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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이순보(李純甫)의 조동종(曹洞宗) 묵조선(黙照禪)
2026년 8월 30일
현재 일반적 견해에 따르면 남송 지역에서는 임제종(臨濟宗) 간화선(看話禪)이 정좌(靜坐)를 배척하고 성리학에서는 朱熹(1130-1200)가 정좌를 반대하였습니다. 금나라 지역에서는 조동종(曹洞宗) 묵조선(黙照禪)이 참선을 주장하고 성리학에서 이순보(李純甫, 1177-1223)가 정좌를 긍정하였습니다.
이순보는 『歸潛志』와 『金史』의 「李純甫」 열전에 실렸듯이 20살(1197)에 진사에 합격하였고 중년(30살 이후)에는 날마다 선승과 학생들을 만나고(日與禪僧、士子游) 만년에는 불교 서적을 탐구하였습니다.(晚年喜佛,力探其奧義) 특히 『楞嚴經』과 『金剛經』 및 노장을 연구하였고 말하였는데 실제로는 조동종(曹洞宗)의 묵조선(黙照禪)을 배웠습니다.
이순보가 주석을 달았다는 『능엄경』은 천태종 지자대사(智顗)가 서쪽을 바라보며 바랐던 경전이며 당나라 말기 이후부터 북송 시기에 널리 보급되어 유불도 삼교의 참선 공부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금강경』은 『육조단경』과 함께 선종에서 중시하던 경전입니다.
이순보 자신은 유마힐(浄名)과 장자(莊周)를 본받았다고 스스로 말하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편찬한 『中庸集解』가 “中國心學”이고 『鳴道集解』이 “西方文教”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순보가 만났다는 중요한 스님은 금나라에서 조동종(曹洞宗)을 주도하였던 만송행수(萬松行秀, 1166-1246, 曹洞宗, 十四世) 선사와 그의 사법제자(嗣法弟子) 소림사(少林寺) 주지(재임 기간 1215-1222년) 지융(志隆, 號東林) 선사입니다.
이순보(李純甫, 1177-1223)는 금나라 문단을 주도한 조병문(趙秉文, 1159-1232)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야율초재(耶律楚材, 1190-1244)도 만송 스님을 소개받아 찾아와서 배웠습니다. 조병문. 이순보, 야율초재 세 사람 모두 만송 스님의 재가 제자이며 서로 가깝게 지냈습니다.
이순보는 우연히 형태(邢台)에서 만송 선사를 만나 곧바로 조동종을 믿고 묵조선을 배웠습니다.(『五燈全書』,卷六十一,曹洞宗,報恩秀禪師法嗣:“偶遇萬松秀于邢台(1129年復稱邢州),一言之下,遂獲契證。”) 만송 스님은 조동종 스님이며 묵조선을 주장하고 고위 관원과 지식인과 잘 사귀며 묵조선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야율초재(耶律楚材, 1190-1244)의 말처럼 만송 스님은 유가와 불교 모두 잘 알았습니다.(“儒釋兼備”)
이순보는 지융 선사를 비롯하여 만송 선사의 제자들과도 가깝게 사귀었습니다. 지융 선사가 달마(達摩)대사 면벽암(面壁菴)을 재건(重修)하고 이순보(1177-1223)가 43살(1220)에 기념하는 「重修面壁菴記」를 지었습니다. 또 45살(1222)에는 만송행수의 어린 제자 설정복유(雪庭福裕, 1203-1275, 嵩山, 少林寺, 曹洞宗, 十五世) 선사의 서사(西舍)를 기념하는 「新修雪庭西舍記」 비문을 지어주었습니다. 이순보는 2편 글을 이어서 쓰면서 달마대사의 공헌을 찬양하고 불교 반대론을 반박하였습니다.
묵조(墨照)는 정혜(定慧)와 같은 말입니다. 어느 때는 정(定)이 혜(慧)보다 앞서고 어느 때는 혜(慧)가 정(定)을 앞서기도 합니다. 두 발이 각기 앞으로 나가듯이 반드시 둘이 나란히 나가지 않습니다. 사량좌가 이정(二程) 문하에서 정좌(靜坐)를 배우면서도 정명도가 말한 인(仁)에서 지각(知覺)도 중시하였습니다.
이순보는 사량좌 어록 조목마다 평론하면서 어느 조목은 높이 평가하고 어느 조목은 부족한 뜻을 보탰습니다. 이순보는 자신의 불교 지식과 참선 경험이 사량좌보다 높다고 보았습니다.
이밖에 사량좌(1050-1103)의 정중심토(靜中尋討) 방법은 북송 말기 동시대에 활동한 조동종 부용도해(芙蓉道楷, 1043-1119) 선사가 정조(定照) 겸수를 위하여 내놓은 공안과 서로 닮았습니다. 북송 말기(휘종 연간)에 조동종을 부활시킨 부용 도해(芙蓉道楷, 1043-1119) 선사는 불멸하는 영혼(佛性)을 깨달으려면 서적을 읽어 이해하지 말고(莫向經卷冊子上尋求) 우주가 생성되기 이전의 모습을 알아야 한다(若向空劫時悟明自己)는 공안(如何是空劫已前自己?)을 냈습니다. 휘종은 도해 선사에게 “정조선사(定照禪師)” 법호를 내렸으나 선사가 받지 않았습니다. 도해 선사의 공안은 단하 자순(丹霞子淳, 1064-1117)와 진헐 청요(真歇清了, 1088-1151) 두 선사를 거쳐 굉지 정각(宏智正覺, 1091-1157) 선사에 내려가서 묵조선(黙照禪)이 되었습니다.
금나라가 점령한 북쪽 지역에서 불교가 성행하기 앞서 거란(遼)에서는 더욱 성행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소철(蘇轍)이 1089년에 거란에 사신 가서 “불교가 성행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북송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보았답니다.
(『奉使金鉴续编』,卷二十五下:“然契丹之人,緣此誦經念佛,殺心稍悛,此蓋北界之巨蠹,而中朝之利也。”)
또 원나라 세조(忽必烈)가 즉위하기 이전 1247년에 금나라 출신 관원 장덕휘(張德輝, 1195-1274)에게 “요나라는 불교 때문에 멸망하고 금나라는 유학 때문에 멸망하였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물었습니다. 장덕휘는 “요나라 멸망 원인은 모르겠으나 금나라는 무신(武臣)과 귀족이 권력을 잡았고 오히려 유신(儒臣)이 적었기에 멸망하였습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元史』,卷五十,「張德輝傳」︰(忽必烈)又問:“或云:‘遼以釋廢,金以儒亡’,有諸?”(張德輝)對曰:“遼事,臣未周知,金季乃所親睹。宰執中雖用一二儒臣,餘皆武弁世爵,及論軍國大事,又不使預聞,大抵以儒進者三十之一,國之存亡,自有任其責者,儒何咎焉!”
최근 일부 연구에 따르면 요나라 도종(道宗, 생졸 1032-1101년, 재위 1055-1101년)에 전체 인구 1,000만 명에서 승려가 36만 명이며 3.6%를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북송에서는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승려 비율이 0.9%였다고 합니다. 아무튼지 거란에서는 승려 숫자도 많을 뿐만 아니라 불교 건물과 행사에 많은 재정을 지출하여 국력 쇠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이러한 소문을 보면 북송 시기에 북쪽 지역에서는 불교가 성행하였고 요나라와 금나라 지역에서도 더욱 성행하였습니다. 따라서 금나라에서 조동종 묵조선이 유행하고 이순보가 묵조선을 배우고 성리학에서 정좌를 긍정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고려 시기에 원나라에 사신을 가거나 외교 문서를 주고받을 때 거란 출신 야율초재 또는 금나라 출신 관원들과 교류한 자료를 보면 고려 관원과 지식인이 삼교(三敎, 儒佛道)에 밝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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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秉文(1159-1232)
萬松行秀(1166-1246)
雪庭福裕(1203-1275)
東林志隆(少林寺 주지 재임기간 1215-1222年)
李純甫(1177-1223)
耶律楚材(1190-1244), 東林志隆과 함께 萬松行秀에게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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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1、『歸潛志』(元、劉祁),卷一,「李純甫」
2、『金史』,卷一百二十六,「李純甫」
3、李純甫,「重修面壁菴記」(1220年 作文)
4、李純甫,「新修雪庭西舍記」(1222年 建碑)
5、淸、全祖望,「雪庭西舍記跋」
6、『五燈全書』,卷六十一,曹洞宗,青原下二十三世,報恩秀禪師法嗣
7、耶律楚材(1190-1244),「萬松老人評唱天童覺和尚頌古從容庵錄序」
8、天童正覺(1091-1157),「默照銘」,「坐禪箴」
1、『歸潛志』(元、劉祁),卷一︰
李翰林純甫,字之純,宏州襄陰人。祖安上,嘗魁西京進士。父采仲文,卒于益都府治中。
公幼頴悟異常兒,初爲詞賦學,後讀『左氏春秋』,大愛之,遂更爲經義學。踰冠,擢高第,名聲赫然。爲文法『莊周』、『左氏』,故其辭雄奇簡古,人皆宗之,文風由此一變。又喜談兵,慨然有經世心。泰和南犯,兩上疏策其勝負,章宗咨異,給送軍中,後多如所料。宰執奇其文,薦入翰林。及北方兵起,又上疏論事,不報。
宣宗南渡,再入翰林。時丞相珠格高琪(1154-1224)【案︰珠格,舊作朮虎,今改。】擅權,擢爲左司都事。公審其必敗,以母老辭去。俄而高琪誅死,識者智之。再入翰林,連知貢舉。正大(1224-1232)末,由取人踰新格,出倅坊州。未赴,改京兆府判官,卒於南京,年四十七。
公爲人聰敏,于學無所不通。少自負其才,謂功名可俯拾,作「矮柏賦」,以諸葛孔明(181-234)、王景略(王猛,325-375)自期。由小官上萬言書,援宋爲證,甚切。當路者以迂闊見抑,士論惜之。
中年,度其道不行,益縱酒自放,無仕進意。得官未嘗成考,旋即歸隱。居閒與禪僧、士子遊,惟以文酒爲事,嘯歌袒裼,出禮法外,或飲數月不醒。人有酒見招,不擇貴賤必往,往輒醉。雖沈醉亦未嘗廢著書。至于談笑怒駡,燦然皆成文理。天資喜士,後進有一善,極口稱推,一時名士皆由公顯于世。又與之拍肩爾汝,忘年齒相歡,教育撫摩,恩若親戚。故士大夫歸附,號爲當世龍門。嘗自作「屏山居士傳」,末曰:“惟喜推借後進,如周嗣明、張瑴、李經、王權、雷淵、余先子【姓名劉從益】、宋九嘉皆以兄呼。而居士使酒玩世,人忤其意,輒嫚駡之,皆其志趣也。”
其自贊曰:“軀幹短小而芥視九州,形容寢陋而蟻虱公侯,言語蹇吃而連環可解,筆札訛癡而挽回萬牛。寧爲時所棄,不爲名所囚。是何人也耶?吾所學者,浄名、莊周。”
晚自類其文,凡論性理及關佛、老二家者,號内稿;其餘應物文字,如碑志詩賦,號外稿,蓋擬『莊子』内外篇。又解『楞嚴』、『金剛經』、『老子』、『莊子』。又有『中庸集解』、『鳴道集解』,號爲中國心學,西方文教,數十萬言。
嘗曰:“自莊周後,惟王績、元結、鄭厚與吾。此其所學也。”
每酒酣,歷歷論天下事,或談儒、釋異同,雖環而攻之,莫能屈。世豈復有此俊傑人哉!
2、『金史』,卷一百二十六,「李純甫」︰
李純甫,字之純,弘州襄陰人。祖安上,嘗魁西京進士。父采,卒於益都府治中。純甫幼穎悟異常,初業詞賦,及讀『左氏春秋』,大愛之,遂更爲經義學。擢承安二年(1197)經義進士。爲文法莊周、列禦寇、左氏、『戰國策』,後進多宗之。
又喜談兵,慨然有經世心。章宗南征,兩上疏策其勝負,上奇之,給送軍中,後多如所料。宰執愛其文,薦入翰林。及大元兵起,又上疏論時事,不報。
宣宗遷汴,再入翰林。時丞相高琪(1154-1224)擅威福柄,擢爲左司都事,純甫審其必敗,以母老辭去。既而高琪誅,復入翰林,連知貢舉。正大(1224-1232)末,坐取人逾新格,出倅坊州。未赴,改京兆府判官。卒於汴,年四十七。
純甫爲人聰敏,少自負其材,謂功名可俯拾,作「矮柏賦」,以諸葛孔明(181-234)、王景略(王猛,325-375)自期。由小官上萬方書,援宋爲證,甚切,當路者以迂闊見抑。中年,度其道不行,益縱酒自放,無仕進意。得官未成考,旋即歸隱。日與禪僧、士子游,以文酒爲事,嘯歌袒裼,出禮法外,或飲數月不醒。人有酒見招,不擇貴賤,必往,往輒醉,雖沉醉,亦未嘗廢著書。然晚年喜佛,力探其奧義。自類其文,凡論性理及關佛老二家者號“內稿”,其餘應物文字爲“外稿”。又解『楞嚴』、『金剛經』、『老子』、『莊子』。又有『中庸集解』、『鳴道集解』,號“中國心學、西方文教”,數十萬言,以故爲名教所貶云。
3、李純甫,「重修面壁菴記」(李純甫,京兆府判官,1220年作文)︰
屏山居士,儒家子也。始知讀書,學賦以嗣家門,學大義以業科舉。又學詩以道意,學議論以見志。學古文以得虛名。頗喜史學,求經濟之術,深愛經學,窮理性之說。偶於玄學似有所得,遂於佛學亦有所入。學至於佛則無可學者,乃知佛即聖人,聖人非佛,西方有中國之書,中國無西方之書也。吾佛大慈,皆如實語,發精微之義於明白處,索玄妙之理於委曲中。學士大夫猶畏其高而疑其深,誣爲怪誕,詬爲邪淫,惜哉!龍宮海藏,琅函貝葉,無慮數千萬言,頂之而不觀,目之而不解。且數百年老師宿德,又各執其所見,裂於宗乘,汩於義疏,吾佛之意掃地矣,悲夫!
梁、普通(520-527)中,有菩提達磨大士,自西方來,孤唱教外別傳之旨,豈吾佛教外復有所傳乎?特不泥於名相耳。真傳教者,非別傳也,如有雅樂,非本色則不成宮商;如有甲第,非主人則不知庭戶。自師之至,其子孫徧天下,多魁閎磊落之士,碩大光明,表表可紀,劇談高論,逕造佛心。漸於義學、沙門,波及學士大夫,潛符密契,不可勝數。其著而成書者,淸涼(澄觀法師,738-839)得之以疏『華嚴』,圭峰(宗密,780-841)得之以鈔『圓覺』,無盡得之以解『法華』,潁濱(蘇轍,1039-1112,晚年自號潁濱遺老)得之以釋『老子』,吉甫得之以注『莊子』,李翺(774-836)得之以述『中庸』,荊公父子(王安石、王雱)得之以論『周易』,伊川兄弟(程顥、程頤)得之以訓『詩』、『書』,東萊(呂祖謙,1137-1181)得之以議『左氏』,無垢(張九成,1092-1159,號無垢居士)得之以說『語』、『孟』,使聖人之道不墮於寂滅,不死於虛無,不縛於形器,相爲表裏,如符券然。雖狂夫愚婦,可以立悟於便旋顧盻之頃,如分餘燈以燭冥室,顧不快哉!道冠儒履,皆有大解脫門,翰墨文章,亦爲遊戲三昧,此師之力也。
新學晚生,愧無以報,今因少林主人志隆(曹洞宗,師承萬松行秀〔1166-1246〕。少林寺住持︰1215-1222年。元好問,「少林藥局記」︰志隆始建少林寺藥局於金興定四年1220年)命其侍者海淨問訊屏山(李純甫),曰︰照了居士王知非、暨劉菩薩,並其徒儲道人,重修面壁菴,既已落成,請記其歲月。時大金興定四年(1220)中元之前一日也。隨喜之餘,又洗手焚香,而爲之賛,曰︰
玄關未啟,玉鎖生苔。靈臺未洗,金鏡塵埋。
鐵牛穿鼻,石女懷胎。孰爲具眼?鼻祖西來。
舟行萬里,禪心如灰。壁觀九年,梵音如雷。
不戒而戒,不齋而齋。一衣一鉢,五葉花開。
或杖或拜,或嗔或舞。謦欬揚眉,顰呻舉武。
或咄或咦,或吽或普。柏樹藥欄,燈籠露柱。
彈指張弓,吹毛擊鼓。跌宕形容,逕庭言語。
太漫汗中,剔渾淪處。有者箇在,又恁麼去。
津然可口,如甘露漿。薰然入骨,如薝蔔香。
如發管鑰,如施印章。金仙海藏,同時放光。
竊吾糟粕,貸吾粃糠。粉澤孔孟,刻畫老莊。
八萬四千,淸凉道塲。屏山說破,誰敢承當!
4、李純甫,「新修雪庭(福裕,1203-1275,號雪庭,萬松行秀嗣法弟子)西舍記」(李純甫,1222年建碑)︰
〔雪庭福裕禪師(1203-1275),號雪庭,萬松行秀之嗣法弟子。〕
昔達磨大士,面壁九年,神光(慧可,487-593,號神光)宿業儒術,且尙玄學,遂見祖師於此地,立雪斷臂,方得西來意,盡發孔、老言外不傳之妙,大顯於世。士大夫有疑之者,僕作「面壁菴記」(1220年作文),已辨之矣。此記既出,諸儒有譁而攻。僕者曰︰觀(澄觀法師)、密(宗密)二師,固學佛者,李翱(774-836)、王介甫(王安石,1021-1086)、呂惠卿(1032-1111)、蘇子由(蘇轍,1039-1112)、張天覺(張商英,1043-1121),亦佞佛之徒耳。如伊川(程頤,1033-1107)、東萊(呂祖謙,1137-1181)、無垢(張九成,1092-1159)諸先生,其視佛老如仇讐,然子以爲得佛之道,不亦誕乎?僕笑應之,曰︰諸先生之書尙在,所謂陽擠而陰助者多矣。真得祖師掃蕩之意學者,疑其云云,是對癡兒不得說夢也。如致堂先生胡寅(1098-1156),在伊川門下,排佛之尤者,著「崇正辨」七十餘篇,詬罵靳笑,無所不至。雖然,止罵像季以來破戒僧耳。近得其所著『讀史管見』,其言歷詆諸儒謂︰荀况(名况,字卿)正而失之駮,董仲舒(廣川人)粹而失之泥,揚雄(子子雲)潛而失之愞,王通(584-617)懿而失之陋,韓愈(768-824)達而失之淺。由秦漢至五代,千三百年,無知道者,至於斵輪操舟之工、雕刻刺繡之巧、累丸升竿之習,及其精也,疑於不可思度,况人之所以爲人有大於此者乎?老氏知之,故有真以治身土苴爲人之說。佛氏知之,故有不立文字、指心見性之傳。又曰︰老莊之言,奧窈宏達,非荀、揚諸子所能及。又曰︰深讀佛書,其庭戶未易知,其奧窔未易窮,其辨未易折,其精極之地未易到,豈老莊所得擬哉?其說如此,學者當熟思而詳考之。吁,陳無已(陳師道,1053-1101)謂︰儒者不得其傳,固得罪於儒者。僕謂儒者亦得其傳,又得罪於儒者。然則儒者果得其傳乎?果不得其傳乎?得與不得,相去幾何?嗚呼!噫嘻!孔老復生,不廢吾言矣,遂書此言,以爲「雪庭西舍記」。(全祖望,「雪庭西舍記跋」︰石立于興定六年(1222)
5、『鮚埼亭集』(淸、全祖望),卷三十八,「雪庭西舍記跋」︰
屏山李之純(李純甫,1177-1223)爲金代文章大家,著述多于滏水(趙秉文,1159-1232,磁州滏陽人),而今不傳,唯『永樂大典』中有其集。屏山援儒入釋,推釋附儒,旣己決波排瀾,不足爲怪。其所著『鳴道集說』一書,濂洛以來,無不遭其掊擊。
近見其「雪庭西舍記」石本,猶此說也。其引致堂(胡寅,1098-1156)『讀史管見』,以爲致堂「崇正辨」之作,滿紙駡破戒之說,而實未嘗不心折于老佛。
嘻!屏山佞佛已耳,亦何用取古人而周内之?石立于興定六年(1222)。
6、『五燈全書』,卷六十一,曹洞宗,青原下二十三世,報恩秀禪師法嗣,丞相移剌真卿居士:
名楚材,本姓耶律,及金滅遼,士歸金,改姓移剌。初,士在京師,禪伯甚多,唯聖安澄獨重之,常訪以祖道,屢舉古尊宿語錄中所得者扣之,聖安間有許可,士自以為得。及遭憂患以來,薄功名而求道之心愈切,遂再以前事訪澄,澄為大翻前案,不然所見,士甚惑焉。問其故,澄乃從容諭之曰:昔公居要地,易為喜怒,又儒者多無諦信,惟搜摘語錄以資談柄,故予不即痛下鉗錘耳。今揣公之心,果為本分事問予,予豈敢更辜負乎?於是乎不吝苦口。然予老矣,有萬松老人者,儒釋兼備,宗說精通,辯才無礙,公能見之,自當了公大事。士唯唯,走參萬松于報恩,甚相契合。于是杜絕人跡,屏斥家務,雖祁寒溽暑,無日不參,焚膏繼晷,廢寢忘餐者幾三年,乃獲印證,號湛然居士。
嘗序萬松評古略曰:佛祖諸師,埋根千尺,機緣百則,見世生苗。天童不合抽枝,萬松那堪引蔓。湛然向枝蔓上更添芒索,穿過尋香逐氣者鼻孔,絆倒行元體妙的脚跟。向去若要脚跟點地,鼻孔撩天,也須向者葛藤裏穿過始得。
先是,元世祖將西征,有司奏五臺等處僧徒有能呪術武略及有膂力者為部兵,扈從西征。士為言于上曰:釋氏之高行者,必守不殺戒,奉慈忍行,故有危身不證鵞珠,守死不拔生草者。法王法令,拳拳奉行,雖死不犯,用之從兵,豈其宜哉?其不循法律者,必無志行,在彼既違佛旨,在此豈忠王事?故皆不可以從王師也。帝從之,乃寢其奏。太宗十六年,公卒,壽五十五(即南宋理宗淳祐癸卯也)。
屏山李純甫居士
初恃文譽,好排釋老。偶遇萬松秀于邢台(邢州),一言之下,遂獲契證。乃盡翻內典,徧究禪宗,注金剛、楞嚴等經,序輔教、原教等論。嘗著少室面壁菴記,略曰:達磨大師西來,孤唱教外別傳之旨,豈吾佛教外復有所傳乎?特不泥于名相耳。真傳教者,非別傳也。自師之至,其子孫徧天下,漸于義學沙門以及學士大夫,潛符密契,不可勝數。其著而成書者,清涼得之以疏華嚴,圭峰得之以鈔圓覺,無盡得之以解法華,頴濵得之以釋老子,吉甫得之以論周易,伊川兄弟得之以訓詩書,東萊得之以議左氏,無垢得之以說語孟。使聖人之道,不墮于寂滅,不死于虛無,不縛于形器,相為表裏,如符[A16]券然。雖狂夫愚婦,可以立悟于便旋顧盼之間,如分餘燈以燭冥室,顧不快哉。士著述甚多,開發後學,大有功于宗乘。臨終無疾,趺坐合掌,面西而逝。
耶律楚材(1190-1244),「萬松老人評唱天童覺和尚頌古從容庵錄序」︰
聖安從容謂予曰︰昔公位居要地,又儒者多不諦信佛書,惟搜摘語緣,以資談柄,故予不敢苦加鉆鎚耳。今揣君之心,果為本分事以問予,予豈得猶襲前愆不為苦口乎?予老矣,素不通儒,不能教子,有萬松老人(行秀,1166-1246)者,儒釋兼備,宗說精通,辯才無礙,君可見之。予既謁萬松,杜絕人迹,屏斥家務,雖祁寒大暑,無日不參,焚膏繼晷,廢寢忘餐者,幾三年。誤被法恩,謬膺子印,以湛然居士從源目之。其參學之際,機鋒罔測,變化無窮,巍巍然若萬仞峯莫可攀仰,滔滔然若萬頃波莫能涯際,瞻之在前忽焉在後,迴視平昔所學,皆塊礫耳。噫!登東山而小魯,登泰山而小天下者,豈虛語哉?其未入閫域者,聞是語,必謂︰予忘本好異也。
7、耶律楚材(1190-1244),「萬松老人評唱天童覺和尚頌古從容庵錄序」︰
昔予在京師時,禪伯甚多,唯聖安澄公和尚(燕京聖安寺的禪師,向耶律楚材推薦“儒釋兼備”的萬松行秀),神氣嚴明,言辭磊落。予獨重之,故嘗訪以祖道,屢以古昔尊宿語緣中所得者叩之。澄公間有許可者,予亦自以為得。及遭憂患(1125年,遼朝為金朝所滅)以來,功名之心,束之高閣,求祖道愈亟,遂再以前事,訪諸聖安。聖安翻案不然所見,予甚惑焉。聖安從容謂予曰︰昔公位居要地,又儒者多不諦信佛書,惟搜摘語緣,以資談柄,故予不敢苦加鉆鎚耳。今揣君之心,果為本分事以問予,予豈得猶襲前愆不為苦口乎?予老矣,素不通儒,不能教子,有萬松老人(行秀,1166-1246)者,儒釋兼備,宗說精通,辯才無礙,君可見之。予既謁萬松,杜絕人迹,屏斥家務,雖祁寒大暑,無日不參,焚膏繼晷,廢寢忘餐者,幾三年。誤被法恩,謬膺子印,以湛然居士從源目之。其參學之際,機鋒罔測,變化無窮,巍巍然若萬仞峯莫可攀仰,滔滔然若萬頃波莫能涯際,瞻之在前忽焉在後,迴視平昔所學,皆塊礫耳。噫!登東山而小魯,登泰山而小天下者,豈虛語哉?其未入閫域者,聞是語,必謂︰予忘本好異也。唯屏山(李純甫,1177-1223)、閑閑(趙秉文,1159-1232),其相照乎!爾後奉命赴行在(1215年,應成吉思汗之招至漠北),扈從西征(1219年,隨成吉思汗西征。),與師相隔,不知其幾千里也。師平昔法語、偈頌,皆法兄隆公(東林志隆)所收,今不復得其稿。吾宗(曹洞宗)有天童(天童正覺,1091-1157,謚號宏智禪師。著有『宏智禪師廣錄』,倡導默照禪,與臨濟宗大慧宗杲的看話禪齊名。)者頌古百篇,號為絕唱,予堅請萬松評唱是頌,開發後學,前後九書,間關七年,方蒙見寄。予西域伶仃數載,忽受是書,如醉而醒,如死而甦,踴躍歡呼,東望稽顙,再四披繹,撫卷而歎曰︰萬松來西域矣,其片言隻字,咸有指歸,結欵出眼,高冠今古,足為萬世之模楷,非師範人天權衡造化者,孰能與於此哉!予與行宮數友,旦夕游泳於是書,如登大寶山,入華藏海,互珍奇物,廣大悉備,左逢而右遇,目富而心飫,豈可以世間語言形容其萬一耶!予不敢獨擅其美,思與天下共之。京城唯法弟從祥者,與僕為忘年交,謹致書,請刊行于世以貽來者。迺序之曰︰佛祖諸師,埋根千丈,機緣百則,見世生苗,天童不合抽枝,萬松那堪引蔓,湛然向枝蔓上,更添芒索,穿過尋香逐氣者鼻孔,絆倒行玄體妙底脚跟向去。若要脚跟點地鼻孔撩天,卻須向這葛藤裏穿過始得。
甲申中元日,漆水移刺楚才晉卿,敘於西域阿里馬城。
8、天童正覺(1091-1157),「默照銘」,「坐禪箴」︰
「默照銘」︰
默默忘言,昭昭現前。鑒時廓爾,體處靈然。
靈然獨照,照中還妙。露月星河,雪松雲嶠。
晦而彌明,隱而愈顯。鶴夢煙寒,水含秋遠。
浩劫空空,相與雷同。妙存默處,功用照中。
妙存何存,星星破昏。默照之道,離微之根。
徹見離微,金梭玉機。正偏宛轉,明暗因依。
依無能所,底時回互。飲善見藥,撾涂毒鼓。
回互底時,殺活在我。門裡出身,枝頭結果。
默唯至言,照唯普應。應不墮功,言不涉聽。
萬象森羅,放光說法。彼彼證明,各各問答。
問答證明,恰恰相應。照中失默,便見侵凌。
證明問答,相應恰恰。默中失照,渾成剩法。
默照理圓,蓮花夢覺。百川赴海,千峰向岳。
如鵝擇乳,如蜂採花。默照至得,輸我宗家。
宗家默照,透頂透底。舜若多身,母陀羅臂。
始終一揆,變態萬差。和氏默璞,相如指瑕。
當機有准,大用不勤。寰中天架,塞外將軍。
吾家底事,中規中矩。傳去諸方,不要賺舉。
應以清淨之心,默照內觀,徹見法源,無纖毫障礙,廓然亡象。
如澄淨的秋潭水,如靜夜的明月光,澄淨孤明,自在無雙。
「坐禪箴」︰
佛佛要機,祖祖機要,不觸事而知,不對緣而照。
不觸事而知,其知自微;不對緣而照,其照自妙。
其知自微,曾無分別之思,其知無偶而奇,
曾無毫忽之兆,其照無取而了。
水清徹底兮,魚行遲遲;空闊莫涯兮,鳥飛杳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