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가 요동정벌을 위해 압록강까지 갔다가 다시 군대를 돌린 **'위화도 회군(1388년)'**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이성계가 회군을 결심한 배경은 그가 당시 조정에 올린 **'4불가론(四大不可論)'**에 명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가 내세운 4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1.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것은 옳지 않다 (소사대불가, 小事大不可)
당시 명나라는 중원을 통일한 거대 제국이었습니다. 국력 차이가 너무 큰 상황에서 무리하게 명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국가의 존망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도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 2.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하월발병불가, 夏月發兵不可)
농번기인 여름에 농민들을 군사로 징발하여 전쟁터로 보내는 것은 농사를 망치는 일입니다. 이는 나라의 경제적 기반인 농업을 파괴하여 백성들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 3. 온 나라의 군사를 동원하면 왜구가 그 틈을 타 침입할 것이다 (거국원정왜승기, 擧國遠征倭乘其)
고려의 모든 정예군을 북쪽으로 이동시키면, 남쪽에서 수시로 침범하던 왜구들을 막을 방법이 없게 됩니다. 이는 국방의 공백을 초래하여 나라를 비우는 자살 행위와 다름없다고 판단했습니다.
### 4. 장마철이라 활의 아교가 녹고 병사들이 전염병에 걸릴 우려가 있다 (시계장마궁노해, 時季長雨弓弩解)
당시 병기인 활은 아교로 붙여 만들었기 때문에 습한 장마철에는 성능이 떨어집니다. 또한, 전염병이 창궐하기 쉬운 계절에 무리한 원정을 강행하는 것은 군대의 전투력을 스스로 갉아먹는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 이면의 정치적 맥락: 이성계의 진짜 의도
표면적으로는 위의 4가지 군사·경제적 이유를 내세웠지만, 이성계의 속마음에는 **정치적 결단**이 깔려 있었습니다.
* **최영과의 정치적 대립:** 요동정벌은 실세였던 최영 장군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밀어붙인 사업이었습니다. 이성계는 이 무리한 전쟁을 따르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고려 왕조의 파멸과 자신들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 **권력의 이동:** 이성계는 단순히 군사적 지휘관을 넘어,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와 결탁하여 **"고려라는 낡은 시스템을 갈아엎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확고한 정치적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회군은 고려 왕실과 최영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으며, 실권을 장악하기 위한 명분 있는 반란이었습니다.
### 회군의 결과
압록강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개경으로 진격한 이성계는 최영을 제거하고 정권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이후 그는 정도전 등과 함께 **토지 개혁(과전법 실시)**을 단행하며 경제적 기반을 허물고, 4년 뒤인 1392년에 조선을 건국하게 됩니다.
결국 위화도 회군은 단순히 전쟁을 멈춘 사건이 아니라, **고려의 군사적·정치적 중심축이 '보수 귀족(최영)'에서 '신흥 무인과 개혁파 사대부(이성계, 정도전)'로 넘어가는 거대한 변곡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