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는 모세의 비서관으로 모세 사후에는 그의 후계자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던 여호수아가 괜히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게 아니었다. 그는 겸손하고 온유하고 언제나 모범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인물됨이 더욱 빛난 것은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드러났다.
(수 19:49)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경계를 따라서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치고 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니 (수 19:50) 곧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건설하고 거기 거주하였더라
세상의 지도자들은 자기 것 먼저 챙기고 나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데 여호수아는 모든 지파의 땅을 다 분배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몫을 챙겼다. 그는 남들보다 더 많거나, 더 좋은 땅을 차지하거나 요구하지 않고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딤낫 세라를 원했다.
담낫 세라, 그 이름의 의미는 남은 자의 몫 혹은 남은 몫이다. 부조와 선지자에는 이러한 여호수아의 품성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 땅 나누기를 마치고” 모든 지파가 저희 기업을 배당받은 후에 여호수아는 자기의 요구를 제시했다. 갈렙에게처럼 그에게도 기업에 관한 특별한 약속이 주어져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광막한 지역을 구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읍을 하나 요구하였다. “여호수아의 구한 성읍 … 을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였었더라”(수 19:49, 50). 이 성읍에 “남은 분깃”이란 뜻으로 딤낫세라란 명칭이 주어졌는데 이는 정복한 땅을 제일 먼저 취하는 대신에 자기 백성 중 가장 미천한 자들까지 다 분배받기까지 자기의 요구를 연기한 정복자 여호수아의 고상한 인격과 무아의 정신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부조, 515)
여호수아가 딤낫 세라를 원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는데 하나님의 법궤가 있던 실로에서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는 말씀 가까이에 살고 싶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요 그분의 율법이 있는 거기에 머물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이 여호수아가 황폐한 산지 딤낫 세라를 원한 이유였다. 그래서일까? 여호수아 사후에 추가된 한 구절이 성경에서 발견되는데 다음 구절이다.
(수 19:47) 그런데 단 자손의 경계는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셈과 싸워 그것을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하였음이라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셈을 단이라 하였더라
본 사건은 여호수아 사후에 있었던 사건임으로 후일에 누군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여호수아의 기록에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단 지파는 자신들의 영토를 분배받았지만 아모리 사람들의 방해로 땅을 점령하지 못하고 보다 손쉬운 북쪽 레셈을 개척하여 단이라고 고쳐 불렀다. 그리하여 단의 영토는 므낫세처럼 서쪽 지중해 지역과 북쪽 두 곳으로 나눠지게 되었다. 그런데 단 지파가 실로에서 가장 먼 곳으로 영토를 넓힌 일이 그 지파에게 늘 시험거리가 되었는데 그들은 다른 성읍들과 교류가 없이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곧잘 우상 숭배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그것이 사사기 18장의 단 지파 사건이었다. 황폐한 산지였지만 실로 가까운 곳에 맨 마지막으로 땅을 분배받은 여호수아와 달리 실로에서 가장 먼 곳으로 나아갔던 단 지파의 선택은 외적인 조건만 보고 땅을 선택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선택만큼이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교회에서도 늘 교회 맨 뒷자리만 앉고 예배에는 나왔지만, 강단 가까이 보다는 얼굴이 잘 안 보이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경우 영적으로 신앙이 깊이 내릴 가능성이 작다. 단 지파처럼 다른 생각,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기기에 십상이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말씀 가까이 교회 가까이 자리 잡게 해 주십시오. 언제든지 달려가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살게 해 주십시오. 땅은 기름진가? 학군은 좋은가? 상권은 괜찮은가? 부동산 가치는 충분한가? 이런 질문들이 아니라 교회 가기는 편한가? 말씀을 듣기에 좋은 위치인가? 이런 질문들이 우리의 질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