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이미나
예배 전 15분간 준비 찬송을 반주하자 목사님께서 “다 함께 묵상기도 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시며 예배 시작을 알렸다. 성도들은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는 가운데 묵도 곡을 연주한다. 교독문과 사도신경에 이어 대표 기도와 목사님 설교 그리고 헌금기도 등 순서 사이마다 몇 곡을 반주한 뒤 마지막으로 목사님의 축도를 마칠 때 음을 살려 연주하면 비로소 예배가 마쳐 친다.
물론 수고스럽지만 보람되고 뿌듯하다. 피아노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늘 소망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진작부터 피아노 반주를 하고 싶었지만 이미 교회에 반주자가 있어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스무 살 겨울 생각지 않게 개척교회에 수요예배 피아노 반주를 하게 되었다. 그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 과정은 이러하다. 대학 생활을 하던 중 화병과 우울증으로 학교를 휴학하며 홍성에 내려왔다. 병원에서는 심적 부담으로만 진단을 내리며 답답하던 차에 하나님은 신유 은사(병 고치는 은사)를 받으신 전도사님에게로 나를 인도해 주셨다. 전도사님은 심리적 압박으로 삐뚤어진 척추가 원인이라 하셨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전도사님의 기도를 통해 척추가 펴지며 온 몸이 낫게 되는 기적을 경험하였다.
나는 그 일로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였고 전도사님의 대전의 개척 교회도 가 보게 되었다. 하지만 예배 중 피아노 반주가 없이 찬송가를 적막하게 부르는 것이 옥의 티였다. 그래서 나는 전도사님께 “제가 다음 예배 때부터 반주를 하겠다” 하였고 전도사님도 흔쾌히 승낙하셨다.
하지만 한 주가 흘러 예배 전 시험 삼아 반주해 보라는 전도사님 앞에서 피아노 반주를 마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전도사님께서 “미나야 이번 예배에는 어렵고 천천히 시작해 보자”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많이 실망스러웠지만 9년 동안 거의 치지 않다가 3개월 전부터 다시 피아노 학원을 다녔으니 당연한 결과라며 마음을 추슬렀다.
이튿날부터 피아노 교본과 찬송가까지 학원에서 지도받으며 하루에 4~5시간씩 맹연습을 했다. 그러자 실력에 진전이 있었고 전도사님은 다음 예배에 부를 찬송 곡을 알려주셨고 나는 일주일 동안 그 곡들을 정성껏 연습해서 반주자로 서게 되었다.
정식으로 예배 첫 피아노 반주를 마치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다.
또한 640곡이 넘는 찬송가였지만 피아노학원 선생님의 세심한 지도 덕분에 조표와 박자가 단조로운 편인 곡부터 점차 난이도 있는 곡을 집중연습 하니 실력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특히 피아노 선생님께서 내게 악보를 빠르게 읽는 강점과 끈기에 대한 칭찬은 연습를 시작한 4-5개월이 지나서는 찬송가의 어떤 곡을 펴도 바로 칠 수 있게 되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몇 달이 흘러 복학하고 졸업과 취업하며 여러 사정으로 지속적인 반주자 활동은 하지 못했다.
다시 피아노 반주자로 서게 된 것은 서른 살이 되던 해 대전에서 고향인 홍성으로 내려오면서였다. 당시 각박한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나는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얻고 싶었고 마침 피아노 반주할 기회도 얻게 되었다. 찬송가는 곡조 있는 기도이기에 한 소절씩 속으로 부르며 예배 때 연주할 때마다 마음에 하나님의 따스한 사랑이 전해졌다. 점차로 심리적 상흔이 옅어지며 결혼도 하였고 움츠린 날개를 펼쳐 창공을 날아오르는 독수리처럼 문학에 매진하여 뜻하던 작가도 될 수 있게 되었다.
그 뒤로도 여러 해 동안 교회 피아노 반주자 활동을 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반주자로서 위기가 다가왔다. 다니던 교회에 여건은 악화되어 나와 가족들은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실망감과 함께 더 이상 반주자를 할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안부를 나누는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당신이 출석하는 교회에 피아노 반주자 자리가 비게 되었으니 내가 와서 반주자로 활동하길 적극 권하셨다. 또한 우리 아이들도 말씀으로 바르게 교육할 수 있는 체제니, 염려할 것 없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나는 망설임 끝에 일단 선생님의 인도로 아이들과 함께 교회에 다녀온 후 목사님의 설교 말씀과 교회 분위기가 끌려 얼마 후 교인 등록을 하였다.
하지만 새로 다니는 교회에서 피아노반주자로써의 길은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찬송가만 반주했던 전에 교회와는 달리 복음성가도 반주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복음성가는 화음을 넣기도 하고 곡의 분위기에 따라 변화를 주는 주법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며 쳐야 하는 곡이 많은 데 그저 단순하게 반주하니 곡의 느낌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또한 전에 교회가 쇠락해 가고 떠나는 시점에서 나 역시 나태해져서 연습을 잠시 게을리한 탓에 건반을 좀 세게 두드리는 등의 문제점이 나타났다.
시급히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집 근처 피아노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굳어진 손가락을 풀기 위해 일주일에 4번씩 연습을 했다. 심혈을 기울여 노력한 끝에 복음성가도 칠 수 있게 되었고 반주가 훨씬 부드러워졌다는 평도 성도들한테 들을 수 있었다.
아직 복음성가 중 어려운 곡은 심도 있게 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처음 반주를 시작했던 그 열정으로 꾸준히 연습한다면 분명 실력이 나아질 것을 확신한다.
여태껏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활동하면서 두 남매의 육아와 살림, 그리고 작가로서의 글쓰기 등 병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올해 7월 중순부터는 강사로 취업해서 수업도 나가야 해서 더욱 바빠졌다.
이에 따라 일정들을 지혜롭게 조율하고 더 부지런해져서 내 역할들을 잘 감당해야겠다는 지침은 여전하다. 또한 항상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높이며 연주한다는 것은 반주자의 최우선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오늘도 주일을 맞이하여 찬송가를 반주하고 이어진 설교에서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을 심중에 새겼다. 예배를 마치자, 내 심령이 은혜의 불로 뜨거워진다. 언제나 하늘처럼 크고도 넓으신 그 분의 사랑을 반주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