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에 언제나 순탄한 길을 걷는 것만은 아닙니다. 또한 그런 평탄한 삶만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시련을 주시고 그것을 통하여 더욱 놀라운 축복을 주시려고 준비하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본 시편도 바로 그러한 시련의 경험을 통해 성도가 성숙한 믿음과 최종적 승리를 맛보게 되는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 현실 속의 좌절과 항변
1) 성도가 당하는 삶의 고통과 좌절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 감정 이입법을 써서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곧 본문에서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 그리고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하는 것을 종합하면 창세기에 가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시 롯이 도망가던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참조, 창19:17-24). 그 때의 상황처럼 급박한 상황을 다윗은 표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악한 자가 활시위를 당기고 어두운 데서 숨어 자기를 겨누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다윗이 죄 없는 의인이면서도 악한 자의 음흉한 꾀와 음모에 빠져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없는 고통에 접했을 때 그에게는 당연히 좌절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1절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에서 너희는 바로 그 악한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여호와께 피하고 있는 다윗에게 그 악한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지 않고 무슨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느냐고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a.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이 고통받음(출2:23)
b.다윗이 고난당함(시88:7)
c.이스라엘이 이방에서 고난받음(시129:1-2)
2) 고통당하는 의인의 항변
그렇게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다윗은 다음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여기서 '터'란 인간들이 사는 세상의 기초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사의 기본 질서와 법칙을 말하며 이것은 의인이 복을 받고 악인이 벌을 받는다라는 당연한 진리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이 당하는 극심한 고통의 경험에서는 의인이 오히려 악인의 음모에 빠져 조롱받고 심각한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한탄하기를 이 세상의 기본 질서가 무너지면 과연 의인이 설 곳이 어디냐고 절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욥 역시 이러한 신정론(theodicy)에 해당하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신정론이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이토록 어지러울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질문하여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해답을 추구하는 이론입니다. 욥은 전혀 극심한 형벌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통받는 자신에 대해 자신의 결백함과 아울러 죽기를 구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억울한 고통을 주님께서 설명해 주시기를 바라며 절규하는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욥의 질문에 답하시며 그의 의로움을 칭찬하시는 모습을 욥기의 결론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참조, 욥42:7).
a.고통은 성도를 겸손하게 함(대하33:12)
b.고통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함(사63:9)
c.고통은 성도가 기도하게 함(약5:13)
3) 고통의 시기에 하나님께 피하라
악인의 악행으로 인해 고통받을 때 성도들이 취할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바로 하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방법 외에는 어떠한 해결책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악인들은 우리 성도들보다 더 강한 능력으로 의인들을 해 하는 경우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의 시기에 하나님께 피하는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a.성도의 고통은 구원을 보장함(시34:19)
b.어떤 것도 하나님에게서 끊을 수 없음(롬8:39)
c.고난 때에 기도해야 함(약5:13)
d.고난 때에 인내해야 함(딤후4:5)
2. 성경적인 해답을 찾음
1) 감찰하시는 눈을 가진 여호와
극심한 고통 가운데 빠져 자신의 설 곳은 어디인가라고 항변하던 시편 기자는 아마도 기도하던 중에 바른 해답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인간을 감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상황을 감찰하심은 물론이고 악인을 지켜보시고 그 악을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시인은 기억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문제를 풀려고 할 때도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살피고 계시며 또한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뿐이라는 인식하에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a.성도들을 감찰하심(시31:7)
b.성도의 수고를 감찰하심(창31:42)
2) 악인을 진멸하시는 여호와
다윗이 이 세상을 감찰하시는 여호와를 인식하고서 깨닫게 된 사실은 여호와께서는 악을 미워하시고 악인을 진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는 어느 쪽으로나 치우침이 없이 올바르며 변함이 없는 진리였습니다. 죄와 구별되는 거룩성을 속성으로 가지고 계신 하나님은 악인의 최후가 그들의 죄에 대한 응분의 극렬한 심판이 되도록 하십니다. 역사를 통해서도 홍수 사건이 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그리고 가나안 족속들의 멸망 등에서 분명히 밝혀진 대로 하나님은 악인을 진멸하시고 의인을 구출하시는 분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 사실을 기억하고 그 사실을 통하여 용기와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a.악인은 그 이름이 영원히 도말됨(시9:5)
b.악인은 죽음을 당함(시34:21)
c.악인은 멸망함(시37:20)
d.하나님은 악인을 징벌하심(시75:8)
3) 의인의 축복을 약속하시는 여호와
악인을 멸망시키시는 여호와는 의인에 대한 축복을 약속하심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바로 이러한 특징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인에 대해서는 반드시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7절에서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늘 의인의 삶 가운데 함께하실 것을 축복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야말로 연약한 우리 인간들에게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서 그가 가졌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a.의인은 존귀하게 됨(욥36:7)
b.의인은 버림당하지 않음(시37:25)
c.의인들에게는 복이 있음(사3:10)
4) 약속이 이루어지는 때를 기다리라
물론 해답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현재 이 시편을 노래하는 다윗의 상황이 곧 해답을 찾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 때는 하나님만이 아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때입니다. 바로 이 문제가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우리를 갈등하게 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나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를 아는 것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에서 허락하시는 때, 그때가 가장 적합하고 유익한 때라는 사실을 수긍하고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a.하나님의 약속은 정한 때에 성취됨(합2:3)
b.오랜 후에 성취되어도 예언은 분명히 성취됨(단10:14)
결론
이 시편에서 다윗이 절규하는 것같이 우리 성도들 역시도 신앙적인 속을 태우고 괴로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이 시편에서 제시된 성경적인 해답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하나님에서는 악을 징벌하시고 의로운 성도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오늘 당하는 여러 가지 고통과 좌절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의 태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