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은 말씀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말안에 머무르면 진리를 깨닫는 제자가 되고, 진리가 그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으로 진리의 자유를 누리고 또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씀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알고 진리를 사랑하며 자유를 누리는 제자가 됩니다.
위도 아래와 통하고, 좌우가 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위와 아래가 서로 막힘이 없고 서로 흐를 수 있다면, 또 좌우가 격의가 없고 함께 공종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윗 사람이나 아랫사람, 동료나 친구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선인과 죄인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가 아주 형편없는 사람이고 설령 죄인이라 하더라고 우리의 선함과 사랑에서 수용되고, 돌아오거나 회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말씀의 밑씨는 정의와 공정입니다. 말씀의 원천은 바르고 공평한 정의를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내 안에 머무르게 하는 것은 말씀의 특은을 얻기 위함 만이 아니라, 말씀의 뜻, 말씀의 정의와 공정을 배우고 그 가치를 살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알고 그 지식이 있다고 하면서 그에게서 공정과 정의가 없다면 그에게 진리의 말씀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공정과 정의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말씀은 공정과 정의가 있어야 말씀이 죽지 않고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밑씨는 공정과 정의입니다.
공정과 정의는 하느님의 창조와 생명 그리고 선입니다. 그 창조와 생명 그리고 선은 단지 한사람, 한 조직에서만 이루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 이루지는 것을 말합니다. 곧 공동체의 공동선입니다.
말씀의 밑씨인 공정과 정의는 높고 낮음없이, 좌우 편향이 없이, 상호 존중과 존경, 공평과 공영하는 공동선입니다.
만일 악인이 있다면, 악인은 격리되고, 멀리 보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악인도 가까이 머물고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이 되는 것. 격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공동선입니다. 그가 설령 악인이라 하더라고 악인으로서 죽기를 바라지 않고, 선인으로 귀결되는 것이 공동의 선입니다.
물론 말도 듣지 않고 힘을 남용하고 자기 이익과 영예만을 추고하고 자기 욕심과 탐욕만을 갖는 죄인이라 하더라도 그가 그대로 죽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그가 돌아와서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 곁에 있게 하는 것이 공동선의 최종 목적입니다.
공정과 정의가 말씀의 밀씨라면, 그런 죽을 자라도 그가 선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도로, 설령 그가 돌아올 수 없다고 여겨지더라고, 노력하고 수고하는 것이 공동선이 하느님 말씀의 밀씨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멀리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 안에 하느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인간의 힘과 조건. 인간의 세속적, 물질적 가치를 숭상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악인의 경로에 들어서기가 쉽습니다.
하느님을 모시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의 가치를 도외시 하는 사람은 죄의 늪에 빠지기 쉽상입니다.
이런 세속적 물질적 가치를 숭상하는, 영적인 우상을 즐겨하고 그 길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하느님 말씀의 밑씨인 공정과 정의와 무관하게 살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가 설령 하느님을 섬긴다 하여도,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이 이런 조건에서 사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느님 말씀의 밑씨는 공정과 정의입니다. 신자라고 하며서도 이런 공정과 정의를 도외시하고, 겉꾸밈만 종교적일 수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사람과 무관하고, 오히려 하느님의 길을 왜곡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서는 하느님의 말씀의 씨가 발아하지 않고, 꽃을 피울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살고자 한다면, 우선 공동체의 공정과 정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멸먕을 예고하면서 이렇게 천박한 사회.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당시 사회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들의 땅은 은과 금으로 가득하고
그들의 보화는 끝이 없습니다.
그들의 땅은 군마로 가득하고
그들의 병기는 끝이 없습니다.
그들의 땅은 우상으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자기들 손으로 만든 작품에,
자기들 손가락으로 만든 것에 경배합니다.
이렇듣 인간은 비천해지고 사람은 낮아졌습니다.
그들을 용서하지 마소서."
이사 2, 7-8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 말씀과는 무관하고, 세상의 가치와 힘과 물질, 인간의 것만 찾아가는 사회 인간 종교를 책망했습니다. 이런 사회는 인간은 천해지고 낮아질 수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더 이상 인간에게 의지하지 마라. 코에 숨이 붙어 있을 뿐 무슨 가치가 있느냐"
이사 2,22
우리가 소중히 여길 것은 하느님 말씀. 그 가치입니다. 그 말씀의 밑씨는 공정과 정의입니다. 인간만 우선하고, 그 인간에게만 중심 가치를 두면, 자기 힘과 영예, 힘과 건강에만 자기 선을 추구합니다. 자기 선의 집착과 함께 곧 자기 우상속에서 하느님을 잃어버립니다.
공동선과 그 가치에 마음을 두고 하느님 말씀을 통해서 공정과 정의를 실현할 때 자기를 넘어서 하느님을, 모두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밑씨는 공정과 정의입니다. 공정과 정의는 공동체에서 위 아래, 옆 좌우의 공평과 존엄과 공영입니다. 그런 길을 걷기 바랍니다. 말씀을 사는 사람은 공정과 정의를 실현합니다.
화요일 말씀의 날입니다. 그 말씀의 공정과 정의를 생각하고 삽니다.
"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1-32
말씀의 밑씨는 공정과 정의입니다. 약한이, 보잘 것 없는이, 작은 이, 권리를 상실한 이에게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는 가치입니다. 그 말씀의 밑씨를 생각합니다.
이재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