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심 시집 『혜초여, 부처의 눈을 저랑 같이 보아요』 출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한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 『불교문예』 시 부문, 2010년 『유심』 문학평론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어느 바위 동굴에서 모음을 익혔을까』, 시선집 『남편이 집을 나갔다』, 자전에세이 『현심이』, 문학평론집 『바이칼호수, 샤먼바위를 그리워하다』, 현장강의록 『안현심의 시창작 강의노트』 등을 펴냈다. 풀꽃문학상젊은시인상, 한성기문학상, 대전시인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롯데문화센터(대전점) ‘안현심의 시창작 아카데미’를 통해 활발한 창작 및 교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현심 시인의 열세 번째 시집인『혜초여, 부처의 눈을 저랑 같이 보아요』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웅숭깊은 연민과 온갖 사물들의 내재성을 탐구하고, 삶의 진실을 끝끝내 놓지 않으려는 시인의 태도가 그동안의 시집들에서처럼, 이 시집을 더욱 애정 어린 눈길로 다가가게 한다. 한마디로 ‘인생 경전을 해독하다’로 설명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시를 더 잘 쓴다고 한다
데이터를 수집하여 참신한 이미지를 생성해 낸다 해도 그것은 오롯한 네가 아니다
들여다볼수록 사람 냄새 나는 시,
그 지경을 그린다 - 「시인의 말」 전문
그렇기에 "들여다볼수록/ 사람 냄새 나는 시"라는 표현은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미학이라고 하겠다. '사람 냄새'는 단순한 감성이나 인간미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처와 결핍, 기억과 관계, 오랜 시간 속에서 축적되어 세밀해진 삶의 온도를 내포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정교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도, 살아낸 지난한 시간과 몸 깊이 애절하게 각인된 추억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시인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의 존재 이유를 규명하고, 시 창작에 대한 숭엄한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연 "그 지경을/ 그린다"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지경'은 도달하고자 하는 시의 경지로서 인간다운 삶과 시가 하나가 되는 예술적 궁구이다. 따라서 이 시집은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시가 무엇을 말하고 기록하고 전언할 수 있는가에 대한 뜨거운 성찰이면서, 동시에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언어를 끝까지 탐색하려는 시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보리밥에 비벼 먹던 메밀나물과 된장 고추장으로 무친 고구마 순을 생각하다가 재료도 손맛도 그때 것은 아니지만 미각을 더듬으며 나물을 무친다
시를 쓰듯이,
은유와 이미지를 끌어오고 긴장과 역설로 버무리는 동안
설렌다,
고즈넉이 다가올 처음의 맛 - 「시를 쓰듯이」 전문
「시를 쓰듯이」는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시처럼 읽히지만, 실제로는 시 창작의 본질을 탐구하는 근사한 메타시이다. 음식과 시, 손맛과 언어, 기억과 창작을 하나의 구조 속에 겹쳐 놓음으로써 시인은 예술이란 삶으로부터 분리된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생활 속 감각을 다시 빚어내는 과정임을 감미롭게 제시한다. 「시인의 말」이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시를 정의하고 규명했다면, 「시를 쓰듯이」는 그 해법을 생활의 장면으로 실천해 낸다. 인공지능이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시를 생성한다면, 시인은 기억과 손맛으로 언어를 버무린다. 이 작품에서 시는 몸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감각의 예술이며, 그 감각은 삶을 살아낸 인간만이 도달할 수 있는 고유한 창조의 영역임을 설파하는 것이다.
붓다를 만나려고 인도로 갔다지요?
고행하고, 깨닫고, 설법한 행적 위에 두 손을 모았나요?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모래폭풍 불어올 때마다 형형하게 일어서던 만년설 덮인 산맥, 빙벽은 영원의 법(法)을 말해주던가요? 서역 오만 리, 별자리 이고 걷는 발자국마다 올망졸망 피어났을 구도의 꽃, 그 꽃잎을 찾아 파미르고원 흙바람 속을 헤매고 있어요
혜초여, 부처의 눈을 저랑 같이 보아요 - 「혜초에게」 전문
이 작품의 미학적 성취는 거대한 역사와 광활한 풍광을 불러오면서도, 시선이 끝내 인간 존재의 내면을 향한다는 데 있다. 타클라마칸과 파미르고원, 그리고 서역 오만 리에 이르는 광대한 공간은 결국 마음속 구도의 거리로 환원된다. 진리는 애써 손을 뻗는다고 닿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머나먼 인생길을 구도자의 자세로 묵묵히 걸어 낼 때 중요한 것은 진리 그 자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이 달라지는 일이다. 다시 말해 진리는 길의 끝에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걷는 과정에서 존재의 시선이 변모하는 순간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처의 눈'은 불교의 '불안(佛眼)'이라는 교리적 상징을 넘어, 존재와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존재론적 시선으로 확장된다. 더불어 「혜초에게」의 고유성은 질문의 방향과 답변의 자세에 있다. “빙벽은 영원의 법을 말해주던가요?”와 “부처의 눈을 저랑 같이 보아요.”는 존재의 변화를 갈망하는 문장들이다. 이러한 탁월한 시는 실제로 삶에서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으려는 시인의 고유한 내적 체험에서 비롯된다. 마침내 이 시는 혜초를 매개로 오늘날의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나는가. 그리고 그 긴 여정 끝에서 당신은 부처를 만나려 하는가, 아니면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눈을 얻으려는가. 시인은 그 대답을, 계속 성장하기 위해 방황하는 독자들에게 스스로 찾도록 남겨둔 채 순례의 여정을 이어 간다.
브룬 호수를 찾아가다가 애액을 뿜어 올리는 음문(陰門)을 만났다
오동통한 불두덩을 맨발로 꾹꾹 눌렀더니
자지러질 듯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물줄기
파미르가 숨겨놓은 태초의 몸뚱이,
사막 한가운데서 눈뜨고 있었다 - 「간헐천」 전문
「간헐천」은 여행의 기록처럼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자연을 생명의 원형으로 다시 읽어내는 신화적 상상력의 시이다. 화자가 브룬 호수로 향하는 길에서 만나는 것은 파미르의 지형이 아니라 사막 한가운데서 눈뜨고 있는 '태초의 몸'이다. 사막은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아직도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거대한 육체로 변모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자연을 풍경 묘사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인은 지질학적 현상을 생명의 근원으로 읽어내고, 대지를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의 몸이라는 원형적 상징으로 확장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대지를 생명의 모태로 인식했던 고대 신화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으며,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지 않았던 원초적 사유를 오늘의 시 언어로 다시 불러내고 있다. 싱싱한 인생의 절정을 발견하게 되는 시이다.
--안현심 시집, 『혜초여, 부처의 눈을 저랑 같이 보아요』 , 도서출판 지혜, 값 12,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