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캘리' 배워요, 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그냥 옛날식의 붓글씨를 배우는줄 알았다.
그래서 누군가 잠시 캘리를 배우고서는 벼룩시장에 직접 쓴 글씨를 들고 나와 팔겠다고 해서
속으로 '응? 그렇게나 빨리?' 놀라기도 했다.
캘리가 그냥 몇 달 연습한 끝에 나올 수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옛날식 글씨를 제법 보기좋게 쓰려면, 화선지에 지렁이 지나듯 줄긋기를 한 달,
동그라미 그리기를 한 달, 네모그리기를 한달, 정도하면서 손이 붓대를 잡고
그 얇은 화선지에 먹물이 배어나가지 않도록 붙잡으면서
흐물흐믈한 붓 끝을 제대로 놀리는 법을 익혀야하니까.
그 후에도 짧은 가로선, 세로선, 사선등을 그으며서 또 세월아 네월아...
그러다 지난 가을, 9월 쯤, 소위 '캘리'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나서는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의 캘리라며 '멋지지않아?' 자랑삼아 보여주었을 때
내가 뭘 모르고, '글씨 꼴 좀 되려면 몇 년은 더 써야겠는걸,'
하고 말한 것은, 자신의 캘리를 내게 보여준 그 사람에게는 큰 실례가 되었다.
그리고 든 생각이
'그래, 그렇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서예( 영어로 캘리그라피)를 하면서 글씨쓰기를 습득하는 일은 일단 지루한 과정이다.
기초를 익히고, 누군가의 글씨체를 수도없이 따라하면서, 글꼴인지, 문체인지를 흉내내다,
조금의 칭찬이라도 들으려면 수년 세월 정도는 우습게 흘렸을 것이다.
그러니 요즘처럼 빠르고 급한 세상에 그런 더딘 성과를 기다리며 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테고,
업계의 영리한 사람 몇이 속성 과정을 개발해낸 것이다. 그리고 그걸 캘리라고 부른다.
캘리그라피가 캘리로 변하고, 사람들은 캘리 탄생의 역사나 의미(?) 같은 것은 관심도 없이
한 달 혹은 두달 후에 만들어낼 예쁜 글씨 따라하기에 여념이 없다.
어제는 캘리를 가르치는 분한데 ,서예는 얼마나 하셨어요, 물었다. 내가 들은 답,
'서예 아니고요, 캘리예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
캘리 수련을 하던 학습자가 선생님께 묻는다,
'선생님, 이건 무슨 글씨예요? '라'인가요? '랴'인가요,
글씨를 본 선생은
'이 글씨는 잘못되었어요,' 라고 말한다.
문제해결도 캘리만큼 간단하고 빠르고 경박하다.
표본 글씨를 보니, 멋들어지게' 똘레랑스', 라고 써있다.
'ㅅ' 의 왼쪽 획이 '랑'의 'ㅏ' 의 우측 획' -'과 붙어 있어서 읽히지가 않았나보다.
똘레랑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냥 지나가기 뭣해서, 내 스타일대로,
'아, 이 단어는 프랑스말이예요. 똘 레 랑 스, 관용이라는 뜻입니다.'
캘리그라피보다 캘리가 유행인 세상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