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산 자락엔 석탄이 많아 탄광회사가 많이 있다.
오정산(烏井山)이라는 이름도 검은 석탄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중동엔 모래를 파면 물보다 석유가 난다고 하듯,오정산에서 우물을 파면 검은 석탄이 나온다는 뜻일 것.
드날머리로 이용되는 문경대학은 오정산 바위공원을 정비해 지역민에게 개방함과 동시에 산행의 각종편의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오정산 정상부의 칼날암릉은 오정산 산행의 하이라이트.
사방으로 조망이 트이며 내로라하는 주위 산군들과 백두대간의 힘찬 산줄기를 볼 수 있다.
산행재미를 별개로 치더라도 문경8경의 으뜸인 진남교반(鎭南橋畔)의 인문학 산책은 빠뜨릴 수 없는 필수 코스.
진남교반은 진남철교의 주변을 일컫는다.
첫째는 낙동강 상류의 영강 물줄기와 오정산의 산줄기,그리고 옛 국도3호선이 “S”자 태극 형상으로 굽이돌아 삼태극(산태극 물태극 길태극)으로
휘도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마치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고 해서 '문경의 소금강'으로 불리기도 한다.
둘째는 길의 역사다.
조선시대에 부산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영남대로를 이용해야 했다.
영남대로는 김천 추풍령과 영주 죽령, 그리고 경북 문경의 새재를 넘는 등 세 가지 길이다.
과거보러 가는 선비들은 이 중에서도 문경새재(조령)를 넘기를 선호했다.
빠른 이점도 있지만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은 죽죽 미끄러지며 문경은 경사스런(慶) 소식을 듣기(聞) 때문이였다.

문경새재를 넘는 영남대로 중 최고의 험로는 토끼비리.
명승 제31호로 지정된 토끼비리는 층암절벽 사이로 난 길이 1㎞, 폭 1m의 벼랑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걸었던지 칼날 같은 바위가 닳고 닳아 거울처럼 반질반질하다.
그런 토끼비리도 태극문양의 옛 국도 3호선에 자리를 내주더니 다시 산자락을 관통하는 새 국도 3호선에 편의성을 내주고 만다.
산행코스: 문경대학-791봉 갈림길-오정산(U턴)-791봉-644봉-삼태극 전망대-토끼비리-고모산성-진남휴게소(


버스는 문경대학 정문을 통과하여 곧장 올라...

본관건물 앞에서 정차를 한다.

바로 그 옆에 오정산바위공원이 있다.

'오정산바위공원'은 제천의 '금월봉'과 많이 닮아 있다.
학교를 지어면서 드러난 자연석 경관으로 도깨비도로와 함께 캠퍼스의 명소가 되고있다.

입산 전단계로 우선 바위공원을 둘러보기로 한다.

오정산을 배경으로 단체사진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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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진입로는 오정산을 바라보며 본관건물 우측 벽을 따라 바싹 붙어 돌아야 한다.

우리는 그만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임도급 길을 따라 무심코 내려걷다가 다시 선두가 가는 지점에서 좌측 언덕으로 올라붙었다.

언덕에서 올라와 건물 뒤로 난 임도급 산길을 따라 오른다.

한동안 이 산판길을 따라...
오르면...

좌로 휘는 지점에 낡은 오정산 안내판이 있고...

아래론 문경대학이 내려다 보인다. 바위공원은 앞에 있는 4층건물(본관건물)에 가려있고,우리는 빨간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산길로 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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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급 산길은 을(乙)자로 이어지고 있다.

참 못생긴 산에 그저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들하며 이름난 산치고는 완전 유명무실이다. 낙엽이 어지러이 깔린 어수선한 등로를 오르자...

그제서야 조망이 트이면서...

반분이 풀리는 듯하다.

완만한 산길을 돌아보면 다시 가슴이 열리고...

사방 시야의 반경이 넓어진다.

조금 당겨보는데,

올라온 뒤를 내려다 보니 중늙은이 머리숱처럼 듬성듬성한 게 아마도 산에 불이라도 났는가 보다.

우람한 산맥의 하늘금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대간길 청화산 조항산쪽인데...

산아래엔 무언가 한참 개발이 되고 있는 듯...

이 등산로를 문경대간이라고 부르고 있고,대미산 23.5km를 안내하고 있다.

백두대간 대미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문경대간(聞慶大幹)은 대미산(大美山)에서 운달산과 단산을 거쳐 오정산으로 이어지는

百鍊千磨(백련천마)란 '백 번을 단련하고 천 번을 갈고 닦는다'는 뜻이고,
雖死不敗(수사불패)는 '죽을 순 있어도 질수는 없다’는 의미로 강인한 군인정신이 담겨 있다. 이 말들은 국군채육부대 상무의 표어로 더욱 유명하다.
그러고보니 오정산 아래엔 몇 해전 국군체육부대가 이전해와 있다.

상무에서 '오정산상무봉'이라 이름지어진 800봉은 바로 조망이 좋은 헬기장.

청천(靑天)하늘아래 백운(白雲)몇 점 떠가고, 그 아래론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이 꿈틀거리며 뻗어나간다.
가운데에 이태 전에 우리가 다녀온 백화산과 좌로 뇌정산이 가늠되고 희양산도 고개를 내민다.

더 우측으론 이화령을 넘어 조령산과 주흘산도 잡힌다.

더 당겨본 조령산과 주흘산의 모습.

헬기장에서 오정산 정상 가는데 20여분이 걸린다.

암릉이 시작된다.

이 칼날 암릉은 그리 길지 않지만 좌우 트인 조망을 선사하니 오늘의 오정산 산행의 하이라이트임에 틀림없다.

앞서간 일행들의 정상즐김을 줌으로 당겨 잡아 본다.

오정산에서 계속 이어지는 능선길을 굽어 보면서...

내가 왜 이 산정에 서서 산하를 굽어 보는가?

막 식사를 끝내는 일행들한테 정상주 딱 두 잔을 얻어 마시고 밥값을 해야지. 찰칵~~!

정상에 섰을 땐 언제 이 산정에 또다시 설 수 있으리요.

한마음의 준족 영관씨가 옆에 섰다.

정상의 이정표엔 부운령(3.75km)과 운달산(13.3km),그리고 대미산(22.6km)이 나와 있다.

정상의 문경대간 산행안내도

곧추선 암봉과 주변 풍광

800봉 헬기장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국군체육부대 등반훈련장 상무봉 표지판.

하산하면서 돌아본 오정산.

그리고 내려다보는 삼태극 전망.

모든 산행일정에 관심많은 주례 오사장님이 물굽이 휘도는 태극 전망대에 섰다.

나도 섰다.
물은 낮은 데로 흐르다가 막히면 다시 에두른다. 그게 태극문양이 만들어지는 자연의 순리이자 과학이다.
'ㅏ'자 갈림길에서 직진을 하여 토끼비리를 찾아간다.

관갑(串甲)이란 이렇게 쭈뼛하게 튀어나온 곶(串)을 말함인 모양인데...
* 호미곶에서 곶(串,곶 곶)자를 보았고,관갑에서 관(串,익힐 관)자를 익혔으며,양꼬지에서 꼬지(串)를 보는데...ㅠㅠ

눈길을 우측으로 돌리면 굽이도는 양강변에 우리가 하산할 진남휴게소가 보인다.

잘록한 안부에 닳고닳은 돌길.

예전의 영남대로는 통행제한으로 묶였다.이는 현대의 러 사정으로 옛길이 끊겨 있다는 뜻.

우리는 옛길을 넘어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조망처를 찾아간다.

석현성 진남문(鎭南門)에서 불정원(佛井院)에 이르는 구간 가운데 벼랑길 약 500m는 석회암 바위를 절단하여 암석안부(巖石鞍部)를 파낸 곳이다.
오랜 세월동안 이 길을 밟으며 지나간 선인들의 발자취가 빤질빤질한 바위로 남아있다.
한국의 옛 길 가운데 그 역사성과 지형적 특성이 가장 구체적으로 보존된 한국의 대표적인 옛 길이다.
이제 토끼비리는 토끼들만의 길도 아니고,또 고려 태조 왕건의 길만도 아니였다. 우리 민족의 고난한 길이였다.

우로 눈을 돌리면 고모산성과 진남휴게소와 좌측 강건너 어룡산,그리고 당겨 잡아보면...

봉생정이 보인다. (좌로 휘어지는 물굽이 우측 산자락에 살짝 보이는 기와지붕)

더 당겨 잡는다.
봉생정(鳳笙亭)은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의 유촉지에 그의 문인인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가 세웠으나 임진왜란때(1592)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다.
서애 유성룡선생이 징비록(懲毖錄)을 쓰면서 고모산성과 토끼비리에서 왜군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했음을 한탄스럽게 생각한 것도 봉생정의 아픈 기억이었다.
한양과 안동을 오가며 휴식처와 안빈낙도처로 봉생정을 방문했으니, 그 장소에 대한 애정이야 이루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진성이씨 이명호(李明浩, 1834~1893, 호는 석남 石南)의 부친인 노은 이도행(老隱 李道行) 선생의
<봉생정시(鳳笙亭詩)>
門墻恨不早承顔(문장한불조승안) 문장에서 일찍 뵈옵지 못함이 한이더니,
百世遺芳在此山(백세유방재차산) 백세에 끼친 꽃다움 이산에 있습니다.
正영舊從陶峀下(정영구종도수하) 바른 맥 예전에 도산 아래 쫓았으며,
仙區爭似玉淵間(선구쟁사옥연간) 신선 구역 다퉈 옥연 사이 같더라네.
金湯賴固蒼生望(금탕뢰고창생망) 국가 기틀이 굳음을 백성들은 바라니,
文酒偸閑野老歡(문주투한야노환) 글과 술로 한가함 탐하는 들늙은이 즐거워 하네.
鳳去朝陽今幾歲(봉거조양금기세) 봉이 조양을 버린지 이제 몇해이던고,
依依笙吹月中還(의의생취월중환) 의의히 젓대 불고 달 가운데 돌아온다.

토끼비리 언덕에서 덧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영강의 물줄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토끼비리 전망대에 설치된 지형지물 사진.

영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이 놓여진 강변 자락에 고모산성과 산허리를 감도는 허리길인 토끼비리(토천 兎遷)가 보인다.
고려 태조 왕건(877∼943) 왕건이 남군을 하여 곳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길이 끊겼다.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이때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타고 달려가는 게 보였다.
왕건은 즉시 토끼가 갔던 길을 따라 길을 텄고,그때부터 이 길이 ‘토천(兎遷)’ ‘관갑천(串岬遷)’ ‘관갑잔도(串岬棧道)’로 불리게 됐다.
잔도(棧道)란 강가의 벼랑 부분에 선반처럼 대롱대롱 달아서 만든 하늘길을 말한다.
영남대로상에는 문경 토끼비리, 밀양 작천, 양산 황산천 등 5곳에 잔도가 있다.
토끼비리의 ‘비리’는 ‘벼루(벼랑)’의 문경 토박이말이다. 강이나 바닷가의 낭떠러지를 말하며 한자로 ‘천(遷)’은 ‘벼랑’이다.

무거운 삶의 짐을 바리바리 지고,짚신을 끌며 지나간 고단한 삶의 흔적인가?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길로 나선 서생들의 꿈의 길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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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신 바닥에 닳고닳은 돌바닥의 잔영들이...

못내 여행객의 가슴을 후벼판다.

관갑의 사다리길
요새는 함곡관처럼 웅장하고
험한 길 촉도같이 기이하네
넘어지는 것은 빨리 가기 때문이요
기어가니 늦다고 구짖지는 말게나

면곡 어변갑(1380 ~1434)은 조선초기의 문인으로 이 길을 지나는 것이 매우 험난하고 힘이 들었음을 알려주는 시이다.
이 외에도 권근(1352~1904) 서거정(1420~1488)등의 시도 해져 온다.

안전시설이 있으므로서 토끼비리는 더이상 토천은 아니지만 데크 바깥으로는 아직도 닳고닳은 옛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토끼비리는 명승 제31호로서 문경 가은에서 내려오는 영강과 문경새재에서 내려오는 조령천의 합류점에서부터 만들어진 협곡 벼랑에 형성된 옛길이다.
이는 하천변의 절벽에 난 길을 의미하는 천도(遷道)로서 그 길이는 약 3㎞이다.

그림 한장

권응신의 그림에서 270년 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토끼비리를 따라 고모산성에 닿는다.

성벽을 따라...

진남문에 들어서면...

복원된 고모산성의 모습.

진남문(鎭南門)

안내도

안내도

성황당 옆에 있는 관주흘정(觀主屹亭)에서...

관주흘정(觀主屹亭)이란 이 정자에서 주흘산이 바라보인다는 뜻.

금줄이 쳐진 성황당의 모습

안으로 카메라를 들여 보았지만 촬영할 수 없었고...

꿀떡고개를 넘어...

주흘산을 볼 수 있다.
외양이 요란한 이 비석은 무슨무슨 공덕비.

복원된 주막거리의 설명을 일별하고...

신현리 고분군에 왔다.

고분군에서 바라보는 토끼비리.

고분배치도와...

안내도1

안내도2

진남휴게소로 내려서면서 건너는 이제는 사용 용도가 폐기된 폐철로와 폐터널. 문경의 영화는 이제 옛이야기.

철로 옆에선 이정표

진남휴게소에 내려서자 보이는 문경카트랜드 시설과 고모산성 입구의...

.안내판과...

돌아보니 진남휴게소 우측 끄트머리의 문경카트랜드 시설을 따라 둘러가는 길이 고모산성 들머리이다.

몇 잔 하산주를 마시고 화장실 가는 길에서 만난 이정표.
포석비와 봉생정이 지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