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준비
ㅇ모처럼의 휴가인데 급한 일이 있어 퇴근이 어렵다. 겨우 평소의 퇴근시간과 거의 같이 나가니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다. 급한 대로 주식과 간식을 분리해 짐을 꾸리고 잠시 쉬니 벌써 출발할 시간이 되어 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배낭을 메는데 너무 무거워 뒤로 넘어질 것 같다.
ㅇ예정된 시간에 기차를 탔는데 바로 앞쪽에 앉은 중년 남녀가 벌써부터 술을 마시고 있다. 크게 떠들지는 않지만 계속 주제 없는 이야기를 하니 신경이 쓰여 잠이 오지 않는다. 나도 심심해 맥주를 몇 캔 마시고 잠을 청하지만 그래도 잘 수가 없다.
ㅇ가져간 더덕주를 마시고 잠오기를 기다리나 그래도 잠은 안오고 내릴 시간이 가까워 온다. 술판을 벌인 중년들은 어느새 자고 있는데 나는 눈만 멀뚱히 뜨고 있어야 하니 피로만 가중되고 며칠전 걸린 감기로 기침이 나오면 가슴만 아프다.
ㅇ어느덧 시간이 흘러 남원에 도착하는데 예상외로 등산객이 별로 없다. 방학과 휴가가 겹친 7, 8월은 등산객으로 붐비는 것을 자주 보아 왔는데 예상외로 등산객이 없다.
ㅇ합승은 생각도 않하고 인월을 향해 출발한다. 기사에게 물으니 옥계호를 잘 안단다. 지도상에서 본 그곳에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계획했는데 잘 안다니 반갑다. 차는 상당한 거리를 달려 옥계호에 도착한다.
□ 구간별행
ㅇ도착(남원-옥계호) : 예상보다 먼 거리다. 중간에 졸면서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바람이 스산하게 분다. 산을 오를 엄두가 안나 우선 밥부터 먹기로 하고 도로변의 가로등 아래에 자리를 편다.
상당히 큰 모텔 같은 곳을 지나니 저수지의 댐이 앞을 가로 막는다. 캄캄한 이 밤에 전진이 불가하다. 비를 가리고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 잠을 청하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날이 훤해지기에 댐을 올라 갈길을 찾으니 입구가 예상외로 쉽게 찾아진다. 바래봉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이리저리 둘러보며 길을 찾아 갔지만 길을 찾기가 어렵고 능선에 닿으려고 지도를 보면서 갔지만 능선길로 가는 줄 알고 가는데 한참 가다가 농로에 이르고 결국에 도로에 닿는다.
도로를 따라 얼마 가지 않아 인월 2킬로라는 표지가 나온다. 빠르게 도로를 따라 걷는데 초로의 여인네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지나간다. 비는 간간히 뿌리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덥지는 않다.
인월에 도착해 구인월을 향해 가는데 아직도 비가 오고 몸은 무거워 마을의 정자(건물을 지었음)에 자리를 피고 남은 소주와 밥을 먹고 누웠으나 잠은 오지 않는다.
ㅇ구인월→덕두산 : 마을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다행히 날씨는 비가 그친 상태라 산행하기에는 좋은 날씨가 되었다. 마을을 지나 농로를 따라 오르는데 산측으로 길이 있어 농로에서 벗어나 왼쪽으로 들어서니 바로 산과 접한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등산로가 이어져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아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예상대로 길은 오르막의 연속인데 산을 넘으면 또 산이고 길은 젖어 몇번이나 미끄러지며 땀을 뻘뻘흘리며 연속되는 오르막을 쉬지 않고 오른다. 너무도 힘들어 중간에 한번 쉬고 10개의 오르막을 지나고 나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정확한 것은 아니나 이곳이 덕두산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멀리 지리산 능선이 보이고 인월과 운봉도 보인다. 잠시 쉬고 다시 출발한다.
ㅇ덕두산→바래봉 : 능선에 오르니 그래도 오르막이지만 멀리 지리 능선이 보이니 산행이 쉬워진다. 길은 뚜렷해 졌는데 곳곳에 잡목이 있고 젖어 있어 잠시 방심하면 미끄러 진다. 속도를 내어 걷다 보니 여러번 넘어지고 긴 바지를 입었는데도 다리를 긁히고 팔에는 피가 맺힌다.
그래도 산행은 지루하지는 않고 잡목을 헤치고 미끄럼을 방지하느라 주능선 보다는 훨씬 힘이 많이 든다. 서부능선을 찾을 때의 긴장이 풀리니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고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감기 때문에 기침이 계속 나오고 기침 할 때 마다 가슴 속이 따갑다. 늦게 출발을 해서 만회할 생각으로 속도는 늦추지 않고 등산길을 따라 몇번 오르내리는 것 같은데 봉우리에 닿는다.
바래봉이다. 물을 마시려고 배낭을 보니 물 한병이 없어 졌다. 배낭 옆구리 주머니에 넣었는데 잡목에 시달리다 걸려서 떨어진 것 같다. 스포츠 음료 한병과 작은 물병하나 밖에 없는데 좀 걱정이다. 또한 준비했던 간식을 그만 챙기지 못하고 온 것이 마음에 걸린다. 간식도 없으니 물만 먹고 가야 한다. 고생이 가중되고 피로도 쌓인다. 그래도 아직은 갈 만 하니 다시 일어서 걸어 본다.
ㅇ바래봉→팔랑치→도로끝 고개 : 이 부근 부터는 잡목은 없는데 풀이 많아 아직도 걷는데 방해를 한다. 이미 신발은 물에 빠진 것 처럼 젖고 군데군데 질척한 흙을 밟느라 흙투성이가 되어 발이 무겁다. 이제 지리산 능선이 잘 보이는데 천왕봉은 구름에 덮여 있다. 장엄하기만 하지 설악산과 같은 아기자기한 멋은 없다.
설악산을 좋아하는 분에게 지리산을 이해 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 푸르스름한 산맥만 연속되는 이 지리산이 뭐 그리 좋아 이런 고생을 해가며 오는지 잠시 생각하다 또 미끄러진다. 햇볕은 나지 않지만 날씨가 무더워 땀이 많이 난다. 이런 여름에 이 무거운 배낭을 지고 가만히 있어도 땀으로 범벅일 텐데 이렇게 오르막 내리막을 걸으니 당연히 땀은 나야지.
그래도 땀이 많이 나는 것은 싫다. 이런 산중의 능선에 울타리가 있어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참만에 알아차린 결과 그것은 면양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 산중에도 도로를 개설해 놓고 관리동도 짓고 풀을 재배한 것을 보면 면양을 기르기 위해 무지하게 노력했다는 증거가 본인다.
그런데 지금은 사양되었는지 면양을 기르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 체질에 양고기는 안 맞는 모양이다. 25년여 전에 군대생활 시절 양고기를 먹은 기억이 있는데 기름이 많고 돼지고기 많도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맛이 있었는데 지금 먹으라면 싫어할 것 같다. 탄탄대로를 유유히 걷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 구간이 제일 한가하게 걷는 구간인 것 같다.
ㅇ도로끝 고개→세동치 : 도로가 끝나는 지점을 통과할 때 반대편에서 오는 젊은이 둘을 보았다. 가별게 인사를 하고 지나치며 보니 아직도 우의를 입고 있다. 내리막길이라 덜 더운 모양이다.
아직도 천왕봉은 구름에 덮여 있고 멀리 반선쪽과 운봉쪽의 골짜기 아래에는 마을이 보인다. 이만하면 훌륭한 경치이고 날씨도 산행하기 좋은 편이다. 햇볕이 쨍쨍 낫더라면 물도 적고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신발은 젖을 대로 젖고 흙이 물과 함께 배어 신발 무게도 대단하다.
발 속에서도 미끄러지고 길도 미끄러워 조금만 방심하면 낙상이다. 세 번은 비교적 크게 넘어지고 미끄러지기는 스무번도 더한 것 같다. 키큰 잡목과 풀숲을 지나고 오르막 내리막이 연속되어 힘을 많이 소모한다. 이곳의 이정표는 도면에서와 거리가 거의 같게되어 산행시간을 예측하기가 쉽다. 한참을 걸으니 세동치가 나온다.
ㅇ세동치→세걸산→고개 : 세걸산을 오르려면 힘들겠다고 생각하며 묵묵히 걷는데 얼마 가지 않아 쉽게 세걸산에 도착한다. 여기에도 헬기장이 있고 뚜렷한 경치도 아니어서 그냥 지나친다. 이제 목이 말라 다른 생각이 없고 오직 땀을 적게 흘리도록 천천히 걷기만 한다. 다행히 오이가 두 개 있어 천천히 씹으며 목마름을 달래며 걷다보니 고개가 나오는데 이정표에 정령치 2.8킬로미터라 표시되어 있다. 이제 한고개만 넘으면 되겠구나 하면서 일어선다.
ㅇ고개→고리봉→정령치 : 이 구간이 예상외로 힘들다. 고리봉인가 하고 올라보면 또 산이 있고 또 올라야 더 높은 산이 버티고 있다. 점심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배고픈 것을 느끼지 못한다. 산행이 힘들어 밥 먹는 것도 잊은 것 같다.
이제 오이도 다 먹고 음료수도 다 마셔 정령치가 빨리 나타나지 않으면 고생이 가중되는데 하면서 또 산을 오르니 드디어 사람의 모습이 보이고 가건물 같은 것이 있는 것이 틀림없는 고리봉이다. 산 정상에 도착하나 젊은 남녀 여러명이 소주를 마시고 있다.
산 아래 저편에 고개가 보이는데 그곳이 정령치이니 물을 얻어 먹어도 될 것 같아 물 좀 달라 했더니 물병채로 주면서 가면서 마시라 한다. 그리 시원한 것은 아니나 물을 마시니 편안해 진다. 잠시 말을 주고 받다 다시 걷는다. 내리막 길이라 바로 도착할 것 같은 데 한참을 가서야 정령치가 나온다.
ㅇ정령치→만복대 : 매점에 들러 주류와 간식을 사고 옆에 놓인 파라솔 아래에 자리잡고 점심을 해결한다. 차량과 사람이 비교적 많이 있고 주변은 아늑하고 넓다. 이곳의 경치가 상당히 좋아 차로 지나는 기회가 있으면 꼭 들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한다. 한참 쉬면서 이곳 저곳 둘러 보고 또다시 갈 준비를 한다.
이제 시간도 상당히 흘러 날이 어둡기 전에 노고단 산장에 도착할지 걱정을 하며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오르막을 오른다. 얼마를 가니 갑자기 날씨가 스산해 지더니 안개 구름이 몰려 온다.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는 것이 갈 길을 더욱 재촉한다. 긴 풀숲을 지나고 오르막을 오르니 드디어 만복대다. 주변은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갈길은 멀은데 어둡기 전데 성삼재까지는 가야지하며 다시 일어선다.
ㅇ만복대→묘봉치 : 잡목과 수풀이 우거진 길을 걷는데 이따금씩 구름이 걷히고 서쪽 하늘이 보인다. 아직 어둠이 오기에는 이른 시간이나 마음은 좀 급해진다. 물도 충분하고 식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걷기에는 최상의 컨디션이 되어 속도가 빨라진다.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고개가 나오고 성삼재 2킬로미터라는 표지판이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ㅇ묘봉치→성삼재 : 다시 빠른 걸음으로 산행을 계속한다. 날씨가 많이 좋아져 멀리 서산에 넘어가는 햇살이 구름 사이로 비치면서 마을이 보인다. 고리봉을 넘는 고개가 있는데도 별 어려움이 없이 산행은 계속된다. 드디어 성삼재가 보이고 내리막이라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성삼재 0.3킬로미터라는 표지를 지나 한참을 가니 주차장이다. 이 표지는 좀 잘못된 것 같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어둠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구름 탓이 아니고 이제 밤이 시작되는 것이다. 잠시 쉬고 휴게소를 들러 보아도 살 만한 것이 없어 다시 배낭을 멘다.
ㅇ성삼재→노고단산장 : 몇 번 가본 길이고 탄탄대로라 속도를 내어 걸으니 진도가 잘 나간다. 간간이 내려 오는 사람이 있어 심심치 않게 걷다보니 어느새 코재에서 오르는 길과 마주친다. 조금 더 가서 산장에 이르는 오르막을 걸을 때는 거의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피로가 겹쳐 좀 힘이 든다. 드디어 산장도착한다.
이렇게 오늘의 산행은 끝나고 내일은 내일 알아서 결정하기로 하고 식사 준비를 한다. 산장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다. 예약한 사람들은 아래 침상에서 빽빽하게 자고 나같이 예약을 안한 사람은 윗침상에 자리를 배정해 주는데 아주 넉넉하다. 오늘 따라 늦게 오는 분도 없어 위의 넓은 침상에서 4명이 자게 되었다.
ㅇ노고단산장→임걸령샘 : 자다 깨어보니 1시 밖에 안 되었다. 다시 자려 해도 잠이 안와 일찍 밥해먹고 출발하려고 일어 섰다. 취사장에도 여러명이 자고 있다. 이분들은 아예 처음부터 산장에서 자지 않고 취사장에서 자려고 작정한 사람들인 것 같다.
지난 밤에 보았던 배낭이 그걸 짐작하게 한다. 일찍 떠나더라도 3시는 넘겨 갈 생각으로 천천히 식사준비를 했다. 창문으로 희미하게 달이 비치는 것이 오늘은 날씨가 좋으려는가 보다하고 기대하며 식사를 한다.
3시30분에 출발하려고 밖에 나가니 어느새 비가 오고 있다.
그래도 출발하니 지루한 새벽 산행이 시작된 것이다. 등산길에 간간이 웅덩이가 있고 몇 년전부터 계속되는 큰 비로 돌이 많이 노출되어 밤길을 걷기가 불편하다. 비와 안개가 거듭되니 전등 불빛도 제대로 안 보인다. 되지령을 지나는데 앞서가던 젊은이와 만나게 된다. 휴식한지 얼마 안 되는지 빠른 걸음으로 간다.
임걸령샘이 가까워 오니 전등이 희미해 진다. 앞이 잘 안보이니 발에 힘이 빠진다. 전에는 흙이 많은 탄탄대로 같은 길이었는데 오늘은 돌만 보이고 물 웅덩이가 곳곳에 있어 더욱 느려 진다. 임걸렴샘에 다다르니 길을 완전히 새로 단장해 지나칠 뻔 했다.
물을 마시고 다시 걸으려 하니 전등이 없어 갈 수가 없다. 다행히 비는 그쳐 새로만든 길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다리를 펴고 날이 밝을 때까지 쉬기로 한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날이 밝아와 다시 일어나 걷는다.
ㅇ임걸령샘→노루목 : 이틀간이나 잠을 설치고 서북능선에서 힘이 많이 들어 이제 다리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고 피로가 누적된다. 평소 같으면 노루목을 그냥 지나칠 것인데 오늘은 여기서 쉬어야 한다. 아직도 날씨는 구름인지 안개인지 앞이 잘 안보이도록 흐리다.
더 갈 마음이 내키지 않아 일단 자리를 잡고 누워서 잠깐 눈이라도 붙이고 나서 생각하기로 하고 모퉁이에 누워 본다. 한참을 지나도 잠은 오지 않고 피로는 풀리지 않는다. 일단 화개재로 가서 하산길을 찾아 보기로 하고 다시 출발한다.
ㅇ노루목→화개재 : 피로하지만 그래도 빠른 걸음으로 삼도봉을 지나고 계단길을 거쳐 화개재에 닿는다. 지도를 펴고 내려갈 길을 찾아보니 뱀사골 밖에 갈곳이 없다. 토끼봉을 거쳐야 다른길이 있는데 거기까지 갈 생각은 없어 뱀사골로 가기로 한다.
ㅇ화개재→반선 : 산장에는 식사를 하는 사람과 짐을 싸는 사람이 분주히 움직인다. 그렇게도 힘들던 산행이 내려 간다는 결정을 하고 길을 나서니 힘이 난다. 세 번쯤 쉬고 주차장에 다다랐지만 세수할 곳도 없다. 계곡휴식년이라 계곡물을 만져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여름에는 이곳으로 내려오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주차장 구석에서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서 겨우 세수만 하고 바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니 산행이 끝이다.
□ 산행후
ㅇ이번 산행은 감기 때문인지 잠을 못자서 계획대로 할 수가 없었고 날씨 또한 산행에 어려움을 주었다. 서부능선에서의 더위와 주능선의 안개는 산행이 싫어지게 하고 배낭이 너무 무거워 힘을 많이 소모하게 했으며 신발이 물과 흙에 젖어 더욱 어렵게 했다.
ㅇ몸의 상태가 않좋아 무리한 산행을 하지 않고 뱀사골로 하산하여 일찍 귀가한 것이 오히려 잘 한 것 같다. 다음날 관악산-삼성산 산행을 어렵지 않게 하고 광복절로 이어지는 휴가도 무사히 지냈으니 아쉬움은 남지만 서북능선을 종주했다는 것으로 만족하게 결론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