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후랑크 백(본명 김원주)은 감정이 풍부하고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로
1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1990년 세상을 비관해 부산 북구 구포다리 인근에서 스스로 생을 포기한
비운의 사나이다.
♪ 초량동 45번지 - 후랑크백
울면서간다 부산항구 정이들은 부산항구
정든사람 못잊을사람 뒤에두고 나는갑니다
울리는 뱃고동에 사랑만은 무정터라
아 ~
불꺼진거리 항구의밤 초량동 45번지
고동이운다
부산항구 떠나간다 부산항구
쓸쓸하다
허허벌판에 고독한밤 달랠길없네
그사람 어데가고 정든집은 어데갔나
아 ~
울려만주네 부산의밤 초량동 45번지
60년대 중반 가수 후랑크백이 노래한 부산 동구 초량동 45번지는
부산의 원주민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으면서도 시내에서 가장 빈민이 많은 곳이 동구 일대이다. 초량동 45, 수정동 79, 범일동 252의 9번지 등 해안통을 끼고 있는 세칭 매축지 일대의 판자촌이라면 시내 영세민들의 집결지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 지방이 가난한 채 별다른 발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해방 후 일본에서 돌아온 영세민들이 그곳에 많이 정착했다는 점과 부두, 철로를 끼고 있다는 지역적인 나쁜 조건에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으나 가난한 마을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회의 암」이 더욱 많이 생겨났으며 쉽게 없어지지 않고 있다. 6·25동란 직후만 해도 석탄, 목재, 군수품 등을 상대로 하는 세칭 「얌생잇군」들과 폭력배들 때문에 밤이면 경찰도 발을 들여놓기를 꺼려한 무법천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깡패=초량 일대를 근거로 한 「참피온」파, 고관 입구의「해피」파, 매축파 등을 비롯하여 체계는 없으나 초량2동회 일대를 날뛰는 패, 초량역전을 무대로 한 깡패 및 자성대 방면에서 날뛰는 깡패「클럽」 등 5, 60명을 헤아리고 있는데 전부가 20세 안팎이다.
그 중 김상신(20=구속 중)을 두목으로 20여 병으로 구성된 「참피온」파가 가장 강하며 그들은 종종 돈에 팔려 다니기도 한다. 고관 입구의 「해피」파는 거의 해체되었으나 정수영(가명=19)군을 위시한 10여 명의 잔류파가 그대로 횡포를 부리고 있으며 구속 중인 윤한○을 두목으로 한 7, 8명의 매축파 역시 밤길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 밖에 주로 사창을 무대로 날뛰는 체계 없는 깡패들 및 영세상인들을 등치는 조무래기 깡패들은 숫자마저 파악 못하고 있다. 지난 2일 범일동 노점상인 김순이(35)씨 외 3명을 무조건 때려 누였다가 구속된 이영기(가명=19) 등이 그 일례다.
◇사창=초량동 중앙극장 앞에서 범일동 철로 건널목 부근까지의 간선대로변에 거의 빈틈없이 자리 잡고 있는 사창들은 어쩔 수 없는 「암」으로 되어버렸다. 간선도로 이외에 동구 일대의 창녀들은 초량동 뒷골목, 매축지 일대 등 무려 6, 7백 명(경찰통계는 250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가끔 하는 경찰의 단속은 도리어 창녀들의 빚만 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창녀구제의)이 없는 한 이 심각한 사회악은 없어질 가망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무허가 하숙집=초량역전을 비롯하여 수정동 일대 및 동부산경찰서 뒤에서 좌천동 산비탈 일대에 이르기까지 무허가 하숙집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어린 「펨퍼」들은 바로 경찰서 옆에까지 나와서 진을 치고 있으며 지나는 사람들을 덮어놓고 끌고 있는 실정이다. 보통 사창을 겸한 무허가 하숙이 많으나 그렇지 않은 곳이라도 각종 범죄나 비극의 소굴처럼 변하고 있다.
그 예로서 지난달 27일 10대의 남녀가 정사를 한 곳이 좌천동 812의 22 무허가 하숙집이었던 것이다. 하룻밤 5백 환만 지불하면 어두컴컴한 방에서 어떤 나쁜 일도 꾸밀 수 있는 이 무허가 하숙은 관으로부터 완전히 방임상태에 놓여있다.
◇이 밖에 범일동, 초량동, 수정동 등 각 시장마다 집결된 노점식당 등은 허가 받은 영업(?)처럼 묵인되고 있으며 특히 4·19 이루 늘어난 무허가 건축은 거의 공공연하게 세워지고 있다. 4월 이후 동부산서에서 적발, 구청에 고발한 무허가 전축물만 하여도 83건에 달하나 구청에 의하여 철거된 것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1960년대 초 부산일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