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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하고 매주 가정에 관련된 주제로 자녀양육, 부모공경, 부부사랑, 가정행복등의 말씀을 전하며 가정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고주리교회에서 매년 5월 가정의 달 축복의 주일, 둘째 주 어버이주일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정하고 어버이의 사랑과 헌신에 대하여 기리며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종교에 있어서는 기독교에서만 유일하게 어버이주일로 특별한 날을 정하고 어버이에 대한 효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버이날 유래를 보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는 나라,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효의 나라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120여 년 전에 미국 ‘베지니아주 웹스터’마을의 ‘안나 자이비스’소녀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안나는 돌아가신 어머니 무덤 주변에 카네이션을 심고, 어느 모임에 카네이션을 달고 나간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되기 시작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 미국 시애틀에서 1904년에 최초로 ‘어머니 날’ 행사를 개최했고 그 후 미국에서 1913년부터 매년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날’로 제정했습니다. 그 뒤로 전 세계로 이 행사가 퍼져나가면서 우리나라는 1956년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했고, 1972년에 ‘어버이날’로 명칭을 변경 제정하고 국가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행사일 제정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잘하고 있으면 구태여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잘하지 못하니까 잘해 보자고 정하는 것입니다. 물론 잘하는 것을 모범 삼자고 정하는 것도 있지만, ‘어린이날’ ‘어버이날’ 은 잘하는 것이 아닌 잘 못하는 것을 잘해보자고 정한 것입니다.
2050년이 되면 전체 인구의 40%가 65세 이상의 인구가 된다고 합니다. 이제 사회에서도 노령에 대한 특별한 예우를 할 수 없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시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하지만 자녀들의 숫자는 적고 부모의 숫자는 많아지는 것이 또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부모를 섬기는 것에 대한 큰 지침을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묵상하며 부모를 섬기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참된 부모섬김에 대한 의미를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어버이주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섬김은 어떤 것일까요? 어떻게 부모를 섬기는 것이 참된 섬김일까요? 첫 번째, 부모님에게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4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여기에 쓰이는 공경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כבד(kabod) 신약에 쓰인 헬라어로는 τιμηω(timeo)입니다. 이 단어의 본 뜻은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의 좋은 예를 살펴보자면 나오미의 며느리 룻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시어머니를 사랑하며 자신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시어머니와 함께 했던 것. 자신의 죽은 남편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정에 감사하며 신앙도 없고 이방의 여인이었던 자신을 거두어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섬겼던 것이 바로 이 룻의 부모공경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성경은 살인, 간음, 도둑질, 위증죄, 사기죄,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죄를 동일선상에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십계명의 인간관계에 관련된 부분을 정리한 성경구절입니다. 십계명에 인간이 인간에게 지켜야 하는 인간관계의 계명중 제일 처음을 부모공경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먼저 지켜야하는 관계가 부모자식간의 관계이고 이 둘의 관계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부모님께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감사를 할 줄 모르면 이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또한 부모님께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과 2절 말씀을 보십시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부모를 공경하는 최고의 모습은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도 공경하라는 명령을 주시면서 그 앞에 순종하라는 명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종이 공경하는 마음의 행위표현인 것입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21장에 보면 부모님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은 사회적인 처벌대상이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부모가 자녀들이 너무 말을 안 듣는데 때려도 말을 듣지 않고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를 정도로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성읍장로들에게 고발을 하게 되는데 이 장로들의 설득에도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기를 거부하면 그 자리에서 즉시 돌로 맞아 죽는 처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은 오늘 우리가 부모에게 해야 할 섬김이 어떤 것인가 고민하는 우리에게 성경에서 주시는 첫 번째 섬김의 모습 그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항상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섬김은 어떤 것일까요? 어떻게 부모를 섬기는 것이 참된 섬김일까요? 두 번째, 부모를 모욕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5장 4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마가복음 7장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이전에 쓰던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비방이라는 단어와 모욕, 훼방이라는 단어가 모두 동일한 의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훼방이라는 단어는 행위적인 방해의 뉘앙스가 강하지만 모욕이라는 단어는 인격적인, 언어적인 방해의 뉘앙스가 강합니다. 사실 이 시대는 부모에 대해 행동적으로 거부와 함께 인격적인 언어적인 방해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사실 어느 단어를 쓰던지 간에 지금 이시대의 자녀들의 모습을 표현하는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위로도 부모를 멸시하는 일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가 종종 뉴스에 등장하는 시대입니다. 참으로 부모공경이 땅에 떨어진 모습을 종종 언론매체를 통해 보고 듣게 됩니다. 성경은 이런 일을 행하면 이런 자는 차라리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키워봤자 인간다운 인간이 아니라 아예 죽는 것이 나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1장 15절입니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21장 17절도 보십시오.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부모나 조부모가 자녀로부터 폭행・상해・살해되는 등의 존속범죄가 최근 5년 간 91%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충북 충주가 지역구인 이종배 자유한국당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근거로 본인 또는 배우자 부모를 대상으로 한 존속범죄가 지난 2014년 1146건, 지난해 2189건으로 최근 5년간 91%나 증가했다고 지난 수요일 2019년 5월 8일에 밝혔습니다.
이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266명의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살해당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 4월에 이어 어제도 결혼에 반대하는 부모를 살해하는 자녀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창원지검 밀양지청은 남자친구와 함께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 존속살인으로 23세 여성 이모씨를 구속기소 했다고 어제 5월 11일 밝혔습니다. 범행에 가담한 이씨의 남자친구도 공범으로 구속해 재판에 넘겨졌다고 합니다. 이씨는 남자친구와 공모해 지난 4월 19일 오후10시쯤 경남 창녕군 자신의 집에서 술 취해 잠든 아버지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경찰수사와 검찰수사에서도 범행을 모두 인정했다고 합니다. 이씨는 아버지가 남자친구와 결혼을 반대하고 자신이 번 돈을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데 써버리거나 남자친구를 무시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것으로 살해까지 하는 생명경시의 시대인데 이런 생명경시의 풍조가 가족들간에도 일어나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죽이는 것이 심심치 않게 뉴스에 나오는 참 어처구니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상황속에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즉 부모의 말을 거역하는 것, 부모를 거슬려 훼방하는 것, 부모를 모욕하는 것이 사형죄에 해당하는 죄악이라는 말씀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말씀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가족끼리 엄청난 죄를 범하는데 우리가 잠시 부모님의 생활과 안위에 대해 무관심했다고 그게 무슨 큰 잘못이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절대적인 것입니다. 상대적이지 않습니다. 이 정도 했으니 너희는 잘 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라고 했으면 해야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우리 하나님, 우리 예수님의 판단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자녀가 부모를 모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자기 자녀가 부모를 모욕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만 결혼했을 때 며느리, 사위의 입장이 되면 조금 달라집니다. 상대편의 부모에 대해 모욕하거나 부모의 자질을 논하거나 인격적인 모독을 하는 경우가 심심치않게 발생합니다. 며느리가 시부모를, 사위가 장인장모를, 배우자의 가정의 어르신을 거론하며 깎아내리고 자질을 논하고 인격적인 모독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30년, 40년을 살아오며 몸에 베여진 친정과 본가의 생활양식과 시가와 처가의 생활양식은 너무나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서 생겨난 생활양식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속에 객관적인 상식이 있는가하면 가정별로 세워진 생활양식을 상식이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살아왔던 배경과 환경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양가의 부모를 모욕하다 못해 모독하는 경우가 생길 때 우리는 가정불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 가족해체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고 이것은 영적인 죽음, 육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자녀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모를 모욕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화를 낼 때 자녀들의 대부분은 부모의 노여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해해서 부모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를 섬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러 가지 모습에 있어 부모같지 않은 부모를 모시고 있다고 할지라도 나를 낳아주고 나를 길러주신 은덕을 생각하며 부모를 존귀히 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장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손가락질 받을 부모라고 생각이 든다고 할지라도 그 분들은 우리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분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그 노고에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섬김은 어떤 것일까요? 어떻게 부모를 섬기는 것이 참된 섬김일까요? 세 번째, 부모님의 생계에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5장 5,6절입니다.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부모들이 자녀를 키우면서 기대하는 것은 나중에 자녀들을 통해 뭔가 도움을 얻을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클 때는 자녀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주고 학업에 필요한 돈을 투자하고 청장년이 되어서도 심지어 결혼자금까지 부모가 대어주는 것이 한국의 부모들의 고뇌 아닌 고뇌입니다.
서구 유럽과 아메리카대륙등 많은 다른 국가들은 10대만 되면 자녀를 성년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각자 알아서 용돈을 벌며 지내는 훈련을 시키는데 우리는 30세가 될 때까지도 돈을 버는 훈련을 시키기보다 돈을 쓰는 것만 가르쳐줍니다. 이런 교육의 방법이 자녀들에게 득이 되기보다 해가 될 가능성이 많음에도 우리네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위해 30세, 40세가 될 때까지 결혼하기 전에는 오로지 주고만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결혼을 하고 나면 당장에 뭔가 자녀들이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결혼함과 동시에 안정된 가정, 안정된 직장을 주는 사회가 아니라 최소 10년, 20년은 고생을 해야 안정된 직장을 겨우 마련할 수도 있는 상태가 되는 참 어려운 사회입니다.
왜 그럴까요?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경제적인 훈련을 대학교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하면서 그 때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니 우리 한국사회가 지금 너무나 힘든 사회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결혼적령기는 점점 늦어지고 취업의 시기도 점점 늦어지고 가정이 안정화되는 시간도 늦어지는데 노인들은 늘어나고 노인들의 일거리가 해결되지 못하고 노인들을 봉양할 자녀들의 직업이 안정되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못해서 부모님을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것도 문제인데 오늘 성경의 본문에는 경제적인 여건이 됨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생계를 돌보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예수님께서 책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 11절 말씀을 찾아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이 사람은 외형적으로 참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이 사람은 교회에 헌금을 참 많이 냅니다. 이 사람은 교회의 건축에 참 적극적인 사람입니다. 자기가 가진 물질을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라고 선포하며 하나님의 것으로 드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부모는 궁색하게, 굶주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부모님의 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고르반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뜻은 본문에도 기록되었듯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는 כרב(qorban) 헬라어, 영어도 모두 발음나는대로 철자를 써서 ‘고르반’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원어의 뜻은 ‘제물’, ‘예물’이라는 뜻입니다.
레위기에는 이 단어가 40회, 민수기에는 38회, 에스겔서에 2회로 구약에 꽤 많이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신약에는 마가복음 7장 11절에 1회 씌어져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율법의 근본정신을 어기는지에 대해 지적하시며 이 말을 쓰시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이 ‘고르반’이라는 말을 써서 맹세한 경우에는, 가령 그 가리켜 맹세한 것이 부모를 부양하는데 필요한 것일지라도, 그 취하를 인정치 않았습니다. 특별히 이 봉헌의 맹세를 악용하는 경우가 생겨났는데요. 고르반이라는 명목으로 부모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 하는 자가 생겨났습니다.
부모님을 마땅히 섬겨야할 물건을 가져다가 성전에 바치며 고르반하고 외쳐 성전에 거치를 시켜놓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자신의 명예를 높이는데 쓰이거나 후에 성전에서 그 바친 것에 대한 이익을 얻을 목적을 가지고 고르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땅히 부모를 섬길 수 있는 재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재물을 하나님과 예수님앞에 드려서 부모를 섬기지 않는 것을 책망하십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이런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멸망과 죽음의 거짓 신앙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도 자신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며 돈을 챙겨놓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부모들은 내팽개쳐놓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런 책망을 받는 사람이 되지 않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잘 섬기는 동시에 육신의 부모님의 형편도 돌 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게도 칭찬을 받고 육신의 부모로부터도 칭찬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할까요? 첫 번째, 복을 받으며 이 땅에서 장수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을 보십시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사실 성경은 부모공경의 명령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부모 공경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할 때 생명이 길다라고 말씀합니다. 장수의 복을 몇 번씩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절~3절에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할까요? 둘째로, 내가 부모로써 공경받을 수 있는 보험을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잘 공경하면 우리의 자녀들은 그 모습을 보며 진정 부모님을 잘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앞으로 자라서 자기들이 경험하게될 아빠, 엄마의 모습은 지금 자신들의 엄마, 아빠로부터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신앙의 본을 보일 때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본받아 제대로 살아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7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할까요? 셋째로, 진정한 신앙을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사랑과 섬김의 최고의 대상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섬김과 사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섬김과 사랑의 모습을 이 땅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따져보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모님을 섬기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의 훈련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부모공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공경과 섬김의 모습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이 관계를 통해 우리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이 땅과 하늘나라를 통틀어 우리에게는 우리가 진정으로 섬겨야할 참된 부모가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그 분을 무시할 수 없고 그 분이 없이는 우리의 모든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참된 부모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우리의 영원의 안식이 되어주시는 참 부모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은 오늘 우리는 우리의 궁극적 부모, 우리의 영원한 부모, 우리의 참된 안식이 되는 부모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모시기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땅의 육신의 부모를 잘 섬기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을 잘 섬기는 훈련을 받고 진정한 신앙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육신의 부모를 섬기는 것과 영원한 부모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제대로 잘 하셔서 이 땅의 사람들에게서 신앙과 가족관계 모두 칭찬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