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은 그를 「마에스트로 鄭」이라고 불렀다. 이탈리아語 마에스트로는 大家(대가), 巨匠(거장)이란 뜻이다. 세계적인 음악가 鄭明勳(정명훈·52)씨에게 어울리는 존칭이었다.
나는 일본에서 鄭씨를 만나 3박4일을 동행하면서 모두 세 차례 가슴 뭉클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20여 년이 넘는 기자 생활과 세파 탓인지 내 마음은 웬만한 일에는 무감각한 편이다. 그러나 鄭씨와의 만남은 얼음 같은 내 마음 한구석을 (잠시겠지만) 감미롭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으로 변모시켜 버렸다.
첫 번째 뭉클함은 그가 명망에 비해 훨씬 소박하고 솔직담백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였다. 요즘은 세상이 어떻게 변해서 그런지, 나이도 젊고 세상 경험도 짧은 사람일지라도 국제정치에서부터 비즈니스·역사·철학, 심지어 선·악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단순명쾌하고 확고한 주견을 자랑하곤 한다.
그러나 鄭씨는 『어떤 이들은 몇 분 안에 악보를 외워 버리지만 나는 100번을 봐야 외울 수 있는 정도의 재능』이라고 했고,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 『아직도 늘 의심이 많고 헤매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세계는커녕 한국의 작은 무대에서 순간적인 성공을 거둔 이들도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흔히 겸손한 척, 또는 잘난 척을 하는 등 인간적인 「때」를 발견하지만 鄭씨에게서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성이 느껴졌다.
두 번째는 『인생의 목표가 세속적 성취가 아니라, 후진을 길러내고 인간적으로 겸손·순수해지는 것』이라고 토로할 때였다. 나아가 『늙어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하고 사는 것은 소명』이라고 했다. 그 정도 大家가 되면 시쳇말로 폼도 잡고 쉴 수도 있겠지만 그는 인간적 완성을 위해 최선을 기울이겠다는 자세였다.
세 번째는 그의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었다. 그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기적」이란 표현을 썼다. 아내에 대한 찬사가 끝이 없었다. 만약 이와 똑같은 말을, 예컨대 미국의 클린턴 前 대통령이나 여느 사회 명사들이 했다면 나는 구토의 욕구를 강하게 느꼈을 지 모른다. 그러나 鄭씨에게선 진실성이 느껴졌다. 부인에게 『어떻게 그렇게 천생연분인가』 물었더니, 부인은 웃었다.
나는 이번 인터뷰 기사만큼은 내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저렇게 세계적인 성취를 이룬 사람도 아내와 가정에 충실한데, 모든 면에 소홀한 내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글은 鄭明勳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는 것보다는, 그를 통해 독자들이 무엇을 느낄 것인지에 무게중심이 놓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의 내면세계를 추적하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鄭明勳과의 첫날/4월28일]
도쿄 필하모니와 리허설
지난 4월28일 오후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 홀. 무대 위에서 도쿄 필하모니 단원 70여 명이 연습하고 있었다. 이들은 30일 도쿄에서 신칸센(新幹線) 고속열차로 1시간20분여 걸리는 휴양지 가루이자와(輕井澤)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비롯, 5월1일 도쿄 공연 등 일련의 콘서트를 鄭明勳씨 지휘로 가질 예정이었다.
당초 鄭씨는 이날 오후 1시부터 리허설을 하기로 돼 있었는데 새로 발족될 서울시향 멤버 선발심사를 하느라 한 시간 늦게 도착한다고 했다.
오후 1시55분쯤 鄭明勳씨가 콘서트 홀에 도착했다. 그는 지휘자 대기실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검은색 바지와 재킷. 재킷 속에는 하얀 라운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鄭씨를 직접 만나보기는 처음이었지만 白과 黑이 조화를 이루는 옷차림은 낯설지 않았다. 아마도 鄭씨가 가장 즐겨 입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鄭씨는 지난 2월 『서울시향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킨다』는 야심찬 포부下에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를 맡기로 서울시 측과 계약을 맺었다.
1945년 탄생해 올해로 60세가 된 서울시교향악단은 鄭明勳씨의 영입을 계기로 기존 조직을 해체하고 새로운 법인재단 형태의 악단 再구성에 들어갔다. 새로운 악단은 4월22일부터 공개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는데, 선발예정 인원은 총 106명인데 687명이 몰려 평균 6.48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서울시향 오디션은 어땠습니까.
『항상 오디션이 제일 힘듭니다. 못하는 걸 보면 불쌍하고, 잘하는 사람 안 나오면 답답하죠. 특별히 잘하는 사람 찾아내기가 어려워요. 100명 중 한 사람꼴이라고 할까. 파리에 있으면서 약 1000명의 싱글 오디션을 봤는데 그중에서 어느 정도 실력 갖춘 이가 10여 명, 아주 뛰어난 이는 1명밖에 발견하지 못했어요』
음악의 세계가 그토록 힘든 것인가. 세계 명문 음대를 나오고 나름대로 「일류」를 자부하는 연주자들이 즐비할 텐데 말이다. 이번 시향 수준은 어땠을까.
『과거보다는 훨씬 나아졌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서울시향과의 계약기간은 3년이라면서요.
『기간은 신경 안 씁니다. 일이 긍정적으로 가면 계속 일할 것이고, 그 반대일 경우는 빨리 끝날 수도 있죠. 계약조건으로 따지던 시기는 지났습니다』
─목표는.
『한국의 음악수준이 많이 올라갔죠. 아주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도 한국아이들 많고, 로마 산타체칠리아 아카데미를 가면 여기가 이탈리아인지 한국인지 모를 정도로 한국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는 아직 일본보다 많이 뒤쳐져 있습니다』
─좋은 오케스트라가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나요.
『단원수준·지휘자·지원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얼마 전 시카고에 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는데 모든 수준이 최고더군요. 외국에선 유명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경우 처우도 대단하고 긍지도 높은데 한국에선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콘서트 홀도 없구요』
『이명박 시장과는 잘 맞아』
─李明博 시장하고는 뜻이 맞는 것 같습니까.
『서로 간에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李시장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분이 음악에 대해 잘 아시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해주어야 하는지는 잘 판단하실 분으로 믿습니다』
오후 2시5분쯤 鄭씨가 무대로 입장하자 연습하고 있던 단원들이 가벼운 박수로 그를 맞았다. 일본말로 짧게 인사를 나눈 뒤 鄭씨는 『단지 한 시간밖에 안 늦어 죄송하게 됐다』며 농담섞인 사과를 했다. 단원들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곧바로 리허설에 들어갔다.
음악은 어디서 들어본 듯 귀에 익었다. 스케줄표를 보니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바이올린 독주자는 10代 후반의 한국 소녀였다.
鄭씨는 서서 지휘 동작을 아주 크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앉아서 섬세하고 리드미컬한 제스처를 보이는 등 전체 단원들을 자신의 페이스로 끌고 갔다. 잘 되는 부분은 건너뛰고 특정 부분의 반복연습에 주력했다.
『좀더 부드럽게, 관대하게, 민감하게…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아주 강하게, 놀랄 정도로…』
음악에서 긴장과 강·약의 조화, 감미로움 등을 강조했다. 쉬운 표현은 영어로 직접하고, 좀더 자세한 표현은 대기해 있는 일본인 통역이 해줬다. 어느덧 분위기는 「마에스트로 鄭」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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