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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는 한 장으로 구성된 짧은 성경이지만
유다서가 담고 있는 내용은 하늘과 땅 사이 태초로부터 영원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유다서는 구원에 관한 일반적인 도리를 기록할려고 하다가
방향을 바꾸어 이단과의 전쟁을 선포한 성경입니다.
이단과의 전쟁은 성경이 선포하고 있으며
이단의 종말은 사단과 함께 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단에 대해서 성경은
사랑과 용서, 관용과 긍휼에 대한 모든 것을 닫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단은 구원의 대상도 전도의 대상도, 개종의 대상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저주받은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단은 선지자와 하나님의 뜻을 영원히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훼방하는 자로
하나님의 구원과 긍휼하심을 입지 못한 최악의 존재라는 사실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이단자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었으며....
사도 바울에게 이단자는 복음의 진리를 거스려 거짓을 말하는 자들이며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의 정체성을 가진 의의 일꾼을 가정한 사탄의 일꾼입니다.
☞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11:4)
☞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3-15)
이단의 특징은 진리를 거스려 거짓말하는 자요
배후는 사단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사도 바울에게
거짓된 이단자는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처럼 진리를 거스리는 이단자들에 대해서
일말의 긍휼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이단자들은 흉악한 이리로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 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 말을 하는
진리에 관하여 그릇된 후메내오와 빌레도를 악의 축으로 정죄하며 경계하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에 관하여 파선한 자들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진리와 거짓에 관한 이단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 자체이기 때문에 조금도 사정을 줄수 없습니다.
이단을 수용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스려 사단을 추종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단에 대해선 그 거짓을 용납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유다서는 구원의 본질보다 더 중요하게
진리를 거스리는 이단자들의 정체성을 폭로하면서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유다서는 이단의 특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가만히 들어 온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만히 들어왔다는 것은 복음의 초청을 받지 않고 신앙 공동체에 일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순수한 복음으로 제자훈련을 하였는데
어느 날 제자 훈련을 받지 아니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랑의 교회 교인으로 버젓이 앉아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을 보고는
큰 충격과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순수한 복음의 제자훈련이.....
어느 싯점부터 시스템화된 복음으로 상품화되어
소위 시스템화된 성장 프로그램에 의해 유입된 사람들이 교인으로 자리한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양적 성장만을 마냥 좋아하지 않았던 옥한흠 목사님은
구원의 본질에 관한 깊은 갈등을 하였던 목사님이었습니다.
진정한 복음의 초청을 받지 않은 가만히 들어 온 자들......
진리를 거스려 거짓을 말하는 자로 때가 되면 그 정체를 드러낼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옛적부터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은혜의 신비는 받은 사람만이 느끼는
감사의 찬송으로 나타납니다.
바울은 받은 바 하나님의 은혜를
역사를 거슬러 창세전의 깊이로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깨닫고 감사하며 찬양을 드렸습니다.
바울에게 인본주의 신앙이란
조금도 기대할 수 없는 완벽한 신본주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바울에게서 예수님을 듣고 배운다면....
사이비와 이단, 그리고 유사 기독교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드러난 이단과 드러나지 않는 이단의 뿌리는
바울의 종말론적인 신앙의 잣대로 보아도 본질상 진노의 무리들입니다.
유다서는 가만히 들어 온 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본질을
계시적 안목으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판결받기로 기록된 자라고 하는 것은
바울의 받은 바 은혜를 창세 전의 깊이로 느끼는 것과 정반대인 것입니다.
유다서는 이단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 대해서
일말의 긍휼도 없이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을 뿐이라고
역사적 교훈을 들어 일격필살의 말씀의 검을 시전하였습니다.
악은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지 않는 사람은 뿌리의 악으로부터 악한 진액을 받아 나쁜 열매를 맺어
때가 되면 나쁜 나무의 정체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유다서는 이러한 원리를 말씀한 것입니다.
세째로, 가만히 들어 온 자들은 복음의 능력으로 의를 힘입지 않았기 때문에
경건치 않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의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성도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주 안에서 빛이요, 빛의 자녀인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빛의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에 매여 있는 사람들은
음행과 온갖 탐욕을 욕심으로 행하며 거짓과 더러운 말을 하며...
자신을 술취함과 방탕에 방임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유다서에 가만히 들어 온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단은 현세적인 무속과 기복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세속적인 번영과 성공을 추구하여 욕심으로 죄의 낙을 누리며 즐기는 자들입니다.
이단자들은 복음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로 옷입는 빛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경건과 거룩의 변화된 삶의 능력을 삶의 패러다임으로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는 사람에게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드러난 이단과 드러나지 않는 이단.....
이단의 단체에 속한 사람과 이단의 단체에 속하지 않는 이단 등......
모두가 진리의 복음을 은혜로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역동적인 삶으로 갖지 못하니까
성공과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중산층 신앙으로 세상의 향락을 비전으로 즐기며
추구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신앙의 목적이 세속적인 번영과 성공을 추구하는 현세적인 모든 신앙은
인본주의 신앙이며 사이비요, 이단입니다.
간혹...믿었더니 부자되었다...성공하였다....만사형통하였다고 간증하는 사람들의 간증은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가만히 들어 온 자들입니다.
믿음의 간증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발견한 기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로 간증하지 않는 모든 인본주의 간증은
거짓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거짓된 마음으로 받으니
모두가 천국 시리즈 간증에 놀아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깨어 있는 사람은
거짓을 분별하며 거짓 영의 역사를 성령의 검으로 물리치는 것입니다.
거짓 영의 역사를 아멘 할렐루야 하는 사람들......
사단의 미혹을 받아 거짓 것을 사랑하는 하나님 심판의 대상입니다.
기독교 엑소시스터 문화를 주도하는 무속신앙의 뿌리를 가진 사람들.....
시스템화된 교회 성장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대부분의 프렌차이즈는
모두가 거짓 영의 미혹을 받은 사단의 역사를 아멘 할레루야 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것을 교회 성장의 동력으로 받아들인 한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가를 잊어 버렸습니다.
시스템화된 복음에 접목된 영성운동은
구약의 바알 종교로 혼합된 이스라엘의 모습과 똑같은 것입니다.
지금은 성장을 부르짖을 떄가 아니라
예레미야의 눈물의 탄식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언약의 말씀을 파기한 이스라엘과 시템화된 복음에 접목한 영성 운동에 미쳐있는 한국교회는
끊어진 철로를 달리는 기차입니다.
성령을 무속신으로 섬기는 한국 교회를 고난과 핍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받은
사도적 기초 위에 세워진 초대교회와 같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경건과 거룩한 변화의 능력을 색욕의 방탕한 것으로 바꾼 것은
무속적인 영성과 기복적인 번영의 신앙으로 꽃피운 것입니다.
유다서는 여기에서 성령으로 말씀의 진검을 시전한 것입니다.
네째로, 가만히 들어 온 이단자들은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 나라 왕이심을
부인하며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며,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천지의 주재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진리를 거스려 거짓을 말하며 ....
다른 복음을 말하는 자들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고.....
성공과 번영은 긍정의 힘으로 목적이 이끄는 삶의 비전으로 성취한다는 복음은 다른 복음입니다.
구원과 삶의 성공 신화를 다르게 말하는 웰빙 건강 복음은
시스템화된 복음이요, 다른 복음입니다.
시스템화된 복음은 본질적으로 예수님의 주재되심을 부인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구원 받는다는 개념이 이데올로기로 정립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이데올로기는
역동적인 생명을 영생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전혀 갖지 못합니다.
그냥 비전 성취하기 위한
인본주의 동력이 불과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예수 믿는 것은
역동적인 생명의 능력을 가진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시스템화된 복음은 성공과 번영을 이룰 바알신을 예수로 세워 놓고
예수를 정진일도의 불교식 믿음으로 생명의 혼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미신으로 믿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무속적으로 믿는 모습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예수님 되심을 부인하는
이단의 사설입니다.
다음으로 유다서는 역사적으로 이단의 뿌리에 대한
강도 높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구원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하여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거역한 이스라엘은
참혹한 멸망을 댓가로 치렀습니다.
광야시대와 사사 시대, 그리고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은 후 가나안의 모든 왕조 시대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말씀을 거역한 모든 사람을 멸망으로 영원히 심판하였습니다.
둘째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신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타락한 천사, 곧 사단을 하나님께서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신 것입니다.
타락한 천사, 곧 마귀는 천사보다 더 못한 존재요,
아무런 힘과 능력이 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사단의 역사라는 것은
흑암에 갇혀서 어둠을 주관하는 자로 미혹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거룩을 힘입지 아니하고.....
흑암에 결박된 사단의 유혹을 따르는 자는 거짓을 믿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여기에 이단자와 거짓 선지자와 타종교인들과 믿지 않는 모든 자들이 포함됩니다.
셋째로,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된 사건을 말씀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오늘날로 말하면 포르노 천국이었습니다.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소돔과 고모라는
역사의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포르노 세상은
하나님 창조의 거룩을 파괴하는 최악의 문화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뿐만 아니라 노아 홍수와 가나안 문화의 멸망은
하나님 창조의 가룩을 파괴시킨 인류 최악의 문화였습니다.
오늘날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포르노에 미친 세상은
하나님의 거룩을 파괴하며 모욕하는 인류 최악의 악하고 더러운 문화입니다.
영원한 불의 심판만 남아 있습니다.
이들은 육체를 더럽히며,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훼방하는 자들로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할 자들입니다.
넷째로,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자들을 말씁하였습니다.
가인의 길은 묻지마 악을 행하는 자들이며,
발람의 길은 돈을 받고 진리와 축복을 파는 사람들이며......
고라의 길은 당을 지어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삶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영원한 불의 심판이 따를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섯째로, 에녹의 예언을 거스러 강팍한 말로
하나님의 거룩과 진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의 멸망에 대하여 말씀하였습니다.
에녹에 대한 창세기의 기록이 너무 적어
에녹의 훌륭한 신앙적인 삶과 노아홍수 심판을 연관시켜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유다서의 계시적 말씀으로 인하여
에녹의 경건과 불의에 대한 예언자적인 삶과 당시에 불경건한 사람들의 죄악이
결국 노아의 홍수 심판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놀랍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에녹의 하나님과 동행한 삶은
불경건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 심판을 예언하는 선지자적 삶이었습니다.
에녹은 노아 시대에 관영한 죄악을 당시에 바라보며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어쩌면 에녹은 노아 홍수 시대에 존재하였던 네피림들에 의해서
예언자적 삶을 사는 가운데 엄청난 고난과 핍박을 받았을 것입니다.
순교적인 선지자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은혜로 엘리야 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영생의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에녹의 선지자적인 삶은
선지자 엘리야의 삶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참된 진리와 복음을 외치는 선지자의 말씀을 강팍한 말로 거스리는 자들은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로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다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자들과 전쟁을 선포하면서....
마지막으로 참된 복음에 대한 놀라운 말씀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유다서를 은혜의 복음으로 경계를 맏은 참된 믿음을 가진 주의 성도들은
가만히 들어 온 이단과 악한 영의 미혹에 종노릇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 그 죄악된 삶의 문화를 즐기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