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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교/ 禮拜(예배)와 救援(구원)은 分離(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가?(요 4: 23~24)
◾副題目(부제목) : 우리를 分離(구원)하신 것은 天國(천국)의 티켓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禮拜(예배)하도록 한 것을 아는가?
💠 탁월한 개혁주의 신학자와 목회자였던,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의 구원과 예배에 대한 상관관계를, bnk가 오늘날 현실에 맞도록, 수정과 참가와 삭제와 보완을 했다는 점을 周知(주지)하는 바이다.
* 序論(서론) 및 背景(배경)
✔ 탁월한 개혁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였던,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는, "예배(Worship)와 구원(Salvation)은, 서로를 완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두 기둥이다"라고 했다.
제임스 보이스의 신학적인 배경과, 예배와, 구원의 주제가 어우러지는, 서론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현대 교회의 세속화에 맞선, 하나님 중심의 회복이, 그 기저에 자리를 잡고 있다.
✔ 제임스 보이스의 예배 및 구원관은, 16세기 종교개혁의 핵심 유산인, 개혁주의(Reformed)의 신학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보이스는 구원의 시작 및 완성과 예배의 대상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제임스 보이스는 복음주의 교회가, 세상적인 기준에 타협하는 것을 경고하면서, 종교개혁의 5대 기치를 통해서만, 교회가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1990년대 말, 보이스는 현대 교회의 세속화를 개탄하면서, 역사적인 위기의식이 그의 구원과, 예배관을 서술하는 가장 중요한 시대적인 배경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없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만 가능하다.
✔ 구원과 천국에 대한 감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종착지가, 바로 예배이다. 예배는 주일 한 시간의 형식이 아니라, 한 주간의 삶 전체로 드러나는 성화의 과정이다.
✔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성경을 통해서 올바르게 알고, 성령의 감동 속에서 가식 없이 반응하는 것(신령)이, 바로 참된 예배의 본질이다.
예배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을 선포하고, 말씀을 깨닫는 가르침과, 성경에 대한 배움의 수단이다.
✔ 예배와 구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베푸신 은혜의 하향적인 역사이다. 예배는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올려드리는 상향적인 고백이다.
1. 예비적인 이해 : 예배와 구원의 관계
✔ 요한복음 4장 22절에 보면, 예배와 구원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구원은 유대인이라는 역사적인 통로를 통해서 오신, 메시아(예수)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이, 비로소 영과 진리로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그렇다! 구원은 참된 예배를 가능하게 하는 뿌리이이다. 예배는 구원을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열매이다.
요한복음 4장 23절~24절이 선포된 전후의 문맥은, 지리적 문화적 종교적 장벽을 깨뜨리시는, 예수님의 구속사의 여정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2. 앞선 문맥(요 4:1~22) : 장벽을 깨는 만남과 예배의 논쟁
(1) 사마리아 여정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시던 중에, 유대인들이 관습적으로 기피하던,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했다. 이는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신적인 필연성이었다.
(2) 우물가에서의 대화
예수님은 수가성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소외된 여인과, 수치스러운 여인과, 갈급한 여인이었던,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다.
✔ 예수님은 육신의 물을 매개로,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는 생수(성령)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여인의 영적인 갈증을 들추어내신다.
(3) 예배 장소에 논쟁의 시작
예수님께서 여인의 지난 날의 과거를 꿰뚫어 보시자 부끄러웠다. 그래서 여인은 대화의 화제를, 종교적인 문답으로 전환을 하고 있다.
여인은 사마리아인들이 예배하던 이 산(그리심 산)과, 유대인들이 예배하던 예루살렘 중에서, 어디가 진짜 예배의 장소이냐고 질문을 했다.
3. 해당 본문(요 4:23~24) : 예배의 대전환 선언
✔ 예수님은 예배를 드리는, 물리적인 장소에 대한 논쟁을 단숨에 종식시켰다. 예배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의 본질에 맞추어서, 성령과 진리 안에서 드려야 하는, 심령과 구속사의 문제라는 것을 선포하셨다.
4. 이어지는 문맥(요 4:25~42) : 메시아 계시와 복음의 확장
(1) 내가 그라(I am He)
✔ 여인이 마지막 날에 오실, 메시아를 언급하자, 예수님은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Ἐγώ εἰμι) 라고 하면서, 자신이 바로 그 참된 예배를 가능하게 하는, 메시아라는 사실을 직접 계시했다.
(2) 사마리아 성읍의 구원
✔ 메시아를 만난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여인이 복음을 전한 결과, 수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고백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3) 요약
✔ 본문 말씀은, 사마리아라는 지리적인 폐쇄성과, 외식적인 의식(儀式)의 예배를 깨뜨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 세계와 모든 세대에, 신령과 진정의 새 예배 시대를 선포하는 전환점이다.
✔ 요한복음 4장 23절~24절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중에서 계시해주신, 예배의 대헌장과 같은 말씀이다.
먼저 헬라어 원문 석의와, 성경 신학적 해석을 진행한 후에, 보이스(James Montgomery Boice)의 강해의 제목과 소제목에 맞추어서, 설교 형태의 강해와 적용을 제시한다.
5. 헬라어 원문 석의(Exegetical Analysis)
요한복음 4장 23절~24절(NA28 원문)
1절. "ἀλλὰ ἔρχεται ὥρα καὶ νῦν ἐστιν, ὅτε οἱ ἀληθινοὶ προσκυνηταὶ προσκυνήσουσιν τῷ πατρὶ ἐν "πνεύματι καὶ ἀληθείᾳ· καὶ γὰρ ὁ πατὴρ τοιούτους ζητεῖ τοὺς προσκυνοῦντας αὐτόν".
2절. "πνεῦμα ὁ θεός, καὶ τοὺς προσκυνοῦντας αὐτὸν ἐν πνεύματι καὶ ἀληθείᾳ δεῖ προσκυνεῖν".
(1) 23절 석의 : 시간의 전환과 하나님의 찾으심
▪︎ἀλλὰ ἔρχεται ὥρα καὶ νῦν ἐστιν(그러나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생각하고 있는, 그리심 산과, 예루살렘이라는 예배의 장소의 논쟁을 종식시키신 것이다.
✔ 여기서 "때"(ὥρα)는, 단순히 연대기적인 시간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될, 구속사적으로 결정적인 시기를 의미한다.
✔ “지금이다"(νῦν ἐστιν)라는 선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인해서, 새로운 예배의 시대가, 이미 이 땅에 침투했다는 것을 선포한다.
▪︎ οἱ ἀληθινοὶ προσκυνηταὶ(참된 예배자들)
참된 예배자는,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예배자와는 전적으로 대조된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ἀληθινός(참된)는 허상이 아니라, 본질에 잇닿아 있는 자들을 말한다.
"καὶ γὰρ ὁ πατὴρ τοιούτους ζητεῖ"(아버지께서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여기서 "찾으신다"(ζητεῖ, 현재 시제)라는 것은, 하나님의 열망과 주도권을 보여준다.
✔ 이는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참된 예배자를 능동적으로 찾아내시고, 예배의 자리로 부르신다는 것이다.
(2) 24절 석의 : 하나님의 본질과 예배의 당위성
▪︎πνεῦμα ὁ θεός(하나님은 영이시니). 헬라어 문장 구조상, 관사가 없는 ‘πνεῦμα(영)가, 문두에 나옴으로서 강조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을 선언하는 것이다.
✔ 하나님은 물질적인 공간(성전, 산)에 갇히시거나, 육체적인 한계에 매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초월적인 분이라는 것을 천명한다.
▪︎δεῖ προσκυνεῖν(예배해야만 하느니라). δεῖ’는 "반드시 ~해야 한다" 라는 신적인 필연성(Divine Necessity)을 나타내는 동사이다.
✔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도, 반드시 하나님의 신적인 본질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예수님의 엄중한 명령이다.
▪︎ἐν πνεύματι καὶ ἀληθείᾳ(영과 진리로). 헬라어 전치사 ‘ἐν(안에서), 하나가 영과 진리를 동시에 묶고 있다. 이는 영과 진리 두 가지가, 분리되는 별개의 조건이 아니다. 영과 진리는, 묘사적인 결합(Hendiadys)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 참되고 진정한 예배는, 성령(Holy Spirit)님에 의해서, 거듭나고 조명된 영과, 계시된 최종적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Truth) 안에서 드리는, 단 하나의 진정한 예배 방식이다.
6. 성경신학적 해석(Biblical-Theological Interpretation)
✔ 본문 말씀은, 성경 신학적인 관점에서, 구약의 모형론(Typology)이 신약에 와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정점이다.
(1) 성전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의 대전환
✔ 구약 성경에서 예배는, 철저히 눈에 보이는 장소(성막과 성전)와, 제사 의식(동물의 피)의 중심이었다.
✔ 그러나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ἐσκήνωσεν)라고 선언하신 것처럼, 예수님 자신이 참된 성전이 되신 것이다.
✔ 따라서 구약의 지리적 물질적인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이고 보편적인 예배로 승화되었다.
(2) 삼위일체론적 예배 구도
✔ 이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우리는 성령(Spirit) 안에서, 길이요 진리(Truth)이신 성자 예수를 통해서, 성부 아버지(Father)께 나아간다.
✔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없이, 인간 본연의 종교성으로는, 결코 참된 예배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신학적인 결론이다.
7. 강해 및 적용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할까?(How to worship God)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의 형식과, 예배의 장소와, 자신의 감정의 만족에, 예배를 집중을 하고 있다.
✔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깨닫는 것이, 예배의 시작이라고 선언하셨다.
✔ 개혁주의의 거장 제임스 보이스(James M. Boice)는, 요한복음 강해에서, “예배는 인간의 필요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영광스러운 반응"이라고 했다.
※ 이러한 진리를, 네 가지 소제목을 통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예배는 본질적인 것이다(Worship is essential)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23~)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참된 예배자들을 찾으신다(ζητεῖ)라고 말씀하셨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부족한 것이 있어서, 인간을 찾으실까? 결코 아니다.
✔ 제임스 보이스는, 하나님이 참된 예배자를 찾으시는 이유는, 인간이 창조되고, 구원을 받은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예배"에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 인간은 예배를 드릴 때에, 비로소 가장 인간다워지고, 영혼의 진정한 만족을 누린다. 만약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예배를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존재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
✔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 예배는 삶의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 하나가 아니다. 예배는 영적인 호흡이자, 삶의 본질 그 자체이다.
※ 적용
▪︎여러분의 삶에서, 예배는 몇 번째 순위에 있는가?
▪︎바쁜 일상 속에서, 예배를 하나의 의무적인, 체크리스트로 전락시키지는 않았는가?
▪︎하나님이 지금도, 눈을 켜고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의 예배자가, 바로 내가 되기를 결단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가?
(2) 영적인 예배(Spiritual Worship)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으로 예배할지니라”(24~).
✔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πνεῦμα)이라고 선언을 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물질적인 장소와, 인간이 만든 화려한 종교의식과, 거대한 성전 건물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인간이 드려야 할 예배 역시, 외적인 의식(儀式)과, 위선적인 몸짓을 넘어서, 영적으로 드리는 예배여야 한다는 것이다.
제임스 보이스는 이 대목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가지고 있있던, 외식적인 종교성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 껍데기만 남은 종교적인 전통과, 마음이 실리지 않은 입술만의 찬송과, 지성적인 동의가 없는 감정적인 흥분은, 영이신 하나님께 결코 상달될 수 없다.
✔ 영적인 예배는,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거듭난 영혼이, 내면의 깊은 중심에서부터, 하나님의 임재를 대면하는 것이다.
※ 적용
▪︎주일 아침에, 몸은 예배당의 의자에 앉아 있다. 그러나 생각은, 세상 염려와 비즈니스에 있지 않는가?
▪︎영이신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성령님께서 내 마음을 정결케 하시고, 영혼의 중심을 하나님께 고정하도록,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가?
(3) 진리로 예배함(Worship in Truth)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24~)
✔ 예배는 뜨거운 감정(영)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반드시 진리(Truth)라는, 차가울 정도로 명확한, 궤도 위에서 움직여야 한다.
"진리로 예배한다" 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성경)에 계시된 대로, 진리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 제임스 보이스는, 현대 교회가 빠지기 쉬운 가장 큰 위험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없는, 아주 뜨거운 열정을 경고했다.
✔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성경 말씀대로 올바르게 알지 못하고 드리는 예배는, 결국 자기가 만든 우상을 숭배하는 것에 불과하다.
✔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진리가 우리의 지성을 깨우며, 감정을 움직이고, 의지를 헌신하게 만들 때에,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이다.
※ 적용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하나님을 상상하며 예배를 드리는가? 아니면 성경 말씀이 보여주는, 공의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설교 말씀과, 성경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더 깊이 알아갈 때에, 우리의 예배는 더욱 더 깊고, 견고해 진다는 것을 아는가?
(4) 다함이 없으신 하나님(An Inexhaustible God)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δεῖ(반드시 그러해야 하느니라)” (24~)
✔ 우리가 평생을 다해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최종적인 이유는,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다함이 없는(Inexhaustible) 무한한 분이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 물을 길으려고 매번 우물에 와야만 했다. 물을 마셔도, 또다시 목이 말랐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그 생수의 근원이, 바로 다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성령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구하고, 찬양하고, 예배를 드려도, 결코 그 깊이와, 영광의 끝을 다 파악할 수 없는, 아주 신비로운 하나님이시다.
✔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예배자는, 지루할 틈이 없다. 매번 예배의 자리에 나아갈 때마다, 다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와, 사랑의 깊이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 적용
▪︎매주일 드리는 예배가, 타성에 젖어서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작아지신 것이 아니라, 내 영적인 시야가 닫힌 것이다.
▪︎무한하고 다함이 없으신, 하나님 앞에 내가 서 있다는, 거룩한 두려움과 기대를 회복하라.
▪︎우리의 매일의 삶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탐험하는, 끝없는 예배의 여정이다.
✔ 참된 예배는, 주일 하루로 끝나지 않고, 일상의 삶으로 이어진다.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서, 영과 진리로 드리는 본질적인 예배를 통해서, 날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경험하는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바란다.
8. 구원과 예배에 대한 구속사와 청교도의 관점
요한복음 4장 23절~24절(“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을 바탕으로, 구속사(Redemptive History)와 청교도(Puritan) 관점에서, 예배와 구원의 불가분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구속사사 관점은 구원의 목적은 예배이다
✔ 구속사(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해 가시는 역사)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궁극적 목적이 곧, 참된 예배의 회복이라는 점이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참된 예배를 잃어버렸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명분은,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예배할) 것이니라"(출 8:1)였다.
✔ 즉, 구원은 단순한 애굽에서의 탈출이 아니라, 예배자로의 부르신 것이다. 예수님은 성전 중심의 율법적 지리적 예배를 넘어, 십자가 구속 사건을 통해서, 영과 진리(성령과 그리스도 안에서)로 드리는, 참된 예배의 길을 열어주셨다.
✔ 구원은 결코, 천국에 가는 티켓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관계의 회복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을 받은 자에게 있어서 예배는, 선택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이자 목적이 되는 것이다.
(2) 청교도의 관점은 중생의 열매이자 신앙의 중심이다
✔ 17세기의 청교도들은, 예배를 신앙 생활의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그리고 예배와 구원을, 철저하게 하나로 연결해서 보았다.
✔ 예배는 중생(Rebirth)의 당연한 열매이다. 청교도들은 성령으로 거듭난(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애정(Holy Affections)이 생기므로, 하나님을 높이는 참된 예배를 갈망할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규범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에서 보면, 청교도들은 인간의 고안과 전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진리)에 근거한 예배만을, 참된 예배로 인정을 했다.
참으로 구원을 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신령과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 삶 전체로서의 예배이다. 청교도들에게 주일 공예배는, 신앙의 핵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상과 가정도 하나님 앞에 서는, 예배의 현장(Coram Deo)이었다. 구원을 받은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며, 회복된 관계가 가장 극명하게 표현되는 행위가, 주일과 일상의 삶에서 드리는 예배였다.
✔ 하나님은 사람을, 예배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구원을 하셨다. 참된 구원을 받은 자는, 성령과 말씀(영과 진리)을 따라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적 관점에서, 구원을 받았으나,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삶은, 결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와 구원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 結論(결론) 및 敵用(적용)
예배와 구원의 결론과 적용은, 평생을 바쳐서 경고를 했던, 교회의 세속화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처방전이라는 것을 아는가?
예배와 구원은, 단순한 개인의 영적인 체험과,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라, 세상을 뒤집어 흔드는 변혁의 동력이라는 것을 아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최종적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참된 예배자가 되도록 하려는 것을 아는가?
구원의 적극적인 목적은, 죄로 인해서 깨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예배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아는가?
인간 중심적인 구원관은, 필연적으로 인간 중심적인 예배(내 기분과 감정을 만족시키는 예배)를 낳는다는 것을 아는가?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의 예배는 온전히 하나님 한 분만을 높이는, 참된 예배가 된다는 것을 아는가?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극장의 관객처럼, 예배를 관람하고 평가하려는 태도는, 예배의 타락이라는 것을 아는가?
예배의 중심은, 나의 감정적인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가?
설교를 들을 때와, 찬양을 할 때에 신앙의 고백을 담아, 하나님께 지성과 마음을 다해서 드리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은, 세상의 가치관(물질주의, 개인주의, 성공주의)을 따르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가?
직장과 가정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정직과 사랑으로 행하는 도덕적 윤리적 삶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영적인 예배하는 것을 아는가?
구원의 확신과 예배의 감격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약속과 진리를 아는 지식(진정)에서 깊어지며, 이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뼈대라는 것을 아는가?
오직 성경을 통한, 그리스도의 구원 복음을 선포하고, 그것에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아는가?
▪Nadulbok Ch Professor and Missionary.
▪Ph.D. in Homiletics.
▪Doctor of Missiology.
▪︎Ph.D. in Biblical Studies.
▪︎Honorary Doctor of Education.
▪Thailand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Professors.
▪Laos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Professors.
▪Myanmar's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Professors.
▪︎Cambodia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Dean.
▪︎President of Jilin Theological Seminary, China.
▪︎President of Thailand Bible Semina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