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지던츠컵 골프]
"KJ에게 자주 골프 배워"
9일 오전 인천 청라 베어즈베스트골프장에서 만난 조지 W 부시(69) 전 미국 대통령의 모자에는 '나비'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이날 9홀을 돌면서 버디 하나를 잡았다는 표시였다. 돈 에번스 전 상무장관 등 지인들과 라운드를 즐기던 그는 동반자가 멋진 샷을 날리거나 퍼트에 성공하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하이파이브를 해 활력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모습이었다.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05년 프레지던츠컵 명예의장을 맡았던 부시 전 대통령은 올해 대회 조직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개막식에서 축사를 했고 9일까지 이틀 동안 경기를 관전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소문난 골프 애호가다. 퇴임 후에도 일주일에 세 번씩 친구들과 골프를 즐긴다고 한다. 이번 한국 방문 기간 중에도 국내외 지인들과 라운드를 즐기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9일 인천 청라 베어즈베스트 골프클럽에서 본지 민학수(오른쪽) 기자, 최우석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2005년 프레지던츠컵 대회 명예의장을 맡았던 그는“한국의 골프 열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역경을 딛고 큰 발전을 이룬 한국에서 멋진 골프 대회가 열렸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
그의 드라이버샷은 260야드 가까이 날아갔다. 파5홀에서 버디를 잡고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9번홀에서는 벙커에 공이 빠지자 멋지게 탈출하더니 한참 동안 직접 모래를 정리했다.
부시 전 대통령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에게 이번 대회의 의미에 대해 묻자 "잭 니클라우스가 세계인들의 우정을 다지는 프레지던츠컵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골프 대회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역경을 딛고 이렇게 발전한 한국에서 세계 각국 선수들이 모여 멋진 골프 대회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훌륭한 증거"라고 했다. 그는 "한국 갤러리의 수준과 골프 열기를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며 "매우 겸손하고 매너 잘 지키고 남 배려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전인지와 나란히 '버디 브로치' 달아 -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프로골퍼 전인지와 9홀을 동반 라운드한 뒤 포즈를 취했다. 둘은 버디를 잡았을 때 국내 골프장에서 주는 나비 모양의‘버디 브로치’를 나란히 모자에 달았다.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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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골프는 어드레스에 들어가면 바로 쏘는 '속사포' 스타일이다. 왜 그렇게 빨리 치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바빠서 빨리 치고 가야 하는 일정 때문에 습관이 됐다"고 했다. 이날 초청을 받아 참석했던 전인지 프로는 "장타에 쇼트 게임도 잘해서 싱글 수준의 실력"이라며 "에너지가 넘치고 유머도 풍부해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동반자들에게 전인지를 소개하며 "US여자오픈, 한국오픈, 일본오픈에서 모두 우승한 대단한 골퍼"라고 했다. 그는 "2001년부터 8년간 재임 중 많은 한국 여자 선수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우승했다"며 "그 비결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뛰어난 샷 못지않게 가족을 위해 열심히 친다는 마음가짐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는 정상급 선수들이 많은 한국 선수를 포함한 '여자 프레지던츠컵'을 여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이번 프레지던츠컵에서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고 묻자 "미국 대통령을 지냈는데 당연히 미국팀을 응원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선수들을 만나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는 열네 살 때부터 골프를 치기 시작했지만 대통령 재임 중 골프를 중단했었다. 그는 "어느 날 군 병원에 가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에서 부상당한 병사들과 가족들을 만나고 나서 지금은 골프를 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퇴임 후 골프를 다시 시작했다. 텍사스주 댈러스 이웃인 전설적인 골퍼 리 트레비노 등과 자주 어울린다고 한다. 그는 역시 댈러스에 사는 최경주와도 친근한 사이다.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주 상이군인을 위한 자선 골프 대회를 열었는데 KJ(최경주의 영문 이니셜)가 바쁜 가운데에도 와줬다"며 "남을 돕는 마음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KJ에게 자주 골프를 배우는데 '부드럽게 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는 "젊은 골퍼 중에는 '굿 보이(good boy)'인 조던 스피스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화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그가 만났던 30여 개국 세계 정상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내 안에 렘브란트가 있다"고 해 사람들을 웃겼다. 그는 "골프와 그림 모두 완벽이란 없고 계속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점이 공통점"이라고 했다. 그는 참을성이 더 필요하고 실수했을 때 좌절감이 크다는 점에서 골프가 그림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라운드를 마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동반자는 물론이고 수고해준 캐디들과도 함께 사진을 찍고 사인을 했다. 정겨우면서도 소탈한 매력이 그를 두 번이나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비결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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