다 말했고, 수술 후 기저귀를 착용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66세라는 나이에 기저귀라니... 그는 수술 대신 자신만의 방법으로 건강을 되찾기로 결심했다. 이후 각종 건강 관련 책으로 공부를 시작한 그는 직접 텃밭에서 기른 유기농 채소 위주의 식단과 자신만의 운동을 덧붙인 건강 시간표를 만들었고, 체계적으로 지킨 결과 전립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현재까지 건강을 지키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그의 건강 비법을 들어보자.
크리스 존슨 (27, 男, 결혼 2년차 미국인 데릴사위) “겉보리 서 말”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는 파란 눈을 가진 미국인 데릴사위 크리스씨가 산다. 그는 2009년 어학연수로 한국에 왔다. 짧은 6개월의 한국생활이었지만 그는 한국 여자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고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기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처가의 반대가 있었지만 알뜰한 생활습관과 긍정적인 성격을 인정받아 결국 지난해 결혼에 성공했다. 전세금을 아끼려고 처갓집 2층에 신혼집을 꾸리면서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하지 말라는 처가살이가 시작됐다. 한 지붕아래 살다 보니 가족모임은 잦았고, 바닥에 앉는 것에 익숙지 않은 그는 처가 식구들과 밥을 먹을 때 거의 누워서 먹었다. 그때마다 장인어른에게 버르장머리 없다고 혼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그에게 잠재된 살림의 재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장모님과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기도 하고, 함께 요리도 만들기 시작했다. 주변에선 처가살이가 힘들지 않냐고 묻지만 오히려 장모님에게 살림의 노하우를 배우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처가살이 예찬을 펼친다는 그! 외국인이지만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사위가 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를 만나보자.
이석하 (35, 男, 청년 고물장수) “땀은 정직하다”
13년째 고물상으로 일하고 있는 이석하씨. 그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빚만 남기고 돌아가셨다. 9남매 중 막내인 그는 겨우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가난해서 가방도 없이 학교를 다녀야 했다. 20만원 밖에 안 되는 어머니의 월급봉투를 우연히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학교를 자퇴하고 일을 시작했다.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배운 것도 없고 기댈 곳 없는 어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물을 주워보자는 형의 제안! 하지만 2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길거리에서 폐지, 빈 병을 줍는 게 너무 창피했다. 거기다 수입은 하루에 천 원에서 오천 원 정도.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그만두려 했지만 성공한 미래를 그리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길거리로 나갔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든 작업도 마다 않고 성실히 일한 결과 5천만 원의 연 수입을 올리는 고물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땀을 흘린 만큼 정직하게 돈을 벌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립선을 다 떼어내고 신장하고 요도를 잇는 수술을 권유받았는데 그것을 잇게 되면 오줌을 지릴 수도 있고 평생 기저귀를 찰 수도 있다는 겁니다.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
전립선암 3기로 수술을 권유받았던 주영봉 환자는 수술 후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수술을 포기했었다. 하지만 꾸준히 병을 고치기 위한 노력을 해왔고, 차후에 그는 양성자 치료를 선택했다. 성공적인 양성자 치료로 암을 말끔히 치료하고 건강과 성기능 모두 발병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그는 이 후 양성자 치료의 전도사가 되었다.
전립선암을 극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주영봉씨. 출판사 사장이었던 그는 IMF 때 위기에 빠진 회사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쉼 없이 일을 해야 했다. 그 결과 회사는 다시 정상 궤도에 올랐지만 기쁨도 잠시, 소변을 참기 힘들고 혈뇨까지 봐 병원을 찾아간 그는 전립선암 판정을 받았다. 늘 건강을 자부했던 그에게 찾아온 전립선암. 의사는 전립선을 전부 떼어 내야한다 말했고, 수술 후 기저귀를 착용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66세라는 나이에 기저귀라니... 그는 수술 대신 자신만의 방법으로 건강을 되찾기로 결심했다. 이후 각종 건강 관련 책으로 공부를 시작한 그는 직접 텃밭에서 기른 유기농 채소 위주의 식단과 자신만의 운동을 덧붙인 건강 시간표를 만들었고, 체계적으로 지킨 결과 전립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현재까지 건강을 지키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그의 건강 비법을 들어보자.
크리스 존슨 (27, 男, 결혼 2년차 미국인 데릴사위) “겉보리 서 말”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는 파란 눈을 가진 미국인 데릴사위 크리스씨가 산다. 그는 2009년 어학연수로 한국에 왔다. 짧은 6개월의 한국생활이었지만 그는 한국 여자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고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기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처가의 반대가 있었지만 알뜰한 생활습관과 긍정적인 성격을 인정받아 결국 지난해 결혼에 성공했다. 전세금을 아끼려고 처갓집 2층에 신혼집을 꾸리면서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하지 말라는 처가살이가 시작됐다. 한 지붕아래 살다 보니 가족모임은 잦았고, 바닥에 앉는 것에 익숙지 않은 그는 처가 식구들과 밥을 먹을 때 거의 누워서 먹었다. 그때마다 장인어른에게 버르장머리 없다고 혼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그에게 잠재된 살림의 재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장모님과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기도 하고, 함께 요리도 만들기 시작했다. 주변에선 처가살이가 힘들지 않냐고 묻지만 오히려 장모님에게 살림의 노하우를 배우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처가살이 예찬을 펼친다는 그! 외국인이지만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사위가 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를 만나보자.
이석하 (35, 男, 청년 고물장수) “땀은 정직하다”
13년째 고물상으로 일하고 있는 이석하씨. 그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빚만 남기고 돌아가셨다. 9남매 중 막내인 그는 겨우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가난해서 가방도 없이 학교를 다녀야 했다. 20만원 밖에 안 되는 어머니의 월급봉투를 우연히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학교를 자퇴하고 일을 시작했다.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배운 것도 없고 기댈 곳 없는 어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물을 주워보자는 형의 제안! 하지만 2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길거리에서 폐지, 빈 병을 줍는 게 너무 창피했다. 거기다 수입은 하루에 천 원에서 오천 원 정도.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그만두려 했지만 성공한 미래를 그리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길거리로 나갔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든 작업도 마다 않고 성실히 일한 결과 5천만 원의 연 수입을 올리는 고물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땀을 흘린 만큼 정직하게 돈을 벌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립선을 다 떼어내고 신장하고 요도를 잇는 수술을 권유받았는데 그것을 잇게 되면 오줌을 지릴 수도 있고 평생 기저귀를 찰 수도 있다는 겁니다.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
전립선암 3기로 수술을 권유받았던 주영봉 환자는 수술 후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수술을 포기했었다. 하지만 꾸준히 병을 고치기 위한 노력을 해왔고, 차후에 그는 양성자 치료를 선택했다. 성공적인 양성자 치료로 암을 말끔히 치료하고 건강과 성기능 모두 발병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그는 이 후 양성자 치료의 전도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