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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티안(Vientiane)/왓 파깨우(Wat Pha Kaew), 호 파케우(Ho Phakaew)
※ 그림을 Click하면 조금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왓 파깨우(Wat Pha Kaew)위치도 ‘호 파케우(Ho Phrakaew)’는 1565년 수도를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옮길 때 에메랄드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지은 왕실 사원이었다. 그러나 1779년 태국 샴 왕국의 짝끄리장군(라마 1세)이 비엔티엔을 점령하여 건물이 소실되고 전리품으로 에메랄드 불상도 약탈당했다. 현재 ‘호 파케오(Ho Phrakeo)’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현재 방콕왕궁 내 왓프라케우사원(일명 에메랄드사원)의 에메랄드불상을 이곳에 모시고 있다가 1779년 태국의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왓 파깨우’라고 불린 것은 에메랄드 불상이 있을 때이고 지금은 ‘호 파케우’라고 불린다. 이곳 왕실 사원에서 약탈한 에메랄드 불상은 현재 태국의 국보 1호로 지정되어 방콕의 왕궁사원인 ‘왓 프라깨오(Wat Phra Kaew)’에 모셔 전시되고 있는데, 이 사원은 에메랄드사원(Temple of the Emerald Buddha)이라고 불리며 공식 명칭은 왓 프라시랏타나삿사다람(Wat Phra Sri Rattana Satsadaram)이다. 현재의 건물은 1936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에 의행 복원되었다. 본당은 왕실의 여러 불교행사를 치르던 곳이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여 라오스 각지에 흩어져 있던 불상을 전시해 놓았으며 건물의 회랑에도 불상이 놓여져 있다. 건물의 외부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나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하다. 본당에 입장시 신발을 벗고 입장하여야 한다.
입구에서 양손을 마주 뻗어 하이파이 하는듯한 수인을 한 불상은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불상'이다.(두려움을 가져가는 불상) 두려움을 없애는 불상은 손바닥에, 비를 부르는 불상에는 팔과 발에, 소원을 비는 불상은 발과 무릎에 뭇사람들이 수 없이 만진 흔적이 엿보인다.
손을 길게 아래로 뻗은 불상은 비를 부르는 불상으로 입구에 모두 4개가 있다. 농본사회였던 라오스에는 비는 신이 관장하는 영역으로 믿었기에 비가 오지 않을 때 비를 부르는 불상이 필연하였다. 가지런히 손을 모아 소원을 비는 불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밑에서 애타게 소원을 빌었기에 몸체가 반들반들하다. 17세기 귓볼이 길고 키가 작은 라오스 양식의 불상과 손가락이 긴 수코타이 양식이 결합되었다는 이 불상의 모습은 수려하면서도 인자한 모습이다. 문의 문양에는 원숭이가 압사라신을 떠 받치고 있는 부조이다.
진열된 대부분의 불상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불상의 수인(手印: 손모양)은 각각 형태가 다른데 부처가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을 상징하는 수인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항마인(降魔印), 촉지인(觸地印), 지지인(指地印)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 앉아 성도(成道)할 때 악귀의 유혹을 물리친 증인으로 지신(地神)을 불러 자신의 깨달음을 증명하였다는 내용에서 유래되었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결가부좌한 다리 가운데에 놓고 오른손은 무릎 밑으로 늘어뜨리면서 다섯 손가락을 편 모양이다. 이 수인은 반드시 결가부좌한 좌상만이 취하는 것으로 입상이나 의상(倚像)에서는 볼 수 없다. 17세기 귓볼이 길고 키가 작은 라오스 양식의 불상과 손가락이 긴 수코타이 양식이 결합된 불상의 모습이다. 손 모양이 특이하다. ▲ 양손을 앞으로 내밀어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불상과 양손을 애래로 뻗은 비를 내려준다는 불상
▲ 왓 파깨우(Wat Pha Kaew)에서 담장 틈으로 보이는 대통령궁 Tip ☞ 에메랄드 불상(Emerald Buddha ; 파케오(Pha Kaew) 기원전 인도 북부에서 녹색 옥(玉)으로 만들어진 에메랄드불상은 캄보디아왕국으로 건너 왔다가 1434년 야유타야(태국)국왕에게 선물로 전달되었고 버마의 야유타야 침공으로 사라졌다가 1세기 이후 태국북부에 홍수가 나면서 치앙싸엔에서 발견되어 치앙라이, 치앙마이로 옮겨 다니다가 1551년 치앙마이왕조가 황태자가 없는 상태에서 왕이 승하하여 라오 란쌍(라오스)왕과 결혼한 치앙마이공주의 아들, 세탓띠랏 왕자로 하여금 치앙마이왕조의 왕위를 계승하나 1년 후 라오 란쌍(라오스)의 왕이 승하하자 조국으로 돌아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에메랄드불상을 루앙프라방으로 가져갔다. 12년 후 1564년 필마쿤의 침공으로 수도를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엔으로 천도를 하고 1565년 이곳 왓 프라케우(사원)를 지어 에메랄드불상을 214년 동안 안치했다고 한다. ▲▼ 태국 방콕의 에메랄드사원(Temple of the Emerald Buddha) '에메랄드 불상(Emerald Buddha)' 아누웡(라오스 마지막 왕)은 란쌍 지역의 완전한 자주 독립을 달성하려 하였고, 마침내 1826년 시암(태국)에 대항한 전면적인 전쟁에 돌입하였다. 아누웡은 1827년 시암령 코랏 분지 지역으로 진격하여 시암 동부/북동부의 주요 도시 나콘라차시마를 점령하고, 수도 방콕에서 108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역인 중부의 사라부리까지 일시적으로 진격해 들어갔으나 곧 물러났다. 결국 절대적인 군사력의 한계에 직면한 비엔티안군은 시암 북동부 우돈타니 지역에서 벌어진 우돈타니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대패하여 와해되고 말았다. 시암군은 역으로 비엔티안까지 진격하여 도시를 초토화하였다. 이에 아누웡은 일단 베트남으로 도망쳤다.
전투에서 패배하고 몸을 의탁했던 란쌍 지역 내 씨앙쿠앙 왕국(비엔티안 왕국-베트남 경계에 존재했던 비엔티안 왕국-베트남의 속국) 왕의 배반으로 시암군의 포로가 된 아누웡은 방콕으로 끌려가 비참하게 사형되었다. 1779년 태국 샴 왕국의 짝끄리장군(라마 1세)이 비엔티엔을 점령하여 건물이 소실되고 전리품으로 에메랄드 불상도 약탈당했다. 태국을 침공한 라오스에 대해 대노한 태국의 왕이 라오스를 피로 물들이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하여 비엔티안의 모든 사찰을 파괴하고 국민들을 마구잡이로 살육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을 보고 도망갔던 라오스의 왕이 직접 태국의 왕을 찾아가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므로 국민들을 용서하시고 저를 벌하소서’라고 말하였다. 이에 아직까지 분이 풀리지 않은 태국의 왕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라오스의 왕을 돼지우리에 가두게 하였다. 그런데 돼지들은 돼지죽을 입으로 먹는데 라오스의 왕은 앉아서 손으로 죽을 먹는 것이다. 이것을 본 태국의 왕이 신하를 시켜 손목을 자르게 하였다. 그 뒤부터 돼지와 같이 입으로 돼지죽을 먹다 그만 죽고 말았다. 이것을 보고 측은히 여겨 더이상 라오스를 침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내판에 있는 내용을 해석하면 ‘호프라케오는 라오란쌍왕국의 위대한 왕인 세탓띠랏왕의 의해 단지 에메랄드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1565년 건립이 되었다 에메랄드불상은 1779년 이후는 국외(태국)로 반출되었고 지금은 고대유물수집이나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라고 되어 있다. ▲▼ 왓 파깨우를 관람하고 살짝 돌아서면 담장 옆으로 라오스 대통령궁과 마주한다. ▲ 라오스 대통령궁(Laos Presidential Palace) 라오스에는 유일한 합법 정당인 라오스 인민혁명당(Lao People's Revolutionary Party)이 잇고 행정권은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각료회의기 가지고 있다. 현재 라오스 인민혁명당 서기장이자 대통령은 ‘분냥 보라치트’이다. 대통령궁은 갈색섞인 연회색건물에 흰색으로 포인트를 주고 황금색 장식이 들어가 수수한 느낌이다. 라오풍의 세 개 뾰족한 탑이 포인트다. 빠뚜싸이 독립기념문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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