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진정한 금식
본 문 : 스가랴 7:1-14
오늘 함께 읽은 말씀에는 진정한 의미의 금식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늘 말씀에 나오는데로, 5월과 7월에 금식하였습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을 거치면서,
민족적으로 금식일을 선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민족입니다.
아마도 5월의 금식은 이스라엘의 성전이 훼파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전 민족적인 금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7월의 금식은 율법에 나와있는 데로 대 속죄일을 맞이하여,
그들이 몸과 마음을 성결케 하기 위하여 금식하였을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해방 받은 후에도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스가랴 선지자에게 와서, 금식을 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70년동안 포로생활을 하면서,
해마다 오월이면 금식하였는데, 이제 우리가 다시 금식운동을 일으킬 때가 되지 않았느냐? 이렇게 벧엘 사람들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묻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전건축이라는 대 사역을 앞에 두고,
금식하여야 함이 마땅하다고 그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스가랴 선지자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합니다.
그러면서 바른 금식의 교훈을 말씀합니다.
그런면 바른 금식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금식기도 얼마나 많이 합니까?
자녀위해서, 직장일을 위해서, 주를 위해서, 기타 금식기도 않해 본 분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 바른 금식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금식입니다.
본문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절입니다.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습이 자기를 위하여 살다가,
종교적인 습관으로 인하여 금식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다가 하나님의 율법을 청종하지 않다가 때가 되었다고 해서 금식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금식은 두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보이기 위하여 금식해야합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금식은 하나님께로 향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보이기 위한 금식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은 단식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하여 금식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금식은 자신의 종교적인 열심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과시에 더 열중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드러내기 보다 자신을 드러내는데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금식의 모습을 책망하였습니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금식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보이기 위함입니다.
더 나아가 금식은 내 뜻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금식하여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성정은 얼마나 연약합니까?
우리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약합니까?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노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내 뜻대로 살아가며, 정작 내 편한 대로 생활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내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겠다는 우리의 믿음의 표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금식하는 동안에 세상의 것 생각하기 보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그 뜻을 안에 있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금식을 통하여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을 죽이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여 주소서.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뜻을 구하기 위하여 금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두번째의 금식의 진정한 의미는 이웃사랑의 온전한 회복이 바로 금식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계속하여 금식의 올바른 뜻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9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성회와 더불어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웃과 담을 쌓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웃을 용서하지 않고, 용서 받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웃에게 범죄하며,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금식의 뜻이 무엇입니까? 굶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난하여 매일을 굶는 사람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사야 58장에 보면 오늘 읽은 말씀과 똑같은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58장 6절 7절입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10절에
"주린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 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가티 될 것이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정의의 실현입니다. 작게 말하면, 이웃과의 관계의 회복이요 이웃 사랑의 실천이요, 크게 말하면, 사회정의의 실현이요 경제정의의 실현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속에 무고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억눌린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둔체 금식할 수 는 없는 것입니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픔을 해결해 주신 다는 것입니다.
금식한다는 것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우리의 믿음의 결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식의 행위가 나눔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가난한 자의 심정을 같이 나누고, 나의 가진 것으로 그들의 상한 심령을 덮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금식 많이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금식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뜻 하나님의 사랑과 또한 이웃 사랑의 실천이 될 때, 진정한 금식의 의미를 바로 실천하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금식을 통해, 흉악한 결박이 끊어지길 축원합니다. 멍에가 사라지고 이 땅에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넘쳐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기도의 간구의 소원들이 하나님 뜻 안에서 이루어 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저희들이 금식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저희들이 금식하는 순간 만이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시고,
금식을 통하여. 우리의 이웃에게 다가설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복음을 모르는 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며, 사랑으로 서로 용서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의 모습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