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에 대한 서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음악 측면에서의 접근은 물론이고 천재론적 접근, 사인을 둘러싼 음모론적 접근, 사회학적 접근 등 다종다양하여 ‘위대한 예술가는 작품뿐 아니라 일생 자체가 훌륭한 분석 텍스트가 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이다.
여기 모차르트를 좋아한 나머지 그가 남긴 600곡이 넘는 전 작품을 감상하고, 심지어 그가 다녔던 장소들까지 답사한 경영학자가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대담하게도 경영학적 관점에서 모차르트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음악가 모차르트’에 앞서 ‘CEO이자 이노베이터로서의 모차르트’에 주목한 것이다. 더욱 특이한 것은 저자가 흔히 알려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만이 아닌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 또 그의 아들들인 ‘카를 토마스 모차르트’, ‘프란츠 크사버 모차르트’까지 3대의 삶을 ‘모차르트’ 브랜드를 단 가족기업에 비유하며, ‘주식회사 모차르트’의 탄생과 소멸과정을 추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 레오폴트의 야심에서 출범한 ‘주식회사 모차르트’ 1장에서 4장까지는 음악으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레오폴트(1대)가 자녀를 자본과 상품으로 삼아 ‘주식회사 모차르트’를 창업하고 성장기반을 다져가는 과정을 다룬다. 잘츠부르크의 궁정 부악장이었던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이탈리아 출신 음악가들에 밀려 더 이상의 승진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일곱 명의 자식 중 살아남은 딸과 아들, 즉 난네를과 볼프강이야말로 음악에 천부적 소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레오폴트는 자녀의 장래를 위해 자신의 경력을 일찍 포기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그리고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정확히 깨달은 데 따른 결단이었다.
1762년 마침내 레오폴트는 온 가족을 이끌고 유럽 70여개 도시를 경유하는 유럽 순회 연주여행을 떠난다. 3년 반에 걸친 여행기간 동안 레오폴트는 주문을 받고 연주계획을 짜고 자금을 관리하며 운영하는 매니저가, 볼프강과 난네를은 음악시장의 상품이 되었으며, 어머니 안나 마리아는 뒷바라지를 하는 스태프가 되었다. 바야흐로 온 가족이 참여하는 ‘주식회사 모차르트’의 출범이었다.
- 레오폴트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이런 관점에서 그간 레오폴트를 ‘어린 아들을 착취한 흥행사’로만 그린 통념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광고는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는 것을 사회에 전달하는 것이며, 그것은 의무이다’라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말처럼 레오폴트 역시 천재성을 가진 자녀(좋은 상품)를 세상에 소개하고 싶은 기업가로서 자신과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 기적의 아이를 가진 부모가 갖는 사회적 의무감 내지 책임에 충실했던 것뿐이라는 것이다.
실로 레오폴트는 고노스케와 드러커에 앞서 ‘돈벌이의 가치를, 광고의 중요성을, 기업의 목적은 고객창조’라는 사실을 아들에게 강하게 심어 준 경영자였다. 사회는 혁명이 아니라 연속과 변화를 통해 발전된다는 드러커의 말대로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에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음악과 혁신적인 음악 사이에서 적당히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고, 청중 수준에 따라 난이도가 다른 음악을 연주하게 함으로써 왕족과 귀족에서부터 부르주아 중산층, 전문가 그룹 등으로 고객층을 확대해 나가는 전략을 구사하게 했다’. 저자는 이런 면에서 레오폴트는 자상하고 엄격하고 또 정확했다고 진단하고 그를 일컬어 관계 지향적이면서도 과업 지향적인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분류한다.
■ ‘신동’에서 ‘지식 근로자’로 이어지는 5장에서 7장까지는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점차 벗어나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해 ‘지식 근로자’로 변모해 가는 아들 모차르트(2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시기 모차르트가 답해야 했던 질문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면 안 되는가?’, ‘나는 어디에 속해야 하는가?’로 요약된다.
1773년 17세가 되어 신동의 시대를 마감한 모차르트, 이제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작곡가에 불과한 그에게는 ‘나만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 시급했다. 이 시기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 5번, 교향곡 29번 등에서는 전통과 혁신, 밝은 음악과 어두운 음악, 장조와 단조를 연결시키는 모차르트 특유의 작곡법이 유난히 두드러지는데, 모차르트가 이미 갖고 있는 지식으로부터 산출량을 증가시킴으로써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모차르트는 이와 함께 ‘나는 누구인가’를 분명히 깨닫게 된다. ‘저는 시인이 아니기 때문에 단어와 구절을 예술적으로 배합해 시를 쓸 수 없습니다. 그리고 화가도 아니므로 명암의 효과도 낼 줄 모릅니다. 또 손짓과 몸짓으로 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줄도 모르구요. 무용가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음을 통해서는 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요. 저는 작곡가거든요…’(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지만 자아 정체성이 강해질수록 정해진 틀을 강요하는 잘츠부르크의 영주와 속박을 싫어하는 모차르트 사이에 갈등은 커질 수 밖에 없었고, 모차르트는 자신의 생산수단을 좀 더 높은 가격에 구입해 줄 고객을 찾아 외부를 엿보기 시작한다. 1777년 구직을 위해 떠난 만하임-파리 여행의 시행착오를 통해 모차르트는 ‘나는 어디에 속하면 안 되는가?’를 깨닫는다. 파리에서 안정되지만 음악이라는 재능을 가진 또 다른 종류의 하인 노릇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베르사유 궁전 오르가니스트 자리를 거부한 것이 대표적이다. 파리에서 병으로 어머니를 잃고, 만하임에서 첫사랑 알로이지아와의 사랑마저 무산되어 1778년 잘츠부르크로 되돌아온 모차르트는 이번에는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속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 ‘CEO 겸 이노베이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8장에서 11장까지는 1781년 잘츠부르크 영주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하는 혁신을 통해 ‘해방된 예술가’가 된 모차르트(2대)가 ‘주식회사 모차르트’의 CEO 겸 이노베이터로서 음악 사업을 전성기로 끌어올리지만, 많은 빚과 유작을 남기고 후계자를 양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빈은 굉장한 도시입니다. 특히 피아노의 도시입니다. 저의 직업으로 보자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입니다.’ 모차르트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빈은 ‘자유로운 예술가’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빈이라는 곳은 한 인간에 대한 평이 그다지 오래 가지 않는 ‘새로움만 쫒는’ 도시였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자신의 지식을 기여할 곳이 잘츠부르크가 아니라 더 큰 무대라는 사실을 알았고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이 없는 상태에서 과감히 잘츠부르크의 궁정음악가 지위를 포기했다. 기존의 자원이 갖고 있는 부의 창출능력을 변화시켰던 혁신가의 면모를 보인 것이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첫사랑의 여동생인 콘스탄체와 결혼하여 빈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 모차르트, ①지금까지는 고객만족을 위한 작곡을 했지만 자신이 수용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징슈필 ‘후궁으로부터의 탈출’ 초연 직후 ‘음표가 너무 많다’는 황제의 지적에 ‘꼭 필요한 음표만 있다’고 응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동시에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나는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가?’를 생각하며 돈은 벌지만 만족감이 없는 음악레슨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는 자신이 꼭 해야만 하는 작곡에 시간을 집중적으로 할애했다. ②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예약 연주회를 통한 고객창출’이었다. 1788년 여름에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26번이나 모차르트 교향곡 중 최고 걸작인 교향곡 39, 40, 41번 등은 타인의 주문에 따르거나 높은 사람에 헌정할 것을 목적으로 작곡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만족 또는 스스로 개최한 예약연주회를 위해 작곡한 것이다. 음악의 수요가 주로 왕족과 귀족, 그리고 대규모 교회에 국한된 18세기 후반 모차르트가 예약연주회를 개최한 것은 음악시장을 확대한 것이고 당시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부유해진 부르주아에게 음악을 공급한 것으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과 상통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하지만 1789년에 이르러 모차르트의 음악은 차츰 빈의 유행과 맞지 않았다. 투르크와의 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운 경제적, 정치적 상황 때문에 가벼운 음악만 찾던 빈의 음악애호가들은 조금이라도 난해한 작품들은 거들떠보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경제사정으로 인해 모차르트는 빈 시내에서만 몇 차례나 집세가 싼 집을 찾아 이사를 해야 했다. 1791년, 모차르트가 빈곤 속에 사망하자, 빈에 살고 있는 한 작곡가가 말했다. “물론 그 천재에게는 너무 안 된 일이지. 하지만 그가 죽었다는 건 우리로서는 잘 된 일이야.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이 세상 사람들이 정말 우리에게는 빵 한 조각도 주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모차르트의 재능을 각별히 아꼈던 하이든은 깊이 탄식했다. “후세 사람들은 앞으로 100년 동안 모차르트 같은 재능을 가진 음악가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 남은 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 12장과 13장은 모차르트가 죽은 뒤 남겨진 아들들(3대)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저자가 주목하고 그 역할을 높이 평가한 것은 그들의 어머니이자 모차르트의 아내였던 콘스탄체 모차르트이다. 흔히 가계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에 모차르트를 망쳤다고 폄하되는 여인이지만 근거가 빈약하며, 오히려 남은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수행함으로써 ‘음악기업가 정신’을 발휘한 공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모차르트 사망 당시 겨우 29세에 불과했던 콘스탄체에게는 7세의 카를 토마스와 4개월짜리 프란츠 크사버가 남겨졌다. 모차르트의 유산 정리와 각종 채권과 채무에 대한 처리도 모두 콘스탄체에게 맡겨졌다. 모차르트가 미완성으로 남긴 ‘레퀴엠’의 완성도 콘스탄체가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이 모든 과정에서 콘스탄체는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아웃소싱하거나 그 일을 잘 하는 사람의 협력을 받았다.
우선 콘스탄체는 레퀴엠의 미완성 악보를 마무리하도록 프라이슈타틀러, 아이블러, 쥐스마이어 등에게 차례로 위탁한다. 재능이 있다고 생전의 모차르트가 언급한 인물들이었다. 또 잘 알고 지냈던 멜크 수도원의 수도사 막시밀리안 슈타틀러의 도움을 받아 모차르트 작품 전집을 출판하는가 하면, 모차르트의 첫사랑이자 자신의 언니인 가수 알로이지아와 모차르트의 제자 에베를 등과 협력해 유럽 순회 연주여행을 기획했다.
결국 모차르트가 타계한 후 50년이나 더 살았던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남긴 빚을 모두 갚았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널리 알렸으며, ‘주식회사 모차르트’의 유산을 모차르테움에 맡겨 평범한 재능을 가진 자식들이 ‘모차르트’라는 이름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니메체크와 니센을 통해 모차르트의 전기도 남기게 한 다음 1842년 세상을 떠난다. 한편 음악가가 되지만 창조적 불꽃을 태우지 못했던 작은 아들 프란츠 크사버는 1844년에, 공무원으로 살았던 큰아들 카를 토마스가 1858년에 후손을 남기지 않고 각각 세상을 떠남으로써 ‘주식회사 모차르트’는 창업 96년만에 소멸한다. 하지만 저자는 주장한다. 비록 생물학적인 직계 자손은 아들들의 세대에서 단절되었으나,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의 ‘기업가 정신’에 힘입어 브랜드로서 ‘모차르트’는 오히려 불멸성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 불멸의 브랜드 ‘모차르트’ 드러커는 “패밀리 비즈니스는 ‘패밀리’가 비즈니스에 봉사할 때만 ‘패밀리’도 ‘비즈니스’도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가족이 경영하는 기업의 핵심적인 키워드는 ‘가족’이 아니라 ‘기업’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모차르트의 두 아들은 모차르트의 전기나 악보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요구하지 않았고, 또한 후손을 남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주식회사 모차르트’의 소멸이 모차르트의 이름과 작품이 지속 가능한 것이 되게끔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흥미로운 문제제기에 비해 경영학적 분석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모차르트에 대한 논의를 지식경영은 물론 가족경영에까지 확대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하겠으며, 방대한 자료조사와 적절한 픽션의 가미 등을 통해 모차르트 애호가나 비전문가 모두에게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줄 수 있다. 다만 수많은 작품이나 인물, 지명들이 등장하는 데 비해 관련 사진이나 지도, 작품목록, 연표, 인물 색인 등 부수자료가 없는 점은 차후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아마데우스’로 각색된 비운의 천재 모차르트 말고 ‘이노베이터 모차르트’의 삶에서부터 창조성과 혁신에 대한 단초를 발견하기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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