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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삶의 이야기】
칠순 생일 맞은 아내에게 '최고의 생일 선물'은?
- 어머니 기일忌日과 아내의 칠순 생일
- 부모님 산소에서 보낸 아내의 '칠순 생일'
- '최고의 생일 선물'은 손자의 천진난만한 유머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ysw2350@hanmail.net
누구나 매년 맞이하는 것이 생일이다.
'칠순 생일'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이 무엇인가.
70회 생일이란, 지금까지 보낸 69번 생일과는 달리
뭔가 특별하게 보내야 한다는 인식의 보편화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고희(古稀)'라는 말 때문일까?
하기야 '희'자가 '드물 稀'자이니, 옛날에는 그 나이까지 사는 이가 드물다는 데서
'칠순 잔치'라는 가족 행사가 생겼다면 수긍이 간다.
남들도 대부분 그렇게 특별한 날로 인식하고 기념하니, 여느 해 생일처럼 그냥 덤덤하게 보내면 서운한 것이 '칠순 생일'이다. 과거 시골에 살 때, 어르신들도 칠순을 맞이하면 꼭 동네잔치를 했다.
"남들 칠순 잔치에 번번이 얻어만 먹었으니, 그냥 넘어가면 서운하다"고 하셨다. 칠순 잔치는 생일을 맞이한 부모 자신이 주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이 효심으로 마련해 드리는 가정 행사였다.
그 당시에는 환갑잔치도 크게 벌였다. 조촐한 가족 행사가 아니라 요란한 동네잔치가 됐다. 칠순, 팔순 잔치도 마찬가지였다. 구순 잔치는 거의 보지 못했다. 단명(短命)시대에는 그만큼 희귀한 행사가 구순 잔치였다.
시대가 변했다. 환갑 잔치, 칠순 잔치, 팔순 잔치는 물론이고, 그 귀한 구순 잔치도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는다. 남들 모르게 가족끼리 조용히 지낸다. 칠순이든, 팔순이든 생일이라고 해서 남들에게 알리면 요즘 시대엔 '흉거리'이다.
아내가 어느덧 일흔 살이다.
며느리가 용돈과 함께 생일케이크를 사왔다. 미역국은 아내가 싫다고 해서 소고기 무국을 끓였다. 매년 생일이면 의례적으로 끓여 먹었던 미역국을 올해엔 왜 싫다고 하는지, 아내는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불편한 심정을 조금은 짐작한다.
최근 국내산 미역으로 판매했던 어느 유명회사 제품에 중국산 미역이 혼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사과문을 내고, 해당 제품을 회수 조치까지 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본 적이 있다.
해당 납품 업체는 한국에서 수확한 미역을 2차 가공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져간 뒤 중국산 미역을 섞었다는 것이다. 납품 업체는 흐물흐물한 중국산 미역이 단단하게 보이도록 염화칼슘을 사용한 의혹도 받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극히 일부 제품이고, 해당 의혹 제품은 이미 회수조치가 끝났을 것으로 본다.
유튜브를 노상 귀에 꽂고 사는 가정주부가 어찌 그런 중요한 '먹거리 정보'를 모르겠는가.
아내는 더구나 한 때 건강을 잃어 크게 고생했던 사람이다. 암울한 시기를 보내다가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살아났다. 그러기에 건강식품을 가려 먹는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민감하다.
다시 아침 식탁 풍경.
생일케이크에다 70을 상징하는 큰 촛불 7개를 켜고 아들이 ‘엄마 일흔 번째 생신 축하 드립니다'라는 인사말을 했다. 아내가 ‘고맙다’라고 말하면서 조용히 촛불을 껐다. 아내의 생일에는 축하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해야 하는 '어머니 기일(忌日)'이다. 아내 생일은 공교롭게도 어머니 돌아가신 날과 같은 날이다. 매년 아내 생일은 돌아가신 어머니 추모 분위기에 묻혀 조용히 넘어간다.
나는 매년 어머니 기일이 되면 청양 선산에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 술을 따라 올리고 독축(讀祝)을 한다. 슬픔이 밀려오는 가운데 어머니를 추모하는 축문을 읽으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목이 메어 한글 축문을 끝까지 읽기 어렵다.
올해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자(어머니에겐 증손자)가 참례하여 절을 하니,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증손자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만 같았다.
▲ 햇볕이 따가워 할아버지 모자를 썼다. 거꾸로 썼다.
산소에서 오래 머물 줄 알고 '어린이 천자문' 책도 가져왔다.
아들, 손자와 함께 산소를 둘러 보면서 부모님 묘비문(墓碑文)을 다시 소리 내어 크게 읽어보았다. 부모님 묘비문은 장형이 생시에 초안하고 동생인 내가 붓으로 썼다. 장형은 한평생 교육자이자 향토사학자로서 시문(詩文)이 탁월하여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런데도 동생의 뜻을 늘 존중해 주었다. 내게 부모님 묘비 문구를 더 한 번 다듬고 붓으로 써보라고 했다. 부모님 비문(碑文)은 형제들이 모두 공감하는 가운데, 훗날 자손들에게는 자부심과 더불어 미래 지향적인 희망의 요소도 담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장형이 쓴 묘비문은 한문 투의 어려운 문장이 아니었다. 신세대 손자들도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지었다. 평소 자식들이 모여 부모님 생애를 언급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나누었던 <성실(誠實), 검소(儉素), 자수성가(自手成家), 선량(善良)>이란 단어를 토대로 지었다.
▲ 부모님 묘비 - 1991년 建竪(건수)
『성실誠實하고 검소儉素하게 사셨고 부지런히 일하시어 자수성가自手成家하셨으며 80평생八十平生을 선량善良하게 살아오신 농부農夫 내외분, 양지바른 이곳에 잠드시다. 뒤로는 망월산望月山과 칠갑산七甲山의 정기가 흐르고, 가까이에는 정겨운 가래울, 그리고 저 멀리 바라보이는 장수평長水坪과 금강錦江, 이 고장의 산과 들과 내는 삶의 보금자리요, 생활生活의 터전이셨다. 생시에 뿌리신 땀방울이 밑거름되고, 고이 심어 놓으신 씨앗들은 온 누리에 퍼지고 돋아나서 소망所望하셨던 대로 길이 자손만대子孫萬代에 영예榮譽롭게 꽃피우리라.』
※ 필자 주 :
비문이란 본래 고인의 생애를 잘 아는 문장가가 짓거나 생시에 벼슬을 한 고인의 업적과 특별한 자료를 토대로 글 잘 짓는 이가 지어야 하는 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형제들은 비석 앞면은 묘비제작 전문가의 전통적인 묘비석 제작 방식에 따랐고, 비석 뒷면의 글은 장형의 뜻에 따라 비록 벼슬은 하지 못하시고 한평생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아오신 순박한 부모님이지만 생애를 가장 잘 아는 자식들이 ‘정신적으로 본받을 삶의 모습’을 가려내어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보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후손들이 가장 훌륭하게 여기는 것은 ‘빈곤을 이겨내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자수성가自手成家 정신’이다. 성실과 근면을 바탕으로 자립하신 부모님의 정신적인 토대를 본받기 위해 비문을 지었다. 글씨는 장형의 지시에 따라 막내 아들인 내가 썼다.
성묘할 때마다 자식, 손자와 함께 부모님 산소 앞 비문을 읽으면 늘 새로운 각오와 다짐도 하게 된다. 비문이란 후손을 알게 모르게 각성시키고 변화시키는 어떤 주술적 효과도 지녔다고 나는 생각한다.
■ 어느 인터넷 지식 검색사이트 ‘예절 문답’코너에서 이런 질문을 보았다. “부모님 묘비의 비문작성은 누가 하나요? 직계자손이 쓰면 안 되는지요? 꼭 망인의 지인이 써야 하는지요?” 그러자 어느 예법 전문가는 이렇게 답했다. “①고례(古禮)에는 당대의 석학들에게 비문을 청탁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가문의 위상과도 무관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②그러나 비문은 누구나 지을 수 있습니다. 고례에도 후손이 선대의 비문을 짓고, 쓴 사례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출처 : 난석재蘭石齋예禮사랑]
■ 또 최근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눈에 띄는 비문을 발견했다. 어떤 가문은 부모님 비석을 세우면서 고인이 생시에 유언으로 비문을 남겼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간결한 문장을 비석에 새긴 것을 보았다. 『왔니? 고맙다. 사랑한다. 행복해라 - 아빠, 엄마가』 아마도 고인의 생시 뜻을 비석에 새긴 것으로 짐작된다. 시적 감각이 뛰어난 재치가 넘치는 간결한 비문이다.
손자와 함께 부모님 산소를 둘러 보는 사이, 칠순 생일을 맞이 한 '오늘의 주인공'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숲 속에서 황토를 삽으로 파서 비닐봉지에 담고 있었다. 미리 준비한 비닐봉지가 한 둘이 아니었다.
부모님 산소 성묘도 중요하지만, 양질의 황토를 퍼담아 가는 일도 아내에겐 중요한 계획이었다. 건물 옥상 화분에 건강에 좋다는 몇가지 채소를 심으려고 선산의 황토를 담아 간다는 것이었다.
▲ 칠순 할머니의 관심은 생일기념 보다는 선산의 황토를 비닐주머니에 담는 일이었다. 칠갑산 '콩밭 매는 아낙' 출신 할머니의 실용적인 관심은 누가 뭐래도 고집을 꺾을 수 없는 '건강한 먹거리'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손자도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따가운 햇살에도 할머니와 함께 모종삽으로 흙을 퍼담고 있다.
천생 촌스러운 청양 출신 '칠갑산' 노래의 주인공이다. '칠갑산 아낙'은 선산에 오더라도 그냥 가는 법이 없다. 쑥이나 고사리라도 한 봉지 뜯어가야 한다. 황토를 여러 봉지에 담았으니, 오늘 아내의 실질적인 목적 달성은 끝났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중요한 일정이 남았다. 화려하고 근사한 '칠순 잔치'는 못 해주더라도 저녁밥은 자기 손으로 지어 먹지 않도록 해줘야 할 남편으로서 최소한의 의무감이라고나 할까.
처음 계획은 청양 산소를 다녀서 대전 집에 가는 길에 부여 백마강 '황포 돛배 유람선'을 타고 낙화암을 둘러보자는 일정을 세웠었다. 그러고 나서 부여지역 특산물인 연잎밥을 저녁밥으로 근사하게 먹고 오자고 아들에게도 제안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계획을 변경하였다.
간밤에 불길했던 꿈이 갑자기 생각난 것이다.
손자가 강가에서 놀다가 강물에 떠내려 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이 할아비가 황급히 뛰어들어 필사적으로 구출해 내는 꿈이었다. 길몽인지 흉몽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백마강 뱃놀이 일정을 변경하고 싶었다. 오늘 '우리 가족의 운세'를 점치는 일진(日辰)은 물가나 강(江)이 아니라 산(山)이라고 생각했다.
운전하는 아들에게 대전의 장태산으로 방향을 돌리라고 했다.
“채소를 즐기는 칠순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쌈밥집이 거기 있다.”라고 말하자, 아내도, 아들도 크게 반기는 기색이었다. "부모님 산소에서 푸짐하게 먹은 치킨이 아직 덜 소화됐으니, 장태산 메타스퀘아 숲 체험과 스카이웨이에 오르자"는 나의 제안이었다.
손자는 장태산 공원을 거닐면서 할아버지를 끊임없이 웃겼다.
초등학교 1학년생의 언어 구사 능력이 할아버지의 어휘력보다 월등하다고 느꼈다.
보고 느끼는 것을 그때그때 말로 다 표현했다.
공원에서 어린아이들을 만나면 무조건 “안녕?”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강아지를 보아도 “안녕?”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어떤 어린애는 너무 어려서 우리 손자가 “안녕?”이라고 손 흔들면서 인사해도 아무런 반응 없이 무표정이었다. 그러면 손자가 “재는 관심이 없네.”라고 했다.
‘<관심>이 없네’라는 손자의 표현은 그 상황에서 할아비도 쉽게 구사하기 어려운 ‘품격 있는 언어’다.
손자에게 물었다.
“얘, 넌 왜 어린 애들만 보면 <안녕?>이라고 하면서 손을 흔들고 인사하니? 그러니까 우리가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떤 애는 서운하게도 반응이 없잖니? 심지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강아지에게도 손을 흔들면서 ‘안녕?’이라고 인사하니, 그 이유를 모르겠구나.”
그러자 손자가 되물었다.
“제가 이렇게 만나는 애들마다 반갑게 인사하는 까닭을 할아버지는 아직도 모르세요?”
할아버지가 잘 모르겠다고 하자 손자의 대답이 재미있다.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예요.”
할아버지는 웃음이 빵 터졌다.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라니? 와, 우리 손자 대단하네."
만나는 어린애들은 대부분 엄마, 아빠가 보호자로 옆에 있기 마련이고, 우리 손자가 손을 흔들어 ‘안녕?’이라고 인사하면 설령 아이가 어려서 못 알아들어도 그 애 엄마가 대신 반가워해 주니,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손자의 말이 맞다.
칠순 생일 맞은 아내에게 '최고의 생일 선물'은 뭐니뭐니해도 천진난만한 '손자의 유머'다.
온 종일 웃겼다.
‘숲속 어드벤처’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길을 통과하여 하늘 높이 오르는 ‘스카이라운지’에 올랐다.
천 길 낭떠러지 같은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했다. 손자가 할아버지를 염려했다.
“할아버지, 아래를 내려 보지 마세요. 무서우니까요. 호기심으로 내려다보시려면 아주 쪼금만 내려다 보세요. (손가락 끝을 1밀리 정도 짚어 보이며) 아주 쬐꼼요. ‘고공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이런 데서 특히 조심해야 해요. 할아버지도 '고공 공포증'이 약간 있으시죠?”
할아버지 웃음이 또 한 번 빵 터졌다.
누가 보호자인지 몰랐다. 오늘은 분명히 손자가 할아버지 보호자였다.
장태산에는 숲 체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승마 체험장도 있었다. 어린 손자를 위해서는 최고의 놀이터였다.
승마장 안내원에게 '우리 손자 말 좀 태워 달라'고 부탁하자마자, 손자는 아무 두려움 없이 거침 없이 말 안장 위에 척 올라 탔다.
할아버지가 "안 무섭냐?"라고 물으니, 손자는 "안 무서워요, 아주 재미있어요."라고 대답했다.
※ 동영상 : 손자 말타기 - 장태산 승마체험장
할아버지는 손자가 혹여 말에서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 불안하게 지켜 보고 있는데, 손자는 "더 타고 싶어요"했다. 승마 안내원은 한 바퀴 더 돌아줬다.
손자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승마장 구경꾼을 더 많이 모여들게 했다.
손자가 신나게 뛰어놀고, 웃음 선사하고, 즐거워하는 가족의 표정야말로 할머니 칠순 생신날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 저 높은 곳에서 어머니께서도 다 내려 보고 계시지요? ■
2021.04.25. (음력 3월 14일)
지환이 할머니 칠순 생신 날
할아버지의 가족 표정 감상 記
첫댓글 장천선생의 글은 언제나 신선하고 잔잔한 감동을 많이 줍니다. 특히 부모님의 비문은 다른 사람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원여사의 7순을 멀리서나 축하드립니다. 여사님의 칠순 생일을 손자 지환이가 등장해서 활약하고 있네요. 지환이가 할머니 생신 축하는 어떤 말로 표현했는가요?
아마도 흐뭇한 인사, 다정한 인사말이 있었을 것인데 손자의 기쁨을 할아버지가 독차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저의 솔직한 글을 올린 점 오해하지 마시옵기 바랍니다.
저의 경우도 우리내외 생일이 한날이어서 거의 매번 생일회식이 내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듯 하면서도 알고보면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의 속마음은 모두 아내에게 주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두분 모두 즐겁고 행복한 삶을 나날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두서 없이 썼습니다. 결례되었다면 널리 양해하여주시옵소서.
저의 졸고 ‘생활 이야기’는 일기장 속에 묻어 두기엔 아쉬움이 있어 인터넷에 공개합니다. 어머니 기일에 산소를 찾아 성묘하는 후손은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조카들은 모두 서울, 부산, 원거리 살다 보니, 성묘도 쉽지 않습니다.
제가 비록 손자를 중심으로 할아버지 입장에 쓴 글이지만, 인터넷에 공개하면 멀리 조카들과 미국에 사는 어머니 후손까지 보게 된다는 점에서 가족 행사를 공유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손자는 할머니 칠순 생신에 축하의 인사를 여러번 했으며, 산소에서 치킨을 먹으면서도 증조할머니에 대한 감사와 생신을 맞이하신 할머니께도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아내는 본래 말수가 적어 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존경하는 정 박사님의 과분한 격려 댓글은 늘 사랑이 넘칩니다. 아내도 정 박사님이 올려주신 귀한 생일 축하 댓글을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카톡 답글
◆ 송하섭(문학평론가, 전 단국대 부총장) 2021.04.28. 오후2:57
윤 선생님.
사모님 칠순의 조촐한 축하 행사 글은 삭막한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배로운 교훈이 되겠네요.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은 물론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방법까지 제시해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거기다가 손자 사랑과 교육의 모범도 보여주셨고요. 감사합니다. 건필을 기원합니다.
▲ 답글 / 윤승원 2021.04.28. 오후3:18
인생 대선배님께 보잘것없는 저의 생활 일기장을 공개하는 것은 그만큼 송 교수님이 저를 큰 사랑으로 이해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기일에 전국에 흩어져 사는 조카들에게 카톡으로 이런 글이나마 전파하고 공유하니 다소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가 됩니다.
이제 시대가 변했습니다. 저도 어느덧 항렬로는 집안 어른 서열 상위권 노인이 돼버렸습니다.
문단의 큰 어르신인 송 교수님 면전에서 노인이란 단어를 함부로 써서 죄송합니다.
졸고를 보여 드릴 때마다 따뜻한 마음 담아 과분한 격려 주셔서 크게 감동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윤승원 올림
※ 《한국문학시대》 페이스북 그룹 댓글
◆ 박진용(동화작가, 전 대전문학관장) 2021.04.29.
사모님 칠순 축하드립니다.
윤 선생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참신하고 아름답습니다.
조상님, 사모님, 손자.... 한 편의 전설이고 아름다운 풍경화고
사랑이 가득 담긴 동화입니다.
▲ 답글 / 윤승원 2021.04.29.
언제나 푸근한 정을 느끼게 하는 박 관장님께서 오늘 또 과분한 사랑의 메시지를 주시는군요.
박 관장님의 동화에 매료되는 저로서는 이렇게 동화작가님이 주시는 따뜻한 응원의 댓글이
천만금보다 소중한 보석입니다.
언제나 순수한 사랑을 가슴으로 느낍니다.
※ 《한국문학시대》 페이스북 그룹 댓글
◆ 김명아MyoungSun Kim(시인, 대전문인총연합회장) 2021.04.29
사모님 덕분에
칠순 여행 잘했습니다.
붓 가는 대로
다 쓰다가
죽을 시간이 없어
장수할 상이로소이다.
어머니 성묫길이
며느리 생일여행
칠갑산 웃으신다
산새가 노래하고
손자가
앞서서 가니
따라가는 에미 애비
▲ 답글 / 윤승원 2021.04.29.
붓 가는 대로 쓰다가 죽을 시간이 없는 작가야말로 진정 행복한 작가이겠지요.
인정과 사랑이 넘치는 과분하신 격려입니다.
정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보고 느낀 것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글감으로는 어머니, 고향, 손자입니다.
칠갑산 산새 소리, 청양 까치내길 민들레꽃, 선산 주변의 영산홍, 수국....
이런 것들을 보고 시인이 되지 않을 사람 없습니다.
어머니는 저 높은 곳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내려다 보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사랑과 행복 그리고 가족애가 느껴지는 풍경입니다. 갑자기 저의 유년시절 정서적 단짝 들소와 인자하시기만 하던 할머니 생각이 떠오릅니다. 고향에 가면 산소를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복진한 선생님이 유년시절 정서적 들소와 인자하셨던 할머니를 떠올리셨다면
저의 졸고 여행기는 일단 성공(?)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랑과 행복, 가족애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가족애도 창의력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늘 새로운 이벤트 말입니다.
따뜻한 인정 넘치는 댓글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요"란 손자의 이 말은 유머라기보다 참으로 진솔한 이야기가가 아닌지요. 많은 글 내용에서 이 말이 모든 것을 압도한 것 같습니다. 참으로 윤 선생님께서는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십니다.
박 교수님 댓글이야말로 할아버지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격려 댓글 중 압권입니다.
과분하지만 받아 들이고 싶은 것은 저희 가족에게도 박 교수님 격려 댓글을 자랑하고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어느 저명 동화작가가 저의 이 졸고 일기를 보고 '한 편의 동화'라고 하기에
정말 제가 손자 덕분에 동화 속에서 살아가는구나 착각(?)했는데
오늘 박 교수님의 따뜻한 해설을 들으니 그 말씀을 조금 믿어도 될듯 싶습니다.
늘 정이 넘치는 따뜻한 격려 말씀에 감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