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命精爲三關關爲守神之要會性不離命命不離性精在其中
心氣身爲三房房爲成化之根源氣不離心心不離氣身在其中
感息觸爲三門門爲行途之常法感不離息息不離感觸在其中
性爲眞理之元關心爲眞神之玄房感爲眞應之玅門究理自性眞機大發存神求心眞身大現化應相感眞業大成
所驗有時所境有空人在其間
庶物之有虛粗同體者惟一氣而己惟三神而己有不可窮之數有不可避之理有不可抗之力
有或善不善報諸永劫有或善不善報諸自然有或善不善報諸子孫
국역)
性과 命과 精은 세 빗장이다. 빗장은 神을 지키고 있는 세 길목이다.
성은 명과 떨어져 있지 않고 명은 성과 떨어져 있지 않으며, 정은 그 가운데 있다.
마음心과 기운氣과 몸身은 세 방이다. 방은 완성되기 위한 근거이고 바탕이다.
기운은 마음과 떨어져 있지 않고 마음은 기운과 떨어져 있지 않으며, 몸은 그 안에 있다.
느낌感과 호흡息과 접촉觸은 세 문이다. 문은 길로 나가는 불변의 원칙이다.
느낌은 호흡과 떨어져 있지 않고, 호흡은 느낌과 떨어져 있지 않으며 접촉은 그 안에 있다.
性은 진리로 가는 원천적인 관문이고, 心은 참된 神을 담고 있는 심오한 방이며, 感은 참되게
응하는 현묘한 문이다. 진리를 궁구하여 스스로 성을 터득하면 참된 기운이 크게 나타나고,
신을 보존하여 마음의 본질을 구하면 참된 몸이 크게 모습을 드러내며, 참으로 바뀌어 신에
응하여 서로 느낌이 통하면 참된 사업이 크게 이루어진다.
진리를 증득하는 것에는 때가 있고, 외물의 본체는 텅 비어 있으며 사람이 그 사이에 있다.
만물에게 텅 빈 본질과 형체인 껍데기가 하나인 것은 오직 하나의 기가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고,
오직 삼신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 궁구할 수 없는 數가 있고, 피할 수 없는 理가 있으며,
막을 수 없는 힘이 있다. 선한 사람이 있고 불선한 사람이 있어 영원히 보답을 받게 되고,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어 저절로 보답을 받게 되며, 선한 사람이 있고 불선한 사람이 있어
자손 대대로 보답을 받는다.
해설)
性과 命은 늘 함께 작용한다. 성과 명은 精을 포함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정 안에 있기도 하다.
마음과 기운과 몸은 세 방이다. 마음은 성이 깃드는 방이고, 기운은 명이 깃드는 방이며,
몸은 정이 모여있는 방이다. 마음과 기운은 함께 움직인다. 마음을 기를 통해 움직이고 기는
마음을 싣고 움직인다. 마음과 기는 몸을 포함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몸 안에 들어있기도 하다.
그것은 물이 얼음을 포함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얼음 안에도 물이 있는 것과 같다.
마음은 느낌으로 전달되고, 기는 호흡으로 유지되며, 몸은 접촉을 통해서 파악된다. 마음은 기에
실려 있으므로 마음이 찹착하면 기가 고르지 못하고, 기가 흐트러지면 마음이 혼란해진다.
느낌은 본질적으로 하늘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고 호흡은 우주의 기를 흡수하는 것이므로 몸이
그 안에 있지만, 또한 몸에서 느끼고 몸에서 호흡하므로 느낌과 호흡이 몸 안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성을 아는 것이 진리를 깨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은 진리의 관문이다. 성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하늘의 성이 몸에 들어와 있는 것이 마음이다. 마음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느낌이다.
느낌은 참된 마음을 실천하는 문인 것이다.
진리를 궁구하여 스스로 성을 터득하면 참된 기에 참된 마음이 실리게 되므로 기가 제대로 유지된다.
욕심에 휩쓸리지 않고 본래의 마음을 간직하면 거기에 들어와 있는 본래의 성이 보존된다.
마음의 본질을 잃지 않고 유지하면 맑은 기운이 유지되고, 참된 기운이 몸에 실리게 되면 몸이 참된
원래의 모습이 된다. 본래의 참된 몸을 유지하여 착한 마음과 맑은 기운을 담고 있으면 사람들은 느낌으로
모두 하나가 된다.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면 세상을 천국으로 바꾸는 참된 사업이 크게 이루어진다.
진리를 증득하는 것에는 때가 있다. 욕심이 커지면 벗어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생의 마지막 순간에라도
반성하면 진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몸에 끼어 있는 때를 벗기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마음에 끼어 있는 때를 벗기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우물쭈물 시간을 허송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외물의 본체는 모두 우주적인 정이다. 그것은 우주에 퍼져 있는 에너지일 뿐 형체가
없으므로 늘 텅 비어 있고 사람은 그 비어있는 곳에 있다. 마치 얼음이 물에 떠 있는 것과 같다.
만물에게 있는 텅 빈 본질과 형체인 껍데기가 하나인 것은 물과 얼음이 하나인 것과 같다.
개인의 의식으로 텅 빈 본질을 파악할 수는 없다. 개인의 욕심으로 자연의 힘을 막을 수는 없다.
오직 거기에 순응해야 참된 삶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참된 삶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착한 사람은 자연에 순응하고 복을 받고 불선한 사람은 자연에 거슬리게 되어 재앙을 받는다.
---환단고기 (정창건 이기동) p.240~244---
전병훈 정신철학통편에서...
玄牝(노자 도덕경)의 뜻을 알 수 없어, 마침내 나는 [道藏:도교경전] 이천 여권에 아둔한 정력을 다 쏟았고
몸소 십 년 동안 수련한 결과 비로소 일 년간 신이 玄關으로 응결되어 차츰 道가 성취되어 가는 징험이
어긋나지 않았다. 그렇게 된 다음에 곧 스스로 경계하여 말하길 "도가 응결되어 겉으로 드러나니 세상에
보기 드문 감로가 내리도다. 온 우주의 안이 가정처럼 보이고 장대한 허공에는 慈雲이 덮이었네. 아!
이에 온 우주(누리)에 사는 사회동포들을 위해 나누어 주니 하늘의 원력이다"
서양의 철학자 칸트가 말하기를, "내가 精神에 몰입하면 마땅히 꼭 색신(육체)과 함께 살고 죽지 않을 것이며
그 위에 또 고등의 性命이 있으니 곧 본질이요, 참 나다. 곧 眞我는 항상 시간과 空間의 밖에 超然하게 자립하여
자유스럽고 활발히 지내는 한 물체이며 타에게 끌리거나 얽매이지 않는다."하고 또 말하기를, "長生術은 철학가
들의 至言이다"라고 했다. ......
사람의 몸에 지니고 있는 精神은 性命-精은 곧 命, 神은 곧 性-이라고 한다. 그러한 까닭으로 장차 性을 다하고
命을 安住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精을 기르고 神을 응취凝聚하게 해야 하며 精을 기르고 神을 응취하게 하는
學은 참으로 性命을 雙修하는 길이니, 곧 三代 이전의 사람들이 모두 배웠던 것으로서 이른바 精神에 관한 전문적인
학문이다. ....
玄關: 단가의 비결로서 고대에서 이르기를 "현관을 아는 것이 곧 신선이다"이다 하였고, "현관의 구멍이 열리면
백가지 구멍이 다 통한다"라고 하였다. 선천 삼보가 이것을 따라 변화 생육 한다.
[混然子還直集]에 이르기를 사람에게 삼보가 있는데 선천 삼보는 세가지 체로서 도를 삼는다. 元精, 元氣, 元神이고
후천 삼보는 3가지 용으로써 도를 삼는데 즉 交感精, 呼吸氣, 思慮神으로 약물, 화로, 불의 열조절로써 진짜가 된다.
이런 연유로 현관은 後天功夫(현대 기공파의 각종 기법)와 先天功夫(내단공)의 경계선이다.
역대 내단 사상가들의 현관에 대한 설명은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