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모 토요칼럼 2026.7.11 )
ADD의 백곰 지대지 미사일 개발
(한국의 방산 역사에 길이길이 빛날 백곰 미사일 개발)
<1. 박정희 대통령의 미사일 개발
지시 메모 쪽지 >
ADD의 제1차 시제를 끝내지도 않은 1971년 말 어느 날 오원철 수석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1단계로 1975년까지 사거리 200km의 국산 미사일을 개발할 것"이라는 친필 메모 쪽지를 받았다.
오수석은 니무 놀래 어찌 할바 몰랐지만 그의 명석한 두뇌로 절대로 미사일 개발을 위하여 ADD 외에 별도의 새로운 기구 설치는 국가의 재정 능력으로 보아 지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였다.
오수석은 71년 11월 17일 이래 국산병기의 시제를 맡아 추진하고 있는 ADD가 국방을 위해 설치된 연구소 이므로 일단 총포개발 팀장으로 신뢰할 수 있는 ADD의 구상회 박사를 불러 메모지를 보여 주고 상의하였다.
구 박사는 "ADD가 못할 것이 없지만 메모 쪽지와 오 수석님의 구두 지시만으로는 ADD가 미사일 개발에 착수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청와대의 서면 지시공문이 필요합니다 " 학고 답변 했다.
박정희의 청와대는 미사일 개발 방침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결정하여 정식으로 박정희 대통령 명의로 지시공문을 보냈다.
@한국형 유도탄 개발 지침
첫째 한국식 미사일 개발체제를 확립할 것
둘째 지대지 미사일을 개발하되
1단계는 1975년 이전 국산화를 목표로 할 것
셋째 기술개발을 위하여 국내외
기술진을 총동원하고 외국
전문가를 초청하며 외국과
기술 제휴도 고려할 것
대통령 박정희
<2. ADD의 지대지 미사일 개발 추진노력 >
우주 항공산업(미사일 ) 개발은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시작하여 ADD 단독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되었다.
따라서 ADD는 정부의 어느 누구의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고 극비리에 추진하였다.
관계 상부 관청인 국방부가 아닌 대통령의 비밀 지시였기 때문이었다.
ADD는 사전 준비후 7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야 ADD내에 항공사업 본부를 설치하였다.
실무적으로 일단 개발할 모델을 나이키 허큐리스 로켓으로 결정하고 동시에 미사일 개발팀을 발족시킴으로써 추진이 본격화되었다.
미사일 제작자인 맥도널드 더글러스와의 접촉도 하고 추진제 생산을 위하여 프랑스의 SNPE 사 와도 교섭하 여기 초 작업만은 추진이 끝난 셈이었다
<3. 대전기계창 설립과 미사일 발사 >
왼 전한 형태의 개발을 위하여 미사일 개발을 위한 각종시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차로 약 100만 평의 부지가 필요하였다.
이리하여 대전 근교에 부지를 확보하고 미사일 팀을 독립시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하며 비밀명칭으로 대전기계창이라고 부르고 역군 이경서 박사를 창장으로 임명하였다.
연구동 기계창 부지와 동시에 서산군 안흥면에 거대한 시험장을 건설함으로써 미사일 개발과 발사의 준비를 동시에 하였다.
이리하여 미사일 개발은 박정희 대통령 지시 후 7년 만인 1978년 9월 26일에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삼부요인과 국내외 인사 100여 명이 참석리에 서해안에 있는 안흥에서 시혐발사를 하였다.
발사!라는 신호로 발사된 미사일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170km 거리에 있는 표적을 명중시켰다.
ADD 미사일 개발팀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실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 백곰 미사일 발사의 성공으로 한국은 계속하여 현무 series 급등의 미사일을 생산하여 실전에 배치하고 있다
미사일 개발에 끊임없는 연구개발의
노고로 시련을 겪은 끝에 미사일 개발에 성공하였다.
1212 군부는 정권장악의 대의명분이 없었으므로 미국의 환심을 사서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미국이 반대했던 박정희의 일련의 안보 프로젝트인 방위산업을 시작으로 미사일 개발과 핵개발이 과욕이라고 하고 기술인력 말살정책을 감행했다.
ADD의 방산기술자 50% 이상을 퇴춭시키고 간부급 인사는 무조건이었다.
미사일 개발의 대전 기계창은 백곰ㄱ개발이 사기라고 하면서 기고자쳬를 없애 버렸다.
핵개발에 대하여는 핵개발기관인 핵연료 개발공단을 폐쇄하고 없애버린 원자력 연구소(KAERI )와 합쳐 에너지 연구소로 개칭하였다. 기술게 대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안보와 관련 없는 중화학에 대하여도
79년 말에 일어난 인프라를 망국으로 가는 중화학 때문이라고 비난하였다.
정부는 2015년 7월 광복 70주년 행사에 70대 우수 발명품으로 70년대의 ADD의 백곰 미사일과 90년대의 기본 훈련기 웅비 KT-1이 선정되었음을 말씀드린다.
전통적 방위산업과 더불어 미래가 창창한 유도무기의 개발로 항공산업 발전의 미래를 기대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백곰은 한국의 항공산업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시현하여 오늘날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유도무기와 항공산업 발전의 기초를 만든 역사적 쾌거를 이룩한 것이다.(끝)
(참고문헌: 백곰,도전과 승리의 기록)
2026.7.11
김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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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모 도요칼럼 2026.7.11 ADD의 백곰 지대지 미사일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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