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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페.톡Cell)회원에게 함께 있을 지어다💖
甲辰年 성경적 신앙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前,後) † 신약(新約) ☆ (豫言書)
☆이 예언(豫言)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福)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때 ☞ 종말(개인/우주)
계10:1-11절) 힘센 천사와 작은 책(冊)
Ⅲ.작은 책의 맛(하)
복음(福音)을 가져 온 이 천사(天使)는 하나님을 향(向)하여 큰 소리로 이렇게 보고(報告) 합니다.
10:5-6절)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遲滯)하지 아니하리니”
여기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라는 것은 조금 전(前)에 말한 것처럼, 이 복음(福音)의 성격(性格)이 어떤 특정(特定)한 민족(民族)이나, 사람에게만 해당(該當)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人類)에 해당(該當)된다는 뜻입니다.
이 천사(天使)가 *오른손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엄숙(嚴肅)하게 맹세(盟誓)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對)하여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라고 하면서‘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物件)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物件)을 창조(物件)하신 이’라고 소개(紹介)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世上)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만드신 분이십니다. 즉 이 세상(世上)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예술작품(藝術作品)인 것입니다.
서울에는 난지도(難地島)라 해서 서울에 있는 모든 쓰레기들을 다 모아서 쌓아 놓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 난지도(難地島)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거기서 날아오는 매캐한 냄새와 먼지로 많은 고통(苦痛)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곳에는 쓰레기 반입(搬入)이 끝나고 흙으로 덮어 공원(公園)을 만들었는데, 이제는 새가 날아오고, 봄이 되면, 꽃이 피는 곳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속 깊은 곳에는 수십 년 동안 없어지지 않은 쓰레기가 있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새로운 곳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世上)을 그렇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 중(中)에서 우리 성도(聖徒)들의 변화(變化)가 가장 중요(重要)합니다. 아직도 이 세상(世上)이 계속 타락(墮落)하고 있는 이유는 아직 예정(豫定)된 성도(聖徒)들이 다 구원(救援)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우리 문제(問題)인 것입니다. *지체(遲滯)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오래 기다리지 않고. 모든 것이 이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고(報告)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5:18절)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天地)가 없어지기 전(前)에는 율법(律法)의 일점(一點) 일획(一劃)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보다 더 견고(堅固)하고 확실(確實)한 것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生角)하기에 이 하나님의 심판(審判)은 *왜 더디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하나님의 구원(救援)은 우리가 생각(生角)하는 것처럼 더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反對)입니다.전(全)세계적(世界的)으로 하나님의 구원(救援)은 긴박(緊迫)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편안(便安)한 가운데서도 또 이 지구(地球)의 다른 부분(部分)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긴급(緊急)하게 영혼(靈魂)을 구원(救援)하는 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0:7절)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福音)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祕密)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일곱째 천사(天使)가 나팔을 분다는 것은 이 모든 일이 최후(最後)심판(審判)의 날이 있기 전(前)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의미(意味)로 생각(生角)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 (弟子)들에게 마지막 심판(審判)이 있기 전(前), 마24:6절)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重要)한 것은 눈에 보이는 이런 작은 경고(警告)들도 중요(重要)하지만, 결국 중요(重要)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어떤 반응(反應)을 보이느냐?는 이것입니다. 여러 가지 재앙(災殃)들은 사람들의 교만(驕慢)을 꺾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재앙(災殃)만으로는 회개(悔改)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있어야 바른 길로 돌아 올 수 있습니다.(회개(悔改)란 입술로 고백과 눈물만 찔끔 흘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길에서 180도 확 돌아서는 것이 회개의 열매입니다.)
그러니까 어려움을 열 번 당하는 것보다는 참된 진리(眞理)의 말씀을 한 번 듣는 것이 훨씬 더 진리(眞理)를 깨닫게 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작은 책(冊)의 가치(價値)입니다.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꼭 들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現象)은 잠깐입니다.
너무나 모든 것이 일시적(一時的)이고,잘 변(變)합니다. 조금 지나면. 그 원형(原形)을 발견(發見)할 수 없을 정도로 변(變)합니다. 그러나 팬카페/카톡에 저장(貯藏)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변(變)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반드시 성취(成就)됩니다. 지체(遲滯)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生角)하기에는 더디게 느껴질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영혼(靈魂)을 구원(救援)하는 이 일을 참으로 긴박(緊迫)하게 성취(成就)시키신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서점(書店)에 책(冊)이 참 많습니다.
어떤 책(冊)들은 너무나 비싸서 구입(購入)할 수 없는가 하면, 또 어떤 책(冊)들은 너무나 어려워서 읽을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쉽고 값이 싼 책(冊)을 찾습니다. 대형(大型) 서점(書店)에 가면, 너무나 많은 책(冊)들이 있습니다. 그 책(冊)들은 우리의 유익(有益)을 위해 읽혀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인간(人間)들에게 가장 필요(必要)한 책(冊)은 곧 천사(天使)가 가지고 내려온 이 작은 한 권(券)의 책(冊)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수많은 책(冊)들은 모두 이 세상(世上)에서의 크고 작은 경험(經驗)들을 기록(紀錄)해 놓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經驗)할 수 없는 것은 이 수많은 책(冊)들 중(中)에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重要)한 것은 하나님에 대(對)한 지식(智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우리 자신(自身)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우리의 원래(原來)의 모습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변(變)한 모습이요, 타락(墮落)한 모습입니다. 이 작은 책(冊)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담은 책(冊)입니다.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이 책(冊)을 빛이라고 15번이나 표현(表現)합니다.
참고 ☞(1:4,5,7,8. 3:19,20,21. 5:35. 8:12. 9:5. 11:9,10. 12:35.36.46.)
어둠 속에 많은 것들이 있으면, 무슨 소용(所用)이 있을까? 어둠속에는 필요(必要)한 것이 빛입니다. 빛이 비취기만 하면, 모든 것의 모습과 위치(位置)가 다 드러납니다. 주(主)님은 이 빛을 비추는 일을 누구에게 맡기셨습니까? 우리들에게 맡기셨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百姓)을 이끌어 내라!(사43:8)
모든 인류(人類)는 거대(巨大)한 소경(盲人) 집단(集團)과 같습니다. 이들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빛이 곧 우리 셀(Cell)共同體에 공짜로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공짜니까 무가치 (無價値)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공백,삭제,거절. 경고 후 백업과 탈퇴)
◎교갱원의 정체와 일과◎
교갱원에서는 평생 모은 전 재산(무소유 무주택자 월(月) 기초연금.26만원 생활비)과 시간(매일 새벽1시-3시 회원들 하나하나 이름부르며 기도ㅡ 저녁 8시까지 골방에서 성경연구)과 생명까지 주(主)님께 드려서 준비한 소중(所重)한 보물(寶物)입니다.
주(主)님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을 밟고 있는 천사(天使)에게 가서 손에 들고 있는 그 작은 책(冊)을 *달라고 하라!’고 말입니다. 그 책(冊)은 곧 우리들의 책(冊)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眞理)는 불통(不通)하는 자(者)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간절히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즉 우리 셀(Cell)가족이 모여서 주(主)님께 이렇게 기도(祈禱)해야 합니다.
*주(主)님! 우리들이 모인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들끼리 잘 지내기 위해서도 아니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더 알고 그것을 더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진리(眞理)를 주시면, 우리가 열심히 모여서 그 진리(眞理)를 온 세상(世上)에 드러 내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생명의 말씀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임에서 가장 중요(重要)하게 생각(生角)하는 것은 더 많은 진리(眞理)가 우리 가운데 선포(宣布)되고, 참된 진리(眞理)가 우리 안에 드러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重要)한 목적(目的)이 되지 못하는 교회(공동체)는 올바른 교회가 아닙니다. 주(主)님께서는 교회(공동체)에 다른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주(主)님이 교회(공동체)에게 주신 것은 곧 이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비추는 권세(權勢)입니다.
신앙생활(信仰生活)을 열심히 하고, 말씀을 들어도 생활(生活)이 갑자기 윤택(潤澤)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병(病)도 금방 낫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리(眞理)가 비추어지는 동안 사탄(詐誕)이 우리들의 영혼(靈魂)을 도둑질하지 못할 것이며, 우리들은 거짓에 속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신(自身)의 고귀(高貴)한 가치(價値)를 발견(發見)하게 될 것이며,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께 대(對)한 믿음이 이 눈에 보이는 어려움들을 넉넉히 이기게 할 것입니다.
말씀을 주는 천사(天使)는 사도 요한에게 이 말씀을 *갖다 먹어버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말씀을 받는 즉시 자기(自己)의 것으로 소화(消化)를 시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천사(天使)는 이 말씀이 두 가지 맛이 있다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9-10절)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는 두 가지 맛이 있습니다. 이것이 입에서는 꿀같이 단데, 배에서는 쓰게 되어.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맛이 정확(正確)하게 무엇을 의미(意味)하느냐?는 것은 분명(分明)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 가지로 생각(生角)할 수 있습니다.
첫째, 말씀을 듣는데 느끼는 기쁨과 그것을 실천하는데 뒤따르는 고통(苦痛)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쉽습니다. 물론 말하는 것도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냐면 몸이 *말을 듣지 않기'때문입니다. 즉 *알기는 다 알아 듣'습니다. 그러나 몸은 *도대체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만으로는 잘 변(變)하지' 않습니다. *말씀과 함께 고난(苦難)이 와야만 순종(順從)'합니다.
둘째, 또 다른 의미(意味)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은 영광(榮光)스럽고. 기쁜일이지만', 이것을 *이 불신(不信)의 사회(社會)속에 전(傳)하는 일에는 많은 어려움들이 따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교회(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을 때는 *너무나도 그 말씀이 달고 영광(榮光)스럽'습니다. 즉 나의 모든 죄(罪)는 사(謝)하여 졌고, 주(主)님은 승리(勝利)하셨고, 우리도 승리(勝利)'했습니다.
얼마나 *울면서 기도(祈禱)했는지 모르고',또 얼마나 *찬송(讚頌)을 불렀는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現實)로 돌아왔을 때, 해결(解決)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즉 부모(父母)님의 병환(病患)은 그대로입니다.
집의 빚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월세를 낼 대책(對策)이 서지 않습니다. 도대체 *그 엄청난 영광(榮光)은 무엇이며, 그대로 남아 있는 현실(現實)은 무엇일까?
그래서 어떤 교인(敎人)은 이 세상(世上)에 적응(適應)되지 않아서 은혜(恩惠)받았던 찬송 (讚頌)만 부르면서 마치 실성(失性)한 사람처럼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보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生角)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서 맛본 것이 영광(榮光)의 시작(始作)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는 이상(以上)의 것을 알았고, 맛보았기 때문에 이 현실(現實)과의 *싸움에서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은사별(恩賜別)로 사용(使用)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맛보았다 해서 모든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신(自身)이 한 걸음씩 전진(前進)해야 하고,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속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진리(眞理)가 가지는 두 가지 측면(側面)을 *쓰고 단 것*으로 생각(生角)할 수 있습니다. 즉 진리(眞理)는 두 가지 내용(內容)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회개(悔改)한 자(者)들에 대(對)한 은혜(恩惠)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회개(悔改)하지 않는 자(者)에 대(對)한 *진노(震怒)의 심판(審判)*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진리(眞理)에는 반드시 이 두 가지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順從)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恩惠)로 찾아오십니다.
그러나 불순종(不順從)하면,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복음(福音)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씀 하나만 택(擇)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복음(福音*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복음(福音)에서 *단 맛만 맛보려고* 합니다. 오직 *은혜(恩惠)로운 말씀, 축복(祝福)의 말씀*만 들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自己) 자신(自身)은 전혀 *쓴맛*을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올바른 복음(福音)*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습니다. 심하게 치십니다. 그리고 나서는 *싸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싸매어 주실 때는'어떻습니까? 처음 치시기 전(前)보다 더욱 아름답고 힘차게 만들어 놓으십니다. 즉 고난(苦難)을 받고 나면, 고난(苦難)을 받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더 건강(健康)하고, 순수(純粹)하고, 풍성(豊盛)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 고난(苦難) 중(中)에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많이 경험(經驗)합니다. 주(主)님은 우에게 이 책(冊)이 가지는 귀한 체험(體驗)을 주신 후(後)에 책(冊)의 비밀(祕密)을 온 세상(世上) 사람들에게 전파(傳播)하라고 명(命)하십니다.
10:11절)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어쩌면 사도 요한은 이제 자신(自身)의 사역(事役)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生角)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主)님은 지금부터 시작(始作)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더 많은 나라와 백성(百姓)들과 방언(方言)을 쓰는 사람들과 임금(王)들에게 살아 계신 주(主)님을 증거(證據)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교회(공동체)의 형편(形便)은 코로나 이후(後) 대단히 어렵습니다.
교회(공동체)는 마치 로마 감옥(監獄)에 갇혀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주(主)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교회(공동체)는 포로(捕虜)되어 와 있을지 몰라도 결코 주(主)님은 포로(捕虜)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악(惡)의 세력(勢力)이 교회(공동체)를 에워싸도 교회(공동체)는 두려워하지 말고, 진리(眞理)의 빛을 밝히라는 것입니다. 즉 생명의 말씀의 책(冊)을 *받아먹으라'는 것은 주(主)님은에스겔 선지(先知)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에스겔 때의 교회(공동체)도 계시록의 상황(狀況)과 비슷했습니다. 유다 백성(百姓)들은 바벨론에 포로(捕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악惡)한 때일수록 더욱 더 진리(眞理)를 잘 소화(消化)해서 진리(眞理)가 살아있게 구체적(具體的)으로 *삶에 적용(適用)될 수 있도록 전파(傳播)하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래야 교회(공동체)가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時代)는 교회(공동체)가 포로(捕虜)되어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공동체)는 이 세상(世上) 한 가운데 *내동댕이쳐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世上)은 끊임없이 교회(공동체)에 도전(挑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狀況)에서 교회(공동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더욱 더 진리(眞理)의 말씀을 소화(消化)해서 정말 누구든지 알아들을 수 있는 생생한 말로 *진리(眞理)를 살아있게 증거(證據)하라'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된 케케묵은 신학논쟁(神學論爭)이나 하고,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린다면, 교회(공동체)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진리(眞理)를 먼저 전(傳)하는 자(者)들이 잘 소화(消化)해서 오늘날 이 시대(時代)에 적절(適切)하게 증거(證據)하지 않으면, 교회(공동체)는 세상(世上)에 먹히고 말 것입니다. 세상(世上)의 죄(罪)는 거친 파도처럼 몰려옵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는 문제(問題)가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더 잘 소화(消化)해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전(傳)해야만 더 많은 사람들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主)님께서는 이방인(異邦人) 전도(傳道)를 위해 열 두 사도(使徒)들 대신(代身)에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열 두 사도(使徒)는 유대 주의적 (主義的) 성향(性向)이 강(强)해서 이방인(異邦人)들에게 복음(福音)을 전(傳)하는데 높은 벽(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異邦人)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잘 소화(消化)해서 전(傳)했습니다.
물론 바울이 그렇게 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핍박(逼迫)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진리(眞理)를 잘 소화(消化)해서 전(傳)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이 복음(福音)이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말씀이 다른 민족(民族)과 방언(方言)들에게도 전파(傳播)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바쁘고, 정신(精神)없는 어린이, 즉 다음 세대를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젊은 세대에 복음(福音)을 전(傳)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다른 나라에도 기꺼이 가서 복음(福音)을 전(傳)할 사람들이 필요(必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셀(Cell)공동체는 움직여야 합니다. 움직이는 공동체, 움직이는 성막(聖幕),움직이는 하나님의 보좌(寶座), 진리(眞理) 자체는 변(變)함이 없지만, *우리*라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온 세상(世上)을 향(向)하여 행진(行進)할 것을 주(主)님은 말씀하십니다.아-멘
찬송가 515장 *눈을 들어 하늘 보라*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2025(乙巳)년*심방(尋訪)의 해*투명하고 진실된 행정질서, 충성된 직분, 은사별로 조직(組織)이 완전(完全)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아름답고 행복(幸福)한 각 셀(Cell)공동체(共同體)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祝願)합니다.
매일 새벽(冬)5-6시 ✫주님께 도움의 기도하는 습관. ✫저녁엔 회개와 범사에 감사하는 삶(살전517)
우리세대와 다음세대,소중한 세계 모든 사람을 위한(마28:18-20) ◑멸망할 영혼救靈과 避難處설립할 특별기도와 특별기부동역자 찾습니다. 온라인 헌금 농협중앙회 주거래 우대통장 302-8772-0191-01 이름 옆에 헌금종류-6자(예 : 착한이 십일조) ☆네 재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인정(認定)과 순종(順從) 💖진리의 복음💖 |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친절하게 열린 상담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