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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국순례싸이클대행진1981 원문보기 글쓴이: 무위(지운흥)
서울 5대 궁궐 여행기
일 시 : 2024년 6월 29일(토)
장 소 : 서울 5궁
코 스 : 덕수궁-경희궁-경복궁-창덕궁-창경궁(약 14km, 8시간 30분)
참가자 : 동탄무봉산산악회 유기선 회장님 포함 36명
서울에는 5대 궁궐이 있으며,
궁궐을 관람하게 되면 조선 왕조의 왕실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경복궁 5궁 중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다고 평가받는 경복궁은 1395년에 건립되었다.
이 궁은 조선시대 왕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창덕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은 자연경관과의 조화로 유명하다.
많은 왕들의 본궁이 되었다.
후원 또는 비밀의 정원으로 알려진 뒷마당은 한국의 전통 조경을 보여주는 명소이다
창경궁은 왕비와 후궁의 주요 거처가 되었다.
명정전과 경치 좋은 춘당지가 있다.
덕수궁은 한국과 서양 건축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 역사상 격동의 시기에 고종의 임시 거처가 되었다.
석조전과 고요한 덕수궁 돌담길 등이 있다.
경희궁은 위급한 상황에 왕이 은신할 수 있는 보조 궁궐이었다.
현재는 다른 궁궐에 비해 규모가 작고 보존 상태가 덜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5대 궁궐을 걸으며 가물가물했던 옛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가져보기 위해
서울 5궁 투어를 무봉산산악회 유기선 회장님과 그리고 회원분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 경복궁 전경
▼ 5궁 관람 및 이동시간
08:00 2동탄 부영1차 출발 – 덕수궁 대한문 하차(1시간)
[덕수궁 관람] (09:00~10:00, 관람시간 1시간)
대한문(매표소)-금천교-중화문-중화전-분수대-국립현대미술관(외관)-돈덕전-
석조전(내부: 대한제국역사관)-준명당-즉조당-석어당(선조 환궁/고종 환궁)-함녕전-연못-대한문
이동경로
대한문-돌담길-중명전(을사늑약)-구 러시아공사관(아관파천)-경희궁 흥화문
(10:00~10:30, 1.5km, 30분)
[경희궁 관람] (10:30~10:50, 관람시간 20분)
흥화문-숭정문-숭정전-서암-흥화문
이동경로 (10:50~11:30, 1.5km, 40분)
흥화문-세종대로-이순신 장군 동상-세종대왕 동상-광화문
[경복궁 관람] (11:30~13:00, 관람시간 1시간 30분)
광화문-흥례문-근정문-근정전-수정전(집현전)-경회루(흥청망청)-사정전(사육신)-강녕전-교태전(아미산)
-자경전(신정왕후)-향원정-건청궁(옥호루, 명성왕후 시해))-국립민속박물관(외관)-안내소입구
이동경로
경복궁 안내소입구-삼청동 봉탁항아리바베큐 불쭈꾸미식당(0.6km, 10분)
점심식사 : 삼겹살(1시간 20분)
이동경로
점심식사 식당-정독도서관-헌법재판소-돈화문(1.7km, 30분)
[창덕궁 관람] (15:00~16:30, 관람시간 1시간 30분)
돈화문-진선문-인정문-인정전-선정전-희정당-대조전(흥복헌)-성정각(동궁)-낙선재-석복헌-수강재-
낙선재 뒤뜰-함양문(창경궁으로 이동)
[창경궁 관람] (16:30~17:30, 관람시간 1시간)
함양문-통명전(장희빈 사약)-집복헌-함인정-문정전(사도세자 뒤주)-명정전-
(풍기대-춘당지-대온실 1.3km 30분, 희망자에 한함)-홍화문
17:30 창경원 홍화문 앞 버스탑승, 18:30 2동탄 부영1차 도착(1시간)
※ 이동 및 관람거리 / 소요시간 (약 14km, 소요시간 8시간 30분)
- 관람시간 : 오전 2시간 50분 + 오후 2시간 30분 = 5시간 20분(약 8km)
- 이동시간 : 1시간 50분 (약 6km)
- 점심식사 : 1시간 20분
※ 궁궐별 투어 시작시간
09:00 덕수궁 / 10:30 경희궁 / 11:30 경복궁 / 13:10 식당도착 / 15:50 창덕궁
16:30 창경궁 / 창경궁 홍화문 투어종료(17:30)
09:00 덕수궁 대한문에서 5궁 투어 시작
[덕수궁(德壽宮)]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고, 그 후에도 월산대군의 후손이 살던 곳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도성의 궁들이 모두 소실되자 1593년(선조 26)부터 임시 궁궐로 사용하였다.
이후 1611년(광해군 3) 창덕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그 후 1897년 대한제국의 출범과 함께 황궁이 되었으나 1907년 고종황제가 폐위되었다.
순종이 즉위하고 창덕궁으로 가면서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꿨다.
1593년(선조 26) 월산대군의 사저를 행궁으로 삼음
1611년(광해군 3) 경운궁으로 승격
1897년(고종 34) 러시아공사관에 있던 고종이 경운궁으로 환궁 / 환구단에서 대한제국 선포
1907년(순종 1) 고종 폐위 / 순종 창덕궁으로 옮김 / 고종 장수하라고 궁 이름을 덕수궁으로 바꿈.
1910년 석조전 준공
2007년 덕수궁 복원공사 시작
관람경로 :
대한문(매표소)-금천교-중화문-중화전-분수대-국립현대미술관(외관)-돈덕전-
석조전(내부: 대한제국역사관)-준명당-즉조당-석어당(선조 환궁/고종 환궁)-함녕전-연못-대한문 (관람시간 1시간)
▼석어당 : 임진왜란 때 선조가 임시로 거처했고,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정무를 보았던 장소
▼덕수궁 관람 중에...
덕수궁 관람 후 구 러시아공사관을 지나 경희궁으로 이동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이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덕수궁 돌담길 끝에 가정법원 있어(현재는 서초동으로 이전) 마지막으로 걷는 길이기에 그런 말이 있었다.
▼덕수궁 돌담길
▼구 러시아공사관
을미사변(1895년) 후 신변이 위태롭게 된 고종이 이곳으로 피신(아관파천)하여 1년여간 생활한 장소.
▼5궁 투어 이동경로 및 관람동선, 그리고 지식은 미천하지만 간단한 해설을 맡아서 진행하였다.
[경희궁(慶熙宮)]
1617년 광해군 때 지은 궁으로 본래 경덕궁(慶德宮)으로 불렸다.
처음에는 유사시에 왕의 이궁(離宮)으로 지어졌으나,
궁의 규모가 크고 여러 임금이 정사를 보았기 때문에 동궐인 창덕궁에 대하여 서궐이라 불리고 중요시되었다.
1760년 영조는 경덕궁을 경희궁으로 변경.
경희궁은 일제강점기 때 1910년 경희궁의 궁궐 전각을 모두 헐고 일본인 자녀들이 다니는 경성중학교를 세웠다.
이곳을 일본인들의 학교로 사용하면서 완전히 궁궐의 자취를 잃고 말았다.
원래 경희궁의 규모는 지금 남아있는 규모의 3배가 훨씬 넘었다.
경희궁은 건물 한 채도 없이 일부 터 만 남아 있었는데,
1988년부터 시작한 경희궁 복원 사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공개된 것은 2020년부터이다.
관람경로 :
흥화문-숭정문-숭정전-서암-흥화문 (관람시간 20분)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에서....
▼경희궁 조정에 세워놓은 품계석에서...
유기선 회장님이 정일품 표지석 앞에 서서 계시니 어울립니다,
경희궁 관람 후 세종로 이순신 장군 동상, 세종대왕 동상을 지나 광화문으로 이동
▼예전에는 6조 거리, 지금은 세종로.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상선약수
▼세종로 세종문회회관 앞에 설치해 놓은 분수대를 지나는 외국인 관광객 가족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물놀이를 즐기는 이상용 님, 오지현 님 부부
▼투어 중 경희궁에서 경복궁까지의 코스에서는 햇살은 따가웠고 날씨는 무더웠다.
최석환 리더님과 장은주 총무님 사다 주신 브라콘은 더위와 갈증을 달래주는 청량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광화문 전경 (2010년 복원)
[경복궁(景福宮)]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개경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1395년에 세운 정궁(법궁).
경복궁의 이름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어 270여 년간 복구되지 못하다가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되었다.
당시 경복궁에는 왕과 관리들이 업무를 보던 외전과 궐내각사, 왕과 왕비 및 궁인들의 생활을 위한 전각들, 휴식을 위한 정원 등 500여 동의 건물들이 조성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근정전, 경회루, 향원각, 집옥재 등 약 10% 건물만 남고 거의 다 파괴되었다
헐려나간 전각들은 일본인들의 개인저택 등으로 이용되었다.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지금은 원래의 30% 정도 복원된 상태.
1395년(태조 4) 경복궁 창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
1867년(고종 4) 경복궁 중건
1895년(고종 32) 건청궁의 곤녕합 옥호루에서 을미사변 발생
1896년(고종 33) 고종이 거처를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김
1915년 전각 철거
1990년 복원공사 시작
관람경로 :
광화문-흥례문-근정문-근정전-수정전(집현전)-경회루(흥청망청)-사정전(사육신)-강녕전-교태전(아미산)-자경전(신정왕후)-
향원정-건청궁(곤명합 옥호루, 명성왕후 시해))-국립민속박물관(외관)-안내소입구 (관람시간 1시간 30분)
▼광화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근정문에서 바라본 근정전 전경
근정전은 왕의 즉위식, 문무백관 조회, 외교사신 접견, 국가 공식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관광객. 한복을 입은 사람은 고궁 입장료 무료, 한복 대여료는 10,000원 15,000원
▼근정전 내부 모습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는 백두산,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 북한산을 해는 임금, 달은 왕비를 상징한다.
▼ 수정전은 세종 때 한글 창제의 산실인 집현전이 있던 곳.
수정전에서 토미 최현철 님.
▼경회루는 왕이 연회를 열거나 사신을 접대하던 곳,
연산군이 경회루에서 채홍사가 전국에서 뽑아 올린 미녀인 흥청(여인)과 문란하게 놀다가 폐위되었다고 해서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왕 놀이를 하는 외국인 관광객.
왕의 복장인 붉은색 곤룡포를 입은 흑인 관광객은 어딘지 모르게 왕의 기품이 보인다.
▼사정전은 왕의 집무실인 편전 / 아래 : 사정전 내부 모습
단종 복위를 도모하던 사육신이 이 사정전 앞에서 세조의 모진 고문을 받다가 사망.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 용마루가 없다.
▼교태전 뒤뜰에는 아미산이라 부르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십장생이 그려져 있는 굴뚝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뒤뜰에서 서기완 님.
▼교태전 주변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왕비의 옷을 입고 인생샷을 찍고 있다.
▼교태전 주변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왕비의 옷을 입고 인생샷을 찍고 있다.
▼자경전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할 때 신정왕후를 위해 지은 건물,
신정왕후 조대비는 헌종의 어머니였으며 고종을 왕으로 지정한 대왕대비이다.
뒤뜰 굴뚝에는 십장생이 새겨진 굴뚝이 있다.
▼향원정은 경복궁 북쪽 후원에 조성된 정자. 연못인 향원지와 어우러져 아름답다.
▼위 : 향원지에 피어난 연꽃 / 아래 : 향원지에 물을 공급하는 샘인 "열상진원'
▼건청궁은 왕의 처소인 장안당, 왕비의 처소인 곤녕합 옥호루로 이어져 있다.
건청궁에서 고종과 명성황후가 10년 정도 생활했으며, 고종 32년(1895년) 을미사변 때 왕비의 처소인 곤녕합에서 명성왕후가 시해되었다.
▼경복궁 관람을 마치고 잠시 휴식 중인 일행분들...
▼점심식사 장소인 "봉탁항아리 바비큐 불쭈꾸미식당"과 메뉴
▼ 오전 투어에 지쳐있었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 식사를 하고하니 활기가 넘쳐납니다.
▼삼청동 식당 앞에서....
정독도서관-북촌마을-헌법재판소를 지나 창덕궁으로 이동
[창덕궁(昌德宮)]
1405년 조선 태종 때 지은 제2의 왕궁이다.
임진왜란 이후 1867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270여 년간 조선의 정궁 역할을 하였다.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조선 궁궐로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창덕궁 역시 일제가 파괴하여 현재 남아있는 전각은 30% 밖에 되지 않는다.
1926년 순종이 대조전에서 승하하자 전각을 헐어 각종 편의시설을 세웠다.
창덕궁 후원(昌德宮後苑) - 사전에 예약해야 하는데 소수인원만 관람가능, 이번 투어에서는 불포함.
창덕궁 안에 있는 정원으로, 왕족의 휴식과 생활의 공간이었다.
임진왜란 때 후원은 폐허가 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불타 버린 창덕궁을 복구하면서 후원도 재 조성하였다.
1405년(태종 5) 경복궁의 이궁으로 창덕궁 창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
1610년(광해군 2) 궁궐 중 처음으로 중건함
1910년(순종 4) 흥복헌에서 경술국치가 결정됨
1989년 덕혜옹주(고종 딸),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 가족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남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관람경로 :
돈화문-진선문-인정문-인정전-선정전-희정당-대조전(흥복헌)-성정각(동궁)-낙선재-석복헌-수강재-
낙선재 뒤뜰-함양문(창경궁으로 이동) (관람시간 1시간 30분)
▼인정전은 왕의 즉위식, 신하들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궁중 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
인정전에서 기념촬영
▼희정당은 선정전이 비좁아 조정 회의, 업무 보고를 하는 편전 기능을 대신했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이자 왕비의 생활공간, 창덕궁의 전각 중 유일하게 용마루가 없는 건물.
대조전 부속 건물인 흥복헌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곳이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로 사용.
낙선재 뒤뜰에서 김량원 님과 서영예 님 부부
▼낙선재에서 최고로 아름답다는 장소. 뒤뜰에서 바라본 전경
원형창문은 네모진 창문과 조화를 이루고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앞 정원이 아름답게 보여 운치를 더해준다.
[창경궁(昌慶宮)]
1483년 조선 9대 성종이 할머니(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와 어머니(덕종의 왕비 소혜왕후), 작은어머니(예종의 왕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하여 지은 궁궐이다.
창덕궁과 담장 하나를 두고 붙은 하나의 궁궐 영역으로 동궐이라 불렀다.
주로 왕실 가족들의 생활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인해서 조선의 궁궐은 모두 소실되었는데, 광해군에 의해 1616년에 재건되었다.
연속극 사극에 나오는 무대는 대부분 창경궁
영조의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한 곳이 창경궁의 문정전 앞마당
장희빈이 중전자리에 쫓겨나서 숙종의 사약을 받고 죽은 곳이 창경궁 통명전 앞마당
일제 강점기 때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격하되는 등 많은 역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07년 고종을 황제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순종을 앉힌 뒤 순종을 창덕궁으로 유폐시키고,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창경궁에 동물원 짓고, 놀이공원과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일본인이 좋아하는 벚나무를 심고,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불렀다.
창경원의 동물들의 비극은 6.25 동란 때 굶어 죽고, 맹수들은 독약을 뿌려 모두 죽였다.
전쟁이 끝났을 때 동물원, 식물원을 다시 복원하였다.
1981년 창경궁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1983년 12월 30일에 창경원에서 다시 창경궁으로 제 이름을 찾게 됐다.
1483년(성종 14) 창경궁 창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
1616년(광해군 8) 명정전 등 중건
1909년(순종 3) 창경궁 내 동물원과 식물원 개설
1911년 창경원으로 격하
1983년 창경궁으로 명칭 회복, 복원공사 시작
관람경로 :
함양문-통명전(장희빈 사약)-집복헌-함인정-문정전(사도세자 뒤주)-명정전-
(풍기대-춘당지-대온실 1.3km 30분, 희망자에 한함)-홍화문 (관람시간 1시간)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 창경궁에 남아 있는 전각 중에서 용마루가 없는 건물.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고 해서 창경궁 통명전 앞에서,
장희빈은 숙종이 지켜보는 앞에서 사약을 먹고 죽었다.
▼함인정은 앞마당이 넓게 트여 있어 왕이 급제자와 신하들을 만나고 경연을 하던 곳.
▼문정전은 왕의 집무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곳.
2006년에 토지보상이 작다고 70대 노인이 방화하여 관람하던 분이 소화전으로 진화했었다.
법원에서 피해가 경미하고 나이가 많다고 집행유예로 풀려났었는데, 2008년 국보 1호 숭례문을 방화해 전소시켰다.
▼통명전 뒤 쉼터에서 바라본 남산 방향 전경
5대 궁궐 중에서 이곳이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춘당지 : 큰 연못 뒤쪽의 작은 연못이 조선시대 때부터 있었던 본래의 춘당지,
큰 연못은 1909년 일제가 창경궁을 훼손할 때 이 자리에 연못을 파서 유원지로 만들었다.
팔각칠층석탑(八角七層石塔)은 춘당지 옆에 1470년(성종 1년) 때 세운 탑이다.
춘당지에서 이은규 님 부부
▼대온실은 1909년(순종 3)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
17:30 홍화문에서 5궁 투어를 종료(약 14km, 소요시간 8시간 30분)
▼홍화문은 창경궁 정문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그 전과 다르더라.
힘드셨을 텐데 불평 없이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24년 6월 30일
상선약수 지운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