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국밥을 시킨다. 맛나다고 소문난 국밥집이다. 길거리를 향해 환하게 트인 주방엔 커다란 가마솥이 걸렸고, 뚜껑을 열어 둔 가마솥에서 설설 끓는 소고기국밥 냄새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비교적 깔끔한 실내엔 식당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주문을 하는 단골들도 벅적인다. 일찌감치 한 자리씩 차지한 손님들은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힌 콧등을 국그릇에, 박고 있기도 하다.
국밥집을 찾는다는 건 날이 흐리다는 거다. 속이 헛헛하다는 의미다. 이유 없이 마음이 시린 날이면 이름난 소고기국밥 집을 찾아 뚝배기 국밥으로 속을 데워 보자는 뜻이다. 푹 우려낸 육수에 알맞게 삶긴 살코기, 맛이 밴 콩나물, 쌀밥이 어우러져 뜨끈하게 목을 넘어가는 국밥엔 무엇보다 옛 추억도 배여 있다.
누구든 추억의 한 페이지엔 학창 시절과 더불어 잊지 못할 선생님이 간직된다. 가장 존경하고 좋아했던, 여중 삼학년 때의 담임선생님도 추억 속에 계신다. 스승의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신 은사님 중에서도 그분은, 초등학교 육학년 담임선생님과 함께 마음속 ‘멘토’이다.
“너는 공부를 해야 한다.” 여고 진학을 포기할 위기에 처했을 적에 간곡히 당부하신 선생님, 부모님조차 여식의 눈치만 봐야 하는 형편이었다. 딱 하나의 끈인 장학 제도에 의지해 모교의 여고로 진학을 결정했던 건, 삼 년 전 초등학교에서 여중으로 왔던 상황 그대로다. 명문 학교 합격률을 높여야 하는 학교의 사정상 부산의 명문이던 K 여고엔 시험만 치르기로 한 날, 점심시간이었다. 시험을 다치고 운동장을 걸어 나오는데 쌩하게 볼을 때리는 겨울바람인들 마음보다야 추웠으리. 교문 앞에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다. 환청인 듯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 주었다.
깜짝, 눈앞에 나타난 담임선생님은 아무래도 세상 밖 어떤 고귀한 분이 보내 주신 구세주가 아니었을까. 여자처럼 흰 얼굴에 안경이 썩 어울리는 선생님이셨다. 한 벌뿐이던 겨울 외투의 깃을 세우고 매력적인 금니 한쪽이 살짝 드러나도록 웃고 계셨다.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날 선생님과 함께 먹은 점심이 소고기국밥이었던 것 같다. 혹 다른 국밥이었다 한들, 그 국밥은 세상에서 가장 뜨습고 맛난 소고기국밥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국밥집을 찾는 걸 보면 음식은 몸의 양식 이상의 무엇인가 싶다.
그런데 국수만 먹으면 어이없게도 왜 배가 아픈 건지. 미처 맛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후루룩 넘어가 버리는 면발에 부담을 느낀 위장(胃腸) 탓일 수도 있지만, 딱히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같은 밀가루 국수라도 ‘밀면’은 살살 감아서 곧잘 먹고, 쫄깃한 비빔냉면도 즐겨 먹는다. 옛날엔 보리밥 다음으로 먹었던 음식이 고구마나 밀수제비였고, 국수는 소화가 너무 잘되어 탈이었던 음식 아닌가.
집집마다 한 끼 땟거리가 걱정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나마 장학생으로 겨우 여중생이 되었던 여름 방학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었다. 그날따라 일찍 놀러 온 단짝 친구는 한낮이 지나도 돌아갈 낌새가 없었고, 마음이 초조해졌다. 마침 그때 어머니가 점심인지 저녁인지 국수를 말아 왔었다. 밥상을 가운데 두고 할머니와 어머니와 동생들이 친구가 빙 둘러앉자, 밥상 위를 둘러보던 눈길이 어머니 국수 그릇에 꽂혔다. 아니나 다르랴, 어머니의 국수엔 턱없이 국물만 많았다. 가뜩이나 자식들 챙기느라 허리가 접히는 당신이 국수 국물로 허기를 면하기나 할 텐가. 그날만은 친구도 원망스럽고 스스로도 싫었던 자신, 세상에 없는 어머니와 그날의 국수가 명치에 걸려 있다.
요즘엔 분식점 메뉴마다 들어 있는 값도 싼 국수다. 한데 ‘잔치국수’라는 바로 그 옛날식 국수일때 속이 불편해진다. 잔치국수라니? 고작 멸치 맛국물에 국수를 말아 정구지(부추) 나물이나 잘게 썬 김치나 단무지 채를 고명으로 얹은 것을, 가난한 옛날식 국수인 뿐인 것을. 쌀이 귀하던 시절이었으니 잔치나 행사에 손님 대접으로도 나오긴 했다. 어쨌거나 음식도 예술의 경지인 이 세대엔 별맛도 없이 속만 더부룩하건만, 몇 년 만에 만난 옛 친구는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옛날에 너의 엄마가 말아 주신 국수를 먹었는데… 단무지 채를 썰어 얹고 양념간장으로 간한 국수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몰라. 그날 너의 집 식구들이 밥상 앞에 둘러앉아 국수를 먹던 풍경이 어찌나 다정하고 부럽던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친구가 그날의 국수를 잊지 않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그즈음 친구 어머니는 가출을, 했었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처음 들었다. 그놈의 편치 않은 면발처럼 가슴에 얹힌 기억이 다시 생생해졌고, 아릿한 추억을 동시에 간직한 친구와의 인연에 애잔하면서 복잡한 감정들이 얽히던 순간이었다.
아무튼, 국수는 마음으로부터 당기지 않는 음식이다. 그러기에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원인균을 갖고 있는 성싶다. 여러 사람들이 몸에 좋다고 예찬론을 펴는 보리밥도 절대 당기지 않는다. 미끄덩거리고 싱겁기만 한 보리밥이 쌀밥을 밀쳐 두고 왠 특별 대우를 ‘웰빙’ 음식으로 격상했냐고.
생각해 보니 음식은 생존의 조건이지만 사람에게 마음의 양식이기도 하다. 음식엔 저마다의 그리운 사람과 행복하거나 아린 시간들이 버무려져 있다. 맛의 추억은, 그 사람의 사소한 일상에서 나아가 한 일생을 담아내는 기억이 아닐까. 세상 어느 귀한 말씀도 어머니가 해 주던 밥 냄새만큼 향기롭고 정신이 풍요로울 순 없으리라. 한 그릇 밥이 지친 영혼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그래서 ‘음식은 문화를 창조하고 우리가 누구인가를 정의하기도 한다.’고 했던가.
오늘 그녀는 오랜만에 국밥집에 앉아 있다. 지금은 멸치 맛국물에 국수를 말아 주시던 어머니도, 학교 앞 식당에서 소고기국밥을 사 주셨던 선생님도 계시지 않는다. 마음이 시려서인지 사정없이 달리는 세월이 허허로워서인지, 얼굴은 금방 눈물이라도 쏟을 듯하다. 이런 급박한 마당에 저 푼더분한 국밥집 아주머니, 국밥 한 뚝배기 벼락같이 안 차려내고 뭐 하시나. 그녀가 뜬금없는 울음을 왈칵 터뜨리기 전에 온기를 채워 줘야 하는데, 속을 후끈 덥혀야 하는데, 뜨끈뜨끈한 국물과 톡톡한 살코기가 입에 쩍쩍 붙는 소고기 국밥으로 얼른, 후딱.
첫댓글 참으로 후덕하신 서승님을 만나셨군요. 이 모두가 염 작가님의 착하신 마음가짐 덕분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