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4.水. 맑음
오늘의 이름은 08월21일 日요일.
추억追憶도 밥을 먹고 산다.
오늘 오후에는 주지스님께서 은사恩師 스님을 모시고 문도門徒 모임에 참석해야하기에 일요법회 팀만의 일정을 짜야했다. 사실 이런 날에는 특별한 일정보다도 우리 절 법당에서 함께 기도를 하면 좋지만 아직 날씨가 무더운데다가 일요일 오후 기도에 익숙하지 않아서 평소에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기온이 절정에 오르기 시작하는 오후2시경, 주인이 안 계시는 장요리 신축 농가를 방문해서 우리들끼리 포도와 수박까지 챙겨 먹고 한 시간여 시간을 보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햇볕이 쨍글거리는 더운 날이었는데 주택 옆 축사에 들어가 보았더니 예상보다는 그리 덥지는 않았다. 눈이 순해 보이는 황소 한 마리가 천장에 매달아놓은 선풍기 바람을 쏘이면서 되새김질을 하며 엎드려있었다. 이때가 오후3시경이었으니 서울에서는 올해 최고기록인 36.6도를 찍었던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거실 창으로 내다보이는 앞마당격인 너른 논배미에서 자라고 있는 푸른 벼들이 정원수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논에 농약을 살포하면 바로 현관문과 창을 통해 집안으로 날려 들어올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에는 작은 앉은뱅이책상 위에 구몬수학 교재가 펼쳐져 있었다. 덧셈과 뺄셈이 적혀있었고, 몇 장을 넘겨보았더니 한글 낱말쓰기가 적혀있었다. 여래자 보살님으로부터 이 집에 손주들이 와있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덧셈과 뺄셈을 가르치고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이용해서 낱말을 가르칠 때가 그 아이의 평생 지적설계를 계획하고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도시의 젊은 부모들은 바쁘고 무신경해서 아이들을 연로하신 부모님께 보내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기본적인 한글과 덧셈과 뺄셈을 가르치는 5세~8세 시기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을 해야 하는 12~14세 시기가 한 아이의 학습면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을 한다. 우리들이 교육이야기만 나오면 창의력.. 창의력.. 하면서 누구나 창의력創意力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사실 창의력이라는 것도 기본적인 바탕과 소양素養이 있어야만 상상하고 뇌력발휘腦力發揮가 가능한 것이라서 우연히 사막을 배회하다 한 움큼의 모래를 쥐어짜서 생수를 한 바가지씩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요컨대 최선의 학습력이란 바람직한 환경조성과 동기부여가 필요충분조건必要充分條件인데 이것을 충족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바로 아이의 부모라는 사실이다.
엄마 아빠의 목소리에 감정과 사랑을 실어서 아이에게 책을 주기적으로 읽어주고, 또 아이가 책을 읽어 희망의 목소리를 엄마 아빠에게 들려주도록 하며, 매일 그림일기를 그리도록 해서 자신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일깨워주고, 시간 나는 대로 함께 노래를 불러보고, 엄마 아빠와 마주보며 공놀이를 하고, 책을 읽은 후 그 느낌들을 서투른 대로 독후감으로 써보도록 달콤한 안내를 하며, 야외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추억의 풍경들을 머릿속에 각인시켜 주는 것, 등등 곧 학습이란 지나치지 않을 만큼의 정서적 칭찬과 격려와 함께가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을 모든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잘 알고 있어야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들은 김기환 화백 작업장에 들렸다가 조금 이른 저녁식사를 위해 서산 시내 고박사 냉면집으로 갔다. 사실 여름에 먹는 냉면은 평범한 식사라기보다는 일종의 별미로 먹는 음식인데 특별히 냉면을 즐기지 않는 내 입맛에도 맛이 괜찮았고 푸짐한 양과 함께 잘 구워 나온 고기도 맛이 있었다. 냉면발도 메밀을 이용해서 만든 국수를 사용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냉면을 먹을 때면 어렸을 적 먹어봤던 고향의 메밀국수집이 생각나고는 했다. 왜 고향에서는 메밀국수를 모밀국수라고 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고향의 모밀국수 집 식단표를 보면 마른모밀, 비빔모밀, 유부모밀, 모밀짜장, 온모밀 등 온통 ~모밀이라고 쓰여 있었다. 여기에서 마른모밀이란 일본식으로 모리소바를 가리키는 말이고, 온모밀이란 우동식 모밀국수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향 K시에 그 당시 시내 유일한 5층 건물인 관광호텔이 충장로 입구에 서있었는데, 그 맞은편에 산수옥山水屋이라는 외벽이 하얀 2층짜리 건물이 하나 골목을 끼고 있었다.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혼자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 친구와 절반씩 부담을 해서 모밀국수를 한 그릇 사서 나누어먹었는데 시원하고 뜨끈한 국물에 식초를 친 단무지가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그 뒤로는 산수옥 모밀국수의 단골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당시 K시에서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치고 산수옥 단골이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산수옥은 짜장면과 우동을 능가하는 인기 맛집인 셈이었다. 당시 짜장면 가격과 얼추 비슷했으리라 생각을 하는데 1966년도 모밀국수 한 그릇 가격은 15원이었다.
그런데 다음 해인 중학교 1학년 때 한 수 높은 맛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시골 작은어머니의 남동생이니 따지자면 나와는 사돈뻘 되겠지만 자주 우리 집을 드나들어 부모님과는 각별한 사이였고 또 우리들도 귀여워해주셨던 분인데 어느 날 집에 들렀다가 나서는 길에 나를 데리고 나갔다. 이를 테면 저녁을 사주러 일부러 나를 데리고 나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관광호텔 옆이자 산수옥 건너편에 단층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평소에 그 앞을 수시로 지나다니면서도 그런 집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 집 상호는 충장옥이었던가.. 뭐 확실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그 집의 메뉴는 달랑 하나인 야끼만두, 요즘 사용하는 말로 바꾸면 군만두였다. 그렇지만 중국 요리집에서 파는 두꺼운 껍질에다 누렇게 기름에 튀겨낸 군만두를 상상하면 절대 안 된다. 얇은 껍질에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바나나 형태의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야끼만두는 꽉 찬 속과 더불어 쫄깃거리는 입안의 감촉이란 목숨을 건 오랜 항해 끝에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그 기분과 감각을 전해주는, 찌르는 맛과 시원한 풍경을 내 입안에 천둥처럼 선사膳賜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문제라면 가격이 모밀국수나 짜장면에 비해 너무 비싸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이따금 한 번씩 갈 수가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성인이 되어서야 고향에 내려가면 친구들과 모여앉아 소주 한 병 시켜놓고 돌산 갓김치와 먹어야 제맛이 나는 대인시장 순대국밥이 있다. 대인시장 안쪽 외진 골목으로 들어가면 순대국밥 집이 모여 있는 길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반찬으로 꼭 돌산 갓김치가 나왔다. 강화 순무나 돌산 갓김치를 좋아하는 나는 순대국밥에 고춧가루와 들깨가루를 듬뿍 풀어주는 얼큰한 맛과 돌산 갓김치의 톡 쏘는 듯한 맛이 어우러질 때 한 잔 들이키는 소주도 본래 제 흥취가 났다. 나는 본래부터 음식의 종류와 질을 가리지 않고 무엇을 먹든 감사한 마음으로 달게 잘 먹는 체질이라 미식가美食家도 아니고, 탐식가貪食家도 아니고, 애식가愛食家도 아니지만 구태여 말한다면 호식가好食家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써내려오면서 아하, 추억追憶도 밥을 먹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에 뭉클뭉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수공원을 한 바퀴 산책도 할 겸 시원한 곳에서 이야기나 나누자고 시내 중심부인 번화가로 향했다. 요즘 빙수는 맛보다는 외모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해서 시류의 흐름을 타고 수저로 떠먹는 빙수에서 눈으로 즐기는 빙수로 발전해가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양한 색깔과 기하학적인 모형으로 충분히 눈은 즐거웠으나 맛은 기억속의 팥빙수를 따라가기 힘들어보였다. 냉동고에서 꺼낸 얼음덩어리를 기계 사이에 끼워 넣고 사각사각 소리를 내어가면서 갈아내는 얼음 보숭이를 반투명 유리그릇에 수북하게 담아 팥을 한 수저 듬뿍 떠서 넣고 그 위에 붉고 푸른 정체불명의 액체를 서너 가지 뿌려주면 완성이 되었던 동네표 팥빙수는 그릇에 산처럼 쌓아놓은 얼음 보숭이와 팥을 잘 섞는데 기술과 시간이 필요했지만 달콤하고 시원한 맛은 여름을 대표하는 최고의 음식이자 기호식품이었다. 이런 날, 이런 시간에 모밀국수와 야끼만두와 팥빙수를 추억할 수 있는 내 왕성한 기억력記憶力에 우정 어린 고마움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꺼내어 글 위에 올려놓는다.
(- 추억追憶도 밥을 먹고 산다. -)
첫댓글 좋은글로 아쉬움을
삭혀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