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경(1930-2013)
1930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와 동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56년 ‘문학예술’에 조지훈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했고, 시 동인지 ‘60년대 사화집’을 주도했다.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와 한국시인협회장, 한국가톨릭문인회장을 역임했다. 2001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카톨릭 집안으로, 카톨릭 신자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끊임없는 실험의 연속이었다. 그를 대표하는 것은 단어 수를 최소화해 의미의 밀도를 극대화하는 밀핵시(密核詩)다. 밀핵시는 요소시(要素詩)와 기시(氣詩) 등으로 확장되며 다양한 시적 실험으로 이어졌다. 요소시는 ‘의미의 다이아몬드’나 ‘의미의 라듐’과 같은 것으로 군더더기 말을 제한 시를 뜻한다.
전위적인 작품으로 현대시의 영역을 넓혔다.
그의 전위적 실험은 75세이던 2005년 출간한 시집 『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문학세계사)에 등장한 일자시(一字詩)에서 정점에 이른다. 한 글자가 한 행을 이루는 일자일행(一字一行)의 극단적인 실험은 의미의 무한한 확장을 가능케 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시집 후기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궁리한 끝에 일자시 103편을 확정했다. 일자시는 50여 년에 걸쳐서 내가 추구해온 밀핵시론의 종국적 마무리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개성 있는 표현을 추구하는 시인은 시의 형식뿐만 아니라 운율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 운문과 산문의 중간 정도인 우주율(宇宙律)이라는 리듬도 만들어냈다. 또한 시각과 청각 등 다섯가지 감각을 상응하는 것을 시의 본질로 삼는 오관연습(五官練習)을 주장했다.
그의 시 속에서 정서의 리듬이 깨지는 대신에 이미지의 공간이 들어섰다.
시어의 비약과 생경한 이미지의 사용으로 다소 난해하다는 평을 듣고 있으나, 특유의 개성 있는 언어 표현이 주목되는 시풍이 주조를 이룬 시집이다.
한국전쟁 이후 새로 재편된 한국시단의 흐름을 전통파·중도파·실험파의 셋으로 분류할 때, 성찬경은 실험파에 속하는 시인이다. 실험파의 특색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시를 쓰겠다는 의욕과 그 방법론적 자각의 투철함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성찬경은 피상적 장치에만 치중한 나머지 내실을 잃은 말장난에 떨어질 위험을 경계하면서 현실과의 긴장 관계를 잃지 않는 시세계를 견지하고 있다는 데서 독자적 영역을 확보한 시인이다.
현대시에 영문학적 형식과 정서를 접목하고 전통과 어우르는 시 세계를 펼치는 등의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월탄문학상과 공초문학상, 한국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 뿐만 아니라 넉넉한 인품으로 2008년에는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시류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존경받을 만큼 작품은 큰물처럼 깊고 넓으며, 인품은 햇살처럼 만물을 따뜻하게 만든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첫댓글 밀핵시의 선구자 성찬경 시인...
一子詩는 밀핵시의 완성... 공부 잘하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