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침부터 회사일이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3년만에 재회하게 되는 도쿄로의 여행이 하루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차장님이 회의 때문에 하루종일 자리를 비우셨다.
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장님의 보호 아래 서울시청 인근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출국 시간은 아침 6시 50분
어차피 퇴근 이후에 할 일도 없기 때문에 공항철도 마지막 행을 타고 미리 인천국제공항에 머물렀다.
비행기를 탄다는게 사실만으로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그렇게 들뜬 마음을 품고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나리타 익스프레스 열차에 몸을 실었다.
처음에는 도쿄행 열차를 알맞게 탔는지 의심이 들었다.
열차의 창밖으로 마주한 일본 시내의 모습이 내가 알고 있던 도쿄의 모습과는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스쳐가는 2층 주택가와 시골 풍경이 정말 낯설었다.
1시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나에게 점점 다가온 도쿄 스카이트리의 회색빛 모습을 보고 내가 정말 도쿄에 왔다는 걸 실감했다.
창밖으로 잠깐 스쳐간 도쿄와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의 열차는 곧장 요코하마로 향했다.
[바샤미치]
개항 후 요코하마로 몰려든 서양인을 위해 마차와 인력거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을 정비하고 가로수를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길을 馬車道(바샤미치)라 부르게 되었다.
1872년 설치된 일본 최초의 가스등이 지금도 바샤미치에는 기념물로 남아 있다.
단지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 즐거운게 여행이다.
음악 소리를 따라 걷다 마주한 가나가와현립역사박물관 앞에는 자신의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들이 있었다.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 가만히 서서 음악을 감상했다.
'가만히 머무르기'
학생때보다 더 바빠진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거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일까?
아니면 평범한 직장인인데 주말에는 자신의 취미를 즐기는 사람일까?
어찌되었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장기를 뽐내는 모습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라 대단하게 느껴졌다.
바샤미치가 낳은 일본 최초의 기록
거리의 이름에 말 마 한자가 들어간 것처럼 말 조형물과 문양이 거리를 꾸미고 있었다.
가스등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있던 할아버지가 계셨다.
지나가던 어린 초등학교 학생들이 할아버지의 그림을 보고 연신 감탄을 내뿜었다.
가이드를 따라 바샤미치 거리를 탐방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셨다.
자칫 특별한게 없어 보이는 이 짧은 거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비범한 무언가를 탐색하고 있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가하니 너무 좋았다.
많은 직장인들, 미세먼지, 시위꾼, 그리고 자동차가 정신을 어지럽히는 광화문 거리와는 대조적이었다.
퀸즈스퀘어 요코하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옆에는 요코하마 랜드마크타워가 군림하고 있었다.
요코하마 월드포터즈 사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데이트를 즐기러 거리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요코하마 아카렌가소코
당시 해상 무역을 통해 오가던 화물을 보관하는 붉은 벽돌로 만든 창고를 가리키는 말이다.
노스탤지어
요코하마 사람들은 이 붉은 창고를 볼때마다 회고의 정을 느낄까?
살면서 처음으로 크루즈 배를 마주했다.
이렇게 크다니!
크루즈 배 옆으로 작은 여객선이 이동하고 있다.
잔디밭 벚꽃나무 아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카렌가소코에 들어가 요코하마 상징물이 그려진 냉장고 자석을 샀다.
난 항상 여행지를 뒤적거리다 냉장고 자석을 발견하면 바로 구매했다.
아카렌소코에는 기념품점 말고도 다양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었다.
그중 나의 눈길을 끈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오므라이스 계란을 만들어 멋지게 그릇에 담아내는 요리사가 있었다.
밥 위에 계란을 올리는 것 뿐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오산바시 국제여객터미널
크루즈를 따라 걷다 여객터미널까지 오게 되었다.
배 말고는 별거 없는 이곳이 잠시후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줬다.
이곳까지 멀리서 걸어온 이유 중 하나가 이 붉은 벚꽃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 였는데
가까이 다가와 보니 조형물이었다.
요코하마의 랜드마크가 전부 보인다.
밤이 찾아오면 다시 이곳에 와 야경을 품어야 겠다.
저녁을 먹기 위해 여객터미널에서 내려왔다.
이름모를 교회 앞에 만개한 벚꽃을 담으려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나 또한 카메라에 연신 벚꽃을 품었다.
이때까지는 벚꽃이 지겹진 않았다.
일본은 왜 럭비를 좋아할까?
럭비 대회가 요코하마에 열린다고 온갖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잘 정비된 도로
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수제버거를 메인으로 팔고 있었는데 딱히 끌리지가 않았다.
일본적인 음식이 아니라서 그런거 같다.
수제버거야 뭐... 홍대에도 참 많다.
난 다시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다시 여객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노란 수건을 공짜로 나눠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왜 수건을 나눠주는지 몰랐다.
그냥 공짜로 줘서 기분이 좋았을 뿐이다.
한시간 남짓의 매직아워에 맞춰 자리를 잡았다.
그때 뒤에서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고
여객터미널을 마주하고 있는 두 크루즈가 큰 소리를 내며 서로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 그래서 수건을 나눠준거구나!
떠나는 쿠르즈의 선장들이 마지막 안부를 전하는 사람들에게 큰 손을 흔들며 반겨주고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크루즈에 타고 있던 서양인들도 손을 연신 흔들고 있었다.
떠나는 크루즈의 이름이 나에게 익숙했다.
'나우시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영화가 떠올랐다.
작은 구조선은 물을 높이 내뿜으며 떠나는 크루즈에게 인사했다.
안녕~! 나우시카!
1854년 일본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요코하마 항을 개항했다.
그 이후로 대표적인 항만 도시로 성장한 요코하마
개항 150주년을 넘긴 요코하마는 일본 최대의 국제무역항이자 관문이다.
요코하마의 역사는 일본 개항의 역사이다.
1863년 5월 요코하마
한 무리의 일본 청년들이 밀항을 시도했다.
그들의 목적은 상해를 거쳐 영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 무리에 선 22살의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은 일본 근현대의 풍운아였지만, 나중에 안중근 의사에게 하얼빈역에서 저격당한다.
이토 히로부미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는 요코하마의 야경을 연신 카메라로 찍어댔다.
옛날에는 몰랐다.
아름다운 야경 아래에서 꼭 또 오겠다고 다짐해도
다시 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첫댓글 1등
역시 형님!
정성글 감사 :) 나중에 다시 정독할께 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캐논 EOS 80D 입니다.
캬 ㅋ 멋지다 나도 9월에 요코하마 가 ㅋㅋ 참고할께 ㅋ
개꿀잼
믿고 보는 석율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