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화보]그때 그 시절 피서철 풍경 "모아모아"
여치집 파는 행상 / 1963. 06. 01
한강 뚝섬 피서 인파 / 1966. 07. 01
입안이 얼얼한 팥빙수 / 1966
시골의 여름 / 1966. 08 18
한강물과 함께 출렁이는 광나루의 인파. / 1967. 07. 29
폭염으로 얼음이 귀했던 1967년 여름
해운대 피서 인파 / 1970. 08. 10
인천 송도해수욕장 / 1971. 08. 08
난간에 매달려 가는 승객들로 인해 위험스런 만원인 교외선. / 1972. 06. 11
피서인파 150만
구식증기기관차까지 동원된 임시열차도 초만원.
위험을 무릅쓰고 열차위까지 몰려 타고 있는 피서인파. / 1972. 07. 23
한강 뚝섬 물놀이 인파 / 1964. 08. 01
만원 교외선의 행락객들 / 1972. 08. 01
여름 어린이 물놀이 / 1973. 07. 01
무더위로 급수차 호수로 땀을 씻고 있는 어린이. / 1973. 07. 20
대천해수욕장 피서인파 / 1973. 07. 25
어린이들의 물장난(전남 장성군 황룡강) / 1974. 08. 08
얼음 배달꾼 / 1974. 08. 01
한강 광나루유원지 피서인파 / 1974. 08. 12
완행열차, 흥겨운 행락객들 / 1975. 06. 01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아가씨들.(대천해수욕장) / 1975. 08. 08
한강 뚝섬 물놀이 인파 / 1964. 08. 01
해운대해수욕장 행상 - "달고나 사이소" / 1977. 08. 01
船遊도 불볕피해 - 서울뚝섬유원지의 선유객들.
강위에 배를 띄우고도 불볕을 피해
성수대교 아래 그늘에 머물고 있다. / 1978. 07. 29
원두막의 어린이 / 1980. 07. 24
탈도시 꿈꾸는 대합실 인파 풍경 / 1981. 07. 29
여름을 이기는 골목 아이들 / 1982. 08. 01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 행락 인파 / 1982. 08. 01
모기장까지 등장한 숲속의 피서 / 1983. 08. 12
.
3. 배곱았던 시절 1950년 그나마 도심에서는 만화방이 있어서 산골보다는 좋았지요. 만화방에서 책보는데 1원주면 6권정도...
생계를 위해 학교 다녀와서 껌팔이도 하고...
신문팔이, 신문배달 참으로 어렵게들 사셨습니다.
겨우살이를 위해 준비해둔 옥수수와 산골의 가정의 풍경입니다. 옥수수 죽이나 감자등으로 연명하며 겨울 나기를 했지요.
아이를 업고 김을 메는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학교를 마치고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기위해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최고의 놀이 기구였지요. 부모님들이 안계시면 몰래 끌고 나와서 온 동네 친구들 태우고, 때론 굴러서 많이들 다치고... 떨어진 바지 시린손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어머니~ 추운겨울 양말이 없어 맨발이 시려도 어머니 등에 업히면 엄마 품에서 나는 젖내음과 따듯하고 포금함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투방집=나무로 얼기 설기 쌓아서 흙으로 빈 공간을 막아서
지은 집입니다.
소 외양간에 창을 만들어 소 여물을 먹이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소가 재산목록 1호였으며 사람은 굶어도 소는 늘 따근하게
소죽을 끓여서 주곤했지요. 물론 소 없는 집이 대다수였지만...
두메산골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월동 준비를 해놓은 장작더미 앞의
세모자입니다. 초라한 모습과 천진 난만한 표정이 가슴을 찡하게 만듭니다.
굴피 나무 겁질로 지붕을 덮어놓은 너와 라는 지붕이지요.
너무 배가 고파 영양 실조로 얼굴은 붓고 코에는 코물이 흐르고 손과 발은 동상에걸려 어렵게들 살아 오셨습니다. 울다가도 먹을것 주면 뚝 그치고 하루세끼 먹는 집은 잘사는
집안이었습니다.
추운겨울 냉기가 감도는 방에서 나와 따듯한 햇볕에서 늘 언몸을 녹이곤 했지요. 헤진 옷을 입고 살아도 다들 그렇게 사니 부끄러움이 뭔지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 엿과 바꾼 헌 신발을 수리해서 파는곳도 제법 많았구요
▲ 비닐 우산장사는 주로 아이들 몫이였구요.
|
감사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