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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룡! 1928년 2월 25일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학생시절부터 연극무대와 방송국 성우로 시작해서 영화배우, 가수, 영화제작, 영화감독 등으로 꿈을 펴며 일생을 살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려움을 격기도 했다. 그 파란만장한 인생은 그 자체가 다큐멘터리 영화다. 조강지처 강효실과 4남매, 또 김지미와의 사이에 1녀가 있었다. 1980년대부터 영화배우로 활약한 최민수는 그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로 요즈음도 방송 등에서 최무룡, 강효실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화배우 최무룡 崔戊龍
1948년 KBS가 두 번째로 모집한 방송연기 연구생 모집에 구 민, 윤 진, 윤일봉, 이춘사, 이혜경, 백금녀(본명 김정분), 남해연, 장서일, 박현숙의 이름과 함께 최무룡이 있었다. 성우라는 이름이 생기기전 방송연기자라고 불리던 시절 그는 연극무대의 연기자와 목소리를 통한 방송연기자로 활동 한 것이다. 6.25때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 계속해서 활동을 했다. 부산의 연극무대에서 최남현, 전옥, 강효실 등이 참여한 공영극장에 함께 무대에 섰다.
1960년대 후반 제1라디오 저녁 황금시간대에 그 시대의 최고 인기배우 최무룡은 매일 연예인들을 불러 진행하는 디스크자키 형식의 40분짜리 프로그램 ‘노래의 성좌’에 고정 MC로 출연한적이 있었다. 최무룡은 그때 어려움에 처해 있었던 때 였지먄 또 엄청 바뜬생활을 하고 있던때라 이때의 출연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늘 바쁘기만 했던. 최무룡이 생방송시간은 가까워 오는데 최무룡이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던 박창학이 방송국 출입구에 연락을 한즉 최무룡이탄 차가 방송국으로 들어왔다는에 스튜디오에 나타나지 않아 차를 찾아본즉 차 안에서 잡들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잠시도 틍이 없던 최무룡이었다. 노래의 성좌를 집필한 최홍준(최홍목)은 본 춘하추동방송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한국방송 60년사’에 보면 이 프로그램의 MC를 최희준씨로 적어놓았는데, 이는 최무룡씨가 맞다. 박창학씨가 연출을 맡고 나는 대본을 썼는데, 윤정희, 고은아, 현미, 또 누구누구 인기 연예인 대부분이 한 번씩 출연하는 가운데 청취율도 꽤 높았다.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출연료가 후했던 ‘노래의 성좌’는 한 시즌만 내보내고는 문을 닫아야 했다. 이는 필시 정부의 정책적인 편성이었고, 출혈이 너무 커서 오래 계속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전옥은 1920년대부터 연극, 영화에서 “눈물의 여왕”으로 불리며 인기를 모아온 중진 배우였고 강효실은 6.25 전 아버지 따라 북한으로 갔다가 국군이 평양을 탈환 했을 때 군 옌예대원이 되었다가 1950년 UN 군이 후퇴할 때 남하해서 어머니를 만나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부산의 연극무대에서 이 세 사람이 함께 활동하면서 자연 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져 선상결혼식을 올렸다. 전옥과 최무룡, 강효실이 장모, 사위, 아내, 남편 으로 한 가족을 이루었다.
위는 성우시절의 최무룡과 강효실의 모습이다,
서울로 온 이 가족은 연극 활동을 하며 영화에도 출연했다. 최무룡이 최초로 출 연한 영화는 이만흥 감독의 6.25전쟁과 관련된 반공영화 「탁류」다. 곧이어 신상옥 감독은 「젊은 그들」에 주연으로 등장 시켰다. 이로부터 신상옥과 깊은 인연이 맺어지고 최은희 등의 상대역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또 이 무렵부터 장모 전옥이 영화제작에 나서면서 전옥, 강효실 과도 출연이 잦아졌다. 1957년 전옥과 최무룡이 함께 출연한 영화에서는 17살 위인 장모가 사위의 상대역을 맡으면서 화제가 되었다. "항구의 일야" 에서다.
"항구의 일야"가 영화로 만들어지던 시절 최무룡은 강효실과 더불어 방송국 성우로도 활약했다. 위는 1957년 정동에 있던 방송국을 남산으로 옮기고 실시한 연말, 방송인 리셉션 모습이다.
1958년 KBS에서 두 편의 화제작 드라마가 방송되었다. 박서림 작 「장마루 촌의 이발사」와 김석야 작 「꿈은 사라지고」다. 이 두 드라마가 모두 최무룡 주연, 영화로 제작되어 1959년 인기리에 상영되면서 이 무렵 최무룡의 인기가 크게 올라갔다.
그때의「장마루 촌 이발사」 포스터다. 조미령이 최무룡의 상대 주연 동숙역이고 김지미는 동생으로 조연을 맡았다. 이 포스터에서 조연 김지미를 바라보는 최무룡의 눈길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아래는 역시 그 해에 상영된 「꿈은 사라지고」 로 최무룡은 이 영화의 주제곡을 직접 불렀고 그 상대역 문정숙은 「나는 가야지」를 불렀다. 오늘 듣는 음성은「항구의 일야」 그 목소리와 「꿈은 사라지고」최무룡이 직접 부른 노래를 섞어 올렸다.
1961년의 영화 「오발탄」이 있다. 이 영화도 관심을 끌었지만 mbc가 1960년대 시사프로그램「오발탄」을 편성제작 10년간에 걸쳐 오승룡의 목소리로 방송되면서「오발탄」 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 무렵 최무룡은 김승호이래 김진규와 더불어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준 배우라는 평판을 받았다. 1957년「황혼열차」로 데뷔해서 거침없이 인기가 올라가던 또 한사람의 배우 김지미가 있었다. 「장마루촌의 이발사」등에서 함께 출연하며 가까운 사이가 되어가자 주위사람들은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신문, 잡지 등에서는 그런 분위기로 몰아갔다. 1962년 드디어 두 사람 사이가 특별한 관계로 세상에 알려지고 최무룡, 김지미가 구속되는 상황까지 왔다. 그때 구속되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 한 장이 공개되었다. 최무룡이 구속되면서 웃고있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구속되면서 웃다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늘 웃음이 습관화 되어 그런 것이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불륜으로 구속되는 그 상황을 보 면서도 사람들은 비난보다는 그 연기를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앞서 상황이 원만히 해결되어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좋은 연기에 접하기를 기다렸다. 그런 분위기속에서 일들이 원만히 합의가 이루어져 구속 1주일 만에 풀려나 활동을 재개했다.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최무룡, 김지미 두 사람의 영화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최무룡은 더 큰 꿈을 실현시키려는 계획으로 영화를 직접 제작하고 감독을 맡았다. 1966년 그 첫 작품이 1920년대「아리랑」으로 항일의식을 일깨웠던「나운규의 일생」이었다.
최무룡은 영화제작에 모아놓은 재산과 정력을 쏟아 부었고 김지미는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 더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최무룡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흥행이 생각처럼 되질 않아 결국 재산은 탕진되고 김지미와는 해어져야 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해어진다.”는 말을 남겨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1970년 대는 최무룡에게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러자 1976년 미국 으로 떠났다가 5년 만에 1981년 3월 어머니가 세상을 뜨심에 장례를 치르려고 왔다.
그때 그는 부산에 새로 생긴 호텔에서 1년간 출연계약을 맺고 공연에 임했고 「자유부인」 등 영화에 출연하는가 하면 그가 불렀던 영화주제가를 모아 음반으로 만들어 판매에 나섰다. 1년쯤 지났을 때 그동안 진 빚을 갚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김지미와 갖는 공동무대 등에 관심을 갖는가 하면 강효실과의 재결합 여부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본인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활동을 했다.
그가 노래무대에 서고 음반을 제작해서 팔기도 하면서 삶을 이어가다가 1999년 11월 13일 세상을 떴다. 강효실과 함께 낳은 현숙, 예숙, 연숙, 민수 1남 3녀를 두었고 김지미와의 사이에 밍크라고 불린 영숙이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이미 써 올린 글과 함께 그가 부른 노래와 출연한 영화를 연결했다.
영화 동영상
음향을 먼저 꺼 주셔요.
오발탄 Aimless Bullet 1961년
노래 동영상
아들의 심핀
장마루촌의 이발사
외나무다리
꿈은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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