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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원의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2015.11.29.)
보석의 치명적인 매력에 유혹당한 시대와 사람들의 이야기
지은이의 말 미드나잇 인 파리를 꿈꾸며
인류가 존재한 이래 귀와 손, 목을 장식해온 주얼리는 인생의 이야기와 역사를 기록한 풍부한 콘텐츠 그 자체다. 70년 넘게 우리를 세뇌시켜온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라는 문구는 차치하고라도 천연보석으로 만들어진 주얼리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이 책의 근간을 역사와 인물에 둔 것은 주얼리의 큰 그림을 보기 위해서다. 주얼리는 크고 작은 역사적인 사건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다.
진주를 휘감은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 앞에서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귀족 가문들이 문장을 통해 자신을 증명했지만 오늘날에는 브랜드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사실 제품이 아닌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이다.이 책을 통해 럭셔리 주얼리의 배경과 컬렉팅의 가치까지 되짚어보기로 했다. 주얼리라는 바로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과 가치관의 교차점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자연의 산물로 소재 가치, 감성 가치, 사회문화적 가치, 패션 가치를 증폭시키는 주얼리를 좀 더 이해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치를 높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보석: 빛깔과 광택이 아름다워 장신구로 사용되는 광물로 다이아몬드, 루비, 비취, 사파이어 등이 속한다.
원석: 채굴후 가공되지 않은 상태
주얼리: 보석과 금속으로 디자인한 후 기술자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장신구-귀고리, 목걸리, 반지, 팔찌 등 착용할 수 있는 완제품의 상태를 말한다.
Chapter 1 보석과 주얼리,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보석을 향한 인류의 열망과 역사
한동안 보석은 신앙의 상징이자 왕관의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는 절대 권력의 표상이었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 주얼리는 수많은 문명과 트렌드의 변화를 거치면서 뜨고 지는 양상이 반복되었다.
모든 생활양식이 종교에 맞춰지면서 과학과 문학이 일순간에 사라진 중세 시대의 주얼리는 종교의 상징과 엄격한 계급사회를 반영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프랑스 루이 14세는 다이아몬드와 다양한 유색보석으로 된 호사스러운 주얼리를 착용하면서 주얼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세기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다이아몬드 약혼반지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1880년 세실 존 로즈가 드비어스 콘솔리데이티드 마인스를 설립해 다이아몬드 거래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1930년대까지 미국에 고급 다이아몬드 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인간은 물질에 집착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고 소장의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21세기를 채워갈 주얼리의 화두는 인간의 역사와 철학이 응집된 보석을 통해 미래의 진정한 가치를 탐구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Chapter 2 보석함 속의 세계사
과거 누군가가 소유했던 주얼리를 통틀어 이스테이트 주얼리라고 부른다.
이는 또다시 아르데코나 아르누보 같은 시대 주얼리, 100년 이상 된 앤티크 주얼리, 1960년부터 현대에 속하는 모던 이스테이트 주얼리로 나뉜다.
조지언(1714~1830): 왕의 이름
빅토리아(1837~1901):왕의 이름
에드워디안(1901~1914):왕의 이름
아르누보(1895~1915)
아르데코(1914~1935)
레트로(1935~1950)
(고대)시그닛 반지: 젠틀맨의 상징
2013년 개봉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클로즈업될 때마다 손에 끼워진 블랙 오닉스 반지가 시선을 끌었다.그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데이지 꽃(사랑하던 여인의 이름이기도 한)이 새겨진 시그닛 반지를 새끼손가락에 끼고 나왔다. 단순한 액세서리로 보기에는 그 존재감이 예사롭지 않아 역사적으로 남자들에게 반지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시그닛 반지는 가장 오래된 형태의 지위를 상징하는 도구이자, 실용적인 목적으로 쓰인 최초의 반지다. 실링(seal ring)이라고도 부르는데 우리말로 바꾸면 도장이 새겨진 반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시그닛 반지는 권력의 상징일 뿐 아니라 상업적인 절차에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한 도구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권력과 권위를 물려주는 수단으로 시그닛 반지를 유산으로 남기는 것도 관습으로 정착되었다.
그리스에서는 금,은,동 같은 부드러운 금속으로 고정된 테를 만들어 그 안에 인장을 새겨넣은 베젤 형태의 시그닛 반지를 가장 선호했다.
로마 시대의 시그닛 반지는 착용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물건으로 편지를 밀봉하거나 중요한 서류에 서명 대신 사용했다.
영국의 에드워드 2세가 통치한 14세기에는 모든 공식 문서가 왕의 시그닛 반지로 봉인되어야 했다.
21세기 들어서 공식적인 용도의 시그닛 반지는 교황의 옥새라 불리는 어부의 반지가 유일하다. 교황의 선종과 함게 시그닛 반지를 파괴하는 예식은 죽음과 동시에 권위도 종료되었음을 의미한다. 반지를 실제 부수는 것은 아니고 십자 모양의 흠집을 낸다.
원래 교황의 반지는 금으로 만드는 게 원칙인데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의 반지는 은 위에 금도금이 되어있다. 게다가 새로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과거 교황 바오로 6세를 위해 디자인되었으나 채택되지 않은 틀을 사용해, 검소함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르네상스) 진주 목걸이: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처녀성
엘리자베스 1세는 절대왕정 시기에 영국의 발전을 이끈 튜더왕조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군주다.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고 외치며 평생 독신으로 산 여왕에게 진주는 완벽한 처녀성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처녀로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화의 이미지와 동경심을 자극하는 권력 수단으로써의 진주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진주 마니아인 여왕도 본인의 처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상당수의 모조진주를 사용했음을 알수 있다.
당시 모조진주로 유명한 곳은 유리 공예로 유명한 베네치아 공화국이었다. 파우더 글라스라 불리는 분체 유리에 달팽이 점액, 달걀 흰자위를 섞은 후 압력을 가해 동그랗게 모조진주를 만들었다. 생선비닐 추출물 위에 설화석고를 코팅하거나 조개껍데기와 생선 비늘을 이용하기도 했다.
(조지언)샹들리에 귀고리: 화려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갖춘 주얼리
지랑돌 귀고리는 로마 시대에 처음 나타났는데 17세기 프랑스를 거쳐 18세기 중반 로코코 스타일이 정점을 찍을 때 프랑스와 영국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조지언 시대는 영국의 조지 1세부터 4세까지의 재위 기간인 1714년에서 1837년까지를 말한다. 100년이 넘는 긴 시간이다. 과학의 혁신과 기술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주얼리 디자인과 제작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얼리를 이루는 보석으로는 다이아몬드, 백수정 같은 무색보석이나 핑크 토파즈나 자수정 같은 로맨틱한 색상의 유색보석이 큰 사랑을 받았다.
지랑돌 귀고리는 좀더 수수하고 얌전한 드롭형 귀고리로 대체되었다.
신고전주의와 함께 복식 스타일 자체가 바뀌면서 오갈 곳이 없어진 지랑돌 귀고리는 19세기 초반 결국 자취를 감추었다.
(빅토리아)사랑의 로켓: 당신의 머리카락이라도 간직하고 싶소
사진이나 유품을 담는 여닫는 형태로 된 작은 장식 케이스를 뜻하는 로켓은 보통 펜던트로 쓰여 심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깊은 비밀을 간직한다.그래서 자그마한 문을 여는 순간, 신비로운 이야기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정확한 기원을 알 수는 없으나 로켓은 고대에서 악의 기운을 물리치기 위한 약초, 적에게 쓸 독약, 또는 아기의 치아를 담는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중세-약, 17세기 중반-향수, 19세기-머리카락을 넣은 로켓이 유행
빅토리아 여왕이 제위한 64년 동안 영국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부흥하면서 대영제국의 절정기를 이룩했다.
담쟁이덩굴 잎이나 물망초 팬지 장미가 품은 꽃말은 애정을 표현하는 낭만적인 주얼리의 암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초기 빅토리아 시대의 로켓은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연인들은 금이나 은, 에나멜 또는 보석이 박힌 사랑스러운 하트 모양의 로켓에 유색보석과 진주, 모노그램을 담아서 교환했다. 로켓 내부에는 서로의 눈을 쳐다본다는 의미로 남자와 여자의 초상화를 마주보게 담았다.
내부에 작은 쿠션이 달린 향수 로켓은 필리그리세공법(금을 가는 실 모양이나 알갱이로 만든 후 정교하게 땜질하여 장식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적용해 뚫린 케이스의 틈새를 통해 향이 배어나오는 방식이었다.
연인의 눈을 그린 아이 미니어처는 조지언 시대에 이어 빅토리아 시대에서도 연인의 눈으로 불리며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 연인의 눈은 영국의 왕 조지 4세가 연인이던 과부 마리아 피츠허버트에게 은밀하게 메시지를 보낸 데서 유래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1861년 남편 알버트 공이 사망하자 애도 주얼리를 착용했다. 이 분위기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영국의 탐미주의 운동과 함게 에스테틱 시대(1885~1901)가 시작되면서 과거의 밝은 분위기를 되찾은 것이다.
(청나라)비취 목걸이: 서태후의 비취 사랑
중국인들의 옥에 대한 애정은 황금유가 옥무가(황금은 값을 매길 수 있지만 옥은 그 값을 매길 수 없다)라고 표현하는 수준이다.
비취 구슬 108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 제국녹비취조주가 홍콩의 한 경매회사에 등장했다. 이는 궁중예복을 입을 때 착용하는 왕실의 목걸이로 밝혀졌는데, 바로 역대 가장 유명한 비취 애호가로 알려진 청나라 서태후(1835~1908)의 소유품이다.
서태후는 피부를 매끄럽게 만들어준다고 알려진 귀한 진주가루를 십여 년간 복용했고, 비취 구슬과 진주를 매단 옷이 3천 상자가 넘었으며, 그 옷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었다고 전해진다.
비취와 천연 백진주를 가장 좋아한 서태후는 식탁이나 식기도 비취로 만든 것, 비취 머리핀, 비취 귀고리, 비취 목걸이 등 비취가 빠지지 않았다. 손톱 끝에는 75밀리 미터 길이의 비취장식을 달았고 화장 전에는 비취 막대기로 얼굴을 마사지했다.
비취팔찌를 평생 손목에 착용하다가 죽을 때 무덤까지 가져갔다. 서태후만의 비밀 방에는 온갖 종류의 보물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대부분이 뇌물로 들어온 것이다.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그런데 생전 사치의 극을 달리던 서태후는 그 사치로 인해 사후에 입에 담기도 힘든 수난을 당했다. 서태후의 보석 대부분은 무덤에 같이 매장되었는데, 1928년 전투자금을 마련하려던 군벌 손전영이 전부 도굴한 것이다.
(아르누보)에나멜 브로치:위대한 예술작품을 탄생시킨 시대
에나멜은 우리가 흔히 귀보석이라 부르는 다이아몬드나 루비, 사파이어 같은 비싼 보석이 세팅되지 않더라도 미묘한 색감만으로 아름다운 효과를 낸다. 19세기말 프랑스에서는 빛과 색의 영롱한 효과를 내는 플리카주르 에나멜이 큰 사랑을 받았다.
햇빛을 통과시키다는 뜻의 플리카주르는 철사로 무늬를 잡은 다음 그 틈 사이로 에나멜을 녹여넣는 기법이다. 뒷면을 받치는 판이 없기 때문에 빛이 고스란히 에나멜 사이로 들어와 반짝이는 효과를 낸다.
아르누보는 단어 그래도 풀이하자면 새로운 예술이란 뜻이다. 또한 상징적으로 설명하자면 19세기와 20세기의 다리 역할을 한 혁신적이고도 복잡한 디자인 스타일이다.용어 자체는 1894년 벨기에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앙리 반 데 벨데에서 기인한다. 아르누보가 탄생한 19세기의 끝자락은 새로운 세기로의 진입을 앞둔 격변기였다. 사람들은 20세기에 대한 흥분과 설렘으로 들떠 있었다.
아르누보 정신을 대변한 플리카주르 에나멜링:플리카주르의 자연스러운 반쿠명을 표현하는 특징은 꽃잎, 곤충의 연약한 날개와 덩굴 등을 은은하고 영롱하게 나타낼 수 있게 했다. 아르누보의 핵심 요소인 흐르는 듯 우아한 곡선과 여성스러움은 에나멜 기법과 완벽한 궁합을 자랑했다. 프랑스의 주얼러 르네 랄맄, 조지 푸케, 앙리 베베르가 이 플리카주르 기법의 선구자들이다.
자포니즘 역시 아르느보 주얼러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중심에는 1862년 런던 만국박람회와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소개된 일본의 우키요에라는 목판화가 있었다. 자포니즘에서 나타난 자연과 디자인 사이의 유대감, 화려하고 밝은 색채, 좌우 비대칭, 평면적 특징, 또 금속을 혼합하는 개념은 새로운 장식 스타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아르누보시대의 주얼리는 문화적 사회적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작품으로, 디자인에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차가운 기계문명에 대항하는 자연을 향한 상상력은 관능미과 조화미로 승화되었다. 응용 예술의 지위를 순수 예술에 필적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아르누보 시대의 주얼러들은 물론 작업에는 영혼이 담겨야 한다고 외치던 랄리크를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이유다.
(에드워디안)플래티넘 다이아몬드 목걸이: 격조 높은 백색의 시대
화이트 골드는 말 그대로 하얀색을 띠는 금이다. 노란 순금에 다른 백색 금속을 합금해 하얗게 만든 것이기 때문에 우리말로 바꾸면 백색금이 된다. 반면 플래티넘은 금과는 근본적으로 종류 자체가 다른 금속이다. 정식 명칭은 백금이다.
플래티넘 없이는 에드워디안도 없다: 레이스가 플래티넘과 다이아몬드로 해석된 시기
디자인은 섬세해졌고 레이스 효과를 주는 정교한 세공과,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진주라는백색 트리오가 궁합을 이루어 발전했다. 비록 짧게 스쳐 지나갔지만 우아하고 아름다운 백색의 ,백색에 의한, 백색을 위한, 주얼리는 이 시대가 단연 독보적이다.
(아르데코~레트로)칵테일 반지: 독립적인 여성의 상징
칵테일 반지라는 달콤쌉싸름한 이름은 여성들이 호사스러운 칵테일 파티에서 잔을 드는 오른손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착용한 데서 유래했다.
미국에서 1920년에서 1933년까지 13년간 지속된 금주령은 사실상 식민지 시대부터 미국에서 자리잡은 금주운동이라고 하는 문화적 전통이 직접적인 배경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들은 커져가는 자아의식과 함께 독립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마침 사회에서 여성의 평등을 장려하면서 독립과 개성을 드러내는 포인트로 칵테일 반지를 이용했다. 반짝이는 오른손으로 불법 칵테일을 입술에 가져감과 동시에 여성의 권리도 높아지기 시작한 셈이니 금지의 상징이자 자신에게 선물하는 능동성과 주체성이 담긴 성명서였다. 당연히 반지는 착용자의 실제 성격과 개성을 반영해 디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레트로 시대의 칵테일 반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사람들은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 환상과 낭만으로 가득 찬 헐리우드 영화에서 도피처를 찾으려 했다. 이렇게 헐리우드에서 큰 영향을 받은 때를 주얼리 사조에서는 레트로 시대라고 부른다. 엄밀히 말하면 주얼리에서 레트로는 초기 모더니즘이 시작된 1935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를 뜻하는데, 레트로 모던과도 같은 말이다.레트로 주얼리는 다른 말로 칵테일 주얼리라고도 한다. 디자인에 있어서는 보통 거대한 직사각형 모양의 유색보석과 고광택의 핑크, 옐로, 그린 골드를 두툼하게 입체적으로 활용한 스타일로 설명할 수 있다.
결국 칵테일 반지는 1920년대 탄생했지만 1940년대 이후 레트로 시대에 우아한 사교 모임을 빛내는 장신구로 자리 잡았다. 저항의 상징에서 여성들이 갈망하는 중요한 패션 악세서리로 전환한 것이다.
칵테일 반지는 밀레니엄과 함께 나이나 지위, 상황을 불문하고 개성을 뽐내는 스테이트먼트 주얼리로 거듭났다.
이렇듯 은밀하고 짜릿한 금주 시대의 비밀 아지트를 장악한 칵테일반지는 우아한 사교 파티의 필수품을 거쳐 오늘날 여성의 스타일과 스테이트먼트를 표현하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1950년대)제2차 세계대전과 참:내가 만들어가는 나만의 작은 역사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한 참은 고대 이집트, 로마 등 많은 국가에서 악령을 쫓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용도로 쓰였다. 팔찌에 최초로 참을 달아서 착용한 사람들은 고대 이집트인으로 알려져 있다. 죽은 후에 참이 신이 사자를 올바로 인도하는 표식이 되기를 바랐다. 특히 풍뎅이 참을 부활의 상징으로 여겼다. 참은 이렇듯 애초에는 악운을 쫓고 삶을 윤택하게 만들며 사후 세계까지 지배하는 주술적인 목적으로 시작했다.
개인적인 의미가 담기기 시작한 것으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부터다. 빅토리아 여왕은 통치 기간 내내 팔찌나 목걸이에 참을 달아서 감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했다. 알버트 공이 사망한 후에는 애도의 참까지 유행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기념하는 의미로 참을 애용하기 시작했다.
21세기의 참: 2000년대 들어 유러피언 비즈 스타일 참-부활절 참, 할로윈 참, 크리스마스 참 같은 특정일 참을 구매하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끈 것이다.
Chapter 3 영화 속 보석이야기
(도둑들):옐로 다이아몬드 도난 사건
영화 도둑들은 10인의 도둑과 1개의 값비싼 다이아몬드가 등장하는 전형적인 케이퍼 필름(강도, 강탈 범죄를 다룬 영화)이다. 한국의 5인조 도둑인 뽀빠이, 씹던 껌, 애니콜, 잠파노, 펩시는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2천만 달러의 옐로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과거 동지였던 마카오 박과 중국의 4인조 도둑과도 손을 잡는다.
태양의 눈물: 110.3캐럿짜리 옐로 다이아몬드 2011년11월 소더비 제네바 경매에 처음 나와 1억2천400만달러(약 140억원)에 낙찰, 크기는 여성의 엄지손가락만하다.\
피렌체 다이아몬드: 소장했던 왕실마다 모두 비참한 결말을 안겨준다. 137.27캐럿의 거대한 크기에 연노랑 바탕에 녹색 오버톤을 띠고 있다. 1657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명가 메디치 가문의 소유였다가 1743년 오스트리아의 황후 테레지아의 손에 들어간 것만은 확실하다. 테레지아 황후의 딸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 다이아몬드를 프랑스에 혼수품으로 가져간 것이 비운의 시작이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뒤 다이아몬드는 나폴레옹의 부인 마리 루이즈의 손에 넘어갔고,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패망한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는다. 그 후 다이아몬드는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스의 소유가 되었지만, 황후는 피살되었고, 오스트리아 시씨 활후의 목걸이에 장식되었으나 황후 역시 살해당하고 만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멸망한 이후로 지금까지 이 다이아몬드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1923년 샤 오브 페르시아 라는 옐로 다이아몬드가 미국 시장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 보석이 피렌체 다이아몬드라고 믿었다. 그러나 정밀 조사결과 전혀 다른 다이아몬드임일 밝혀졌다. 그리고 1981년 수상한 옐로 다이아몬드 하나가 스위스 제네바에 등장했다.
(색,계): 핑크 다이아몬드에 담긴 남자의 진심
2007년 개봉 당시 파격적인 정사장면으로 논란이 되었던 영화로 인간의 본능적 욕구이자 맹령한 감정에 지배되는 색, 그것에 대한 경계이자 이성적 통제로 다스려지는 계, 색이 게를 허문 댓가는 결국 파멸이었으니 가혹한 시대를 산 그들의 운명이 만들어낸 비극은 칼날보다 잔인했다. 영화 속에서 적나라한 애정신보다 더욱 긴장이 고조된 장면은 이 대장(양조위)이 왕치아즈(탕웨이)에게 핑크색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는 순간이었다.
영화의 핵심인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 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경계심이 강한 남자와 끝없이 예민한 여자의 교감이 절정에 다다르고, 삼엄했던 남자의 경비 장치가 스스로 풀려버리는 순간이다. 결국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사랑을 선택하고 이 대장을 구출시킨 왕치아즈는 자결하기 위해 준비한 독약을 들고 고민한다. 이 장면에서 반지와 독약이 화면에 같이 잡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고뇌와 번민의 순간 감독은 금기가 어떻게 깨어지는지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6.1캐럿의 핑크 다이아몬드: 이안 감독이 까르띠에에 특별히 주문한 것이다. 핑크 다이아몬드는 100만 캐럿 중 1캐럿 정도가 산출되는 아주 귀한 존재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들 위에 덧입힌 감독의 상상력이 관객들을 그토록 몰입하게 만든 것이다.
왕치아즈는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로 받을 정도로 거짓 사랑을 완벽하게 연기했지만, 반지를 받은 후 이 대장을 위험에서 구출했으니 결국 진실된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영롱한 진줏빛에 숨겨진 이야기
진주는 오랫동안 소수층의 전유물로 권위와 순수, 여성스러움을 상징했다. 그런데 그런 귀한 진주가 1600년대 네널란드 여염집 하녀의 귀에 걸려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아주 커다란 크기의 물방울 모양의 진주가 말이다. 이 수상한 진주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그림 속에 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상상력을 발휘해 이 귀고리의 미스터리를 1999년 동명의 소설로 탄생시켰다.이 소설은 2003년 콜린 퍼스와 스칼렛 오한슨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로 재현되어 멜로 미술 영화이자 색과 빛의 영화로 널리 알려졌다.
(위대한 개츠비):보석과 샴페인으로 찬란했던 재즈시대
이 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뉴욕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사이에 있는 1929년 주식시장 폭락과 함께 사라져버린 대공황 직전의 풍경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동안 사랑했던 여자 데이지는 대대손손 뼛속까지 부자인 톰과 결혼해버린다. 전쟁에서 돌아온 개츠비는 충격 속에서도 오로지 데이지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돈을 모아 거부가 되자 데이지가 사는 뉴욕의 롱아일랜드로 와서 밤마다 파티를 열며 데이지와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이수일과 심순애):식민지 조선에도 다이아몬드가 있었을까
이 영화의 원작은 1913년 조중환이 번언한 소설 장한몽이다. 이 소설의 원작은 1897년1월부터 1899년1월까지 일본의 매일신보에 연재된 오자키 고요의 곤지키야사라는 소설이다. 그런데 곤지키야사 또한 19세기말 영국의 런던을 배경으로 한 버사 클레이의 영문 소설 여자보다 약한 것을 거의 그대로 각색한 것이다. 전체적인 구성과 다이아몬드를 준다는 설정이 같다. 주인공 이수일과 심순애는 경성제국대학 이학부 학생으로 둘은 연인사이다. 순애는 김중배와의 결혼을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 사랑을 버리고 돈을 택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고 순애에게 경멸을 퍼붓고 떠난 수일은 고리대금업자가 되어 돈의 힘으로 복수하려 한다. 그러나 순애는 이미 남편 김중배의 심한 의처증으로 온갖 모욕과 멸시를 참고 살다 쫓겨난 상태다.
(왕과 나):우주를 닮은 오팔에 아로새겨진 사랑
1930년대 말 시암(현재의 태국)의 왕자와 결혼한 한 영국 여성이 소유했던 주얼리가 2013년7월 소더비 런던 경매에 나왔다. 시암과 영국의 러브 스토리라 하니 30대 이상이라면 한때 율 브리너라는 배우의 카리스마에 열광하게 만든 영화 왕과 나가 떠오른 것이다.
시암의 왕과 영국의 가정교사 애나의 이야기를 다룬 왕과 나는 동명 소설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올린 뒤 1956년에 영화화한 것이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앞서 말한 소더비 경매의 주인공인 영국 여성과 태국 왕자의 러브 스토리다.
주얼리 컬렉션의 주인공 세릴 헤이콕은 17살이 되던 해에 런던의 아트 스쿨에서 시암의 왕자 비라와 만났다. 이것이 평범한 여성에게 비라봉스의 공주가 되는 신데랄라 같은 이야기의 시작이다.
비라와 세릴 부부는 제2차 세계대전 속에서도 영국, 스위스, 남부 프랑스를 옮겨 가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냇다. 그러나 결혼 후 12년 만인 1949년에 그들은 파경을 맞았다. 이 후 비라 왕자는 결혼을 네 번이나 거듭하지만, 세릴은 끝까지 홀로 남아 비라 왕자를 기다렸다.결국 서로의 끈을 놓지 않던 이들은 1983년에 재결합해 2년의 짧은 결혼 생활을 함께 한다. 비라 왕자의 마지막은 초라하고도 비참했으니, 심장마비로 런던에서 객사하여 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쪽지를 통해서야 그가 태국의 왕자였음이 밝혀졌다. 그후 세릴은 1992년 비라 왕자의 첫 부인이자 마지막 부인으로서 이야기를 담은 책 왕자와 나:시암의 비라 왕자와 함께 한 나의 인생을 출간했다.
오팔은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예민한 존재다. 수분을 약 5~10퍼센트 정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건조해지면 아름다운 색을 잃거나 뿌옇게 변하고, 결국 갈라지고 부서지게 된다.
(블러드 다이아몬드):아프리카인들의 목숨과 바꾼 피의 다이아몬드
전쟁 중에 불법으로 채굴해 밀수하는 다이아몬드를 컨플릭트 다이아몬드 즉 분쟁 다이아몬드라고 한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개봉되기 전만 해도 사랑하는 연인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다이아몬드에 피와 눈물과 땀방울이 서려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화는 1990년대 발생한 시에라리온의 혼탁한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짐바브웨 용병 출신으로 위험을 무릎쓰고 다이아몬드를 되찾으려 하는 밀수업자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목숨을 걸면서까지 이들을 찾으려고 하는 어부 솔로몬 반디(디몬 하운수)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영화에서 반디는 강제 노역을 하던 중 진귀한 100캐럿짜리 핑크 다이아몬드를 바련하고 몰래 숨겨 놓는다. 그 다이아몬드는 소년병으로 납치,동원된 아들을 구해내기 위한 생명 같은 무기이자 유일한 희망이다. 반디의 아들 역시 소년병이 된 후 아버지를 향해 총구를 겨누며 끔찍한 비극을 극대화시킨다. 다행히 영화는 아들이 아버지의 설득에 되돌아오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투정부리던 소년이 난 타고난 킬러다라고 말하게 되는 상황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주는 의미: 영화는 아프리카의 아프고 참혹한 상황을 알리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이 모든 비극을 단순히 아프리카의 욕심 많은 소수 권력층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도록 했다.
테일러 전 대통령의 유죄 판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국제 재판에서 국가 정상에게 유죄를 선고한 기념적인 일이다.
Chapter 4 보석, 사랑을 훔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숙녀에게는 큰 다이아몬드가 필요해요
할리우드의 아이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주얼리는 17세기 앤티크 피스부터 21세기 현대 디자이너의 작품까지 폭넓은 컬렉션을 자랑한다.
테일러 연애사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인 1962년, 테일러는 로마에서 리처드 버턴과 함께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찍고 있었다.
버턴은 어떤 구실을 만들어서든 테일러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는 것을 즐겼다. 두 사람의 인연에 쐐기를 박는 듯 테일러-버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반지치고는 지나치게 무겁다는 테일러의 뜻에 따라 목걸이로 다시 세팅되었다. 보험 규정상 공공장소에서 착용할 때는 무장 경비원 두 명이 늘 함께 해야 했으니 그 가치가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버턴은 이 외에도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그토록 갈망하던 한때 나폴레옹이 소유했던 자연산 진주 라 페레그리나를 비롯하여 하트 모양의 고대 인도 다이아몬드인 타지마할 같은 희귀한 보석들도 테일러의 품에 안겨주었다.
8번의 결혼과 7번의 이혼을 거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그 숫자에 비례하는 보석이라니, 이보다 더 아찔하고도 화려한 인생이 있을까? 테일러는 저서를 통해 훌륭한 주얼리 컬렉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가 소유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그림도, 어떤 예술도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다. 모두 잠시 맡아 보호할 뿐이라고 언급하며 많은 이들이 궁금해 했던 보석에 대한 철학을 드러냈다. 보석을 통해 진한 미안함을 표현하는 방식도 참으로 테일러다운 행보다.
윈저공 부부: 위대한 사랑, 위대한 주얼리 컬렉션
윌리스 심프슨은 후에 영국의 윈저공작 부인이 되는 인물로 온갖 스캔들의 보고이자 보석의 여왕으로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쌍벽을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심프슨이 웨일즈의 왕세자 에드워드 8세를 만났을 때는 이미 어니스트 심프슨이라는 남자의 아내인 상태였다. 게다가 미국인이고 귀족 신분도 아닌데다 한 번의 이혼 경력가지 있었다. 그러니 보수적인 영국 왕실이 공식적으로 영국 왕비가 되는 것을 허락할 리 만무했다. 결국 에드워드 8세는 1936년 심프슨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왕위를 버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유명한 라디오 연설과 함게 동생 요크 공에게 양위를 발표한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뒷받침 없이는 막중한 책무를 수행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들은 1937년 프랑스 캉데 성에서 왕실의 관계자가 단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은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로 에드워드 8세가 아니라 윈저공으로 그리고 심프슨은 윈저공 부인으로 불렸다.
심프슨 부인은 일하는 사람을 18명씩 두고 최고급 디자이너의 의상을 맞춰 입었다. 그리고 주얼리는 부부에게 인생을 기념하는 방법이자 동반자가 되었다. 윈저공은 결혼 전이나 후에도 지속적으로 까르띠에와 반클리프 아펠 같은 유명하우스에서 부인을 위한 주얼리를 주문했다.
윈저공은 남자임에도 주얼리와 패션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언제나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따라서 평생 부인과 함게 주얼리 디자인에 대해 논하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인지 심프슨 부인의 주얼리는 독특한 디자인과 거대한 크기를 모두 만족시키는 독보적인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윈저공은 국왕으로서 11개월의 짧은 제위 기간 중에도 심프슨 부인에게 의미있는 보석을 선물했다. 심프슨 부인의 주얼리에는 메시지가 새겨진 것이 많다.
심프슨 부인이 가장 애착을 가진 팔찌는 까르띠에의 십자가 참 팔찌다. 사파이어, 루비, 다이아몬드, 아쿠아마린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9개의 십자가 참은 이 부부의 1924년부터 1944년까지의 특별한 날들을 기념한 것이다.
반클리프 아펠의 대표작 지퍼 네크리스: 1938년 지퍼의 기술적인 요소를 활용한 목걸이 제안-지퍼를 닫았을 때와 열었을 때 모양이 확연히 다른 데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것이다.
지퍼를 닫았을 때는 팔찌로, 열었을 때는 목걸이로 사용할 수 있다.
사랑앞에서 자신의 왕위까지 포기한 윈저공과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심프슨 부인, 심프슨 부인은 보는 시각에 따라 두려움이 없는 모험가이자 스타일의 아이콘이자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리고 그들의 외로웠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보석과 함께 역경을 이겨낸 부부의 열정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그레이스 켈리 :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
모나코를 방문한 그레이스 켈리에게 첫눈에 반한 레니에 3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레니에 3세는 까르띠에의 10.47케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로 켈리에게 청혼했고 화답하듯 켈리는 영화 상류상회에 이 반지를 끼고 출연했다.
헐리우드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는 그렇게 모나코 왕국의 왕비가 되었다. 1956년 결혼과 함께 은막을 떠나 한 남자의 여인으로 살았고, 그 후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우아한 여성으로 꼽힌다.
켈리의 보석 컬렉션은 사실상 까르띠에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 레니에 3세와의 사랑이 시작되던 1955년부터 사고로 유명을 달리 한 1982년까지의 풍성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까르띠에와 모나코 왕실은 이미 1920년 알버트 1세 시절부터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 것은 그레이스 켈리였다.
1918년 모나코와 프랑스가 맺은 조약에서 모나코는 후사가 끊길 경우 프랑스로 귀속된다는 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레니에 3세는 당시 독신으로 후사가 없어 프랑스에 귀속당할 위기에 놓인데가 경제난까지 겹친 상태였다. 이에 할 수 없이 선택한 카드가 바로 할리우드 배우와의 결혼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모나코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는 철저하게 만들어진 정략결혼이 결정적 역할을 했고, 켈리의 죽음도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 왕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켈리가 술과 남자에 빠지자 왕실에서 내쳤다는 내용이었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세기의 패션 아이콘, 재클린의 주얼리
31세의 나이에 미국의 35번째 영부인으로, 동시에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으로 등극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화려한 주얼리보다 여성스럽고 정갈한 주얼리를 애용했던 재클린
케네디의 충격적인 사망 후 5년 만에 재클린은 23살 연상인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을 발표했다. 이에 미국인들은 경악했다. 그들이 사랑하던 전 영부인의 재혼소식은 상실감 그 자체였던 것이다. 1968년 40.24캐럿의 레소토 쓰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넨 오나시스와 부부가 되었다.
이 다이아몬드가 유명한 것은 601캐럿짜리 레소토라는 역사적인 원석에서 나온 18개의 다이아몬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레소토는 1967년에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거대한 원석이다. 전직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비밀경호도 중지되었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허망하게도 재클린의 두 번째 결혼도 오래가지 못했다. 오나시스가 사망한 후 채클린은 46세에 다시 미망인으로 돌아와 뉴욕에서 여생을 출판사업가로 보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사랑한 블루 사파이어와 진주
1981년7월29일 텔레비전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된 다이애나 스펜서와 웨일즈공 찰스의 결혼식 왕실과 결별한 후 이집트 출신의 도디 알 파예드와 새로운 로맨스에 빠진 다이내나는 1997년 파리에서 차 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다이애나는 진주와 블루 사파이어를 가장 즐겨 착용했다.
1994년 찰스 황태자가 불률녀 카밀라와의 외도를 인정한 직후 베니티 페어 파티에 나타난 다이애나는 평소와 180도 다른 과감한 디자인의 오프 숄더 블랙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 당당하고 섹시한 모습은 다음날 언론의 1면을 장식했고, 그런 다이애나에게 대중은 동정의 시선이 아닌 응원의 박수르 보냈다. 다이애나는 주얼리를 통해 패션뿐 아니라 가치와 신념, 이상을 표현할 줄 아는 현명한 여성이었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 연인과 함께 만들어낸 샤넬의 파인 주얼리
주얼리는 여성에게 부의 상징이 아닌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한다고 외치던 샤넬은 당대 유명인사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산 자유연애주의자다. 연인이자 후원자였던 부호들은 수녀원에서 고아로 자란 샤넬에게 호화로운 상류층의 삶을 안내했고, 그들이 선사한 고급스러운 안목은 결국 샤넬의 디자인에 영감을 주었다.
열정적이고도 생산적이던 샤넬과 이리브의 관계는 1935년, 테니스를 치던 이리브가 샤넬의 눈앞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슬픈 결말을 맞이했다.
1932년에 탄생한 비주 드 디아망 컬렉션은 가브리엘 샤넬이 살아 생전에 한 유일한, 고가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주얼리 컬렉션이다.
마리아 칼라스: 노래에 살고, 보석에 살고
마리아 칼라스는 사후에도 칼라스에 관한 책이 무려 300여 권이나 출간될 정도로 끊임없이 매스컴의 조명을 받은 전설의 디바다.
칼라스는 30대에 들어 40킬로그램이나 체중을 감량하는 데 성공하면서 완벽한 외모로 무대를 장악하는데, 여기에 보석이 방점을 찍었다.
1955년은 칼라스가 인생의 멘토, 영화감독 루치노 비스콘티를 만난 중대한 전환점이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현대적으로 재탄생시킨 비스콘티의 연출과 칼라스의 섬세한 곡 해석은 극적인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1957년9월, 칼라스는 엘사 맥스웰이 주최한 베니스 볼에서 인생에 파멸을 가져다 줄 운명의 인물을 만났다. 이 파티는 베니스 영화제의 축하 이벤트 중 하나였지만 초대 손님 명단을 보면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였다.
문제의 1959년 칼라스는 잇단 사건으로 매니저인 남편과도 사이가 안 좋았다. 이때 오나시스가 칼라스 부부를 크루즈 여행에 초대했다. 크루즈에서 오나시스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칼라스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남편은 쉽게 응하지 않았다. 사랑에 눈이 먼 칼라스는 결국 오나시스와 동거를 감행했다.
오나시스가 1968년 미망인이 된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하면서 일방적으로 칼라스를 배신해 두 사람의 로맨스는 그 막을 내렸다.
Chapter 5 세상을 바꾼 주얼리 디자이너
전설의 디자이너, 장 슐럼버제
어떤 주제를 주어도 슐럼버제의 상상력은 독특하고 창의적인 주얼리로 거듭났다.
슐럼버제는 차갑고 평평한 기하학적 모티브의 아르데코 양식을 거부했다. 대신 볼륨있고 이국적이며 조각적인 디자인으로 1950년이후 주얼리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다채로운 색상의 에나멜과 각종 천연보석을 매치한 디자인이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슐럼버제는 티파니의 주얼리를 디자인하며 잠재되어 있던 창조적 역량을 본격적으로 발휘했다. 구불구불한 곡선과 관능적인 형체는 단골 모티브였다.
살아 있는 전설, JAR
JAR은 전 세계 상류층과 패션 피플 중 열의 아홉이 꼽는 존경하는 주얼리 아티스트다. 접근 불가성, 창의성, 희소성
JAR의 주얼리는 레드,바이올렛,핑크,그린 컬러를 위주로 보석의 색상과 명암에 중점을 둔다. 무색의 다이아몬드를 쓸 때는 완벽한 투명도나 희귀한 커팅, 그리고 독특한 세팅과 함께 전체적인 조형미를 강조한다. 색의 단계별 변화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한 그만의 컬러 감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금속을 검게 산화시켜 유색 보석의 컬러를 돋보이게 하는 것도 JAR만의 특징이다.
내 스타일이 곧 서명이다, 수잔 벨페론
보석에 곤충의 날개, 꽃잎, 과일 등을 유기적인 형태로 조각하기 시작했다.
색채의 마술사, 베르두라
풀코 디 베르두라는 이탈리아 출신 공작으로 1939년 뉴욕에 의의 이름을 딴 주얼리 살롱 베르두라를 설립했다. 베르두라의 정식 이름은 풀코 산토스테파노 델라 세르다, 베르두라 공작으로 주변인들은 그를 풀코로 불렀다.
베르두라는 옐로 골드, 볼륨감, 유색보석의 밝고 선명한 컬러, 그리고 자연과 생물 모티브를 즐겨 사용했다. 그래서 베르두라의 디자인에는 동물,꽃,조개가 자주 등장한다.
중국의 힘, 윌리스 챈
홍콩 출신인 윌리스 챈은 동양의 조각과 서양의 보석 예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함께 성장하여, 20년간 미술 조각가로 활동했다. 윌리스 컷은 보석 단면 커팅처럼 빛을 반사하는 기술을 사용한 하나의 조각된 형상이다. 이는 유색보석작업을 통한 모험의 시발점이자 윌리스의 이력에 새로운 장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윌리스에게 앤티크 비엔날레는 확실히 한계를 확장시키고 우주적인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는 최적의 플랫폼이다.
윌리스 챈은 다량의 값비싼 보석으로만 꾸민 주얼 리가 아닌 철학적인 사상을 담은 독특한 스토리로 작품을 풀어가는 디자이너다. 무엇보다 주얼리 디자인을 보편적인 주얼리의 영역에서 착용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적 명작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데서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주얼리계의 시인이자 건축가이자 정원사, 로렌스 보이머
로렌스 보이머는 루이비퉁 파인 주얼리의 아트 디렉터로 신생 주얼리 브랜드를 단숨에 럭셔리 주얼리로 끌어올린 장본이다. 프랑스인 어머니와 독일 출신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다니며 키운 세계적인 마인드와 다양성은 보이머의 예술적 이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보이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영감은 여성이다. 20년 동안 6천 점 이상의 주얼리를 창조한 끝에 2013년, 세계 럭셔리 주얼리의 심장부인 파리 방동 광장에 로렌스 보이머 부티크를 오픈했다. 이는 역사와 전통으로 무장한 럭셔리 하우스들 사이에 자리 잡은 유일한 디자이너 주얼리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지방시 가문의 또 한 명의 천재, 타맹
제임스 타팽 드 지방시의 주얼리에는 문화 역사와 현대성이 융합되어 있다. 베르두라가 남긴 드로잉을 통해 진정한 주얼리에 대한 열정을 고취시킨 타팽은 1996년에 독립하여 뉴욕 매디슨 에비뉴에 자신의 이름으로 살롱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 제품의 80퍼센트를 맞춤 제작으로 디자인하면서 고객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타팽의 디자인에는 위트적인 요소가 필수다. 유색보석 각각의 개성을 극대화시키는 조각적인 디자인과 고무, 세라믹, AK-47소총을 재활용한 강철 등 예상치 못한 재료를 사용해 이름을 알려왔다. 다이아몬드를 청동에 세팅하고 루벨라이트를 알루미늄에 세팅하는 등 다른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은 시도하지 않을 재료의 조합을 선호한다. 토마토 레드와 초콜릿 브라운은 타팽이 가장 애용하는 컬러다.
인도의 JAR,바갓
바갓이 태어나 살고 있는 인도는 전통적으로 주요 귀보석의 원산지다. 무굴양식은 이슬람 문화와 힌두 문화의 융합물이다. 여기에 그만의 독특한 개성과 현대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과거를 공명하는 작품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바갓의 주얼리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최소량의 금속을 사용해 보석을 완전한 주인공으로 만드는 스타일이다. 플래티넘으로 세팅을 최소화하면 보석이 공중에 떠 있는 듯 가볍고 환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바갓의 작품에서 다이아몬드는 주인공의 역할 뿐 아니라 때대로 컬러 스톤을 감싸주는 꽃잎 모양으로 거듭난다. 이 꽆잎 모티브는 인도의 전통적인 쿤단 스타일 세팅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것이다.
부록 스몰 럭셔리, 주얼리를 말하다
여자들은 왜 다이아몬드에 열광할까?
인간세계에서 흠으로 규정하는 각기 다른 형태의 천연 내포물도 사실 다이아몬드에는 의미있는 아이덴티티다. 고온고압이라는 까다로운 조건 속에서 탄소가 변한 물질이 바로 다이아몬드다. 그리고 여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욕망의 중심에는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언약의 증표, 다이아몬드: 고대 그리스인들은 다이아몬드의 눈부신 광채는 계속해서 타오러는 사랑의 불꽃으로 단단한 성질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했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지 않는다면 영원히 아픔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해석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18세기 초-브라질 아마존 강 유역에서 다이아몬드가 다량으로 발견, 19세기 들어 남아프리카에서 대규모 광산의 발견 이후
-이미 자연에서 결정된 다이아몬드의 가치: 다이아몬드 1캐럿을 얻기 위해서는 약 250톤의 광석을 캐내야 한다. 인간은 자연이 제공한 상태에서 균형과 비율을 맞추고 최대한 흠과 내포물을 제거할 뿐이다.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의 부상: 색이 있는 다이아몬드는 약 1만 개 중 한 개 꼴로 나온다. 현재 지구상에는 옐로, 핑크, 블루, 그린, 오렌지, 브라운, 바이올렛, 그레이, 퍼플, 레드, 블랙, 밀키 화이트 이렇게 12가지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가 있다. 무색 다이아몬드가 깨끗하고 반짝이는 순수함에 높은 가치를 둔다면,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는 이러한 희소성 때문에 컬렉터들의 추앙을 받는다.
주얼리를 알고 싶다면 스톤을 보라
1캐럿당 10억여원에 달하는 더 그라프 루비와 몇십만원 짜리 1캐럿 루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는 만큼 보이는 컬러 스톤: 순수하고 아름다운 색상이 보석의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귀한 보석과 덜 귀한 보석의 차이는?: 전통강자(루비,에메랄드,블루 사파이어), 뉴클래식(탄자나이트, 투어멀린, 아쿠아마린, 임페리얼 토파즈, 차보라이트), 전문보석(블랙 오팔, 비취, 핑크 토파즈, 팬시 컬러 사파이어, 디멘토이드 가넷, 알렉산드라이트, 캣츠 아이 크리소베릴), 일반보석(자수정, 화이트 오팔, 시트린, 페리도트, 블루 토파즈, 아이올라이트, 쿤자이트, 라피스 라줄리, 오닉스, 호박, 연옥)
-컬러 스톤은 색이다:색이 깨끗하고 선명하며 천연의 것이어야 가치가 높다.
럭셔리 주얼리, 그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럭셔리란 필요의 대상이 아닌 갈망의 대상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기능을 찾아 소유를 합리화할 수는 있겠지만 럭셔리는 결코 실용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럭셔리에 대한 욕구와 열망은 우리의 지갑을 열게 한다.
-럭셔리 그룹과 주얼리 브랜드: 오늘날 세계의 럭셔리 시장은 LVMH, 리치몬트, 케어링 이렇게 3대 그룹이 장악하고 있다. LVMH의 주얼리 브랜드로는 불가리, 드비어스, 쇼메, 프레드가 있다. 리치몬트는 시계와 보석 부문에 중점을 둔 스위스 기반의 럭셔리 그룹이다. 까르디에, 반클리프 앤 아펠, 피아제, 바쉐론 콘스탄틴, IWC등의 하이 주얼리와 초고가 시계 브랜드로 구성되어 있다. 구찌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케어링 그룹은 부쉐론, 포멜라토, 도도, 키린
이렇게 세계의 럭셔리 주얼리 시장은 점차 큰 그룹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럭셔리 주얼리의 요건: 무엇보다 브랜드의 역사와 헤리티지(신흥 브랜드들과 차별화되는 브랜드의 전통과 장인들의 기술까지 계승한 역사적 존재감, 전시회, 박물관, 히스토리북 등을 통해 마케팅에 활용한다)에 있다. 오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 장인과 전문가들이 ㅆ하아온 사브아페어(노하우)가 있다. 럭셔리 주얼리의 디자인에는 깊고 풍부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하이 주얼리, 파인 주얼리, 브릿지 주얼리, 코스튬 주얼리를 말하다
-신개념 권력의 상징, 하이 주얼리: 까다로운 선별 작업에서 살아남은 보석들의 매혹적인 빛깔과 광채, 그 보석이 자아내는 다양한 감정에 경의를 표하는 과정, 숙련된 장인들이 100퍼센트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결과물을 하이 주얼리라고 부른다.
-커스텀 주얼리와 코스튬 주얼리는 엄연히 다르다:커스텀 주얼리는 고객에게 주문받아 맞춤 제작한 주얼리라는 뜻이고 코스튬 주얼리는 비금속이나 모조것 등 저가의 재료로 만든 주얼리를 말한다.
-산업혁명의 수혜자, 코스튬 주얼리: 부담 없는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화려함과 독특함을 마음껏 강조할 수 있었다.
-코스튬 주얼리 3인방: 코코 샤넬, 미리엄 해스켈, 엘사 스키아파렐리
-할리우드와 함께 성장한 코스튬 주얼리: 정신없는 영화 현장에서 분실되거나 파손되기 쉬운 주얼리에 값싼 소재를 사용하는 것은 현명하고도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코스튬 주얼리: 독특한 창의력과 스타일을 담으려 노력했다. 저렴하지만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예산이 한정적인 소비자들에게 탈출구를 마련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진정한 나를 나타내는 스테이트먼트 주얼리
스테이트먼트란 의상이나 각종 액세서리를 통해 착용자의 태도, 라이프스타일, 가치관 등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테이트먼트 주얼리는 부, 매력, 스타일 등을 드러내어 관심을 집중시키고자 하는 장신구를 말한다.
-브로치 외교로 알려진 올브라이트: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브로치를 스테이트먼트 주얼리로 이용했다. 이를 올브라이트 브로치 외교라고도 부르는데 평온한 날에는 꽃과 나비 브로치를 정치적 사안이 심각할 때는 곤충과 맹수 브로치를 착용하는 식이다.
-미셀 오바마를 통해 본 스테이트먼트 주얼리: 미셀 오바마는 입었던 의상과 주얼리를 여러 번 다시 착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이엔드 디자이너 라벨과 갭, 제이크루 같은 중저가 브랜드를 섞는 하이 앤 로우 믹스(high and low mix) 전략을 활용한다.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자라 변호사로 성공하고, 결국 영부인이라는 자리까지 오른 미셀 오바마는 이런 실용적인 접근적으로 국민들의 감동을 배가 시킬 수 있었다.
매력적인 가치 투자 아이템, 럭셔리 주얼리
-사인드 피스의 중요성: 지식이 부족한 초보 수집가들은 이 사인드 피스에 집중해야 한다.
컬렉팅에는 테마가 필요하다:
지은이 윤성원
주얼리 컨설턴트이자 칼럼이스트로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동대학 언론홍보대학원 광고홍보학과 출신의 커뮤니케이션 전략가다. 또한 뉴욕 GIA와 Studio Jeweler's에서 보석감정, 디자인, 세공을 마치고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보석마케팅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주얼리 스페셜리스트다.
Zazen Bear 주얼리의 뉴욕 런칭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국내 최초 주얼리 프로젝트 그룹 더쇼케이스랩을 결성해 국립발레단과 앙상븓디토 등 문화예술계와의 협업 전시를 꾸준히 열고 있다. 주얼리 브랜딩, 디자인과 트렌드 분석, 스타일링, 역사, 럭셔리 등에 대한 칼럼과 강연을 통해 주얼리 인사이트를 나누는 중이다. 현재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 『잇 주얼리』가 있다.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발행일 2015년7월20일
지은이 윤성원
발행인 강학경
발행처 시그마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