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에 대하여
장엄하게 물든 석양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을 분석 정리하려 드는 것은 적절한 일인가.
웅대한 베토벤의 교향곡을 들으며 평가부터 하려고 하는 것도 타당한 것인지.
에머슨의 말처럼 미는 느낄 수 있고 만들 수는 있어도 정의는 내릴 수 없다.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적인 입장에서 내린 정의나 개념정립은 불변일 것 같으나
전진해 나간다.
세상의 일체 질서는 한 결과로 소멸하는 것이 아니고 부단히 전진하는
과정이며 영구적 창조과정이라 볼 때 진리란 결과적인 끝이 아니고 오히려 추구 탐색되는
과정에서 의의를 중시해야 한다.
이러한 이치에서 피안의 세계에 뿌리내려진 미의 정의야 어떠하겠는가.
미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해서 열거하기 어f렵다.
웅장미 비장미 소담미 청순미 여백미 단순미 지성미 인격미 겸손미 절제미 조화미 파격미 등 등 ......
우리가 사는 세상이나 우주전체는 미로서 가득 채워져 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무수한 은하군과 행성들의 거대한 스케일에 미가 가득하다.
역으로 극소의 규모인 10억분의 미터라는 나노의 세계에서도 미는
엄연히 존재한다. 인생의 생로병사도 미적으로 12폭 병풍의 파노라마와 향연으로 볼 수 있지 않는가.
진선미는 내면적으로 동일한 뿌리이고 그 가지가 갈라져 나왔을 뿐이다.
진은 선과 미를 갖고 미는 진과 선을 가지며 선은 진과 미를 가진다.
미는 예술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예술은 인간이란 증류수를 통과한 자연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는 자연에 용해된 에센스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소로우는 <월든>을, 헬렌 니어링은 <조화로운 삶>을 통해
세계인에게 회자되고 있지 않는가.
에이츠는 말한다. 미는 영원한 기쁨이라고.....
자연속의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늘 기쁨속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한가.
인간들은 스스로 자연을 가까이 바라보는 눈을 가리고 산다.
헤르만 헤세는 사물을 보는 우리의 눈길이 순수이 관조의 자세를 취할 때
처음으로 사물의 진정한 미가 우리에게 나타난다고 한다.
타고르는 사리사욕에서 벗어나 감각적인 욕망의 집요한 욕구로부터 멀리 물러서서
사물을 보는 눈을 체득할 때 비로소 모든 곳에 있는 아름다움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체스트 톤은 흔해빠진 대상이라도 그것이 다른 것으로 보여 질 때 까지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야생화의 진정한 미를 찾아내고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야생화와 대화가 가능하려면 관조의 눈으로 상당한 시간과 깊은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진정한 미를 향유하는 즐거움은 속물에게는 주어지기 어렵다.
참다운 수양과 열린마음의 소유자에게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여성미의 이상형이다.
여신은 원래 천지만물과 사랑을 상징하는 모신(母神)이었다.
추운 겨울에 시달린 만물에 생기를 돋아주는 빛의 여신으로도 숭배되었다.
로마시대는 4월(아프릴리스)을 이 여신의 달로 삼고 초순 사흘 밤낮을 공원의
향긋한 나무 밑에서 대 축제를 열고 젊은이들이 모여 봄을 구가하며 청춘을 즐겼다고 한다
헤라여신, 아테네 여신과 미를 다투었으나 파리스의 판정은 아프로디테를
최고의 미녀로 뽑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하지만 여성미의 기준은 고정 불변은 아니다.
아름다움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사회변동과 갈등, 새로운 가치와 발전 속에서 미의 개념이 성장하고 쇠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디.
오늘날의 미는 메스 미디어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
거대자본을 동원한 패션과 화장품 광고들은 수많은 사람 중의 모델을 골라
선전에 열을 올린다.
많은 사람들은 광고를 보며 자신과 비교하면서 크고 작은
열등감에 빠지게 된다. 미술가들이 보는 미녀의 기준에 비해 광고모델은
옷맵시를 위해 상당히 마른체격이다 .많은 여성들은 정상적인 체형인데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다. 광고는 이렇게 불행감을 주는 역기능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메스 미디어를 비판적으로도 바라보는 차원있는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요즘의 지나친 외모지상주의는 미적용모가 신귀족의 신분처럼 되어가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성형수술에 과감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 현실이다.
자연의 미를 최고의 미로본 노자의 미학에는 전면 배치되는 행위이다.
요즘 한국의 성형수술 테크닉이 상당수준이어서 일본사람들도 한국에서
많은 수술을 한다고한다.
2000 여년전 에도 한반도 가야는 성형의 시원지로서 어린아이가 나면 돌로 머리를 눌러
편두를 하였다 가야사람들이 보았다면 역시 가야조상의 피를 받은 후손이라며 흐뭇해 할 것이지.
외모지상주의는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가늠키 어렵다.
아름다움은 신의 축복이며 기쁨을 주는 것이기에 영향력은 여전할 것인데
매사가 과유불급이듯 미의 추구도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흔히 요즘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지성과 미모>라 할때 지성은 내면이고 미모는 외면일 것이다.
미는 내부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다.
내부의 생명력은 청순미 지성미 교양미 성숙미 덕성 인품의 향기 등이다.
이렇게 내부의 아름다움에서 나오는 향기는 아무리 맡아도 질리지 않고 기쁨과 평화를 준다.
우리는 그런 매력 앞에 끌리지 않을 수 없다.
그 빛과 향기는 우리의 마음을 이끌고 가슴을 데우게 한다.
우리는 사물을 바로 바라보는 마음 자세를 가진 눈과 내면의 생명에서 나오는
빛을 발해야 겠다.
이런 바탕에서 천박한 사회분위기를 잠제우고 품격있고 우아한 미적사회를 만들 수 있다..
과연 미는 무엇인가.
미는 사랑과 함께 인간이 추구하는 영원한 테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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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미에 대한 내 기준은 어떠한가? 라는 물음을 던지면서...잘 봤습니다. 소로우와 헬렌니어링과는 많은 시대변화가 있었지만 자연에서 미를 찾아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겠지요?
이 사회 전체가 점점 가벼워져가는 것 같지만 그게 또 현대의 미라고 하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답은 늘 자연 속에 있겠지요.
저두 지성스럽고 싶습니다. 그러면 책을 읽어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