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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년을 광야 길을 걷게 하신 하나님
신명기 8 : 1 – 10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400여 년 동안 바로의 학대로 고통을 견딜 수가 없어서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게 하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홍해를 건너지 않는 블레셋 길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흉년 들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돌아온 길이며, 요셉이 애굽으로 끌려간 길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아들들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간 길입니다.
그 길은 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이며 한두 주간, 늦어도 한두 달 정도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시고 돌려 광야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출13:17,18)
빨리 가나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십 년을 광야 길을 걷게 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사십 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광야를 걷기 위해서 먼저 홍해를 건넜습니다. 바다가 갈라지고 길이 열려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를 건넌 것을 사도 바울은 ‘세례’라고 했습니다.(고전10:1)
하나님께서 언약 맺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 내려가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애굽의 우상들과 신들을 섬겼던 그들을 바다 가운데로 지나게 하셔서 죄를 씻는 세례로 의미했습니다.
교회는 세례 받은 자의 공동체인 것처럼 홍해를 건너 광야를 걷게 한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교회’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임재하셔서 광야교회를 보호하시고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광야 사십 년을 인도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시험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2) ‘시험’은 올무에 빠뜨리기 위한 악의적인 유혹이 아닙니다.
모세는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고 말했습니다.(1)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 수 있도록 율법을 비롯한 율법과 규례와 법도를 주셨습니다. 그 명령을 따르고 살면 가나안에 들어가 살게 되지만, 그리하지 아니하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 짐승들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가르칩니다. 성도들은 그 말씀을 따르고 지키면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하지만, 지키지 않으면 영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은 단순히 복과 화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살고 번성하고 천국에 들어가서 살게 하십니다. 극한 상황에 빠지게 되면, 사람들은 좌절하거나 원망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겸손히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길이 없는 곳입니다. 가시덩굴과 돌짝과 험악한 바위가 있습니다. 풀도 나무도 없는 사막입니다. 낮에는 무척 더울 뿐 아니라 밤에는 춥습니다. 짐승들이 먹히고 먹는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무서운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육십만(이백만) 명을 이와 같은 광야 길을 40년을 걷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도록 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십 년 동안 광야를 걷는 그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의식주입니다. 거주할 수 있는 장막과 먹고 마시는 떡과 의복과 신발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는 이러한 것을 전혀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애굽에서 나온 지 두 달 반이 되었을 때 가지고 온 떡과 물은 다 떨어지고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구할 수도 없는 광야에서 그들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우리가 애굽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떡을 배불리 먹었는데 너희가 우리를 이 광야로 인도해 내어 주려 죽게 한다’고 하며 원망했습니다.(출16:3)
하나님께서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만나를 먹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린 떡을 보고 ‘이것이 무엇이냐’(만나)고 서로 묻고 놀랐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며’(2,3)란 말씀은 광야에서 그들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험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낮추셨고 주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를 먹이신 것을 보면 그들은 시험을 이겼다고 봅니다.
먹을 것이 있고 배부를 때 만나를 주시는 것과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었을 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받는 자에게 주는 자의 고마움과 감사하는 마음은 차이가 큽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고 하시려고 그들을 낮추시고 주리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3)
하나님께서 사람을 ‘생령’으로 창조하셨습니다.(창2:7) 사람에게는 짐승과 다른 영혼이 있습니다. 육신은 떡으로 살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광야에서 의복은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광야 40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4) 한 벌의 의복과 한 벌의 신발이 낡아지지 않았다고 오해하기 쉬운 말씀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바로의 학대로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많은 은금과 폐물과 의복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셨습니다.(출12:35,36)
그들이 가져 나온 은금 폐물로 성막과 언약궤와 모든 것을 만들었습니다.(출25장) 아론은 그들의 금귀고리와 손목고리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출32장)
‘의복이 헤어지지 않았다’는 말은 그들이 입을 옷이 없어서 헐벗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은금 폐물로 온 몸을 단장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역겨워하실 정도로 은금 폐물로 몸을 단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러지 않으면 진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33:5,6)
성막을 비롯한 모든 것을 다 만들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은금 폐물과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입을 수 있는 의복과 신발까지 애굽에서 가지고 나왔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광야는 길이 없는 가시덩굴과 거친 들판을 맨발로는 걸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일반적인 길을 걷는 것보다 옷이나 신발은 더 많이 닳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흙을 이기고 벽돌 굽고 국고성과 라암셋을 건축하고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번성하였습니다.(출1:11-14) 마치 강한 훈련받은 군인처럼 강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광야로 걷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바로의 학대로 아이로부터 늙은 사람까지 모두 강하게 훈련을 시켰습니다.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강하게 단련을 시키고, 그들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애굽 사람들에게 내어 주게 하셨다는 것은 의미합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덮어 시원하게 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밝고 따뜻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인도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출19:4)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광야 사십 년을 걷게 하시고 시험하셨던 것처럼,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광야 같은 세상에서 낮추시고 주리게 하셔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게 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제 모세는 그들이 들어가서 살아야 할 가나안 땅이 어떤 곳인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6-10) 그들에게 광야의 길을 걸으면서 가나안을 바라보고 참고 견디며 이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물이 많고(7) 각종 과일을 비롯한 농산물을 풍부하게 소출하기에 비옥한 토지일 뿐만 아니라(8,10) 각종 광물질이 풍부하다고 했습니다.(9)
이러한 모세의 증거는 광야의 삭막하고 메마른 땅에서 마실 물 때문에 원망하던 그들에게 희망적인 물이 풍부한 것을 먼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은 죽음의 땅인 광야를 상대적으로 모든 동식물이 잘라는 아름다운 땅입니다.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는 물이 풍부한 곳이라고 한 것은, 사십 년 동안 메마른 광야 생활을 한 그들에게 물의 풍부함은 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밀과 보리의 산지라고 했습니다. 밀과 보리는 그들에게 중요한 양식이었습니다.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구경조차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의 풍부함은 그들에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광야 사십 년의 길을 걷게 하시고 시험하셔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된 그들에게 주어지는 언약의 땅 가나안의 축복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덕을 감사의 조건으로 알고, 그것에 감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나님 나라는 어떠한 것인지 상상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들어갈 천국은 이스라엘 자손이 들어간 가나안 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풍요로움과 영화로움이 충만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험난하고 삭막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에 소망을 두고 굳센 믿음으로 전진하여 승리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은 눈물도 죽음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고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했습니다.(계21:2)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천국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광야를 걷는 나그네로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합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서 영원히 주님을 섬기며 영생합시다.
출처: ╋예수님좋다오 글쓴이: 허창수
임정석목사/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라
(신 8:1-18)
이번 폭우로 어려움 겪은 가정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피해를 입은 가정에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이번 폭우는 100년만의 홍수, 혹은 104년만의 홍수라고 하며, 어떤 분은 평생 살다 살다 이런 폭우는 처음이라고 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959년도의 사라호 태풍 때 저의 집이 침수되고 가재도구가 둥둥 떠다닐 때, 어린 나이에 뗏목 타고 돌아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며, 또 망원동 한강둑이 터진 날 충남 홍성에서의 하관식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번 폭우는 시간당 100㎜ 이상을 퍼부어 사흘동안 534.5mm를 기록하여 서울 1년 강수량의 절반이 내렸습니다. 그래서 한강 범람은 물론 강북도 홍수, 강남도 홍수, 그리고 수많은 사상자와 재산 손실을 입었습니다. 특히 서초동의 우면산이 무너진 일은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일이 도심 한 복판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 - 해서 말입니다.
이번 일은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무리하게 산을 깎아 개발하다가 절개지 관리 소홀로 폭우에 무너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태로 도로 등산로 공원 등등을 이유로 산을 깎은 절개지들을 파악해 보았더니 서울에만 약 10만곳, 전국에는 약 100만곳 이상이 되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 모든 절개지들은 위험 가능성을 지녔으므로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하천을 복개한 복개천이 많아, 갑자기 많이 내린 물이 갈데 없어 아스팔트 위로 범람하였으며, 또 지하의 하수처리 혈관의 용량이 부족하여 물이 지상으로 올라와 피해가 컸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하수처리 혈관의 방식은 두 가지 방식으로 합류식(合流式)과 분류식(分流式)이 있습니다. 합류식은 오수(汚水)와 우수(雨水)를 하나의 관으로 같이 처리하는 방식이고, 분류식은 오수(汚水)와 우수(雨水)를 별도의 관으로 따로 처리하는 방식으로서, 서울은 합류식이 86%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폭우시 배수시설이 감당 못해 도시가 홍수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번 폭우와 홍수로 얻은 서울시의 새 이름은 홍수시, 홍수특별시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지난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 이후 자연의 대재앙 앞에서 인간은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하면서 인간의 삶에 대단한 변화도 초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동안 혼자 살던 남성들이나 여성들이 대지진 이후에 결혼하는 결혼식이 증가되었습니다. 이유는 대지진의 여파가 도쿄까지 엄습한 날, 같은 직장에 다니는 기혼자들의 전화에 많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아내)은 괜찮는가? 아이들은 잘 있는가?' 하는 걱정 소리를 듣고 '나는 걱정해줄 애인도, 가족도 없구나' 그래서 서둘러 결혼하는 사람이 많이지게 되었는데, 남성보다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결혼을 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 현상도 나타났는데, 그것은 이혼식의 증가입니다. 이유는 대지진 앞에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구나!' 하면서 다시 혼자로! 다시 싱글로 돌아가자! 하면서 이혼식이 증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혼식은 결혼식처럼 청첩장도 만들어 돌리고, 정식으로 이혼식을 개최하고, 식후에 피로연까지 하는 풀코스 이혼식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박수 속에 입장하고, 이혼 서약을 하고, 결별 이유를 설명하고,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망치를 들고 결혼반지 부숨으로서 이혼식은 끝나는 것인데, 이러한 이혼식을 기획하는 이혼식 플래너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하며, 또 그들은 한국으로 진출하려고 한다는데 이것은 정말 막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번 사태 이후 깨닫게 되는 것은 무서움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산이나 바다가 좋았는데 이제는 싫다는 사람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질문도 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홍수를 주시는 것인가? 하나님은 왜 이런 지진, 쓰나미, 화산폭발 같은 것을 주시는 것인가?!'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들의 430년 이집트 종살이 이후 모세의 영도로 이룬 출애굽과 홍해 도하 사건은 충격적인 사건이엇습니다. 그리고 본문이 말하는 40년 동안의 광야생활, 이것도 역시 충격적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이집트에서는 비록 종살이 신분이었지만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광야에서는 이것도 잘 안되니 저들의 불평과 원망, 짜증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유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출애굽 시켜 놓고, 홍해까지 건너게 해 놓고,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시고, 광야로 내 모시는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다! 다시 애굽으로 가자! 그때가 좋았다. 비록 종살이 신분이지만, 고기 마늘 부추 먹고 살았는데...' 이것은 일본에서 다시 싱글(single)로 돌아가자는 것과 똑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하다가 크게 다쳤습니다. 하나님이 노하셔서 불뱀이 등장하고 땅이 갈라지고. 그 후 조용해졌습니다. '아, 하나님이 크게 노하셨구나! 조용하자.'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1세대는 다 죽고 2세대가 행진합니다. 힘들지만 이유를 모른채.
바로 이러한 때에 주신 말씀이 오늘의 본문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왜! 인생 앞에 광야를 만드시고, 광야로 인도하시는가?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 인생의 길에 광야는 없고 장미 꽃밭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누구에게도, 그 어떤 인생에게도 광야는 있습니다. 그래서 남몰래 눈물 젖은 빵을 먹을 때가 있고,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런 광야 길을 주시는 것일까요?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렇습니다. 그것은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은혜! 이 약속!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임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혹 광야에 있습니까가? 그래도 너무 고통스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좋게 생각하십시오. 잘될 것을, 앞으로 나에게 우리 가정에 반드시 복 주시겠구나 하고 굳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한 단계 더 나아갑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광야를 통해 복을 주시려고 하는데, 광야 길에 들어섰다고, 광야에서 고생한다고, 무조건, 그냥 복 주시는 것이 아니라! 광야도 광야이고 힘들지만, 광야를 통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낮아짐! 낮추심입니다. 낮아져라! 낮추라!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2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광야를 통해 우리를 낮추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만일 우리가 낮추어만 진다면, 그 광야가 축복의 광야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광야의 핵심, 축복의 비결은 낮아짐 자기낮춤에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제 중요한 지점에 도달하였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이것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광야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죄인이 자기를 낮추는 것이 잘 안되고,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낮추십니까? 잘 낮아지십니까? 고생하면 사람이 낮아지는 것입니까? 광야에 있으면 사람이 낮아지는 것입니까? 낮춘다고 낮아지는 것이냐 말입니다. 아닙니다. 고생한다고, 광야 길 걷는다고, 저절로 낮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힘든 가운데서도 아집 자존심 교만이 정말 대단하고, 똘똘 뭉쳐 전보다 더 쎄진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 누구도 그의 아집 자존심 교만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잘못 건드리면 폭발하기 때문입니다. '못살고 힘들고 어려운 것도 서러운데 그게 무슨 말이냐? 어딜 건드리냐! 내 형편이 어렵다고 내가 광야 길 좀 걷는다고 그렇게 쳐다보냐? 그렇게 말하냐? '이러면서 사람은 정말 낮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몽둥이로 얻어 맞아도 잘 안낮아집니다. 또 폭우에도, 홍수에도, 지진에도, 쓰나미에도 사람은 잘 낮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제로 낮추시는 방법을 특별히 만드셨는데, 그것은 말씀입니다. 3절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광야에서 우리를 낮추시는 방법, 그 비결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힘들고, 비록 어렵고, 비록 짜증나지만, 나로 하여금 입 다물게 하시는 것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보이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보이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게 되면 바로 그때부터 사람이 낮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말씀이 사람을 잘 낮아지게 합니다.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이렇게 낮추시면서 깨닫게 하시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것입니다. '사람이 광야에 처한다 할찌라도 광야 때문에 죽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떡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이다.' 이것을 정말로 알게! 정말로 깨닫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광야에서 낮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혹 광야 길에 있습니까? 낮아지시기를 바랍니다. 혹 좀 낮아지셨습니까? 그러면 좀 더 낮아지시기를 바랍니다. 완전히! 그리고 부서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광야에서 낮아지고 부서지고 만나시고 말씀이 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축복의 문은 반드시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