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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사람들, 내가 제일 싫어하는데"
영화 기생충에서 글로벌 IT업체 대표인 박 사장(이선균)이 가장 잘 쓰는 말이다. 아내(조여정)에게 새로 들어 온 운전사 기택(송강호)를 평하면서도 그 '선'을 거론한다. 하지만 운전사가 아무리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박 사장의 눈치를 봐도 냄새가 선을 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반지하방에 스며든 눅눅하고 축축하고 퀴퀴한 냄새를 감추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자신은 맡지 못하는 냄새에 당혹해하는 표정엔 배우 송강호의 연기력의 농축돼 있다. 계층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지난(至難)한 일인지를 은유한다.
기생충'은 가족 모두가 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광기에 휘말린것처럼 브레이크없이 질주하는 ‘웃기고 슬픈 이야기’를 그린다.
'기생충'을 의미하는 패러사이트( parasite)는 그리스어 parasitos에서 나온 말로 원래 '식객'을 뜻했다. 일본에선 ‘패러사이트족’이라는 조어가 있었다. 기껏 뼈 빠지게 벌어 대학을 졸업시켰지만 알바로 용돈이나 벌면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무능력한 20대를 지칭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선 온 가족이 패러사이트족이다. 의지하는 대상은 보통부자가 아니라 IT로 거부가 된 '슈퍼리치'다.
한국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 확대되고 있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우리사회가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 몰락이라는 사회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순자산 3천만 달러(약 334억원) 이상을 가진 한국의 '슈퍼리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부의 편중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중산층이 두터워야 건강한 사회지만 우리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박 사장 가족은 저명한 건축가가 살았던 작품처럼 아름다운 저택에 살고 있다. 넓은 정원 잔디는 늘 초록색 융단처럼 단정하게 가꾸어져있고 담 옆으로 나무가 빽빽해 밖에선 저택 정원을 볼 수 없으며 핵전쟁에도 안전한 지하 벙커가 있는 도시속의 '캐슬'은 그의 만만치않은 재력을 설명한다. ‘심플한’ 안주인은 아이 생일잔치에만 참석해도 과외비를 듬쁙 안겨줄 만큼 마음도 넉넉하다.
이런 슈퍼리치가 많은 것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중산층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부자와 가난한 자,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 산업간 양극화 등 사회 각 부문에서 중간층이 사라지고 극단적으로 양분화 되는 현상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있다. 감소하는 중산층은 대부분 살림이 팍팍한 서민층으로 전락해 빈부격차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양극화 구조가 된다.
소수의 부자와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로 사회가 양극화되어 가는 현상을 흔히 '20대80의 사회'라고 한다. 이는 부자 20%와 빈자 80%를 의미하는 말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대다수가 서민층 내지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한국의 현실이 그렇다. 중산층이 불어나는 가계부채와 침체된 주택경기에 갇혀 한계상황에 달하면서 점차 아랫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다.
기택네 가족은 계층사다리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 취객이 노상방뇨하는 것을 집안에서 지켜볼 수 있고 장마철이면 물난리를 겪는 초라하고 어수선한 반지하방은 그들의 신분을 상징하고 있다. 장남은 우등생이었지만 대학을 못가고 알바로 소일하고 있다. 딸(박소담)은 그림에 특출 난 재능을 갖고 있지만 변변한 직장이 없다. 비교적 화기애애한 가족이지만 사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기우가 위조한 명문대 졸업장을 기택에게 보여주면서 "아버지 전 이게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을 반영한다.
지난 2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국민 38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는 이 영화와 관련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국민 85.4%는 '소득격차가 너무 크고, 성공하려면 부유한 집안 출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평등성과 공정성에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당연히 기생충 가족과 슈퍼리치 가족의 동거는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역시 보사연 보고서는 양극화 현상으로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갈등수준이 '심하다'고 평가하는 의견은 80.0%에 달했다.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차별과 소외가 심한 사회'라고 했으며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회'라고 응답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럽게 표현하자면 '기생충'이 코믹으로 시작해 파국을 맞고 비극으로 끝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가진 자와 못가진자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심리적인 박탈감도 커진다.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인식이 마지노선을 넘어서면 사회에 아노미와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칸느영화제가 기생충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긴 것은 심사위원단이 이런 점을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우의 로망은 언젠가 성공해 슈퍼리치 박 사장의 캐슬에서 아빠와 해후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고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나라에서 계층이동이 자유로운 열린 사회를 기대하는 것은 박 사장 표현대로 하면 선을 넘는 비현실적인 꿈이기 때문이다.
출처/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영화리뷰.
첫댓글 그래도 마지막 장면 기우가 그 소망을 이루어 주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80%의 비율로 이 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서의 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