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는 온갖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있음으로 푸르름을 간직한 거목이 된다.
깊게 패인 나이테가 나무의 연륜을 말해주듯이 고난의 폭풍우 속에서도 믿음의 순수성과 인내함으로 복음을 지켜온 교회가 있어 찾아가 보았다.
서귀포시 동홍동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동홍교회(담임목사 박창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낙타무릎이 될 정도로 매일 기도로 헌신하는 성도들.
목자 잃은 양처럼 교회와 성도들이 큰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말씀으로 위로하며 고난받는 자와 함께 서기를 자처한 박창건 담임목사.
이렇게 성도와 목회자의 아름다운 만남이 있기에 31년간의 복음의 역사를 지키며 동녁에 떠오르는 해처럼 복음의 빛을 발하는 ‘동홍(東烘)교회’로 우뚝서게 되었다.
동홍교회는 450여평의 대지에 200여평의 깔끔한 주차장과 옛 성전을 보수해 현대식 내부구조로 아름답게 변화시킨 예배당. 교육관과 목양실 등 성도들의 헌신과 봉사가 곳곳에 배어난다.
또한 교회의 상징인 마크를 제작하고 매주일 교회의 얼굴이 되는 주보를 통해 성도들의 삶을 나누며 교회를 홍보하는 동홍교회는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새롭게 일어서고자 한다.
동홍교회의 기초가 된 것은 1970년 6월 서귀포시 동홍동에 위치한 임마누엘기도원 집회에 참석한 김재문씨(현 시무장로)와 김광옥집사(현 은퇴목사)등 몇몇의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 기도하면서 ‘서귀포예루살렘교회’가 시작되었다. 그해 9월 서귀포시 동홍동 458-7의 대지 100평을 교회에 헌납하고 성도들이 힘을 모아 손수 벽돌을 찍고 돌을 나르며 예배당을 건축했다.
임마누엘기도원 원장인 김숙자 전도사(현 미국 LA가나안성약교회)가 초대교역자로 시무하다가 집회인도와 바쁜 일정으로 인해 신학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김광옥전도사에게 사역을 위임시켰다. 기도하는 일과 전도하는 일에 전념한 교회는 점점 성도들이 늘어나면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귀포예루살렘교회를 29년간 시무했던 김광옥목사가 1998년 5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갑자기 은퇴해야만 했다.
목회자의 부재,제주지역 내 교단과의 갈등,교단 가입하는 문제 등등 내적 갈등으로 골이 깊어지자 수십명의 교인들은 인근 개척교회로 흩어져버렸다.
이러한 시련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1백여명의 성도들은 끝까지 남아 교회를 지켜나갔다. 교회의 바른 모습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 시간들. 매일 아침 저녁으로 교회에 모여 기도하고 복음의 순수성만큼은 지키기를 힘써온 성도들. 이곳에서 성도들은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만났다.
1999년 3월 박창건목사가 서울 정릉중앙교회를 13년간 목회하고 안식년 휴가차 제주에 머무르고 있을 때 서귀포예루살렘교회에서 주일 낮 설교를 부탁 받았다. 몇 번의 설교를 통해 성도들은 박목사를 이곳에서 사역해 줄 것을 간청했고 모든 전후사정을 눈으로 목도한 박목사도 1999년 9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 11월 첫 주 이곳에 부임했다.
올해 교회창립 31주년을 맞은 교회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빛과 소금 되자!’로 표어를 정하고 하나님 중심의 교회로서 터를 닦고자 전교인들을 대상으로 기초교리공부와 성경공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또한 올해 4월 부활절에는 서귀포예루살렘교회란 교회명칭을 ‘동홍교회’로 변경하고 교회가 감당해야하는 기독교교육과 선교,사회봉사 차원에서의 지역사회에 도움주는 교회로 발돋움하고자 한다. 특히 노인복지 차원에서 교회가 섬겨야 할 부분과 젊은이를 키우며 일꾼을 세우는 일에 앞장 설 방침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교회의 모습처럼 겸손히 기초를 다지고 터를 닦는 교회.
▲ 동홍교회 마크
예수전도단의 3명의 간사를 목회의 동역자로 초빙해 아동부와 중고등부,청년회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방송선교와 교도소선교,해외선교,미자립교회 후원 등 힘이 닿는데 까지 선교하는 일에도 열심을 품는다.
박창건목사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초대교회의 모델을 찾고 싶다”고 전하면서 “성령 안에서 교제하며 유무상통한 지체로서 선교의 역량을 감당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목사(47)는 강원도 홍천이 고향으로 뒤늦게 믿음의 가정이 되었지만 부모가 장로와 권사로 기도의 동역자가 되었다. 총신대(기독교교육),총신대신대원,총신대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국 퓰러신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가족으로 부인 정정희사모와 1남1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