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삶은 결과보다는 과정
김영관
나는 누구인가? 내가 서 있는 이곳은 내 생의 어디쯤일까? 나는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나의 나이테는 어떤 모양일까? 나이 탓인지 요즈음 들어 문득문득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나의 뜻과는 관계가 없지만, 세월의 길을 걷는 건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자연은 만물에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을 똑같이 주었지만, 지적인 동물인 인간은 그 시간을 이용하는 방법이 천차만별이다. 그에 따라 삶의 과정과 결과 또한 판이하다.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를 한 번 더 읽고 싶었다. 이 책은 헤밍웨이가 52세 되던 해인 1951년 약 4개월 만에 완성한 작품으로 헤밍웨이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대표작이라고 할 만큼 널리 알려진 책이다.
이 책에 등장인물이라곤 평생을 낚시로 생계를 이어가는 ‘산타아고’라는 한 노인과 그 노인으로부터 낚시를 배우는 ‘마놀린’이라는 소년 그리고 고기 한 마리가 전부다. 그만큼 등장인물도 줄거리도 매우 단순하지만, 독자에게 던지는 삶의 메시지는 강렬하다.
산티아고 노인이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해 마놀린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가면서도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을 기약하며 인내로 기다린다. 그리고 바다가 포효할 때의 그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작은 배를 타고 주저 없이 먼 바다로 나아가며 더 깊은 곳에 미끼를 드리우며 되뇐다. 큰 고기를 잡고야 말겠다고. 이는 헤밍웨이가 산티아고 노인을 통해 삶의 여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인내와 도전이며, 시련 극복엔 용기가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인생의 길에서 조급함은 바로 실패를 뜻한다. 시간과 능력과 기다림을 무시한 서두름은 화를 자초할 뿐이다. 물은 흐르다 막히면 돌아간다. 서두름 없는 전진이 올바른 삶의 지혜임을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는 의미라 생각된다.
70 평생을 낚시로 살아온 산티아고 노인이 85일째 되던 날 난생처음 보는 큰 고기가 낚시에 걸렸다. 하지만 고기의 엄청난 힘에 삼 일 밤낮을 돛단배와 함께 망망대해로 끌려가는 동안 먹지도 못하고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태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낚싯줄에 손바닥이 갈라져 피로 물들고, 한쪽 팔은 마비되어 쓰지 못하면서도 산티아고 노인은 주문을 외운다.
“난 네놈을 잡고야 말 거야” 이 얼마나 강한 인간의 의지와 용기인가! 진정한 용기는 이렇게 끈기가 수반되어야 한다. 끈기가 밑받침되지 않은 용기는 만용일 수밖에 없다. 조그만 난관에 봉착해도 쉽게 좌절해 버리고, 새로운 것에의 도전을 두려워하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노인은 무게가 700kg이나 되는 거대한 고기를 끝내 잡고야 만다. 그건 산티아고 노인 개인의 승리이면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강인한 동물이 인간임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목선보다 더 큰 고기를 배에 매달고 항구로 돌아오는 동안 바다의 약탈자인 상어 떼가 물고기의 살을 뜯어먹을 때 노인은 또 극한적인 사투를 벌인다. 결국 약탈자와의 싸움에서 노인의 유일한 무기인 긴 갈고리까지 빼앗겨버리고, 배가 항구에 도착할 때는 고기의 앙상한 뼈만 남아있었다.
이는 인생에서 아무리 큰 결실을 거둔다 해도, 그 결실을 아무리 지키려 해도, 결국엔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다는 헤밍웨이의 메시지라 여겨졌다.
헤밍웨이는 산티아고 노인의 입을 통해 무(無)인 인생의 끝을 이렇게 표현했다.
‘고기 뼈가 별빛을 받아 은은한 빛을 발한다고.’ 이는 최선을 다한 결과는 아름답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헤밍웨이는 끝으로 산티아고 노인과 소년의 입을 빌려 삶이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나보다 더 훌륭한 어부는 많이 있지.”
“아녀요, 고기 잘 잡는 어부들이야 많이 있지요. 하지만 어부 중에서 가장 훌륭한 어부는 할아버지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