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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트 계곡 불상 훼손을 둘러싼 서로 다른 생각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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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라는 말은 ‘예언자’가 아니다. 린찌이씨의 글 <불상은 역사상의 부처님이 아니다>와 관련입니다. 물라 오마르(Mullah Omar)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복지를 살피는 데 그 정도로 바쁘다면, 아마도 아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부당한 처벌 - 곰 인형을 보고 학생들이 ‘무함마드’라고 부르게 허용했다고 해서 매질 40대 - 을 받은 수단의 영국인 교사를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승불교 신도인 나는 ‘불상은 그저 돌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또한 ‘무함마드는 붓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붓다가 곧 무함마드’라고 말을 해도 이 또한 진실입니다. 만약 물라 오마르가 [자비심 넘치는] 보살(a Bodhisattva)이라면, 그 작업이 바미얀 사람들에게 돈과 일자리를 가져다 줄 것이므로, 그 불상의 복원 작업을 허락했을 것입니다. 더욱 바람직하기는, 그가 [외국의] 불교계를 초빙해서 이 불상들 가까운 곳에 불교 사원과 학교를 짓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라 오마르는 이런 일이 어떤 좋은 결과를 가져올 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곳을 불교도들이 통치하던 시절보다도 오히려 더 잘 바미얀 계곡의 위대함에 가까이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번에는 ‘바른 견해[正見]’을 가진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 일체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悲心]을 가진 사람을 찾아볼 것입니다. 물라 오마르가 ‘진리라고 믿는 것’, 그것은 절대로 ‘진리[다르마]’가 아닙니다. (그렌데일 칼)
잘못된 딜레마에 대하여
린찌이는, 우리들에게 ‘불상과 인도적 원조’, ‘조각이 새겨진 돌과 살아있는 존재들’ 사이에서 선택을 하라고 요구하는 ‘잘못된 이분법(false dichotomy)’을 세우고 있습니다. 선택의 가능성은 브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물론 ‘둘 다’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은 잘못입니다. 우리가 린찌이의 주장을 믿어버리면, ‘저 두 가지만이 선택 가능한 것’이며 ‘하나를 뽑으면 다른 하나를 제외시킨다’는 불행한 가설에 한대 맞게 될 것입니다. 그는 ‘거대한 바미얀 불상들과 그 불상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가난>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똑 같은 사람들이 불상도 존경하고 동시에 기아(饑餓)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물라 모함메드 오마르는 잔인하고 전제적인 지도자이며, 그가 바미얀 대불들을 파괴한 동기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불상들이 이슬람[의 가르침]에 어긋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마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불상 중 하나인 바미얀 불상들을 말살해버리는 일은 이슬람에 큰 명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오마르의 명령을 받은 탈리반은, 주요 박물관 수장품을 포함해서, ‘다신교적’이라고 인정되던 독특한 문화 예술 작품 수 천 점도 파괴하였습니다. 급진적인 이슬람은 상(像) ․ 그림 ․ 사진이나 필름과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오마르는, 인도주의적 활동가들이 자기 관할 구역에 기록을 위해 들어가는 것도 허용한 적이 없습니다. 실은, 탈리반 치하에서는 매우 엄격한 샤리아(Sharia) 이슬람 법이 엄격히 적용되어서, 여자 의사와 간호사들은 다른 여자들을 치료할 수 있고 [남자 환자들은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여자들은 학교에 갈 수 없었고, 부르카를 쓰지 않고서는 집밖에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여성들의 직업 활동이 금지되어,] 남편이 죽고 홀로 된 여인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과 아이들을 지탱할 수 없었습니다. 도둑질은 손을 자르는 형벌을 받았고, 강간범과 살인범은 공개 처형되었습니다. 간음을 한 기혼자는 돌을 던져 죽였습니다. 여기서 누가 무정한 사람입니까? 외국 고고학자들 또는 역사가, 아니면 독재적인 물라입니까? 굶주림 때문에 죽어가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누가 돌보고 있습니까? 만약 그 아프간 사람들이 여성이라면 특히 더, 물라 모함메드 오마르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물라 오마르의 명령으로 그 웅장한 바미얀 불상들이 파괴되었을 때, 그것은 전 세계에 큰 손실이었습니다. 그 불상들은 평화 ․ 관용 ․ 박학(博學)과 자비가 돋보였던 시기에 조성되었습니다. 물라 오마르는 영광스러웠던 그 역사의 흔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즐겼던 게 확실합니다. 린찌이 씨, 그것이 어찌 좋은 결과란 말입니까? (비샤카 카와사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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