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명사십리 해당화가 좋은 원산 바닷가에서 처음 눈에 띠었다.
해방되고 전쟁을 겪은 뒤 1960년대 지리산 천왕봉에서 다시 마주쳤다.
분명 운명적인 사랑이겠지만,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는 모르겠다.

일제시대 어떤 해수욕장에는 특이한 물건이 있었다.
인기 많았던 원산해수욕장. 곳곳에 천막이 쳐져 있는데, 바다에 요즘에는 없는 구조물이 눈에 띤다.

우측은 다이빙대가 맞는데, 좌측의 목조 구조물은 과연 무슨 용도였을까?

원산 송정리 해수욕장에도 모래밭과 바다가 접하는 지점에 두개가 설치되어 있다.

대입 수능용 정통이 아니라 별 잡스러운 데에 관심이 있다보니 2년 뒤에 또 한놈을 만났다.
역시 일제 때 사진엽서로 함경남도 흥남의 외항(外港)인 서호진의 한 해수욕장 모습이다.
철지난 바닷가스러운데, 이곳에도 저만치 다이빙대 두개가 있고 이곳에 똑같은 걸 세워났다.
과연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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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되고 몇년이 지나지 않아 전쟁이 일어났다.
지리산은 잔존 빨치산과의 전투로 인해 50년대까지만 해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60년대가 되어서야 마음편히 오를 수 있었는데, 그때 천왕봉 정상은 이렇게 장식한 적이 있었다.

학계에서도 조명되는 거의 유일한 산악회라 할 '연하반, 지리산악회'가 1965년 천왕봉을 찾았다.
그때의 사진.

무너져 내린 돌탑 뒤로 두개의 표대(천왕봉 표지목)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 눈에 익은 게 있다.

1968년 경 천왕봉의 모습인데, 푯대는 무너져 있고, 그 앞에 여여하게 서 있다.
분명히 원산 등지의 해수욕장 것하고 비슷한 모양과 목적일 걸로 짐작된다.
민간신앙자의 기도용이라 추측할 수도 있겠는데 아니기 쉬울거다.
이런 모습 지금 어디에도 없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해수욕장의 것은 일출, 해맞이 용도이고,
지리산 천왕봉의 것은 그 유명한 '천왕 일출'을 구현하려는 용도라고 본다.( 더 읽으시려면 )
70년대가 되면서 지리산은 점점 '만인'의 산이 되었다.
저 구조물은 70년이 되기 전에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소수에게만 허락된, 지리산 천왕봉에서의 오직 한때의 추억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