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동호회 회원들이 서브포를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는데 꼭 부부
동반 참석하라고 해서 내키진 않았지만 못 이기는 척하며 따라나섰다. 다들 비쩍 마르고
하얀 눈동자만 반짝반짝 빛나는 그들 속에 있으려니 조금 어색했지만 자리가 무르익다
보니까 금방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동호회에서 풀코스를 완주한 남자 중에 서브포를 못한 사람이 2명밖에 없다는 것을.
사실, 남편이 서브포를 목표로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엄청나게 빠른 기록이고 대단한
목표쯤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서브포가 아무나 다 하는 그런 목표였다니~~ ㅠㅠ
남편은 기분이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으며 연거푸 술잔을
주고받았다. 돌아오면서 남편에게 서브포가 대단한 줄 알았더니 아무나 하는 거라며 했
더니 남편이 피식 웃는다. 그래도 남편은 행복해 보였다. "서브쓰리를 해야 진짜 고수라
고 하던데........" 하고 말끝을 흐렸더니, 서브 포 하면 서브쓰리는 식은 죽 먹기라고 하면서
이제 내일부터 서브쓰리 훈련을 시작할 거라고 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인간 오동철 이제는 서브쓰리 도전이다”라는 글귀를 크게 써서 벽에
붙였다. 내가 콧 웃음 치면서 그 글귀를 바라보자~~“내가 한다니까” 하고 다시 한번
의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나에게 남편이 서브쓰리 도전하는데 아내인 당신은 적어도
10km 정도는 완주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은근히 마라톤에 입문할 것을 권유했다.
그렇지 않아도 불어난 살을 빼기 위해선 무엇이라도 해야 될 판에 이번 기회에 잘 됐다
싶어 남편에게 운동복이랑 마라톤화랑 사줄 수 있냐고 하니까 당장 쇼핑센터로 가잔다.
그렇게 해서 나의 달리기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게 달려보니 재미가 쏠쏠하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땀을 흘리니 좋고 체중도 조금씩 줄어들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난 어느날 나도 드디어 남편의 권유에 의해
마라톤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대회 전날 남편은 나의 운동복에 배 번호를 달아주고 신발에 예쁘게 칩을 달아 주었다.
그리고 나의 발을 씻어 주겠다며 물을 길어와 정성껏 발을 닦아 주었다. 정말 감동이
었다. 결혼 18년 만에 누리는 최고의 행복한 순간이었다.
다음날 나는 다소 긴장되는 그러나 부푼 마음으로 대회 출발선에 섰다. 남편이 한사코
동반 주를 해주겠다고 했지만 혼자서 달려보기로 했다. 그 편이 더 좋을 것 같아서.
날씨는 맑았고 하늘은 드높았다. 함께 달리는 모든 사람들은 활기차 보였고 다들 행복해
보였다. 아직 반환점까지 꽤 남았는데 남편은 벌써 반환점을 돌아서 달려오고 있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남편도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른다. 서로 손을 들어 반가움을 표시하면서
남편은 골인 점을 향하고 나는 반환점을 향해서 달려간다. 남편이 내 뒷모습을 보면서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 여보 끝까지 힘내~~~! 그 목소리에 힘이 불끈 난다.
이제는 반환점을 돌아서 남편을 뒤따라간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마지막 2km를 남겨두고서부터 무척 힘이 들었다. 10km도 이렇게 힘든 데, 풀코스는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하니 그 고통의 깊이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풀코스 완주자
가 위대해 보였고 서브포를 한 남편이 자랑스럽게 생각되었다.
한발 한발 달리다 보니 골인점이 보인다. 그리고 남편의 모습도 보였다. 그가 멀리서
손을 크게 휘저으면서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갑자기 힘이 솟았다. 힘이란 스스로의
몸에서 만들어 내지만 타인에 의해 에너지가 증대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첫 10km 도전은 그렇게 남편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싱겁게 끝이 났다.
남편은 기분이 무척 좋은 모양이다. 연신 싱글벙글이다. 칩을 반납하고 기념품을
받고 그리고 대회 측에서 제공해 준 비빔밤을 먹었다. 맛있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를
모르겠지만 비빔밤 한 그릇을 먹으면서 이렇게 행복함을 느낀다는 게 스스로에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10km를 완주하면 몸에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 하는 걱정을 했었지만
다리가 조금 뻐근한 것을 제외하곤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나에게 대뜸 다음에는 하프에 한번 도전해 보라고 했다.
내가 놀라는 표정을 하고 바라보니 남편이 하프정도는 달려야 살이 빠진다고 한다.
그놈의 체중감량 소리만 들으면 귀가 솔깃하는 내 병은 어떻게 치유할까.
세상을 살면서 뭔가에 미쳐서 산다는 것도 참으로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오늘 새삼 알게 되었다.
이참에 나도 남편처럼 마라톤에 한번 미쳐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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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에 제가 쓴 글인데 편집하면서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